두 발을 모두 땅에 딛고 고개를 들자,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또 말을 잃었다.
도시는 말도 못하게 더러웠다. 큰 길을 중심으로 주변에 단층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는데 마치 집에서 오물을 길바닥에 버린 것처럼 창문에서 바깥벽으로 썩은 음식 찌꺼기와 오물들이 붙어서 말라가고 있었고 바닥 타일은 끈적이고 꺼먼 무언가로 덮여 있어서 구두 밑창에 찐득하게 달라붙는 기분이 역겨웠다. 끔찍한 냄새에 머리가 아파온다. 현기증에 머리를 짚으며 눈을 감자 이곳저곳에서 앓는 소리, 울음소리,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몇 없었는데 모두 일제히 이곳을 바라보며 주춤거렸다. 피곤에 찌든 눈빛엔 경계심이 가득했다. 그때 왼편에서 한 노파가 비척거리며 다가왔다.
“마님, 나리. 자비를, 빵 한쪽이라도……”
노파는 서 있을 힘도 없는 것인지 그대로 풀썩 주저앉아 손을 높이 들고 빌었다. 그녀 역시 온몸이 검댕과 오물투성이었고 간간히 보이는 흰 머리카락이 그녀가 나이든 사람임을 추측하게 했다. 뼈와 주름진 거죽만 남은 팔이 애처롭고 가련하다. 노파의 떨리는 몸, 떨리는 목소리가 내 마음의 어딘가를 자꾸 뜨겁게 짓눌렀다.
“이름과 출신이 무엇이냐.”
나는 이살롯에게 나의 백성과 땅을 유린당했고, 따라서 이살롯 왕국의 모든 것에 적대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이살롯으로 간다는 오셀롯의 말에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그가 그 무엇을 보여준다고 해도 나는 ‘이살롯’이라는 이름 하나에 분노하고 증오할 것만 같아서였다.
그치만, 이런 광경은 내가 생각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토록 강대했던 사치와 향락의 나라가 이렇게까지 변모할 수 있는가?
“소인은 메라튼에서 평범한 여관을 운영했던, 에밀 거트랑입니다, 마님.”
에밀은 눈을 치뜨며 숨을 들이켰다. 자선사업이랍시고 병들고 고단한 평민들을 구경하러 온 귀족인 줄로만 알았다. 그리고 으레 그랬듯이 무시하고 지나치거나, 유흥거리로 삼아 신나게 손찌검을 한 뒤 동전 한 푼 던져줄 것이라 생각했다. 전자의 경우는 비참함만 남았고 후자의 경우는 빵 한쪽이라도 살 수 있었으니 이득이었다. 에밀은 이 귀족들도 후자의 경우이길 간절히 바랐다. 그렇게라도 살아야 했기에 무섭지만 용기를 내 다가갔다. 하지만 우아한 말씨와 자상한 표정이 에밀의 마음을 두드렸다. 알 수 없는 감격과 희망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름다운 귀족마님은 품위 있게 웃으며 자신의 곁으로 다가왔다. 사뿐히 내려앉는 발걸음, 한 점의 때도 묻지 않은 하얀 실크옷, 에메랄드 세공품, 그리고 노을에 비쳐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금빛 머리카락과 보석 같은 푸른 눈동자……
에밀은 정신없이 그 얼굴을 쳐다보았다.
“나는 궁금한 게 아주 많아. 내 의문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준다면, 네가 원하는 것을 주마.”
그녀의 주름진 눈가에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흘러 내렸다.
에밀 거트랑의 일생은 언제나 빛과 사랑으로 넘칠 줄로만 알았다. 에밀 거트랑이 되기 전, 에밀 플로랑스는 어엿한 영애였다. 비록 명예와 권력과는 거리가 먼 시골의 영주의 딸이었지만. 사랑하는 부모님은 그녀를 위해 못하는 것이 없었고 그녀는 너무도 행복했다. 성에서 바라보는 포도밭의 풍경이 너무 좋았다. 어린 동생과 건반을 두드리며 노는 일이 즐거웠다. 달콤한 설탕 디저트와 꽃으로 가득한 정원. 앞으로도 그런 삶이 계속될 줄로만 알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 마을에서 가장 인기 있던 갖바치 폴튼 거트랑이었다. 너무도 미천한 신분에 이루어질 수 없는, 로망스같은 사랑. 그 황홀함에 도취되어 금화 세 개와 은장식 거울 하나만 챙기고 그와 사랑의 도피를 떠났다.
