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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다 론도
작가 : 녹차양
작품등록일 : 2017.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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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꽃이 지는 곳 (4)
작성일 : 17-06-19     조회 : 297     추천 : 0     분량 : 3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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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밀은 하얀 천으로 덮여 있었다. 슬쩍 거둬보니 창백하고 푸른 얼굴로 눈을 감은 에밀은 샤를롯테가 보아왔던 날들 중에서 가장 편안해보였다. 다만 뒤통수 부분이 사정없이 으깨져 눈뜨고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샤를롯테는 다시 천을 덮어주었다.

 

 "늘 별관에서 지내던 에밀이 어찌 본성 북쪽 첨탑까지 갔더냐."

 

 샤를롯테는 우물쭈물 입을 달싹이는 샤런을 오래 기다려주었다. 샤를롯테는 샤런을 믿고 있었다. 자신의 말이라면 충실히 수행하겠다는 그때의 말은 진심으로 느껴졌으니까. 그래서 조금도 노엽지 않았다.

 

 

 "……그 날은, 이상하게도 그녀가 조용히 있었습니다."

 

 샤런은 두 눈을 질끈 감고 며칠 전을 떠올렸다. 아침 식사를 옆에 놓아주러 에밀의 방에 들어갔을 때, 늘 오후 늦게 일어나던 에밀이 그날따라 일찍 일어나 샤런을 보고 있었다. 샤런은 말없이 빵 두개와 차를 놓고 방을 나왔다. 진득하니 따라붙는 시선이 께름칙했지만 발광하며 우는 것보다야 훨씬 나았다.

 

 그날따라 정원에 잡초가 많이 올라와 샤런은 한낮이 될 때까지 정원에 붙잡혀 일을 했다. 에밀의 상태를 보러 가야한다고 떠올린 것은 그녀도 배가 고파 식사할 시간이 되었을 즈음이었다. 끊어질 듯 한 허리를 두들기며 별관으로 향하자 에밀이 별관 밖에 나와 있었다. 또다시 시선이 마주쳤다. 샤런은 등골이 오싹하기까지 했다. 자신이 알기로는 에밀이 방 밖으로 나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오늘따라 에밀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에밀은 무표정하게 샤런의 작은 행동 하나 하나 시선을 떼지 않았다.

 

 샤런은 무서웠고, 서둘러 에밀을 다시 방에 데려다 주고는 단단히 을렀다. 점심을 가져올 테니 절대 밖에 나가지 말라고. 실성한 여자에게 그게 무슨 소용이겠냐만은 샤런이 할 수 있는 것은 그 정도 뿐이었다. 별관은 자신이 맡은 소임이었고 다른 사제들도 바쁘니 일손을 빌릴 처지가 아니었다.

 

 

 점심 식사와 약을 가져왔을 때 에밀은 방에 없었다. 샤런은 그길로 본성에 달려가 에밀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 어느 곳에서도 에밀은 없었다. 불길한 생각은 늘 들어맞기 마련, 샤런은 에밀이 성 밖을 빠져나갔을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성문을 열어 비탈길을 내려가면 검은 모래로 가득한 이샤숲이 넓게 펼쳐져 있다. 나무 한 그루 없어 누가 있다면 바로 보일 것이었다. 샤런은 자신의 눈을 비볐다. 말도 안돼. 불모의 땅이라 불리는 이샤숲은 아무 생명도 자라지 않는다고 배웠는데. 샤런의 눈엔 싱그러운 싹들이 올라와 초록 물결을 만들고 있는 식물들이 보였다. 이샤숲에 비하면 좁은 면적이었지만 검은 모래 한 가운데 올라와 있는 초록 빛깔은 더없이 신비스러웠다. 에밀도 그곳에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에밀이 제정신을 차리지 못할 무렵. 신녀가 직접 에밀의 딸을 묻어준 곳이었다. 그때는 모래 구덩이를 깊이 파느라 다들 고생이 많았는데, 지금은 촉촉한 땅이 되어 잔디가 자라고 있었다. 샤런도 신이로운 풍경에 들떠 있을 때, 에밀은 말없이 작은 무덤 옆에 세워진 푯말을 보고 있었다.

