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이제 스승이라 부를게.”
“예. 저도 그쪽 호칭이 좋습니다.”
사냥꾼은 아직 소녀의 이름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고 보니, 이름을 못 들었군요.”
“바알이야.”
“바알? 바알이라면....”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 무척 익숙하다. 누구나 한 번쯤 읽었을 동화책의 최종보스.
“동화책에 나오는 마왕의 이름과 같군요?”
“그래서 바알이야. 나는 마왕이 될 여자니까.”
“그, 그렇습니까?”
자신의 이름을 마왕의 이름으로 바꿀 정도면 마왕을 얼마나 좋아하는 거야?
“그럼 바알. 괜찮다면 지금, 라인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드릴까 합니다만.”
“응, 부탁해.”
‘부탁해’라는 말에 사냥꾼은 조금 놀란 얼굴이 되었다.
“왜 그래?”
“.....아뇨, 그저 바알이 부탁한다는 말을 할 줄은 몰랐어요.”
바알은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그거. 여태 날 예의 없는 꼬마라 생각했던 거야?”
“예? 아, 아닌데요?”
사냥꾼은 속으로 뜨끔했다.
“그, 그럼 바로 교육에 들어가겠습니다.”
사냥꾼은 바알에게 라인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소녀는 이해도 빨랐다.
사냥꾼이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알았다.
사냥꾼의 말 몇 마디에 소녀는 마력의 그릇, 라인을 만들어낸다.
보통 몇 년이나 걸리는 경지를 단숨에 이루어낸 것이다.
‘마력량은 이미 저를 뛰어넘은 겁니까.....’
요 몇 십분 만에 바알은 사냥꾼보다 많은 라인을 보유하게 되었다.
라인 하나를 만드는 데에 많은 마나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대장장이 단조 과정과 비슷하다.
철을 두드리면 단단해지듯이 라인 또한 오랜 시간동안 의지라는 망치로 마나를 두들겨 라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바알은 그 과정을 몇 십분 만에 해냈다. 무엇보다 라인을 만들 마나를 어디서 가져 오는 걸까? 마력조작이 뛰어나다는 것으로는 설명이 되지는 않는다.
설마 숨 쉬는 것만으로 대량의 마나가 생성되는 건가?
‘그거라면 설명이 됩니다. 미량이지만 사람은 숨 쉬는 것으로 외부의 마나를 받아들이니까요. 다만, 이 아이는 남들보다 몇 배나 많은 마나를 받아들이는 거겠죠.’
바알의 말에 마나가 움직이고, 숨 쉬는 것만으로도 마나가 모인다.
이건 마치 그녀가 세계의 사랑을 받는 것 같지 않은가?
“라인은 몇 개나 만들 수 있는 거야?”
바알이 사냥꾼에게 물었다.
“사람마다 다릅니다. 마력을 뭉쳐도 라인이 안 만들어질 때가 자신의 한계죠.”
“한계를 뛰어넘는 방법은?”
“제가 알기로는 없습니다. 라인을 만들 수 있는 개수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으니까요.”
“흐응. 그럼 스승은 라인을 몇 개 갖고 있어?”
“저는 10개의 라인을 갖고 있습니다. 평균이죠.”
물론 그 평균이란 건, 재능 있는 사람들의 평균이다. 그들은 세상에서 선택 받은 소수의 사람들. 세계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라인 10개는 매우 뛰어난 인간에 속한다.
“10개가 평균이라.....”
바알은 현재 13개의 라인을 만들어냈다. 물론 이것이 한계가 아니다. 그 이상으로 계속 만들어낼 수 있다.
다만. 시간과 마나가 필요할 뿐이다.
“라인을 가장 많이 만든 사람은 누구야?”
“음. 현재는 마탑의 수장이 38개로 가장 많은 라인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 적어도 38개는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네.”
마왕은 최강이다. 그렇다면 마력량에서도 최강이어야 한다. 안 되면 어쩔 수 없지만.
“바알, 라인이 많으면 좋지만. 라인의 개수가 꼭 강함의 절대적인 척도는 아닙니다.”
“알아. 팔이 많다고 해서 싸움을 잘하는 건 아니니까.”
“비유가 좀 그렇지만..... 예, 그런 겁니다.”
사냥꾼이 이렇게 말한 이유는 혹시라도 나중에 소녀가 원하는 만큼 라인을 만들지 못해 큰 실망을 할까, 걱정돼서 그런 것이다.
사냥꾼은 바알에게 마력으로 육체 강화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네, 그런 식으로 육체를 강화하는 겁니다. 이번에는 강화한 한 상태로 나무를 패도록 해보죠.”
“응.”
소녀는 도끼를 쥐고ㅡ 휘둘렀다.
퍼억! 퍼억! 퍼억!
쿵!
꽤나 두꺼운 나무였음에도 불구하고, 세 번의 도끼질 만에 나무를 쓰러트렸다.
썩은 나무에 도끼질한 착각이 들 정도로 몸에 부담이 가지 않았다.
“이게 육체 강화..... 대단하잖아, 이거!”
바알은 자신의 근력이 몇 배나 강해진 것을 제대로 실감했다.
‘정말 무서운 아이입니다.....’
육체강화는 결코 쉬운 기술이 아니다. 마력을 계속 조작하면서 몸을 움직이는 것이다. 마력 조작과 뛰어난 운동신경이 요구된다. 그런데 그것을 단번에 해내다니.
이미 소녀의 경지는 기사의 경지에 도달했다.
“지금이라면 이 나무도 들 수 있을 것 같아.”