금화 세 개를 모두 쓰기 전까지, 그녀는 행복한 날들을 보냈다. 폴튼은 아침저녁으로 그녀에게 키스를 해주었고 밤이면 사랑의 노래를 불렀다. 아침이 되면 그의 어깨에 기대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았고 맛있는 식사와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 하지만 금화 세 개는 에밀에게 단 일주일만의 행복을 주었을 뿐이었다.
폴튼은 돈이 없으니 뭐라도 해야 한다며 그녀를 시장으로 내보냈다. 그녀는 여러 가게를 전전하며 하루 종일 허드렛일을 해야만 했다. 소리 없이 다가오는 배고픔이 이렇게나 무서울 줄 몰랐다. 손에 쥐어진 동전은 늘 다섯 개 이상을 넘지 않았고 아무것도 벌지 못한 날에는 폴튼의 거센 발길질이 기다렸다. 도시는 그녀에게 너무도 매정했고 가혹했다. 살고 싶다. 너무 힘들고 비참한 삶이다. 그래, 다시 플로랑스로 돌아가자. 부모님은 날 애타게 찾고 계실거야.
굳게 마음먹고 도망가고자 결심했을 때에는 이미 뱃속에 새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남편은 이미 은장식 거울을 들고 도망갔는데.
“제가 꿈꿔온 미래는 이런 게 아니었어요… 내가 바랐던 행복도…”
남편은 밉고 증오스럽지만 아이는 죄가 없죠. 아이로 인해 더는 플로랑스에 돌아갈 수 없게 되었지만 제 손가락을 꾹 움켜잡은 그 어린 손에 사랑을 느꼈습니다.
이 아이는 적어도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았으면 했어요. 이 아이는 나보다 더 행복하고 더 많은 것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더 열심히 일해야지, 더 노력해야지, 더, 더.
하지만 아무리 일을 해도, 수입은 점점 줄었고 남은 것은 배고픔에 우는 아이와 병든 몸이었다.
이살롯 전체를 강타한 전염병은 메라튼도 피해갈 수 없었다. 인구의 절반이 죽고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도 있었고, 이 병은 왜 걸리는 건지,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당연히 다른 나라로의 도피도 허락되지 않았다.
이곳 사람들은 모두 병에 걸렸어요. 아니, 이 나라 전체가 병들었죠. 어렵게 마련한 여관도 손님이 없으니 적자뿐이었고, 빚을 갚기 위해 제 모든 것을 팔아야 했어요.
…… 어릴 적엔, 해가 뜨는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해가 뜨는 것도 밤이 찾아오는 것도 무서워요. 날이 밝아오면 또다시 거리로 나와야 하죠. 배고프고 춥지만 내 아이는 아직 어리고 고열에 시달려 헛소리를 하고 있죠. 살아야 해요. 살아남아야 해요. 제겐 이제 미래도 희망도 없지만… 내 아이는 아직 아니에요. 더 많은 시간들이 남아있고 그 속엔 분명 행복도 슬픔도 있겠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고 더 넓은 세계를 보고, 많은 사랑을 받겠죠… 그 시간 속에 제 자리가 하나만 있었으면 하는 것이… 제 간절한 바람이고, 제 행복은 단지 그것뿐이에요.
거칠게 눈물을 훔치며 횡설수설하는 에밀을 보며 샤를롯테는 말을 잃었다. 노파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아직 서른 후반이었다. 하지만 머리는 하얗게 셌고 자글자글한 주름과 구부정한 허리는 누가 봐도 그 나이대의 것이라 할 수 없었다.
조용히 경청해주는 귀족마님의 모습에 에밀은 감정에 북받쳐, 이러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언성을 높여 울부짖었다.
저희의 왕은 백성들을 버린 게 분명해요. 의사들은 모두 귀족의 저택과 왕궁에 몰려갔고 저희들을 살려줄 사람은 아무도 없죠! 지나가던 귀족 나리께서 말씀하시더군요. 천국으로 가는 길은 높고 험난해서 비싼 값을 치러야만 한다고! 저희는 비천하고 가난하니 죽음만이 구원할 길이라고!