 

 〔에밀리 거트랑, 못 다한 생을 기리며.〕

 

 샤런이 에밀의 손을 끌고 다시 성으로 갈 때 잠시였지만 에밀이 울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눈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그런 기분이 들었다. 조금 석연치 않았지만 샤런은 에밀을 방에 데려다 주고 약을 내밀었다. 에밀은 눈 깜빡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좀 마시라며 억지로 입가에 약을 들이 밀었을 때, 에밀이 가느다란 팔목으로 거세게 샤런을 밀치고 도망갔다. 샤런은 뒤로 넘어지며 발목을 삐끗하는 바람에 절룩이며 뒤따라 갔다. 하지만 에밀은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았는지 엄청난 속도로 성을 누볐다. 실성한 여자의 발광에 모든 기사와 사제들이 그녀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에밀은 보이지 않았다. 한밤중이 되어서도 에밀은 발견되지 않았고, 쿵-하고 엄청난 소리가 들리자 불길한 생각이 그녀를 덮쳐왔다.

 

 

 "소리가 난 쪽을 조사해보니 사람이 잘 가지 않는 북쪽 첨탑에서 떨어진 것 같았습니다. 높이가 높이인지라… 손 한번 쓸 새도 없이 이미 죽어있어서…"

 

 급기야 울기 시작하는 샤런에 엘러트가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 끔찍한 광경은, 이곳의 사람들이라면 모두 잊지 못할 것이었다. 샤를롯테는 침묵을 지켰다.

 

 

 *

 

 

 "전하, 생각보다 일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유능한 재상 키프론이 오셀롯 앞에 서류 더미들을 올려놓았다. 긴장감이 가득한 집무실 안에서 오셀롯은 화를 참기 위해 인내를 다 해야 했다.

 

 "이쪽은 서스톤 영지의 피해추산 규모, 사망자 명단, 예상복구비용을 정리해둔 것입니다. 신속히 결정하셔야 합니다, 전하! 이번에는 이 정도로 그쳤지만 다음엔 수도 콕스하펜이 될 수도 있는 노릇 아닙니까?"

 

 키프론의 언성이 높아질수록 오셀롯의 미간은 점점 찌푸려졌다.

 

 "난데없는 괴물이라니요! 백성들은 괴물들의 출현이 셀다 론도의 유적을 발견한 것과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니냐며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신녀인지 뭔지 하는 그 여자를 당장 내쫓으라는 원성이 높습니다!"

 

 "그 입 다물라!"

 

 결국 키프론의 입에서 신성모독이 나오자 오셀롯은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키프론은 왕의 흥분한 모습을 처음 본 탓에 당혹스러웠으나 꿋꿋이 자신의 뜻을 관철했다. 왕위의 신성성? 보이지 않는 그것이 무엇이 중요하단 말인가. 혈통의 신비함으로 백성을 속여 다스리던 시절은 끝났다. 신화는 신화로 끝나야만 했다. 미치광이 셀더교 신자들을 당장 잡아 들여야 했다!

 

 

 "괴물들을 보았다는 영지를 모두 지도에 표시하고, 증인들의 말과 정황을 빠짐없이 기록하여 보고하라!"

 

 

 키프론은 시종장에 의해 내쫓기듯 집무실에서 끌려나왔다. 깊은 한숨을 쉬며 뒤를 돌아보았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현명한 왕이시여, 당신의 선택이 몬테를 위한 것이기를 바랍니다…"

 

 늙은 신하의 비통이 복도를 가득 채웠다.

 

 

 

 

 오셀롯은 창가에 서서 성을 빠져나가는 키프론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유능한 신하였고 믿을 수 있는 재상이었다. 몬테에 관한 사항이라면 그와 늘 의견이 잘 맞아 어렵지 않게 진두지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셀롯도 몬테 이외의,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샤를롯테는, 적어도. 다시는 인간에게 버림받는 일이 있어서는 안됐다. 실로 가혹하지 않은가. 그녀는 언제나 인간을 위해 살아왔는데 인간에 의해 죽어야 했고, 이젠 인간의 화풀이 대상이 되어야만 하다니. 그것을 천하에 알릴 수 없는 현실이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괴물이 어디에서 왔는지, 짐작 가는 곳이 있었다. 피해를 호소하는 영지들은 대개 동쪽 변방에 분포해 있었다. 마치, 정반대에 있는 크라우스트 성으로부터 자신을 멀리 떨어뜨리려는 것처럼. 오셀롯의 눈이 번뜩였다. 용, 끝까지 샤를롯테를 놓아 줄 생각이 없어보이는구나.

 

 

 용과의 동맹은 결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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