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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다 론도
작가 : 녹차양
작품등록일 : 2017.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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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죽음과 용의 세계 (9)
작성일 : 17-06-19     조회 : 317     추천 : 0     분량 : 4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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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를롯테는 기본적으로 입이 짧았다. 식사는 미각의 유흥일 뿐이기에 미식을 즐기긴 했지만 그조차 많이 먹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가 즐겨 먹는 것이 디저트였다. 달콤함과 고소함, 그 바삭하고 부드러운 식감 등은 언제나 만족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알렝지아 부인이 준비한 화려한 저녁 만찬에서 가장 먼저 손을 댄 것도 케이크였다. 향신료 케이크였다는 것이 함정이었지만.

 

 샤를롯테의 눈짓에 로즈가 재빨리 향신료 케이크를 잘라 접시에 옮겨주었다. 그 모습에 알렝지아는 뿌듯한 표정으로 어깨에 힘을 주었다. 왕에게나 진상되던 '트레인 로스트'이다. 값비싼 향신료들을 반죽에 듬뿍 넣어 겉에 견과류를 뿌려 구워낸 것으로 다른 케이크에 비하면 투박하고 볼품없어 보이지만 사치의 절정이라 불리는 것이었다. 알렝지아는 샤를롯테가 이를 알고 있다 생각하며 그 안목을 내심 칭찬했다.

 

 하지만 알렝지아의 기대와는 달리 샤를롯테는 입 안 가득 퍼지는 온갖 잡다한 향에 씹기조차 두려웠다. 향이 너무 강해서 역겨울 정도였다. 그러나 뱉을 수도 없고 자부심에 찬 표정으로 보는 알렝지아의 체면을 무시할 수도 없어 겨우 삼켰다. 그리고 얼른 와인으로 입을 헹구었지만 그 충격적인 맛의 여운이 길게 남아 모든 입맛을 잃어버린 후였다.

 

 

 

 그렇게 식사가 흐지부지해지자 초조해진 알렝지아는 여태까지 사교계에 자신 있게 선보였던 살롱으로 초대했다. 알렝지아가 한 톤 높은 목소리로 새로 깔았다는 카펫과 한쪽 벽 전체를 장식한 대형 태피스트리를 뽐냈고 특히 마르탱 유약으로 마감한 거장 샤틀랭의 하프를 퉁겨보면서 우아한 음색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샤를롯테의 시선을 끌지는 못했다. 희귀한 서적이 많다는 서재에도 그녀가 찾는 것과 관련된 것은 하나도 없었고 화려한 사치품들은 처음부터 관심 밖이었다. 금세 흥미를 잃은 샤를롯테는 기사들의 피로가 풀리면 바로 떠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것 좀 보세요, 영애. 브르타뉴에서 생산된 최고급 실크로 만든 장식용 리본이랍니다. 이 붉은색이 영애에게 아주 어울릴 것 같군요. 전 나이가 들어서 이런 화려한 색이 잘 맞지 않으니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로즈, 와서 영애의 머리칼을 다시 손질해주렴."

 

 

 시큰둥한 샤를롯테의 반응에 애가 닳은 알렝지아가 관심을 끌어보려 이것저것 시도했으나 전부 실패였다. 사교계의 큰손이라 불렸던 그녀는 어린 영애조차 휘어잡지 못하는 자신에게 회의감이 들었다. 이살롯의 젊은 레이디들은 보석과 장신구, 드레스면 사족을 못 쓰던데 이 영애가 유별난 것인지 몬테의 여인들의 관심사가 이살롯과 다른 건지 알 수 없어 무척 답답했다.

 

 

 결국 한풀 꺾인 알렝지아가 직접 물었다.

 

 "영애는 철없는 레이디들과는 달리 장신구에는 관심이 없으신가 봅니다. 혹시 어떤 걸 좋아하는 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말없이 비단으로 만든 조화의 잎을 쓰다듬던 샤를롯테가 혹시나 싶어 운을 띄웠다.

 

 

 "이살롯에 오기 전에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어보았는데 파사딜이라는 용에 관한 전설이 아주 흥미롭더군요."

 

 알렝지아는 화색이 되었다. 샤를롯테의 관심사가 생각보다 별 것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어머, 푸른 용 파사딜에 관한 이야기는 이살롯인들의 로망이지요. 저도 어렸을 적엔 용이 나오는 로망스를 읽어보곤 했답니다."

 

 "용이 실제로 있었을까요? 파사딜에 관한 묘사가 책마다 공통된 부분이 많고 서사시에도 빠짐없이 나오더군요."

 

 "몬테에서 나고 자라셔서 잘 모르시나 봅니다. 저희 이살롯인들은 파사딜이 실존한다고 믿고 있어요. 현재 코르도 남작가의 문장에 용의 현신이 들어가 있는데, 학자들이 말하길 수백 년 전까지만 해도 그곳에서 용이 활동했다고 합니다. 근사한 이야기지요."

 

 

 솔깃한 표정으로 시선을 맞춰오는 샤를롯테에 신이 난 알렝지아는 용에 관한 이야기들을 떠올리려 머릿속을 재빨리 뒤적였다.

 

 

 "근데 언제부터인가 용에 대한 일화가 점점 없어지더니 지금은 전설로만 내려오게 되었죠. 용에 대한 연구를 한다며 그 근방을 쏘다니는 사람들도 많다지만… 아직 그럴싸한 주장은 없는 것 같아요."

 

 알렝지아는 차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며 다음 말을 이었다.