… 동쪽 메라튼 3번가를 지나가면 시체의 산이 있어요. 사람들이 죽어나가도 그들을 묻을 땅도 없고 그들을 위해 장송가 한 구절 불러 줄 이 없지요! 죽음 이후에도 안식이 없으니 하늘도 땅도 거절당한 저희들은 어디로 가야 합니까?
이내 바닥에 엎드려 엉엉 우는 그녀를, 샤를롯테는 아무 말도 없이 바라볼 수 밖에 없었고 오셀롯은 위로하듯 샤를롯테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샤를롯테는 가만히 에밀을 안아주었다. 치맛자락에 오물이 들러붙고 에밀이 닿는 곳이 검댕으로 지저분해져도 개의치않았다. 따뜻하다. 에밀은 그 품 안에서 십여 년간 가슴 안쪽에 켜켜이 쌓아둔 고통을 토해내듯,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누구도 알지 못했던,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좌절감. 홀로 흘린 눈물의 깊이만큼의 외로움. 타인의 손길이 이렇게나 따뜻한데 수년간 알지 못했다.
에밀이 제정신을 차린 것은 밤이 어둑어둑 몰려왔을 무렵이었다. 배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자 부끄러움과 동시에 오늘 아무것도 벌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다시 엎드려 빵을 구걸하기 시작했다.
오셀롯은 샤를롯테의 간식으로 가져온 부드러운 밀빵과 브리오슈, 베르가못 밀피유를 건네주었다. 보좌 탈리스가 샤를롯테와의 간식시간을 고대하며 굉장히 많은 양의 음식을 챙겨왔기에 넉넉히 나누어 주고도 충분한 양이 남았다. 물론 탈리스는 굉장히 우울한 얼굴이었지만.
화색이 도는 얼굴로 냉큼 광주리를 받아드는 에밀의 모습에 샤를롯테가 몸을 일으켜 다시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어두워지니 바람이 차다. 눈치 빠른 오셀롯이 푸른색 망토를 둘러주었다. 그의 사려깊음에 눈짓으로 감사함을 표하니 무표정했던 얼굴이 또 발그레해졌다.
“에밀. 네 아이는 어디에 있지? 한 번 보고 싶구나.”
“아이고, 귀한 분을 모시지 못해서 송구합니다. 이리 오시지요.”
에밀의 구부정한 허리로는 걷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었는데 마치 날 것 같은 걸음으로 앞장서는 모습이 처량해보였다. 그녀를 따라 걸으니 거리 구석구석에서 매서운 표정으로 에밀을 노려보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빈민들이었다. 저들도 배고프겠지. 내가 다시 돌아가면 이 여자는 분명 흠씬 두들겨 맞거나 먹을 것을 빼앗길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알량한 동정심으로 이 여자를 내가 거두는 것이 옳은 선택일까?
“오셀롯.”
“예.”
조용히 부르자 냉큼 다가와 자세를 낮추는 모습이 흡사 강아지 같았다.
“그대는 이 이상 들어 오지마. 전염병이라는 건 인간에게 매우 위협적인 병이라고 들었어. 혼자서 괜찮으니 기사들과 함께 마을 어귀에서 기다리고 있거라.”
“배고프고 죽음을 목전에 둔 자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그리고 이 전염병은 벌써 12년간 지속되고 있으나 이살롯인이 아닌 자들이 병에 걸린 적이 없습니다. 너무 괘념치 마십시오.”
이살롯인만 걸리는 병이라니? 오셀롯의 대답에 의문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전염병이 정말 있단 말인가. 궁금증이 일었지만 이곳을 예의주시하는 눈길들이 있어 더 자세한 것은 성에서 듣기로 했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자 상황은 더욱 가관이었다. 집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건물들은 모두 반파되어 폐허 수준이었고 무너진 잔해 옆에서 웅크리고 앓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시체 썩는 냄새가 머리 아플 정도로 진동했다. 뒤에서 따라오던 기사 몇몇은 구토하기도 했다.
집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은 거적대기를 두르고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눈을 뜰힘도 없는 지 간간이 신음소리만 내뱉고 죽은 듯 꼼짝하지 않았다. 에밀은 다소 송구스럽다는 표정으로 뒤를 힐끔 바라볼 뿐 휘적휘적 걸어갔다.
