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두 번째 랭커
작가 : GOON
작품등록일 : 2017.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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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작성일 : 17-07-26     조회 : 309     추천 : 0     분량 : 4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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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명상을 하고 있을 때, 내 앞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오크보다는 가벼운 발소리지만 발소리가 가벼운 것을 보아하니 사람 여러 명이다. 그저 지나가던 플레이어들인가 보다 하고 신경 쓰지 않고 명상을 하던 나는, 점점 발소리가 우리 쪽으로 가까워지는 것 같아 감았던 눈을 떴다. 눈을 뜨자 보인 것은 네 명의 남자들이었는데, 어떤 모습이었냐면, 흡사 중학생들 삥뜯으러 온 고등학생처럼 보였다.

 “무슨 일이시죠?”

 에디가 먼저 일어나서 그들에게 물어보았다. 내가 명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배려하려 행동을 조용히 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물론 내가 체력과 마나 회복을 위해 하는 명상은 무협지에 나오는 운기조식처럼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저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래도 에디의 배려가 나는 너무 좋았다. 뭔가 나사가 빠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사람은 좋은 듯 했다. 에디가 일어나자 에디를 포위하듯 감싼 네 명은 에디를 향해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길드 ‘크라이시스’입니다. 그리고 저는 ‘크라이시스’의 길드장 트라쎄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악수를 청하는 트라쎄에게 에디는 마지못한 듯 손을 잡고 악수를 청했다. 악수를 받자 트라쎄라고 불린 남자의 눈이 잠시 동안 초록색으로 번쩍! 빛났다. 그러자 트라쎄는 에디를 보더니 말했다.

 “오 당신 직업은 마공학자시군요. 혹시 저 방패도 직접 만드신 건가요?”

 “네 그걸 어떻게......?”

 “아 저는 제가 익힌 스킬로 상대방 직업을 알 수 있거든요. 그저 상대방 놀라는 게 좋아서 자주 쓰곤 합니다. 놀라게 해드렸다면 죄송합니다.”

 놀라게 해드려 죄송하다고? 아마 저 트라쎄라는 남자가 쓴 스킬은 상대방의 신체에 접촉하면 상대방의 정보를 일정부분 열람할 수 있는 ‘사이코메트리’일 것이다. 저 스킬은 비록 숙련도 레벨이 낮을 때는 상대방의 직업밖에 알 수 없지만, 숙련도 레벨을 올리면 올릴수록 상대방의 정보를 다 볼 수가 있다. 그래서 상대방의 정보 하나하나가 중요한 랭커들끼리는 악수를 하지 않고 그저 주먹을 가볍게 톡 맞대는 것이 인사법이었고, 혹여나 자신의 상세정보를 다른 사람이 다 알 수 있게 노출한다면 자신을 죽여도 상관없다는 뜻으로 알아들었다. 물론 치열한 랭커들의 이야기이지만, 한 때 랭커들 중에서도 정점이라 불릴만한 자들과 어울리던 나로서든 다짜고짜 처음부터 사이코메트리를 사용하는 저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에디는 당황의 표정을 지우고 트라쎄에게 말했다.

 “예 일단 제가 만든 건 맞습니다. 직업이 직업이라 서요.”

 “아 그러시구나. 그럼 혹시 길드 가입을 권유 드려도 될까요?”

 “길드 가입이요?”

 “네. 일단 저는 지금 마공학자님의……. 혹시 아이디가 어떻게 되시죠?”

 “그냥 에디라고 부르시죠.”

 “네 에디 씨의 마도구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저희와 같이 핵사하시면 정말 좋을 것 같아서요. 제가 찾던 분이십니다.”

 “아 그러시구나.”

 에디가 시큰둥한 표정을 보이자, 트라쎄는 에디의 표정변화를 놓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혹시 에디 씨가 저희가 그냥 에디 씨의 마도구들을 날름 받아먹고 튈까봐 그러시는 거면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일단 에디씨가 저희한테 마도구를 주는 것 자체가 길드 기여도로 환산돼서 길드 포인트로 올라가고요. 만약 제가 에디 씨를 제멋대로 동의 없이 탈퇴시킨다면 에디 씨는 저에게 ‘소송’을 걸 수 있습니다.”

 “소송이요? 여기에도 법원 같은 것이 있나요?”

 “아니요 법원은 없지만 사전예고와 동의 없이 탈퇴당한 길드 원에게는 ‘소송패’라고 하는 아이템이 자동으로 생겨요. 그 소송 패를 길드 신청소에 내시면 신청소에서는 ‘에디’씨의 길드 기여도의 세 배만큼 저희 길드 공적치를 깎아버리고 에디 씨의 길드 포인트만큼 위로금이 지급됩니다. 길드 입장에서는 타격이 크죠. 그래서 길드 장들은 웬만하면 길드 원들을 이끌고 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에디는 여기에 혹한 듯 했다. 삐딱하게 서서 듣던 그의 자세가 점점 바르게 펴진 것이다. 상대방이 점점 넘어온다는 것을 인식한 트라쎄는 에디에게 결정타를 날렸다.

 “그럼 어떻게……. 길드 가입 하시겠어요?”

 “잠깐만 고민해볼게요!”

 에디는 그 자리에서 눈을 감고 고민을 했다. 이거 아무래도 넘어가겠구먼. 저 사람들의 말은 길드를 설립하고 운영해봤던 내 시각에서 바라볼 때 말도 안 되는 개소리였다. 에디가 만약 저 사람들 말에 속아 넘어갔다간 그야말로 단물쓴물 다 빨리고 내쫒길 것이 뻔했다. 적어도 그가 나에게 호감인 만큼. 또 흔쾌히 그의 사냥 밑천이나 다름없는 ‘붉은 주춧돌’을 빌려준 만큼 나도 은혜는 갚아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그래서 결정한 듯 발을 구르는 그에게 가서 어깨를 둘렀다.

