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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WN
작가 : 하늘눈꽃
작품등록일 : 2016.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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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기록_(1)
작성일 : 16-07-23     조회 : 585     추천 : 0     분량 : 5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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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에, 이 세계가 세워지기 전에, 누가 지구를 다스렸을까? 그건 바로 수많은 왕국이란다. 하늘을 다스리는 왕국과 대지를 다스리는 왕국, 그리고 바다를 다스리던 왕국이 있었지. 그들 왕국은 제각각 더 세세하고 작은 왕국들을 만들어 세계를 평화롭게 하려고 노력했단다. 그렇게 해서 수없이 많은 왕국이 세워졌어. 그러나 막강한 권력은 모두 그 세 왕국이 지니고 있었기에 모두가 그들을 왕을 상징하는 왕관, 그러니까 ‘크라운’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지. 하늘 왕국은 전지전능한 신의 의미를, 대지 왕국은 먹거리와 살 곳을 주는 삶의 터전이라는 칭호를 받게 되었지. 그러나 사람들은 바다를 다스리던 심해 왕국은 특별히 섬기지 않았어. 바다가 넘치도록 넓어 관리할 왕국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초창기에 세워진 왕국이 마침 있었기 때문에 크라운에 속한 것일 뿐이었지.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심해 왕국만이 크라운 중에서 인간이 갈 수 있는 곳이라고 여기게 되었단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 시간이 흐르면서 작게 퍼져있던 소왕국들은 거의 사라지고 크라운만이 아직까지도 남아서 세계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단다. 너희는 크라운에 가보고 싶지 않니? 거대한, 세계를 다스리는 왕국에 말이야!

 

  “가보고 싶어요!”

  “나도요!”

  이야기를 듣던 아이들이 제각각 외쳤다. 그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는 따스한 봄 공기에 실려 멀리 퍼져나갔다. 대부분 순진무구한 아이들이었다. 근처에 어른들도 몇 있었지만 그들은 이런 이야기를 더 이상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는 의미였다. 이야기를 들려주던, 어른스러운 티가 나는 소녀는 생긋 웃으며 자신을 둘러싼 아이들을 하나하나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이따금 아이들이 소녀에게 뭐라고 질문을 던지기도 했지만, 소녀는 '크라운'에 대한 짧은 이야기 이후로는 입을 열지 않았다. 때때로 소녀는 눈길을 돌려 주변에 서 있는 어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특별히 뭔가 말하려거나 전달하려는 의미는 아닌 것 같았지만, 그 눈빛에서 약간의 안타까움과 배척감이 느껴졌다. 소녀의 주위를 맴도는 것에 싫증이 난 아이들은 옅은 노을과 함께 부모의 손에 이끌려 흩어졌다. 그러자 많은 아이들 사이에 가려져있던 한 소년이 눈에 띄었다. 그는 햇볕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잔디밭에 홀로 앉아서 노을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지만, 소녀는 그 소년이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음을 금세 알 수 있었다. 얼떨결에 눈이 마주치자, 소년은 체념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소녀가 앉아있는 나무 그늘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소녀는 무척 반가운 듯 환한 미소를 던졌다.

  “안녕? 너도 내 이야기를 들었지, 안 그래?”

  “오, 그래. 재미있는 이야기였어.”

  소년이 어깨를 으쓱하며 수긍했다. 소녀가 살짝 옆으로 비켜 앉으며 앉으라고 권하자, 소년은 망설임 없이 자리에 앉았다. 제법 소년의 모습을 벗어난 그를 보며 소녀가 물었다.

  “내 이야기가 믿겨지니?”

  “거의….” 소년이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넌 어디서 왔니? 처음 보는 얼굴인데. 그런 신기한 이야기도 들려주고 말이야.”

  소년의 미심쩍은 말투에 소녀는 어깨를 살짝 으쓱했다.

  “곧 돌아갈 예정이야. 가던 길에 경치가 좋아서 한 번 와 봤어.”

  소년은 곧 의심을 풀었지만, 여전히 왜 소녀가 자신이 온 곳을 밝히지 않는가에 대한 의문이 영 미심쩍게 남았다. 잠시 동안 흐른 침묵이 무거웠는지 소년이 살짝 몸을 꼼지락거렸다. 무슨 말인가를 이어가고 싶은데 잘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반면 소녀는 아까처럼 금세 입을 다물고 느긋하게 앉아 있었다.

  “…난, 페르난도야.” 소년이 갑작스럽게 말했다. “지금은 중학생이고. 하지만 학교는 거의 다니지 않아…. 넌 몇 살이야?”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아마 이제 성인이 되어 갈 거야. 열다섯 살 정도니까.”

