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더기 같은 옷을 입은 소녀. 나이는 열 살쯤일까. 몸은 빼빼 말라서 안쓰러워 보인다.
금발머리에 푸른 눈. 상당히 귀여운 소녀였다.
여느 때처럼 소녀는 동화책을 읽고 있었다.
얼마나 많이 읽었던 건지 동화책은 너덜너덜했다. 수백 번을 읽었지만, 읽을 때마다 소녀는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동화책의 줄거리는 이러했다. 시골마을의 한 소년이 용사가 되어, 강한 동료들을 모아 마왕을 무찌르고 세상을 지킨다는 이야기.
소녀는 그런 흔해 빠진 이야기를 동경하게 되었다.
그리고 소녀는 결심했다.
“그래! 나는 마왕이 될 거야!”
소녀는 남들과 달랐다. 보통 여기서는 십중팔구 용사를 동경해야겠지만. 소녀는 최종보스 마왕을 동경하게 되었다.
“마왕님 멋있잖아! 엄청 멋있다구!”
마왕은 그 누구보다 강하기에 세계의 적이 되었다.
자신의 마음대로 행동하고, 마음에 안 드는 건 전부 박살낸다!
이 얼마나 자유로운 존재인가!
소녀도 그런 자유로운 존재가 되고 싶었다.
소녀는 자신의 꿈을 자신의 아버지에게 말하기로 했다.
이 기쁨을 아버지와 공유하고 싶은 것이다.
“아빠!”
“엉? 뭐냐.....”
소녀의 아버지는 뭐라고 할까, 한 마디로 한심한 남자였다.
일도 안 하고, 매일 술에 절어 있었다.
집의 재산도 완전 거덜 난 상태.
그래도 소녀는 그런 한심한 아빠가 좋았다. 왜 좋냐고 묻는다면, 아빠니까!
“아빠! 나 꿈이 생겼다!”
“딸꾹. 거 잘 됐구나.”
그에게 딸의 꿈같은 건 아무래도 좋은 쪽이었다.
“나는 마왕이 될 거야!”
“그러냐? 그럼, 마왕아. 술 좀 사와라.... 싸고, 양 많은 걸로 말이다.”
“집에 돈 없는데?”
“이 바보 녀석아!”
소녀의 아버지가 갑자기 고함을 질렀다. 보통 아이였다면 깜짝 놀라 울어버렸을지도 모르겠지만, 소녀는 전혀 무섭지 않았다. 왜냐하면 매일 있는 일이니까!
“마왕이 돈이 없으면 어쩌자는 거냐!”
“어? 마왕은 돈이 있어야 하는 거야?”
“당연하지! 이 아빠가 마왕이었을 때는 말이야! 돈이 엄청 많았다고? 그래서 사람들한테 인기도 많았고. 그, 뭐냐, 응, 그래. 돈이 많으면 말이야,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이거야!”
“오오. 아빠는 마왕이었던 거야?”
“그래! 아빠가 말이야! 어? 젊었을 때는 말이야! 어! 대단한 마왕님이셨다고? 검을 휘두르면 나무도 베고, 구름도 베고, 바다도 쫘악! 베고, 막 그랬다고?”
“대단해.....”
소녀는 존경의 시선으로 아버지를 보았다.
“그럼 나는 마왕의 딸이겠네?”
“물론이지! 너에게도 이 아비의 휼륭한 피가 흐르고 있다니까? 내 딸로 태어난 건, 정말 운이 좋은 거라고? 꺼억.....”
트림을 하면서 말하는 남자. 마왕이고 뭐고, 그는 그냥 한심한 알코올 중독자였다. 그런 남자의 딸로 태어난 소녀는 운이 나쁘다고 할 수 있겠다.
“아빠, 그럼 나에게 검을 알려줘! 나, 강해지고 싶어!”
“그럼, 술을 구해 와. 그럼 이 아빠가 모든 걸 알려주마.... 끄윽.”
“모든 걸?”
“그래, 마법이라던가. 마왕이 되는 법이나. 뭐 그런 거다....”
그런 거 모른다. 그런 걸 알고 있었다면, 남자가 이렇게 있지는 않았다.
“오오, 알았어!”
소녀는 아버지의 거짓말에 의욕이 났다.
“그런데 아빠, 이제 집에 돈 될 만한 게 없는데, 어떻게 해?”
매일 술값을 충당하기 위해 집안에 돈 될 만 한건, 진즉에 다 팔아버렸다. 소녀도 요 며칠 동안 굶었다. 영양실조 걸리기 일보 직전의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너, 정말 마왕이 될 생각이 있는 거냐?”