소녀는 쓰러트린 나무를 들어 올리려고 했다.
“흐읍!”
꽤나 큰 나무였기에, 무릎까지 들어 올리는 게 최대였다.
“하아. 안 되네.”
“하하. 바알은 아직 근육이 발달된 게 아니니까요.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아무리 대단한 재능을 갖고 있더라도, 소녀의 근력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소녀의 근력이 몇 배나 강해지더라도 성인 남성보다 조금 강한 근력에 불가한 것이다.
“아니, 강화를 몇 번 더 하면 들 수 있을 것 같아.”
사냥꾼은 화들짝 놀랐다.
“예? 아, 안 됩니다. 그 이상의 강화는 몸을 망칩니다. 근육이 버티지 못해요!”
“무슨 소리야? 내 마력을, 내가 버티지 못할 리가 없잖아?”
이 아이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소녀가 하는 말은, 건물을 빨리 내려가기 위해, 건물에서 뛰어내린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강화 중첩은 상식에 벗어난 행동입니다! 다친다고요!”
“당연하지. 나는 마왕이야. 상식에 벗어나 있는 게 당연하잖아?”
사냥꾼은 절망했다. 말이 안 통해도 너무 안 통한다.
“잠자코 있어. 나한테 한계가 없다는 걸 보여줄 테니까!”
“바알!”
바알은 사냥꾼을 무시하고, 팔에 강화를 중첩한다.
강화!
아직 근력이 부족하다.
강화!
나무를 허리 높이까지 들어올렸다. 하지만 바알이 원하는 건 이런 게 아니었다.
강화!
자신이 원하는 건, 마왕처럼 거대한 대검을 자유롭게 휘두르는 모습이다.
강화!!
“흐랴앗!”
부우웅!
바알은 거대한 나무를 휘둘렀다. 그러자 강한 풍압이 일어났다.
“어?”
‘방금 나, 뭔가 멋있지 않았어?’
마치 마왕이 대검을 휘둘러 풍압만으로 용사일행에게 압박을 주는 그런 장면을 같았다.
역시 로망은 대검이다!
그래, 대검을 이용한 멋진 필살기를 만드는 거다!
분명 동화 속에 등장하는 용사일행 중 대검을 쓰는 동료가 있었다.
그 용사의 동료가 아홉 머리를 가진 괴물을 무거운 대검으로 수백 번 내려찍어 죽인 내용이 있었는데. 바알이 좋아하는 내용 중 하나였다.
화끈해서 좋다고 할까.
‘그 기술을 현실에서 구현하는 거야!’
기술이라고 해도 별 거 없다. 커다란 대검을 빠르게 수십 번 내려찍으면 되니까.
물론 그게 어렵다. 무엇보다 현실에서 대검을 쓰는 바보는 없다.
비효율적이란 것이다.
‘시험 삼아 해볼까!’
바알은 대검 대신 나무로 수십 번 내려찍기를 할 생각이었다.
지금 여기서 자신이 동화 속의 말도 안 되는 기술을 구현시키는 거다!
팔을 들어 올리려고 할 때였다.
타악.
사냥꾼이 손바닥으로 나무를 짓눌러, 들어 올리지 못하게 막았다.
“.....?”
바알이 의문을 표하기도 전에, 사냥꾼은 바알의 배를 발로 걷어 차버렸다.
“크윽.”
바알은 몇 미터를 날아갔다.
곧 배를 움켜잡고, 무슨 짓이냐고, 한 마디 쏘아내려던 찰나.
자신의 양 팔에서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다.
“아아악!!”
강화에 의한 반동 때문인지. 근육이 비명을 지른다. 마치 근육이 비틀려지는 감각.
“바알!”
사냥꾼이 바알에게 달려갔다. 그가 발을 찬 것은 어디까지나 바알의 무리한 행동을 막기 위해서였다.
“보십시오! 무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강한 육체를 가진 수인족이라면 모를까. 그 정도의 강화는 사람의 육체가 버티지 못한다고요!”
“.....시끄러. 이런 건, 마왕인 나한테 아무 것도, 윽.”
“정말이지! 움직이지 마세요!”
사냥꾼은 바알의 양팔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무슨 요령이라도 있는 걸까. 고통이 완화되어 간다.
“하아..... 다행히 크게 다친 건 아니군요.”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앞으로 강화중첩은 하지 마세요. 금지입니다.”
사냥꾼은 단호하게 말했다.
“웃기지 마.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명령하지 마!”
그게 바알의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럼 전, 이제 아무 것도 알려드리지 않을 겁니다.”
“치사하잖아, 그건!”
바알은 힘을 원했다. 그런 의미에서 사냥꾼은 좋은 스승이었다. 하루 만에 자신은 몇 배나 강해졌으니까.
“.....”
사냥꾼이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바알과 마주본다. 절대 굽히지 않겠다는 게 의지다.
“칫. 알았어. 알았다고. 안 하면 되잖아.....”
“약속입니다?”
“그래, 약속할게.”
그제서야 사냥꾼은 안도했다.
정말이지, 고작 하루 만에 자신을 이렇게 걱정하게 만들고, 신경 쓰이게 만들다니.
‘제 첫 제자는 여러모로 문제아군요. 앞으로 여러모로 고생할 것 같네요.’
한 편 소녀는.
‘마왕은 딱히 약속 같은 거 안 지켜도 되잖아? 아빠도 약속은 깨라고 있는 거라고 말했었고.'
앞으로 고생할 것 같다는 사냥꾼의 생각은 진실에 가까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