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만 묻자.”
곧 아침이 된다. 어둠이 조금씩 걷히고 있었다.
점점 형체가 드러난 인어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태오는 차마 만지는 것조차 두려웠다. 창백한 피부는 백옥처럼 고왔다. 길고 매끈한 목 위에 얼굴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다. 흙으로 빚을 수 있다고 한들 저렇게 만드는 건 불가능했다.
그만큼 그녀는 아름다웠다.
“대체 왜, 죽으려고 하는 거야.”
푸르게 변하는 하늘이 눈이 부신지 인어는 눈을 뜨기 힘들어한다. 바다를 벗어나, 이렇게 눈부신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대체 해는 얼마나 빛나는 거지?”
“내가 먼저 질문했잖아.”
“이렇게 빛나는 건 처음이다. 나쁘지 않아. 그냥 가. 꿈이라고 생각하면 편할 테니까.”
그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환상일지도 모르는, 혹은 꿈일지도 모른다. 왜 저 죽음에 이렇게 안달이 나는 것일까.
“그동안 난 이렇게 살아왔어! 시민을 위해 봉사하고, 위험에 맞서고... 위험에 빠진 자를 구하는 게 내 소명이라고.”
“난 너희 종족이 아니다.”
“야, 그래도...”
“방해하지 말고 가. 꺼지라는 말이야.”
태오는 말문을 잃었다. 건방지기 짝이 없다. 살려고 발광하는 사람은 수도 없이 봤지만, 스스로 죽겠다는 사람은 본 적이 없어, 어떻게 대꾸를 해야 할지 곤란했다.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생각한다고 달라질 게 무언가.
태오는 인어를 보고 말았는데.
태오는 자신이 어디에 차를 주차했는지 생각했다. 저쪽이었던가.
아니면 저쪽.
그는 인어를 두고 자신이 주차한 자동차를 향해 걸어갔다. 무언가에 홀린 듯, 눈빛이 멍했다.
‘곧 날이 밝을 거야.’
곧, 곧...
인어의 모습이 흐릿해지는 것 같다. 자신이 본 것이 정말 인어였을까. 이게 꿈인가. 인어가 진짜로 존재한다는 게 말이 되나. 누가 자신의 말을 믿어줄까. 혹시 지금도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태오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자리에 우뚝 서서, 잠깐 고민에 빠진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곧 있으면 해가 뜰 것이다. 해가 뜬다. 말대로라면 인어는 사라진다.
“그렇게 두고, 혼자는 못 간다고!”
이내 인어가 있던 곳으로 미친 듯이 뛰어갔다.
여전히 인어는 온몸이 파리해진 채 해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이라도 든 것 같다.
“이... 미친! 미친 인어야! 돌았어? 죽겠다고? 죽는 게 그렇게 쉬운 건 줄 알아!”
인어 옆에서 소리를 꽉꽉 지르고 있는 태오를 보며 인어는 아주 희미하게 웃었다.
“죽어가면서 뭐가 좋냐! 왜 웃고 지랄이야!”
태오는 자신의 자켓을 벗어 인어에게 입혔다. 빛을 가리고 위함이었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인어는 온몸의 힘이 빠진 채 축 늘어져 있었기 때문에 마치 거대한 인형에 옷을 입히는 것 같다. 태오는 억척스러운 손으로 옷을 입힌 후, 인어를 억지로 자신의 등 위에 업히도록 했다.
힘없는 목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제발.”
“안 들린다! 안 들려!”
“이러지마...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나를 만났잖아. 그러니 넌 죽을 수 없어.”
단호하게 말을 뱉은 태오는 인어를 업고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뛰었다. 모래에 푹푹 발이 박혔지만, 그는 이를 악 물고 달렸다. 순식간에 주변이 밝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뛰어가는 내내 인어는 왜 자꾸 가벼워지지, 태오는 알 수 없었다. 죽을힘을 다해 주자된 자동차까지 온 태오는 숨을 헉헉 내쉬면서, 인어를 뒷자리 자석에 태웠다. 빛이 닿지 못하도록 트렁크에 있는 모든 옷과 담요를 꺼내 인어 위에 덮어 빛을 차단한다. 언뜻 보면 천 더미로 보일 정도였다. 그는 여전히 숨을 내쉬면 시동을 걸었다.
