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진”
돌진으로 파고든 나는 바로 ‘바이퍼’로 오크를 찔렀고, 성난 오크는 나에게 글레이브를 휘둘렀다. 오크의 글레이브는 내 몸을 두 동강 낼 기세로 내려왔고 그에 맞춰 나는 왼손의 방패로 오크의 글레이브를 막았다. 그 순간,
펑!
내 방패에서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오크를 처치하셨습니다. 6/100]
[상태이상 : 화상에 걸렸습니다. 3초마다 체력이 1%씩 줄어듭니다.]
내 왼손의 방패는 사실 방패가 아니라 ‘붉은 주춧돌’에 그저 두껍게 나무판자를 몇 개 덧댄 것이다. ‘붉은 주춧돌’의 발동조건이 일정량 이상의 충격이라고 들은 나는 그에게 파티 사냥을 제안했다.
“그러면 그 ‘붉은 주춧돌’을 저에게 빌려주시고 파티사냥을 같이 하시죠. 제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그럴까요? 근데 파티 신청을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아이디가 뭔데요?”
“에디슨이요.”
“네?”
“에디슨이요. 전구를 만든 토마스 에디슨을 본 따서 만들었어요.”
마공학자의 아이디가 에디슨이라니. 정말 끝내주는 네이밍 센스다. 어쨌든 그의 닉네임을 알게 된 나는 그에게 파티사냥을 신청했다.
[플레이어 : 에디슨님에게 파티를 신청하시겠습니까?]
“신청한다.”
[상대방이 수락 시 파티가 생성됩니다.]
“이거 앞에 메시지 떴는데 그냥 수락 누르면 되는 거예요?”
“네 그냥 수락 누르시면 되요.”
[파티가 생성되었습니다.]
[‘오크 소탕’ 퀘스트를 공유합니다.]
[몬스터 처치 시 얻는 경험치가 90%로 하향 조정됩니다.]
“그래서 그 좋은 생각이라는 게 뭔가요?”
“그 좋은 생각이라는 건 말이죠…….”
바로 ‘붉은 주춧돌’을 방패로 쓰는 것이다. 방패로 쓰게 되면 일정량의 충격은 오크의 글레이브로 인해 충족되고, 오크는 그대로 ‘불기둥’을 직격으로 맞게 된다. 그러면 상황 끝. 물론 나도 피해를 입게 되겠지만, 오크를 한 방에 잡을 수 있다면 이 정도의 피해는 별 것 아니었다. 게다가,
푸쉬이이!
[상태이상 : 화상이 해제되었습니다.]
자신을 에디라고 불러달라던 이 마공학자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시원한 물을 내게 뿌렸다. 덕분에 상태이상도 너무 쉽게 해결되었다. 그저 나는 체력을 회복하면서 오크를 사냥하기만 하면 되었다. 말하자면 살을 주고 뼈를 깎는다고 할 수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는 내가 붉은 주춧돌에 판자를 덧댈 때 마을에 가서 생수와 화상치료제를 대량으로 구매했다고 한다. 그래서 물 한번 끼얹었다고 화상 치료가 된 것이다. 나는 서둘러 다른 오크들을 찾아 헤매며 돌아다녔다. 그리고 목표를 포착했다. 이번에는 두 마리.
퓩! 퓩!
나는 돌진으로 빠르게 다가가 ‘바이퍼’에 기를 실어 오크들을 찔렀다. 비록 ‘바이퍼’의 패시브 스킬 ‘독 묻히기’는 별 도움이 안 되지만, 루칸에 머무르는 유저들의 아이템 수준이 아닌 ‘바이퍼’의 공격력은 오크들에게 데미지를 주기에 충분했다. 나는 최대한 ‘불기둥’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순수하게 바이퍼로만 오크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불기둥’은 물론 전가의 보도라고 할 만 하지만, 데미지가 나에게 계속 쌓인다면 나중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요리조리 오크의 공격을 피해가며 몸뚱이를 찔러대는 내 칼솜씨는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무인이 아니라 암살자로 오해할 정도였다. 검으로 정점에 다다라본 나에게는 이정도의 단검술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거기에 기를 불어넣은 공격이라 오크들은 급격히 반응속도가 느려져갔다. 체력이 거의 다해간다는 증거였다.
푹! 퍽!
[오크를 처치하셨습니다. 8/100]
깔끔하게 한 놈에게는 심장에 바이퍼를, 한 놈에게는 뒤돌려 차기로 마무리한 나는 씩 웃으며 에디를 쳐다봤다. 에디는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모르는 그가 보기에도 내 전투능력은 예사롭지 않았던 모양이다.
“뭐하시는 분이세요?”
“저요? 그냥 무인입니다. 하하”
멋쩍게 웃은 나는 그에게 ‘붉은 주춧돌’을 내밀어보였다. 직경 1m정도의 둥근 방패는 충격을 받아서인지 마법진이 그려진 표면에 약간씩 금이 가 있었다.
“이거 수리해야 하지 않나요?”
“어? 그러네요. 잠깐 방패를 내려주시면 수리해드릴게요.”
