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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다 론도
작가 : 녹차양
작품등록일 : 2017.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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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꽃이 지는 곳 (5)
작성일 : 17-06-19     조회 : 317     추천 : 0     분량 : 3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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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밀은 딸의 무덤 옆에 나란히 묻혔다. 샤를롯테는 생각보다 의연했다. 전부터 예감하고는 있었다. 에밀에게 딸의 얘기를 잘 꺼내지 못했었던 것도 그녀가 정말 미칠 지 모른다는 불안감때문이었다. 하지만 언젠가 알게 될 일이었고 에밀은 선택했을 뿐이었다.

 

 목이 탄다. 식어빠진 차를 들이켜도 갈증이 멈추지 않는다. 밤은 계속 깊어만 간다.

 

 

 

 샤를롯테는 책상을 가득 채운 지도를 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카타콤이 지도 상에 표시될 리 없었지만 혹시 파사딜의 권역에 들어갔었을 때처럼, 카타콤으로 가는 문이 어딘가에 있을 지 모른다는 생각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이었고 무턱대고 움직이기엔 확신이 부족했다. 결국 샤를롯테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은 까마귀의 입뿐이었다.

 

 "까마귀!"

 

 평소라면 부르지 않아도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다 올 텐데, 지난번 크게 화를 낸 이후로 눈에 잘 띄지도 않고 어디론가 자주 쏘다녔다. 결국 직접 까마귀를 찾으러 나선 샤를롯테는 침실 밖 복도에 발을 딛자마자 기시감을 느꼈다.

 

 

 분명 이 곳을 밟고 서 있는데 다른 공간이 겹쳐 있는 듯한, 알 수 없는 위화감이었다. 그리고 일전에 까마귀에게서 느껴졌던 불쾌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까마귀! 탈리스!"

 

 샤를롯테는 어둠으로 가득한 복도를 따라 뛰었다. 발끝마다 어떤 진득한 힘이 눌러붙는 것 같았다. 낯선 감각은 곧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신녀님, 무슨 일이세요?"

 

 한동안 보지 못했던 사제 타냐가 빨랫감으로 가득한 바구니를 들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샤를롯테는 잠시 멈추어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 정말 이 불길한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단 말인가?

 

 "탈리스경,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

 

 다급하게 묻는 샤를롯테의 기세에 타냐가 아뇨,아뇨 세게 도리질쳤다. 샤를롯테는 무슨 일이냐며 소리치는 타냐를 뒤로 하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불길한 것들이 바로 뒤까지 따라왔다.

 

 식은땀이 흐른다.

 

 심장이 공포감에 터질 듯 두근거렸다.

 

 

 "헉!"

 

 막 회랑을 지나던 샤를롯테는 발을 턱 붙잡는 느낌에 그대로 넘어졌다. 대리석 바닥에 그대로 부딪힌 무릎은 빠르게 피멍이 올라왔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맨살로 돌아왔다. 하지만 샤를롯테는 더 뛸 수 없었다.

 

 

 언제부턴가 집채만하게 변한 검은 기운이 성 전체를 뒤엎고 샤를롯테를 위에서 덮칠 듯이 쏟아져 내려왔기 때문이었다. 놀란 나머지 비명도 채 지르지 못하고 혼절한 샤를롯테를, 어둠 속에서 누군가 잡아주었다.

 

 

 [잡았다.]

 

 낮게 웃는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이샤숲을 연상시키듯 온통 잿가루로 뒤덮인 곳. 하늘엔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먹구름이 으르렁대고 있었다. 고양이는 정신을 좀체 차리지 못하는 샤를롯테의 머리맡에서 어슬렁거렸다.

 

 

 "산만하네. 고양이의 몸에 들어가더니 진짜 고양이가 된 거 아냐?"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털을 세운 고양이에게 이마를 꾹 눌러주며 뱀이 조롱했다.

 

 

 "너, 하우드가 없다고 날뛰는 모양인데… 과연 언제까지 갈까? 응?"

 

 고양이가 노란 눈을 번뜩이며 이를 세웠다. 위협적으로 행세해도 결국 몸체는 고양이였다. 뱀은 위에서 고깝게 내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용에게 빌붙어 사는 게 말도 많네. 고양이가 싫으면 기생충이라고 불러줄까? -안드라페."

 

 

 고양이는 가만히 노려보더니 훌쩍 창문을 넘어 사라졌다.

 

 "발끈하기는."

 

 뱀은 입술을 적시며 샤를롯테를 바라보았다. 그 용이 모든 걸 제치고서라도 얻으려던게 이 여자란 말이지. 뱀은 침대에 늘어져 있는 샤를롯테의 머리카락을 움켜 쥐었다. 비릿한 웃음이었다.

 

 

 

 

 

 어둡다. 추운 것 같기도 했다. 샤를롯테는 눈을 뜨고 싶었지만 눈이 떠지지 않았다. 손끝하나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마치- 아주 비좁은 상자에 갇힌 기분이었다. 마치, 오랜 봉인에 갇혀있었을 때의 기분이었다.