  소녀는 정말로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페르난도는 열다섯 살이 무슨 성인이냐고, 기껏해야 나와 같은 나이가 아니냐고 따지려다가 그만 두었다. 하지만 '나도 잘 모르겠어'라니, 페르난도는 소녀가 어디서 왔는지가 더더욱 궁금해졌다. 도대체 어느 나라가 열다섯 살을 성인이라고 하며, 자신의 나이조차 제대로 모르게 한단 말인가?

  “좋아.” 페르난도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렇게까지 말해줄 게 없다면…. 네 이름이라도 가르쳐 줄래?”

  “미안하지만, 내게는 아직 이름이 없어. 성년식이 제대로 끝맺어져야 이름이 생기거든. 대신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도 좋아.”

  소녀는 굳어가는 페르난도의 표정을 보며 급히 덧붙였다. 페르난도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소녀는 마치 지구가 아닌 다른 세계에서 온 것만 같았다. 페르난도는 언젠가 들었던 '다른 차원'과 '다른 우주'라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는 판타지를 굉장히 믿고 좋아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동네 도서관의 책들 가운데 읽지 않은 것이 없었다. 결론적으로 소설은 대부분 허구였으니까 말이다. 그는 또다시 이어지는 침묵을 이기지 못했다.

  “도무지 어느 세계에서 온 건지 모르겠지만….” 페르난도가 거의 멍하게 중얼거렸다. 그는 잠시 소녀의 이름을 고민하느라 얼굴을 찌푸렸다. “그럼, 그냥 ‘류’ 라고 부를게.”

  소녀는 그 이름이 마음에 드는지 환하게 웃었다. 사실 그건 그의 마을에서는 아주 흔한 이름이었음과 동시에 유일한 가족인 자신의 작은 파랑새에게 주려고 했던 이름이었다. 페르난도는 생각보다 소녀가 더 기뻐하자 당황하여 고개를 들지 못했다.

  “좋을 대로 해.” 류가 기쁨에 겨워 말했다. “참, 내 이야기를 믿는다면 넌 아마 날 다시 볼 수 있을 거야. 바다는 멀지 않고 심해는 바다 아래에 있으니까.”

  “뭐?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류?”

  페르난도는 금세 소녀의 이름을 친숙하게 부르며 물었으나, 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짧은 침묵이 흐른 뒤에서야, 처음으로 류가 먼저 침묵을 깨뜨렸다.

  “페르난도, 널 다시 만날 수 있길 바라고 있을게.”

  류가 소곤거리듯 조용하고 차분하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페르난도 역시 얼떨결에 따라 일어났지만, 류가 떠난다는 사실을 깨닫고 당황했다.

  “저, 잘 가. 너를 다시 만나면 시간이 넉넉했으면 좋겠어. 그렇게 되면 기쁠 것 같아.”

  그가 거의 횡설수설하며 서둘러 말했다. 류가 그 말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걸 보자, 페르난도는 반드시 그녀를 다시 만나리라고 다짐했다. 아니, 그렇게 될 것만 같았다.

  “또 보게 된다면, 그 때는 내가 오늘 한 이야기를 다시 들려줄게. 더 자세하게 말이야.”

  페르난도는 여전히 그녀의 아리송한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저만치 걸어가는 류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곧 뒤를 돌아본 류가 역시 손을 흔들며 외쳤다.

  “안녕! 머지않아 만나길! 아마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류는 그 말을 남긴 채 다시 뒤돌아 걸어가기 시작했다. 페르난도는 해가 완전히 저물 때까지도 거기 서 있었다. 류의 환한 미소가 여운이 되어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는 어딘가 허전한 마음을 누르지 못했다. 정말 오랜만에 한 대화였으나, 그만큼 짧았다는 사실이 그곳에서 발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페르난도는 애써 스스로를 추스르며 자신의 오두막집으로 느리게 걸음을 옮겼다.

 

  문득 자신의 파랑새가 생각난 페르난도는, 류가 다시 떠오를 것을 염려하여 새의 이름을 다시 지어보기로 결정했다. 그 작고 아름다운 새는 어제 숲에 갔다가 위험에 처한 것을 간신히 구해낸 것이었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자신의 침대 옆 창틀에 앉아 반갑게 지저귀는 것을 보고 함께 지내기로 결정한 소중한 친구였다. 하루 전의 일이었지만 어쩐지 친숙함이 묻어났다. 페르난도의 입가에 보일 듯 말 듯한 미소가 피어났다.

  페르난도는 여전히 어둠 속에서 느릿느릿 걸으며 파랑새의 이름을 고민했다. 집이 가까워질 때서야 그는 좋은 이름 하나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페르난도는 기쁜 마음을 가득 안고 자신의 작은 새에게로 달음박질 쳤다.