“으아... 진짜 미쳐버리겠네!”
세상의 끝까지 갈 것처럼 그의 자동차 바퀴는 빠르게 도로를 달렸다. 울리는 전화 벨소리에도 깜짝 놀라 옆 자석에 던지듯 핸드폰을 던져버린다. 화면에 ‘독불 영감’이라고 쓰여 있다. 혼자 바닷가 수색에 나선 그가 걱정된 강력반 반장이 전화를 건 것이다. 그는 전화를 받은 여유가 없었다.
최대한 멀리, 빛을 피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는 도망치듯 차를 몰았다.
***
심연은 어두웠으나, 수면으로 점점 가까워질수록 바닷물이 밝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안 됩니다! 안 됩니다! 더 이상은!
휘의 뒤를 따르는 천은 절규하듯 외쳤다. 빛이 다가올수록 온몸이 뜨거워지는 기분이 든다. 빛에 노출되면 휘조차도 위험할 수 있었다.
-더 이상은 위험합니다! 제발! 휘님!
천은 손을 뻗어 감히 그의 꼬리를 잡을까 망설였다. 하지만 워낙 휘의 헤엄이 빠른 탓에 그의 몸에 손을 닿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따라잡을 수도 없을 것이다.
휘는 뭍에 있는 달을 찾아야 한다는 일념 하나였다. 곧 해가 밝을 것이며 달이 위험해질 거라는 사실이 두려웠다.
-더 이상 쫓아온다면, 죽이겠다.
-휘님, 제발... 이곳에 남아주십시오.
천의 애절한 말에 그는 순간 헤엄을 멈추었다. 거대한 물결이 일었으나, 그의 손길에 금방 잠잠해진다. 천은 그를 차마 쳐다보지 못하고 시선을 떨어뜨렸다.
-나는 죽겠다고 한 적이 없다.
천은 그를 힐끔 보고 다시 시선을 내렸지만, 분명 보았다. 그가 미소 짓고 있다는 것을.
-천, 다시 말하겠다. 나는 죽겠다고 하지 않았다.
-휘님.
천은 눈물을 흘리는 듯했지만, 인어의 눈물은 바닷물에 가리어 보이지 않았다.
-따라오지 마라.
낮은 음성은 그의 머릿속을 뱅뱅 맴돌았다. 천은 더 이상 꼬리를 움직이지 않았다. 그를 따라가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천은 다시 어두운 바다 속으로 천천히 흐르듯 떨어졌다.
반대로, 휘는 망설임도 없이 위로 오르고 올랐다. 한없이 눈이 부신다. 빛이란 이런 것이구나. 그는 아침에 수면 위로 나가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수면 위로, 휘의 정수리가 보이면서, 그의 날이 선 몸체가 위로 튀어 올랐다. 거센 파도가 일었다. 형용할 수 없는 색깔을 품고 있는 그의 꼬리는 거대했다. 마치 상어를 보는 듯했다.
새파랗게 변한 하늘은 곧 해가 뜰 것을 예감했다.
-어딨어, 달.
가만히 달의 기운을 감지한다. 확실히 수면 위에서 달의 기운이 짙게 느껴졌다. 멀리 않은 곳에 육지가 보인다. 저 부근에 분명 달이 있다고 휘는 생각했다.
태양의 존재가 가까워지자, 그의 몸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진다. 겉은 파리하게 질려가지만, 속은 뜨거워졌다. 이 고통에 괴로워할 달이 걱정이 된다. 그는 거침없이 육지로 자신의 몸을 던졌다.
-달! 내게 목소리를 들려줘!
나는 으르릉 거리듯 외쳤다. 젖은 머리카락이 온몸에 달라붙어 온몸을 마치 뿌리가 온몸에 박혀 있는 것 같은 형상을 띠었다. 그가 다시 한 번 더 포효했다.