 

 '샤샤.'

 

 멀리서 웅웅거리듯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우드, 거기 있는거야?

 

 '샤샤.'

 

 애타게 부르는 소리에 대답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움직이려 할 수록 옥죄어 오는 감각에 갑갑했다.

 

 '날 용서하지마.'

 

 '하지만 알아줘. 난 너를 위해서만 움직인다는 걸. 우리의 맹세를.'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하우드! 마음과는 달리 하우드의 목소리는 점점 멀어져갔다.

 

 '전부- 씹어 삼켜, 없애버릴것이다.'

 

 

 

 

 

 샤를롯테는 뺨에 닿는 차가운 감촉에 반짝 눈을 떴다. 처음보는 풍경에 몸을 일으키려다 엄청난 두통과 내장을 쥐어뜯는 듯한 아픔에 몸을 둥글게 말았다. 처음 느껴보는 격통에 숨이 턱 막혀왔다.

 

 

 "좀 억지를 부렸더니, 몸에 무리가 갔을 거야. 가만히, 그래, 쉬-"

 

 누군가 등 뒤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다시 눕혀주었다. 샤를롯테는 그 목소리가 하우드임을 단번에 눈치챘다.

 

 "-하우드?"

 

 "그래."

 

 꿈인가 싶어 물어봤는데 생생하게 귓가에 들리는 목소리에 샤를롯테가 고통도 잊고 벌떡 일어났다. 온통 검은색의, 흰 피부와는 대조되는 강렬한 붉은 눈동자. 하우드였다!

 

 

 "꿈…"

 

 샤를롯테는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리벙벙한 얼굴로 손을 뻗어보았다. 하우드는 가녀린 팔이 덜덜 떨리는 것을 보고 피식 웃으며 손을 덥석 쥐었다.

 

 "겁쟁이인 것은 여전하군. 그래, 아직도 못 미더운가? 천 년 전과는 달리 많이 성장했으니 못 알아볼만 하지."

 

 하우드는 멍하니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는 샤를롯테의 어깨를 감싸 품에 안았다. 그리고 그의 가슴팍은 샤를롯테의 눈물로 이내 축축하게 젖었다.

 

 

 "미안해, 미, 미안,해. 너와 약속을 하는 것이 아니었어. 내가 바보같았어! 너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사실 아무것도 몰랐었어! 전부, 내가-"

 

 샤를롯테는 이제껏 참고 인내하던 죄책감을 눈물로 터뜨렸다. 하우드는 조금도 변함없는 얼굴로, 조금도 변함없는 손길로, 마치 그때처럼 괜찮다며 안아줄 뿐이었다. 그녀는 속죄해야만 했다. 자신의 무지로, 욕심으로 이 땅에 용의 발을 묶어 놓은 것을. 구원받을 수 없는 영혼들의 세계로 떨어진, 그를.

 

 -죽음과 영혼의 세계.

 

 

 "여기, 카타콤이야? 잠깐, 내가 어떻게 여기에…"

 

 

 혼란스러워하는 샤를롯테에 하우드는 조용히 그녀의 눈을 손으로 덮었다.

 

 "조금 더 안정을 취하는 게 좋을 거다. 좋은 꿈 꾸기를…"

 

 

 작은 속삭임이었지만 마치 마법에 빠지듯 샤를롯테의 의식도 까무룩 흐려졌다.

 

 

 

 

 

 "생각보다 영혼이 많이 상했는데."

 

 하우드는 반신경질적으로 털을 핥고 있는 고양이를 노려보았다. 날카로운 시선에 안드라페가 흥 하며 콧김을 뿜었지만 은근히 떨리는 피부에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난 정말 최선을 다했어! 다른 공간의 영혼을 온전하게 옮기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하지만 결코 잘못한 게 없다며 바락바락 대드는 안드라페에 하우드가 성큼 다가갔다.

 

 "아무튼! 난 계약대로 샤를롯테를 데려왔으니- 너도 제대로,"

 

 안드라페의 말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뒷덜미를 움켜쥐고 하우드의 눈높이까지 들어올린 탓이었다. 붉은 눈동자는 살기를 띠고 있었다.

 

 

 "다시, 구슬에 들어가고 싶은가보군."

 

 "무, 무슨 소리야! 날더러 또 그 답답한 데에 갇혀 있으라고? 난 정말,"

 

 숨통이 점점 죄어들자 안드라페는 켁켁대며 발버둥쳤다. 보기엔 애처로운 고양이의 모습이었지만 하우드에게 그런 감성과 자비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내가 쳐놓은 결계와 진은 완벽했어. 샤를롯테를 온전히 데려오기위해 일부러 오랜 시간 공들여 손을 봐왔단 말이야. 근데 네놈이, 또 샤를롯테의 생명을 탐내 중간에 빼돌린 것이 아니고서야 말이 안돼."

 

 고저없이 짓씹을 듯 내뱉는 말에 안드라페는 움찔했다.

 

 "넌, 그런 전적이있잖아?"

 

 조금도 반박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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