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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의 산책
작가 : 라메리
작품등록일 : 2017.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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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를 보았다
작성일 : 17-06-21     조회 : 470     추천 : 0     분량 : 4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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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현재까지 인간은 바다의 5%를 탐구했다.

 그들이 밝힌 심해에는 작은 호수가 있었다. 한쪽에서는 시냇물이 졸졸 흐르기도 하다.

 아직도 심해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생물체가 살고 있을 것이다. 심해의 바닥에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 인어의 모습을 보았다고 연구자는 말했다.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아무도 그 존재를 믿지 않았다.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자, 어찌나 빠르게 헤엄을 치던지 차마 영상에 담기지 못했던, 푸른 비늘의 꼬리를 가진 어느 인어를...

 

 ***

 

 -이미... 도, 도망갔습니다. 찾지 못...!

 부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휘는 단숨에 그의 목을 베었다. 칼도 아니었으며, 단순히 손을 휘둘렀을 뿐인데 부하의 머리를 동강 내고 말았다. 허리까지 넘치는 녹색 머리카락이 일렁거린다.

 휘는 크게 숨을 쉬었다. 분노가 가득한 그의 눈동자가 이글거렸다.

 어찌나 빠른 놀림이었는지 칼날 같은 손날에는 피 하나 묻어나지 않았다. 꼿꼿하게 굳은 부하의 몸체에서 검은 피가 꾸물거리며 바닷물에 섞여 번졌다.

 휘의 주변에서 꼿꼿하게 고개를 들으며 서 있던 수십의 인어들은 꿈적하지 않고 다른 곳을 볼뿐이었다.

 주변 인어들은 눈을 꾹 감으며, 이 상황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천아.

 그가 부하 천을 부른다. 동굴에서 울리듯 깊은 목소리다.

 꼿꼿하게 서 있던 그는 휘의 부름에 고개를 꾸벅 숙이는 것을 대신했다. 커다란 꼬리로 빠르게 헤엄쳐 아무렇게나 둥둥 떠 있는 시체를 수거한다. 주변에 자란 해초류 감태를 뜯어 시체의 몸을 감싼다. 원래 모습이 인어였다는 것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꼼꼼하고 세심하게 갈색 감태로 모습을 숨긴다. 유유히 감태에 감긴 인어를 어깨에 얹고 천은 어디론가 향한다.

 -위치를 파악해, 오늘 안이다.

 휘의 말에, 인어들은 삽시간에 뿔뿔이 흩어졌다.

 잔물결을 느끼며 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근처에 있던 그녀였다.

 멀리였어도 기운이 강하게 느껴졌었는데, 한 번 해가 지나간 뒤로 희미한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바다 안에서 휘가 감지하지 못할 공간은 어디에도 없었다. 바다가 아니라면, 단 한 곳밖에 없을 것이다.

 육지.

 휘는 자신의 짐작이 맞지 않기를 바랐다.

 -달...

 

 ***

 

 “거기, 누구야-”

 머리가 긴 여자였다.

 그의 후레쉬에 여자의 뒷모습이 잡혔다. 어두운 새벽에, 잦은 사고로 소문난 바닷가에서 여자 홀로 있는 건 위험했다. 마을 주민 사람들도 밤이 되면 바다 근처 얼씬도 하지 않았다.

 겁 없는 태오는 주변의 만류에도 기어코 수사를 진행하러 나왔다.

 “거기, 대답 안 해?”

 여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는 오기가 나서, 여자의 근처로 다가갔다.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상체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 머리카락 사이로 매끈한 허리 라인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봐요, 괜찮아?”

 머리카락은 또 어찌나 긴지, 모래밭에 어지러이 쏟아져 있었다. 저기, 저, 꼬리 같은 건 뭐지. 마치 인어공주 같은 저 꼬리는 뭐냔 말이야.

 자신이 헛것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면 이건 꿈인가. 눈을 비벼보아도, 똑같았다. 여자의 하체는 물고기였다. 그것도 아주 거대한 물고기.

 “와... 이거 정체가 뭐야!”

 누군가 버리고 간 사람 크기만 한 인어공주 인형이라면 좋겠지만, 틀렸다. 그 인형이 태오를 향해 고개를 움직이고 말았으니까.

 “내 목소리가 들려?”

 그녀의 얼굴을 마주한 태오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

 아름다웠다. 그 말밖에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인형이... 말을 하다니...”

 “모자란 인간.”

 그녀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설마 괴물? 돌연변이? 으악, 내가 헛것이 보이나! 요즘 내가 일을 너무 했지... 그래,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자, 이제 꿈에서 깨는 거야. 자, 깨라고.”

 “혼잣말이 많구나.”

 마치 인어의 목소리는 작은 유리병에서 소리를 내는 것처럼 웅웅 울렸다. 청량한 음성은 듣기 좋았다.

 “...꿈이 아니야, 이건.”

 “너희 종족은 우릴 인어라고 부르던데. 기록에서 보았어.”

 태오는 눈을 크게 뜨고, ‘그것’을 자세히 뜯어보았다. 자신이 과다한 업무 때문에 미친 게 아니라면 저것은 분명 인어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래, 인어다.

 “인어공주?”

 “난 공주는 아니야.”

 무서움도 잠시, 태오는 한걸음 더 인어에게 다가온다.

 “네가 인어라고?”

 태오는 꽤 가깝게 인어와 마주했다. 역시 적응력 하나는 끝내주는 태오다.

 “처음 보는 거지, 인어는?”

