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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동 스파이! 정의구현팀
작가 : 내림
작품등록일 : 2017.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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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기업이고 뭐고
작성일 : 17-06-22     조회 : 549     추천 : 0     분량 : 4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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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팀장님, 저희 일 못해먹겠습니다."

 

 

 박진우 팀장님이 들고있던 서류를 떨어트리신다. 정지연, 대단하다. 팀장님 앞에서 저렇게 당당하게 말하는 패기라니. 중학교때부터 막나가는거 알고 있었지만 그런 막나감이 지금은 조금 믿음직스럽다. 나 혼자였다면 분명 하지 못했을 테니까.

 

 

 "갑자기 왜 그래? 둘 다?"

 "네. 그치?"

 "응."

 

 

 얼떨결에 대답하고는 팀장님과 눈이 마주쳤는데 세상에게 배신당한 표정이시다. 너무 죄송하다. 고개를 숙이며 옆에 지연을 보는데 쟨 왜저렇게 당당하담.

 

 

 "김 대리님은 너무 예민하시구요, 최 사원님은 너무 어리버리하고요. 저희 기획 3팀이 소문이 자자한 '낙하산' 팀이라면서요. 저희가 생각한 대기업은 이런게 아니었습니다."

 "맞아요. 사실 저희는 왜 뽑힌지도 잘 모르겠어요. 주어지는 일도 극소수에다가, 그나마 낸 기획안은 죄다 까여서 들어오고."

 

 

 나도 입을 열었다. 틀린건 틀린거다. 아, 머릿속이 새하얗다. 나 대기업갔다고 12개월 할부로 차 사버린거 어떡하지? 일 그만둔 우리 엄마 어떡하지? 갑자기 손이 덜덜 떨린다. 이 사표 수리해버릴까.. 하지만 지연은 사표를 꾹 쥐고 있다. 그녀의 손에서 구겨진 사표는 더 이상 서류가 아니었다. 그건 그녀의 의지였다.

 

 

 "그.. 있지. 다시 한 번 생각해 줄수는 없어?"

 "저희도 충분히 생각하고 말한거에요."

 

 

 내가 말을 이었다. 고작 입사한지 한달이 뭐가 충분하겠냐만은.

 

 

 "팀장님은 너무 좋은분이세요.. 하지만 너무 무능하세요."

 

 

 정지연 미쳤나봐. 하지만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팀장님, 얼굴 빨개지셨다. 하지만 화난거 같지는 않다. 뒷머리를 긁적 긁적 하시며 나이답지 않은 얼굴로 웃으셨다.

 

 

 "알겠어. 가 ㅂ.."

 

 

 '가 봐' 라고 하시려던 것 같은데, 전화가 울린다. 진동도, 벨소리도 아니지만 단번에 눈이 갔다. 화면이 반짝거렸는데 팀장님이 눈을 크게 뜨더니 화들짝 놀라면서 커다란 몸짓으로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

 

 

 "연희? 무슨일이야. 어? 뭐? A팀 태준이랑 현주? 그만둔다고?"

 - 아 현장에서 무릎 조금 까졌다고 상해비용 백만원 넘게 부담해달래요. 안그럼 불법 기업으로 신고한다고.

 "하...."

 - 진짜 대표님, 사람 보는 눈이 왜그러세요? 좀만 맘에 들었다 싶으면 아무나 데려오고, 통수 쳐맞고, 이번 달만 몇번째세요? 이ㅂ

 

 

 팀장님이 전화를 세차게 끊어버린다. 이 인간, 투잡이었어? 소리를 어찌나 크게 해놓으셨는지 다 들어버렸다. 팀장님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우릴 쳐다본다.

 

 

 "수빈아, 지연아 아니 전 사원, 정 사원. 다른 일 해볼래?"

 "불법 기업은 싫은데요."

 

 

 지연이 대답했다. 팀장님의 내려간 눈꼬리가 더 내려가고 얼굴은 터질듯이 붉다.

 

 

 "연봉 순수익 6700만원 플러스 알파, 주 4~5일 근무, 4대보험 적용, 명함은 베비부 사원.."

 "하겠습니다."

 "할게요.