남자는 바보 취급하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소녀는 자신의 꿈이 의심 받는 것 같아서 발끈했다.
“있어! 나, 마왕 되고 싶은 생각 만땅이야!”
“만땅인 녀석이 그 모양이냐? 마왕은 말이야! 어? 뭐든 할 수 있는 존재라고? 마음을 먹었으면 어떻게든 해내는 게 마왕인 거야. 만약 마왕이 공주님을 원한다? 그럼 납치하는 거야. 세상의 적이 되더라 해도 말이야. 아무 것도 모르구만!”
소녀는 어떤 충격을 받았다.
“나는 아무 것도 몰라....?”
“다행스럽게도 네 아빠가 마왕이다. 그러니 특별히 좋은 걸 알려주마.”
남자는 선심 쓰듯이 말했다.
“결국 어떻게든 하면 되는 거야.”
취한 상태에서 헛소리를 나불거렸다. 전혀 좋은 게 아니었다. 그냥 무책임한 허풍, 그 이하였다.
“생각하면 해결법은 금방 나와. 돈 될 만한 게 없다? 그럼 돈을 벌면 되는 거야! 훔치든, 사냥을 하든, 어? 막 하는 거야, 그냥.”
“어떻게든.....”
소녀는 어쩐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응! 알았어! 어떻게든 해볼게!”
“역시 내 딸이구만! 마왕의 자질이 보이는 걸?”
“헤헤.”
소녀는 아빠에게 인정받은 것 같아 기뻤다. 집을 나선 소녀는 한적한 시골 마을을 걸으며 생각했다.
“어떻게든.....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하는데. 어떡하지?”
그때 새가 날아가는 게 보였다.
동시에 아빠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훔치든, 사냥을 하든, 어? 막 하는 거야. 그냥.’
소녀는 아빠의 말에서 정답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래! 사냥이야!”
새를 잡아서, 파는 거다. 그리고 술을 구해오는 거다!
“그런데 어떻게 새를 잡지?”
소녀는 사냥을 한 번도 안 해봤다. 사냥지식도 없다. 아빠에게 가서 물어볼까 했지만, 소녀는 곧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내 힘으로 해야 해. 어떻게든 잡는 거야.”
아빠가 말했다. 생각하면 해결법은 나온다고.
소녀는 생각한다.
새는 하늘을 난다. 가끔 나무나 땅에 있기도 한다. 그래, 그때 잡는 게 좋을 것 같다.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뒤에서 잡는 거야!”
마침 저 멀리 새 한 마리가 보였다. 땅바닥에서 무언가를 쪼고 있었다. 기회였다. 소녀는 기척을 죽이고, 새에게 다가갔다.
푸드득!
바로 근처까지 도달했을 때 소녀의 기척을 느끼고, 새는 날아가 버렸다.
“제법이네. 나의 기척을 느끼다니.”
중2병 같은 말을 내뱉으며 소녀는 의지를 불태웠다.
몇 번이나 도전하고, 도전해서, 소녀는 깨달았다. 새를 손으로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그렇다면 새의 감지 거리 밖에서 잡을 수밖에 없다.
“그래! 돌로 맞추는 거야!”
자신이 생각해도 굿 아이디어였다. 다시 한 번 새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어느 정도 거리에 도달했을 때, 있는 힘껏 돌을 던졌다!
“가랏!”
푸드득!
당연하게도 돌은 새를 맞추지 못했다. 돌로 새를 맞추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쉽지 않으니까, 재밌는 거지만!”
마왕의 길은 쉽지 않다는 것쯤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더 불타오르는 법!
소녀는 일단 연습을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꼬르륵.
“아, 배고프다아.”
제대로 된 식사를 한 게 언젠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새를 잡으면 어떻게든 될 거야!”
소녀는 주변에 있는 돌들을 나무에 던지며 요령을 잡기 시작했다. 얼마나 연습했을까, 제법 명중률이 높아졌다. 돌을 나뭇가지뿐만 아니라 원하는 나뭇잎에도 맞출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사냥을 나설 때다.
마침 근처에 새도 있겠다. 저걸 잡아서 아빠의 술뿐만 아니라 오랜 만에 밥도 먹어야지!
“간다아?”
소녀는 돌을 있는 힘껏 던졌다.
쉬이익!
돌은 암기가 되어 날카롭게 날아간다.
퍼억!