 다시금 달의 목소리는 태오의 귀를 간지럽게 했다.

 “제발, 말 좀 하지 마. 네 목소리, 귀가 간지러워 죽겠거든.”

 그렇게 말하며 그는 연신 자신의 귀를 손바닥으로 털어버린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인어에게 가깝게 다가왔다. 후레쉬로 주변을 밝힌 것도 아닌데, 인어 주변은 밝았다. 그녀의 긴 머리카락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은은한 반짝임이다.

 빛바랜 갈색 머리카락은 신비함을 주었다. 툭 하고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촉촉한 눈동자 또한 아름다웠다. 다시 인어가 아름답다고 태오는 생각한다.

 인어는 아무 말도 없었다. 뭍에 올라와 처음 보는 인간이었음에도, 달은 조금의 경계도 하지 않았다. 바다를 떠난 순간, 달은 모든 걸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당장 사라지고 싶어.’

 인어는 태오의 눈을 보았다. 눈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가 어떻게 자랐으며, 어떤 인간이었고,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느 정도 인지할 수 있었다.

 ‘투박하고... 순수한 인간. 때론 잔인해.’

 “만져 봐도 될까.”

 달은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태오는 몸을 숙여, 손가락으로 인어의 비늘을 살짝 만져본다. 물고기를 만졌을 때의 느낌은 아니었다. 표면은 더 부드럽지만 단단한 느낌이었다. 부채꼴로 펴져 있는 꼬리는 살짝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위엄이 풍겼다.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다고, 태오는 생각했다.

 “잠시 구경 나온 거라면,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게 어때. 여긴 먹고 살기 힘들거든. 꼬리 달린 사람을 사람들이 얼마나 신기해하겠어. 인간이 얼마나 무서운 줄 알아?”

 “바다는 안 돼.”

 “집이잖아? 동화책에서 보면-”

 “인어의 집은 없어.”

 “가족들이 기다리잖아.”

 “태어나는 순간 우린 혼자야.”

 달은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눈으로 보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이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뿐이었다.

 “내가 지금, 꿈을 꾸나. 이런, 후... 젠장.”

 “네 맥박이 빠르게 움직이는 걸 보니 꿈은 아니야. 꿈의 리듬은 아니지. 나를 무서워하는 이유를 모르겠네.”

 “겁? 거업? 지금 내가 겁이라는 단어를 들은 것 같은데.”

 태오는 과장되게 허리를 젖혔다.

 “겁. 맞는데, 겁. 두려워하는 마음, 혹시 다른 뜻이 있는 건가?”

 “잘 들어라, 너 아니, 인어! 최태오가 그동안 잡아 처넣은 흉악범이 몇인 줄 아냐? 들으면 아주 다리가 후들후들...”

 저 날카롭게 빛나는 꼬리를 보며 그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면서도 그 존재가 믿기지 않았다.

 “왜 다리 대신 꼬리가 있어 가지고... 사람 혼란스럽게, 됐다. 말을 말아... 아무튼 난 겁 없이 살아왔어.”

 “하지만 죽는 건 겁나는구나.”

 달의 눈동자가 푸른빛으로 살짝 빛난 것 같기도 하다. 뭔가 홀린 느낌에 태오는 기분이 묘해졌다.

 “죽는 게 겁나면 내가 이 일을 하겠어. 이 새벽에 여기 올 일도 없었겠지.”

 인어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리고 그를 빤하게 본다.

 “여기서 그렇게 빤히 보면 뭐라고 하는 줄 알아?”

 그의 물음에 별다른 대답이 없었다.

 “재수 없게 뭘 쳐다보냐고 하지. 그러다 주먹다짐에 이어 칼부림까지 일어날 수 있어. 내 말 이해해? 여긴 그런 곳이라고.”

 “미개해. 쳐다봤다는 이유가 폭력을 부르거나 누군가를 죽일 순 없어. 그게 이유가 될 순 없지.”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은 걸 고마워해.”

 아슬아슬하게 그들의 대화는 이어졌다.

 태오는 자신이 왜 바닷가에 찾아왔는지 까맣게 잊은 것 같았다. 최근 돌고래가 불법으로 거래된다는 사실을 몇 차례 신고 받은 적이 있다. 돌고래가 거래로 오가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불법으로 거래된 돌고래는 상업 공연에 이용되거나 유별난 식용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동네 관할 파출소에서 태오의 소속 경찰서에 수사 요청이 들어왔다. 하지만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수사는 쉽게 진행되지 않았다. 답답함을 느낀 태오가 반장의 만류에도 스스로 바닷가를 찾은 것이었다.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그는 동물애호가였다.

 “태어날 수 있는 건 우리의 뜻이 아니지. 인간.”

 “인간?”

 “인간이 이해하긴 힘들어.”

 “인간을 인간이라고 부르니까, 은근 기분 나쁘네.”

 인어의 말투가 굉장히 건방지다고 생각한 태오는 덤비듯 인어의 위로 올라탔다.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던 인어는 쉽게 뒤로 넘어졌다. 자신의 위에 올라탄 태오의 얼굴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태오는 아무런 저항 없는 인어의 태도에, 괜히 자신의 행동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인어에게 마치 범인을 제압하듯 대하다니. 종아리에 닿은 비늘은 유난히 미끄럽고 차가웠다.

 “이걸 어떻게 하지.”

 “그 말은 날 죽이겠다는 뜻인가.”

라메리 17-06-21 13:06
 
오늘 저녁에 <인어의 산책> 다음 이야기로 찾아올게요,
감사합니다 :-)
-라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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