  문을 열고 따스한 공기가 가득한 오두막집에 들어섰을 때, 그 작은 새는 창틀에 앉아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다. 페르난도가 다가가자, 파랑새는 그에게로 날아들며 반가운지 몇 번 지저귀곤 했다. 페르난도는 그런 새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웬만큼 보이지 않는 따뜻한 미소였다. 새는 그 사실을 알기라도 한다는 듯 더욱 신이 나서 그의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페르난도는 장난기 넘치는 말투로 힘차게 말했다.

  “안녕, 레아! 이게 네 이름이야. 너처럼 착하고 따뜻한 새한테 어울리는 이름이지, 안 그래?”

  레아는 힘차게 날아 그의 손에 내려앉더니, 다정하게 손가락을 톡톡 치는 것으로 감사를 표현했다. 페르난도는 손을 쫙 펴서 레아가 안전하게 서 있도록 한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밤인지라 어두운 빛을 내뿜으며 철썩이는 파도를 바라보던 그는 또다시 류의 이야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크라운의 심해 왕국에 초점을 둔 의미심장한 이야기라….’

  페르난도는 힘차게 넘실대는 바다를 묘한 기분으로 바라보았다. 바닷가에 집을 지은 그의 여느 일상 같았으면 벌써 창문을 활짝 열고 바닷바람에 취해 있을 때였다. 그는 오늘따라 달빛에 반사되는 바다가 부담스러웠다. 시원한 바닷바람조차도 그의 마음에 쌓이고 있는 복잡함을 덜어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무겁게 만들 것 같았다. 페르난도는 자신의 머리를 북북 긁어대며 한숨을 쉬었다. 류의 미소와 느긋한 모습이 맴돌기 시작한 것이었다. 페르난도는 고개를 저어 그 이야기를 털어버리려고 노력하며, 여전히 복잡한 마음을 안고 침대에 풀썩 누워버렸다. 레아는 그가 침대에 눕기 직전에 휙 날아올라 빛을 뿜고 있는 스탠드 위로 살짝 내려앉아 작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잔잔한 노래를 들으며 페르난도는 류와 한 대화들을 다시 한 번 곱씹었다.

  바다는 멀지 않고 심해는 바다 아래에 있으니까…. 지극히 당연한 말이었다. 그러나 그 앞에 붙은 ‘내 이야기를 믿는다면’, 그 뒤에 붙은 ‘다시 만나길’ 이라는 말들이 의문이었다. 심지어 류는 그 말들을 더더욱 강조라도 하듯 수없이 반복하지 않았던가.

  레아의 노래는 갈수록 높고 아름다워졌다. 그 속에서 곰곰이 생각하던 그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류가 하려던 말이 ‘크라운의 심해 왕국에서 다시 만나자’는 의미였다면? 그리고 뭔가 알려주려고 한 거였다면? 류 역시 심해 왕국에 가보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페르난도는 머릿속을 더듬으며 홀로 중얼거렸다. 그는 당장 바다로 뛰어들어 심해 왕국을 찾고 싶다는 충동을 억누르며 류의 이야기를 다시 되짚었다. 심해까지 들어가는 것 자체가 이미 목숨을 건 시도였고, 그 이야기 가운데 성공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대목도 존재했다. 그는 이제 두려움과 설렘, 그리고 복잡함을 동시에 느꼈다. 갈 수 있을까? 하지만 류를 만나려면, 가야만 해. 하지만 정말 내가 그 위대한 곳에 발이나 들일 수 있는 걸까? 난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인데도? 그렇지만 시도도 해 보지 않았잖아? 그래, 할 수 있을지도 몰라.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할 수 있어! 그 순간, 레아의 노래가 멈추었다.

  놀랍게도 그는 더 이상 복잡한 감정을 느낄 수 없었으며, 오히려 머릿속이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한 마지막 말을 다시 생각했다. '할 수 있어'. 모든 생각이 사라지고 오직 그 말만이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한층 부드러워졌다. 짧게 숨을 내쉬자, 그 생각은 훨씬 선명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페르난도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파도 소리만이 쉬지 않고 들려왔다. 바다의 소리다. 바다에 들어가면 저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을까? 아니면 영원히 듣지 못할까? 페르난도는 모든 의문을 접어두었다. 그는 스탠드의 불을 끄기 위해 다시 눈을 뜨고 레아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생각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잠을 청했다.

하늘눈꽃 16-07-23 10:37
 
안녕하세요, 01년생 작가지망생 '하늘눈꽃'입니다u3u

블로그 주소 : http://blog.naver.com/kkyfami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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