나는 아무 말 없이 방패를 내려놓았다. 어찌 되었건 지금 나는 내 정체를 쉽사리 밝힐 수 없었다. 적어도 복수하기 전까지는. 하물며 오늘 처음 만난 사람에게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명상으로 체력과 마력을 회복하고 있었다. 체력과 마력이 거의 다 찰 때 쯤, 에디는 나를 불러 깨웠다.
“저기요, 저기요. 수리 다 끝났어요.”
내가 명상을 끝내고 눈을 뜨자 에디는 놀란 눈으로 나에게 방패를 내밀었다. 무인은 명상이 끝나면 눈을 뜰 때 안광이 번쩍! 하고 떠지게 된다. 개발자의 취미로 넣은 쓸데없는 옵션이지만 그게 에디에게는 살광 비슷한 것으로 보였던 모양이었다. 게다가 무인이 전사나 마법사처럼 흔한 직업도 아니니 그에게는 생소한 광경이었으리라. 나는 그에게 놀라지 말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이 안광 이거는 그냥 스킬 효과 같은 거예요. 무인은 원래 이럽니다. 무서워하지 마세요.”
“그런데 있잖아요…….”
그는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우물쭈물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뭔가 부탁이 있는 건가? 그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네?”
“아이디가 영어라서 뭐라고 불러야 될지 모르겠네요. 영어님이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의 말을 들은 나는 살짝 웃었다. 아이디가 영어로 되어있다고 해서 영어님이라고 부르는 거는 초등학생 중학생들이 자주 하는 건데 눈앞의 건장한 성인 남성이 그런다니 뭔가 웃긴 탓이다. 나는 잠시 생각한 뒤에 말했다.
“그냥 라투라고 부르세요.”
라투. 내 아이디인 Round2를 앞의 한 글자, 뒤의 한 글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었다. 급조한 별명임에도 불구하고 입에 착착 달라붙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그럼 라투 씨. 오크사냥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내가 오크들을 잡는 딜러라면, 그는 ‘붉은 주춧돌’을 수리해주고 내 상태이상 치료를 도와주는 서포터였다. 나름 궁합이 잘 맞는다고 생각하며, 사냥을 나가려는데 그의 손에도 나와 비슷한 것이 들려있었다. 그가 방패로 차고 있는 붉은 주춧돌을 바라보자 그는 멋쩍은 듯이 웃으며 말했다.
“라투 씨만 사냥하는 것이 좀 날로 먹는 것 같기도 하고……. 둘이 사냥하면 더 빠르잖아요? 아까 라투 씨가 사냥할 때 틈틈이 하나 만들어 봤습니다.”
그는 나만 사냥을 하고 자기는 가만히 있는 다는 것이 그저 못마땅했던 모양이었다. 저렇게 직접 사냥을 나선다고 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저런 사람은 확실히 같은 파티 원으로써 환영이었다. 예전에 ‘시작의 마을’에서 살쾡이 사냥을 다짜고짜 도와달라는 사람이나, 얼마 전에 만났던 그저 고레벨 플레이어에게 시팅 당하는 플레이어들은 가까이 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었다. 상대방의 이점만을 노리고 접근하는 그들은, 이용가치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버릴 테니까. 결국 나만 상처받을 뿐이다.
펑! 펑! 펑!
[오크를 처치하셨습니다. 18/100]
[레벨이 올랐습니다.]
확실히 두 명이서 사냥하자 혼자 사냥 할 때보다 속도가 빨랐다. 이래서 약간의 경험치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파티 사냥을 하는 모양이었다. 내 앞의 오크 세 명을 잿더미로 만든 나는 고개를 돌려 에디를 쳐다보았다. 에디가 그저 방패 하나만 덜렁 들고 있자. 만만하게 본 오크가 그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겁에 질린 에디는 방패로 막아야 한다는 사실도 잊고 도망가고 있었고 마침내 거의 잡힐 듯 했다. 오크는 에디의 등을 향해 팔을 휘둘렀고, 나는 나도 모르게 그를 향해 소리쳤다.
“방패로 막아!”
그러자 그는 정신을 차린 듯 방패로 뒤를 막았다.
“으아아아아!”
펑!
[오크를 처치하셨습니다. 19/100]
다행히도 제때 막아 오크를 처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면 그는 꼼짝없이 로그아웃 당했을 것이다.
“헉. 헉. 헉. 죽을 뻔했네.”
나는 그에게 다가가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오크 잡는다는 사람이 겁에 질리면 어떡해요.”
“멀리서 함정 팔 땐 몰랐는데 막상 보니까 무섭더라고요. 게다가 달려오기까지 하니……. 어휴 진짜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냥 겁 내지 말고 방패로 길을 막는다고 생각하고 방패를 내밀어 봐요. 그렇게 달려오는 녀석들은 이미 에디 씨를 공격할 생각으로 오는 거니까 방패를 내밀면 아마 무조건 때릴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에디는 자신감을 얻은 듯,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그 적극성은 곧 실적으로 이어졌고, 어느새 오크의 처치 수는 60대 중반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레벨 업은 덤이었다. 우리는 그때 몰랐지만 우리를 수풀에서 몰래 지켜보던 몇 쌍의 눈이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정확히는 내가 체력과 마나를 회복하려 명상을 하려 쉬고 에디도 나름 지쳐서 쉬려할 때,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