-달!
***
차는 기나긴 도로를 지나가고 있었다. 끝이 없을 것 같은 긴 도로 위에는 간간히 차가 지나갈 뿐 꽤 고요했다. 새벽의 도로에 가장 유난스러운 것은 태오가 운전하는 자동차 바퀴였다.
태오는 저 요상한 인어를 어디에 데려가야 하는지 고민스러웠다.
가장 안전한 곳,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지 않는 곳.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결국 자신의 집밖에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아침이 곧 온다. 곧 해가 떠오를 것이다.
-달!
그때였다. 달이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으아... 귓구멍 터지겠네.”
달이 두 손을 뒤척거리며 비명을 지르는 탓에, 인어의 몸을 덮어 두었던 옷가지가 하나둘 바닥으로 떨어지더니, 인어의 모습이 다시 드러났다. 자신의 귀를 막고 괴로워 몸을 둥굴게 말고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었다. 힐끗 뒤를 본 태오는 인어가 저렇게 얼굴을 괴로워하는 모습은 처음 봐 당황스럽다.
그는 성급히 갓길에 차를 세웠다. 뛰다시피 뒷문을 열어 인어의 상태를 살핀다. 원래 차가웠던 몸은 완전히 기온이 떨어졌는지 차디찼다. 누군가 목을 조르는 것처럼 숨을 헐떡인다. 마치 참기 힘든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달은 자신의 귀를 사정없이 틀어막았다.
“씨발, 대체 왜 이래!”
그는 아침이 다가오기 때문에 인어가 괴로워하는 것이라 판단했다.
바닥에 떨어진 옷가지를 인어의 몸을 가리기 위해 손을 급하게 움직였다. 인어가 지르는 비명이 어찌나 따가운지 그는 온몸이 아린 느낌이 들었다.
“제발... 읏!”
“내가 어떻게 할까? 말해봐! 어? 이 망할 인어야!”
인어는 투명한 눈물을 뚝뚝 흘렸다. 고통에 온몸이 덜덜 떨렸다. 더 이상 비명을 지를 힘도 없어 보인다.
“그가, 그가 오고 있어... 그가!”
“뭐? 그? 누가 오는데!”
태오는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멀리... 제발 멀리, 멀리 도망가...”
인어는 파리해진 얼굴로 덜덜 떨었다. 그 가엽은 얼굴을 태오는 끌어안았다. 품 안에서 떨고 있는 그 몸이 느껴졌다. 인간이라기에는 너무 차가운 몸이다. 그로써 그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깨닿았다.
“도망가... 다 죽을 거... 야, 도망가... 멀리...”
“죽긴 개뿔! 누가 겁대가리도 없이 나를 죽여?”
어째서 이 이상한 존재에 동정을 느끼는 것인가. 그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만 좀 떨어라, 응? 어디든 가줄 테니.”
그는 인어를 다시 자리에 눕히더니, 빛이 완전히 차단할 요령인지 다시금 달의 얼굴에 자신의 자켓을 덮어주었다. 그리곤 빠른 손놀림으로 그 형체가 완전히 사라질 정도로 가려준다.
들썩이는 옷더미를 손으로 몇 번 토닥여준다.
“조금 자둬.”
그는 서둘러 시동을 걸어 출발했다.
차로 40분은 가야 도착하는 집이었다. 운전을 하는 내내 그는 이 황당한 상황에 무의식적으로 욕을 뱉었다.
“아니, 씨발, 내가 대체 뭔 짓을 하는 거야.”
그가 그동안 잡아 들였던 수많은 범죄자과 대면할 때 늘 들었던 말이, 상황이 자신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었는데, 그는 그 말은 핑계라고 생각했다.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범죄는 범죄일 뿐. 그는 꽤 잠잠해진 인어의 상태에 안도의 숨을 깊게 뱉었다.
운전에 몰두하다 보니, 아침이 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그는 엑셀을 밟고 내달린다. 자신이 지정된 안전 속도를 완전히 넘어섰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