 “가입하…….”

 “잠깐잠깐. 이거 개소리를 너무 그럴싸하게 하시는 거 아닙니까?”

 나는 마치 건달패처럼 에디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트라쎄를 치켜뜨고 쳐다보았다. 그러자 트라쎄는 약간 당황한 듯, 하지만 에디의 앞이라 애써 숨기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태연한 듯 말했다.

 “어디가 개소리라는 거죠? 괜히 시비를 거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만.”

 “괜히 시비? 자 이제부터 내가니 말 하나하나 반박할 테니까 귀 똑바로 열고 잘 들어라 이 약팔이 새끼야.”

 나는 에디에게 두른 팔을 떼고 그들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트라쎄는 당당함을 가장하며 나를 마주 보았지만, 동공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까진 막을 수 없었다. 같은 당당함이지만 다른 느낌, 이건 어쩌면 진짜와 가짜의 그것과도 같았다.

 “일단 첫 번째, 너는 네 소개부터 잘못했어. 루칸 에서는 길드를 만들 수 없어, 왜인지 알아? 길드 생성조건은 레벨 70 이상의 플레이어 한 명을 포함한 2인 이상의 인원이다. 근데 레벨이 50을 넘게 되면 싫으나 좋으나 이 ‘시작의 섬’을 떠야하지. 왜냐하면 아무리 ‘시작의 섬’에 있는 몬스터 수만 마리를 도륙해도 경험치는 1도 안 들어오거든. 물론 ‘시작의 섬’으로 돌아오는 배는 없고 말이야.”

 트라쎄는 여기까지 듣고 침을 꿀꺽 삼켰다. 나는 그를 보고 의기양양하게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두 번째. 길드 기여도는 던전 클리어, 공성전, 수성전, 그리고 길드 전쟁으로만 올라가. 마도구를 준다고 해서 올라가는 건 맞지만 그건 앞에 말한 네 가지 경우가 발생했을 때, 그 때 줘야지만 공적치가 올라가지 평소에는 지급한다고 해서 올라가지 않아.”

 “으윽…….”

 정곡을 찔린 표정이다. 하지만 결정타는 남아있다.

 “마지막 세 번째. 길드에서 사전예고와 동의 없이 강퇴당했을 때 길드 기여도의 세 배 만큼 길드 공적치를 깎아내는 것은 맞는 말이야. 하지만 그건 워낙 플레이어의 수가 적고 길드의 수도 적은 놉 왕국의 길드에서만 해당되는 조항이고, 플레이어들이 넘쳐나는 미크론 왕국 같은 경우에는 길드 기여도의 반만큼 길드 공적치를 깎아 내린다. 왜인 줄 알아? 플레이어가 많은 만큼 길드에 분란을 조장하는 길드 원들이 많을 수 있기 때문이야. 길드 장으로서 그런 악질 길드 원들을 자를 때마다 길드 공적치를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느낀 미크론 왕국의 국왕이 반년 전부터 바꾼 조항이지. 결국 너는 그럴싸한 말로 사람을 속이는 사기꾼 새끼일 뿐이야. 보나마나 파티 이름을 ‘길드 크라이시스’로 바꾼 뒤에 파티를 초대할 생각이었겠지. 파티명은 파티장 마음대로 바꿀 수 있으니까. 내말이 틀려?”

 “이익……. 아니야! 우리는 진짜 길드 ‘크라이시스’라고!”

 “그래? 그럼 ‘수장의 패’를 보여줘봐.”

 “……. ‘수장의 패’?”

 “그래 ‘수장의 패’ 길드장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다니는 수장의 패 말이야. 설마 없다는 개소리를 하는 건 아니겠지?”

 “여관에 잠시 두고왔…….”

 “아 그래? 자신이 직접 투자한 능력치의 2%를 증가시켜주는 그런 꿀 아이템을 두고 다니는 사람이 있나? 머리통은 장식으로 달고 다니나 보지? 아니면 조상이 토끼라서 토끼 간 빼놓듯 놓고 다니시나?”

 “너 이 새끼 정체가 뭐야!”

 “나? 정의의 사도다! 이 새끼야.”

 “야! 막아!”

 트라쎄가 막아! 라고 소리치자마자 뒤에 병풍처럼 서 있던 세 명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나와 에디의 좌, 우, 후방 세 방향을 다 막았다. 우리가 혹여나 어디 도망갈세라 미리 퇴로를 차단한 것이다. 자기 무리가 빈틈없이 둘러싼 걸 보자 의기양양해진 트라쎄가 말했다.

 “어때? 이제 좀 협상할 마음이 드나? 인정할게, 사기 친 거. 근데 솔직히 파티이름을 바꾼다는 생각까진 못했어. 그런 기능이 있는 줄도 몰랐거든. 뭐 일이 이렇게 틀어진 이상 상관없지. 저 방패를 놓고 꺼져. 그럼 목숨만은 살려주지.”

 “만약 안 내놓으면 어떻게 되는데?”

 푹!

 내가 말을 끝내기 무섭게 내 왼쪽 어깨로 검이 파고들었다. 다행히 검이 파고들기 직전 몸을 뒤튼 덕에 치명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데미지를 입은 것은 변함이 없었다.

 “이렇게 된다. 이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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