새의 머리에 정통으로 맞았다. 힘이 빠진 듯, 새는 푹하고 쓰러졌다.
“야호! 잡았다!”
소녀는 기쁜 듯, 자신이 잡은 사냥감에게 다가갔다. 새의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기절한 게 아니라 죽었다, 즉사였다.
“히히. 아빠도 기뻐하겠지?”
이걸로 아빠한테 인정받아, 마왕이 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발걸음이 가볍다. 소녀는 새를 들고, 마을 잡화점으로 향했다.
잡화점에 도착하니, 가게 주인이 소녀를 반갑게 맞이했다.
“여어. 오랜만이구나.”
“응. 오랜만.”
잡화점 주인과 소녀는 나름 친분이 있었다. 그것도 그럴 게, 소녀의 집에 있는 물건들 대부분을 여기서 매입했으니 소녀가 단골이라면 어떤 의미로는 단골이었다.
“또 팔 게 있는 거냐?”
“응! 이거 얼마야?”
소녀는 새를 보여주며 말했다.
“뭐, 뭐냐, 그거?”
새였다. 그것도 제법 큰 새다.
“잡았어. 얼마에 살 거야?”
“뭐? 네가 잡았다고? 대체 어떻게....?”
“돌 던져서 잡았어.”
소녀는 자랑하듯이 씨익 웃어보였다. 잡화점 주인은 순수하게 놀랐다. 사냥은 어렵다. 활로도 잡기 어렵다. 그런데 저 소녀는 땅에 굴러다니는 짱돌만으로 새를 잡았다고 한다.
소녀가 거짓말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허. 대단하구나. 너?”
“그래서 얼마?”
“음.... 15실버.”
15실버. 딱 적정가였다. 잡화점 주인은 소녀를 속일 생각은 없었다. 소녀의 사정을 알기 때문이다. 거기에 소녀는 어리더라도, 속아 넘어갈 정도로 어리숙하진 않았다. 물론 아버지의 허풍에는 보기 좋게 넘어갔지만 말이다.
“20실버.”
“이봐이봐. 15실버도 많이 쳐준 거라고?”
소녀의 흥정실력은 상인만큼은 아니더라도 호구는 아니었다. 집의 물건을 팔아 매일 술을 사러온 것이다. 조금이라도 가격을 높게 해서 술을 사기 위해 흥정이란 것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었다.
“아빠 술도 살 거야. 그리고 나 배고파. 그러니까 20실버.”
잡화점 주인은 눈앞에 소녀가 측은해졌다. 배고프다는 말을 증명하는 것처럼 소녀의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소녀의 아버지는 이 마을에서도 유명하다.
일도 안 하고, 매일 집에서 술이나 마시는 쓰레기로.
거기에 딸을 시켜서 매일 술이나 사오라 하고. 저 새도 술을 구하기 위해 잡아온 것이겠지.
“쯧. 알았다. 너도 고생이구나.”
“고마워, 아저씨.”
소녀는 싼 술, 두 병과 감자와 육포를 샀다. 이걸로 며칠 간 굶을 일은 없을 것이다.
집에 도착하자. 아버지가 소녀를 반겼다.
“술은 사왔냐?”
“응! 감자랑 육포도 구했어!”
“오오. 진짜냐? 역시 내 딸이다.”
소녀의 아버지는 바로 술병을 입에 물었다.
벌컥벌컥.
“크하. 이 맛이지. 이 맛이야.”
남자가 너무 맛있게 마셔서 그랬을까, 소녀는 문득 궁금해졌다.
“아빠, 술이 그렇게 맛있어?”
“마. 술은 말이야, 어? 술은, 맛으로 먹는 게 아니야.”
“그럼?”
“잊으려고 마시는 거지.”
“잊어? 뭘 잊으려는 건데?”
“몰라, 마시니까, 잊어버렸다. 푸하하!”
그는 자신의 농담이 꽤나 재밌었는지, 혼자 웃기 시작했다.
“으음. 뭐야? 딸도 마시고 싶었냐? 어쩔 수 없구만. 자아, 한 번 마셔 봐라.”
그는 어린 딸에게 술을 권하는 쓰레기였다.
“아니, 나는 됐어. 아무 것도 잊고 싶지 않으니까.”
그는 조금 흠칫 떨었다. 아마 딸의 말에 자신의 한심함을 느낀 것이겠지.
“그러냐? 큭, 역시 내 딸이구만.....”
그는 그렇게 술을 마시다가, 곯아 떨어져버렸다.
소녀는 그런 그에게 조용히 담요를 덮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