 

 

 우리는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들이다. 팀장님이 씨익 웃는다. 갑자기 뒤를 돌아 책장에 있는 책을 하나씩 뺀다. 총 세개를 빼니까, 덜컹하는 소리가 들린다. 팀장님이 굳건히 서있던 책장을 가볍게 옆으로 민다. 헐크인가? 아니다. 바퀴 소리가 들리면서 책장이 열리는 것이다. 회색 출입문이 있다. 팀장님이 문을 연다. 엘레베이터가 있다.

 뭐라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꿈인가? 지연을 쳐다보는데 나랑 표정이 똑같다.

 

 

 "스파이 영화 좋아하니?"

 

 

 팀장님의 말 끝에 홀려 엘레베이터를 탄다. 10층에서 지하 끝까지 내려간다. 사방이 막혀있어 답답하다. 지하 3층. 문을 열자 지하도가 펼쳐져있다. 팀장님이 걷는다. 우리는 왠지 모르게 그 길을 따라간다. 팀장님 참 좋은 사람이었지. 착하고. 일은 못하지만, 우리한테 떠넘기려 하지도 않으시고, 남들이 대놓고 무시해도 웃으면서 넘어가고. 그냥 호구라고 생각했는데. 스파이? 이 인간하고 세상에서 이렇게 안 어울리는 단어가 있을까? 근데 스파이랜다. 지금 가는 길은 어둡고 캄캄한데 끝에서 의미심장한 빛이 들어온다.

 

 

 "환영한다. 너넨 이제 정의 구현 팀이야. 내가 대표로 있는."

 "그게 뭔가요?"

 "비ㅡ밀 스파이 조직!"

 

 

 36살의 윙크는 달갑지가 않다. 베비부 입사 1개월 차 애기 사원 전수빈 인생, 어쩌다 이렇게 꼬인걸까.

 

 

 "애기들아 환영해."

 

 

 팀장님은 우리를 왠 미소가 느끼한 남자에게 데려다주었다. 그러곤 자기는 바쁘다며 빠져버리기! 팀장님, 대표라더니 여기서도 무능하신 걸까. 목소리에 버터를 바른듯 발음이 저절로 굴러가는 남자는 자신을 소개한다.

 

 

 "현장팀에 갈지, 기획팀에 갈지, 브리핑팀에 갈지는 모르겠지만. 반가워. 나는 현장팀에서 현장을 총괄하고 지시를 내리는 역할을 하고있고, 심민석이야. 심 팀장이라고 불러줘."

 "설마 진짜 그 스파이가, 자기 정체를 숨기고 취직하고 뭐 이런거에요?"

 

 

 지연이 갑자기 말이 빨라진다.

 

 

 "완, 전 불법이잖아요. 나라에서 지원하는 FBI 뭐 그런것도 아닌 거 같은데."

 "맞아. 그런건 아니야. 우리가 뭐 세상을 구한다거나 이런 거창한 일을 하는건 아니지. 테러를 막는다거나, 정의로운 현실을 위해 총을들거나, 이런건 영화에서나 하는 일이고. 우리는 그저 우리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여러 기업들을 위해 라이벌 기업의 부조리를 찾아내거나 정치인이나 연예인의 뒤를 캐거나.."

 "뒤에껀.. 파파라치 아니에요?"

 

 

 이번엔 내 질문이었는데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버터..아니 심 팀장이 우리를 노려본다. 그러곤 말을 잇는다.

 

 

 "그런 단순한건 아니야."

 "어쨌든, 이름만 스파이지 우리 목숨까지 걸고서 할만한 일은 별로 없다 보면 되네요."

 "당연하지! 야, 대한민국에서 회사에 목숨걸고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 다들 인생 살려고 일하고 돈 버는거지. 우리도 거창한게 아니라 우리의 삶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일 뿐이야."

 "맘에 드네요."

 

 

 꼬치꼬치 캐묻던 지연은 흡족한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의 연이은 질문공세에 진땀을 뺀건지 심팀장은 한숨을 크게 한번 쉬고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얼마정도 고민했어?"

 "뭘요?"

 "여기 들어올지 말지."