작은 샛길을 돌고 돌아 외곽으로 가자 공터가 보였다. 마른 땅에 죽은 고목 한 그루가 비딱하게 서 있었고 고목의 가지에 이불을 아무렇게 늘어뜨린 괴이한 모습은 스산하기까지 했다. 오셀롯의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을 훔쳐보던 에밀은 안절부절 못한 채 손끝은 이리저리 꼬았다.
“누추하지만… 소인이 거처로 쓰는 곳입니다. 귀한 분을 이렇게 발걸음하게 해서 송구할 따름입니다.”
“…….”
샤를롯테는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고 오셀롯은 말없이 에밀을 응시했다. 에밀은 부끄러움과 비참함에 잠깐 말을 아끼더니 또다시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이런 곳에서 살았던 것은 아니옵고, 그저, 다만, 두 달 전쯤에 지진이 일어나서, 마을 대부분이 무너졌습니다. 저도 2번가에 살았었는데, 그, 완전히 무너져서, 갈 곳이라곤, 여기뿐이어서, 그래도, 저는 상황이 나은 편입지요.”
“아이는 이 안에 있는가?”
오셀롯의 질문이 냉큼 천을 젖히라는 뜻임을 알고 있었지만 에밀은 자꾸 주저했다. 하지만 이내 날카로운 눈초리에 겁을 먹고는 떨리는 손으로 천을 젖히며 기어가는 목소리로 아이가 부끄러움이 많다고 중얼거렸다.
“에밀리, 에밀리. 엄마 왔단다. 오늘은 좀 어떠니.”
에밀은 컴컴하고 비좁은 곳에 기어들어가 부산을 떨었다. 어제보다 열이 많이 내렸네, 오늘은 먹을 것을 좀 가져왔단다. 널 보러 귀하신 분들이 오셨어. 나와서 인사해야지. 이런, 기운이 없다고? 자, 엄마가 부축해줄게…
샤를롯테는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 봐도 저 조그만 천막 안에서는 어떤 생명력도 느껴지지 않는데 아이가 있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닐까? 하지만 에밀의 그 눈동자에선 거짓 한 점도 읽을 수 없었다.
샤를롯테의 의문은 바로 해소되었다.
에밀이 품에 아이를 안고 일어나 샤를롯테에게 내보였다. 시야가 어두워 얼굴이 잘 보이지 않자 보좌 탈리스가 등불을 가까이 댔다. 그리고-
“으아악!”
탈리스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뒷걸음질 치다가 뒤로 벌렁 넘어졌다. 불빛은 찰나였지만 샤를롯테도 오셀롯도 똑똑히 보았다. 에밀이 안고 있던 건 작은 체구의 시체였다. 두 눈은 움푹 꺼져 알 수 없는 액체가 흐르고 있었고 몸 군데군데 변색된 핏자국이 눌러붙었고 시커먼 곰팡이가 핀 곳도 있었다. 누가 보아도 죽은 지 꽤 되어 보이는…
“그게, 씻긴 지 오래되어서 내보일만한 꼴은 아니지요. 송구합니다..”
에밀은 탈리스가 아이의 몰골이 더러워서 놀랐다고 믿는 듯 했다.
오셀롯은 샤를롯테의 시야를 가리듯 서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 아이는 언제부터 아팠지? 내 눈엔 숨쉬는 것조차 어려워 보이는군.”
탈리스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오셀롯을 쳐다보았지만 그는 담담한 표정이었다.
“병에 걸린 건 다섯 살 즈음부터.. 그러니까 4년 정도 되었습니다. 자꾸 열이 오르고 헛소리를 하더니… 나중엔 숨조차 허덕이고……”
“아이의 손을 잡아 보거라.”
나직한 명령조에 에밀은 잠시 주저하더니 시체의 뼈와 거죽만 남은 손을 잡았다.
차가웠다.
그러니까 이건 추운 날씨에 변변한 옷도 없어서, 그래서…
“이번엔 아이의 심장소리를 들어보아라.”
에밀은 또다시 흘긋 눈치를 보더니 천천히 시체의 가슴께에 귀를 가져다 댔다.
너무도 끔찍한 고요가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