 

 

 "근데, 제가 아는 분이 용을 연구하는 모임을 운영하고 계시는데 그분 말씀으로는 용은 죽었을 거라 하시더군요."

 

 "용이… 죽는다고요?"

 

 "저야 잘 모르지만, 아주 오래전에 북부 쪽에서도 '크로메'라는 용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샤를롯테도 아는 이야기였다. 아우레아 대륙에 있었다는 세 용의 이름. 크로메, 파사딜 그리고 하우드.

 

 

 "그 용에 대한 기록도 수백 년간 이어져 오다 어느 시점부터 뚝 끊겼다고 해요. 그래서 혹시 용들도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아닌가…하고 말씀하셨죠. 저도 일리 있다고 생각한답니다. 위대한 용이어도 세상에 죽음을 비켜가는 존재가 있을까요? 말도 안 되지요. 불사의 존재라던 셀다 론도의 여왕도 결국 죽었잖아요."

 

 "……."

 

 "아, 근데."

 

 

 가만히 창밖을 보던 샤를롯테가 시선을 돌렸다.

 

 "혹시 용도 다른 존재로 환생하지 않을까요?"

 

 

 샤를롯테는 처음 듣는 용어에 잠시 갸웃하더니 되물었다.

 

 "환생 말입니까?"

 

 "제가 옛 아리아인의 자손이라서요. 모든 존재는 자연에서 나니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믿어요. 이살롯인들에게도 생소할 수 있지만…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면 또다시 때가 되면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는 이야기죠. 인간들도, 한낱 미물들도 그러할 진데 위대한 용이라고 다를까요? 가끔 용이 환생하면 어떤 존재가 될까- 생각해보곤 한답니다."

 

 

 알렝지아는 조금 더운 지 부채를 찬찬히 부쳤다. 샤를롯테는 그녀의 어림짐작이 오셀롯이 말해준 이야기와 흡사하다는 것을 깨닫고 묘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아리아라면 이살롯이 한창 주변의 소국을 정벌할 때 스스로 왕관을 내려놓고 망명했다던, 책에서 언뜻 보았었던 망국의 이름이었다.

 

 

 "제가 알고 있는 건 이정도 뿐이라서요, 영애의 궁금증을 해소시키지 못해 미안합니다."

 

 "아니요, 충분합니다. 부인의 견해도 흥미로웠고요. 오랜 여정으로 지쳤으니 이만 쉬어야겠습니다."

 

 

 샤를롯테는 알렝지아의 배웅에 살짝 웃으며 살롱을 빠져나왔다. 복도로 나오자 공기가 시원하게 느껴졌다. 용에 대해 묻느라 살롱에 오래 있었더니 온 몸에 향로의 냄새가 흠뻑 밴 것 같았다. 딱히 건질만한 내용이 있었던 것은 아니나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로즈는 샤를롯테의 침실에 은은한 야등을 밝히고는 조용히 물러갔다. 밤이 깊어가고 주변이 조용해지자 생각도 깊어져 갔다.

 

 

 「 용은 때가 되면 지상을 떠나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이 섭리라고요. 허나 샤를롯테님도 아시다시피 하우드경은 섭리에 순응하지 않았죠. 그런 용을 세계가 인정하지 않고 계속 밀어낸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마치 없는 존재처럼요. 」

 

 

 오셀롯의 말 중에서 자꾸 걸리는 것이 있었다. '없는 존재'. 처음 들었을 당시에는 은유적인 표현으로 가볍게 여겼었다. 단순히 하우드는 지상에 있을 수 없게 되었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그래서 같은 용인 파사딜을 만날 수만 있다면 섭리를 거역한 용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에 대해 물어 볼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용이니 인간보다는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 테니.

 

 

 '-그치만, '없는 존재'라고. 혹시 세계가 하우드를 지상에서 밀어냈다면 '없는 존재'인 것들이 따로 머무는 장소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샤를롯테는 관자놀이를 짚으며 다시 되짚어 생각했다. 아주 오래 전, 이 세계가 아닌 아델론의 세계에서 살았을 때. 그때 시간과 공간의 틈에 대해 이야기하는 론도들을 본 적이 있었다. 자신 역시 공간을 비틀어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떨어졌고.

 

 

 그렇다면 혹시 이 세계에도 지상이 아닌 다른 공간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근거라고는 없는 허무맹랑한 추측이었지만 아예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니었다.

 

 

 어느 쪽이든 파사딜은 만나봐야 했다.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었다니 용의 모습은 아닐 테고 정확히 어디에 있는 지도 찾아봐야 한다. 마치 사막에서 바늘 찾는 기분이지만 해야만 했다. 하우드는 언제나 자신을 위해 어떤 것도 감내했으니 이젠 자신의 차례인 것이다. 하우드가 바라는 자신의 삶이 무엇인지 아직 스스로도 모르겠으나 분명 그와 함께하는 삶일 것이다. 가장 행복하고, 즐거웠던 그 때를 생각하면.

 

 

 '그러고 보니 최근에 하우드의 꿈을 도통 꾸질 못했네…'

 

 언제부터였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살롯의 영토에 들어오면서 꿈을 꾸지 않게 된 것 같았다. 꿈에서나마 그 얼굴을 보는 게 낙이었는데 조금 아쉬웠다. 한숨이 길어지고 그리움이 짙어지는 밤이었다.

 

 야등의 촛불은 작은 한숨에 불꽃을 파르륵 흩어냈다. 캐노피에 비치는 여인의 그림자도 춤을 추듯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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