 "저희.. 오늘 통보받고 온건데요."

 

 

 심팀장은 내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처음에 능글거리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뭐 이런 미친..아니 신기한 년들이 다 있나 하는 표정으로 우리를 훑어봤다. 목소리는 한껏 차분해져 있었다.

 

 

 "그래.. 그럼, 여기 정의구현팀에는 총 세가지 팀으로 나누어져있어.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기획팀은 우리가 해야할 모든 일들을 기획해. 해내야할 사건들, 위장해야하는 캐릭터 등등. 브리핑팀은 기획팀이 기획한 사건들을 토대로 루트를 짜. 그런 후 현장팀한테 무전기로 전달하지. 현장팀은 소형 무전기를 귀에 꽂고 활동하는거야."

 

 "심팀장님!"

 

 

 심팀장의 설명이 끝날때쯤 누군가가 달려왔다. 키가 커서 멀리서도 눈에 잘 띄었고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에 쓴 얇은 검은테 안경이 잘어울렸다. 전형적인 미남상이네. 게다가 얼굴도 하얗고, 목소리도 중저음이었다. 잘생겼다.

 

 

 "저번에 현장팀에서 기획에 신경써달라한 부분..아 지금 신입들 교육중이셨어요?"

 "그치."

 

 

 잘생긴 얼굴은 우리쪽을 흘겨봤다. 표정이 왜 저래? 탐탁치 않아하는 표정.

 

 

 "기획팀엔 사람 필요 없습니다."

 

 

 우리를 쳐다보면서, 심팀장에게 말하는 척 우리에게 언질을 주었다. 뭐야 쟤? 잘생긴 놈은 얼굴값 한다더니.

 

 

 "맞아요. 저희도 현장 팀 갈 생각입니다."

 

 

 지연이 갑자기 심팀장에게 말을 건다. 엥? 나는 아직 아무말도 안했는데?

 

 

 "다른 팀들은, 재미없어보여요."

 

 

 지연이 얼굴은 웃지 않으면서 굉장히 우스운 톤으로 말한다. 고급 기술이다. 확실히 나 말고 지연이는 현장팀에 잘어울리긴 하네. 잘생긴 놈은 그 말을 듣는둥 마는둥 하며 끝까지 우리를 흘긴 후 가버린다.

 

 

 "정현씨! 좀있다 10분 후에 제가 기획팀장님이랑 상의해볼테니 그렇게 전해줘."

 

 

 정현? 무슨 정현이지. 얼굴때문이라도 기억 해놔야겠어(?). 심팀장은 우릴 보며 환하게 웃는다.

 

 

 "좋지. 내 직속 후배로 들어오는 걸 환영해. 오늘부터 교육이.."

 "팀장!!!"

 "연진씨!! 팀장님이다."

 "어차피 갑인데 무슨. 팀장, 지금 큰 일 났어. 어제 태준이랑 현주가 말도 없이 관두는 바람에 땜빵 때울 사람 두명이 필요한데 어떡해!"

 

 

 갑자기 달려온 단발의 매섭게 생긴 여자는 쎄한 인상과는 어울리지 않게 온갖 호들갑을 다 떨고있다.

 

 

 "아니 인력 사무소에 가야하는데 우리같은 서른살을 받아 주겠냐고."

 "그거라면 걱정 마. 오늘 신입 두명 들어왔으니까."

 "또? 박진우 하여튼 저거."

 

 

 눈치를 살피며 슬며시 욕을 하던 그녀는 우리의 손을 잡는다.

 

 

 "환영해. 인사는 첫 근무 이후에 하자."

 "아니 선배님 저는 아직 결정을.."

 

 

 내 말은 고이 무시당한채 우리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건네받는다.

 

 

 "껴. 가자."

 

 

 어디를? 무엇을? 어안이 벙벙한채 우리는 벤을 탄다.

 24년동안 한 노력을 대기업 하나에 쏟아부어 취직했더니 도저히 일할만한 환경이 아니고,

 사표를 냈더니 돈을 많이 준다며 꼬셔대는 '비밀' 스파이 조직에 들어와버렸다.

 24살 전수빈 인생. 대체 어디로 가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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