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스나이퍼
작가 : 대식
작품등록일 : 2017.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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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작성일 : 17-06-24     조회 : 447     추천 : 0     분량 : 4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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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악. 하악.”

  혜성은 강원도에 있는 두타산 산을 헤집고 올라 도망치고 있었다. 그가 입고 있는 교복에는 피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고 여기저기 찢겨져 나가 있었다. 저벅저벅. 등 뒤에서 북한군들의 발자국 소리와 총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수십 개는 들려왔다.

  “저 새끼 놓치지 말고 잡으라우.”

  “뭐하네?! 날레날레 쫓이라우, 이 간나 새끼들아.”

  어느새 코앞까지 따라온 모양이었다. 북한군의 욕지거리도 간간히 들렸다. 혜성은 살기위해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소나기가 하늘에 구멍 뚫린 것 마냥 쏟아져 내려 땅이 진흙으로 변해 질척거려 발이 푹푹 빠졌고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물기를 머금은 풀을 밟아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하악, 이런 씨팔.”

  혜성은 작은 목소리로 욕을 짜증스럽게 내뱉었다. 왜 저 새끼들이 여기에 나타났고 왜 우리 마을을 습격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일단은 뭐가 어떻게 된지 모르지만 그걸 따질 여유는 없었다.

  “엄마······.”

  혜성은 북한군에게 살해당한 엄마의 얼굴이 도련 듯 떠올라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북한군이 쳐들어왔을 때 혜성의 엄마는 그가 도망칠 시간을 벌기위해 북한군에게 저항하다가 그만 살해당했다.

  ‘혜성아 도망쳐, 어서 빨리 도망쳐! 꼭 살아남아!’

  꼭 너만큼은 살아야한다고 말씀하시던 엄마의 굳은 목소리는 잊히지 않았다.

  햬성은 쫓아오는 북한군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앞으로만 나아갔다. 그러나 소나기 때문인지 혜성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다리도 부들부들 떨리며 쇳덩어리처럼 무거웠다.

  혜성은 땅 위에 조금 솟아나 있는 돌부리에 걸려 철퍼덕 넘어졌다. 종아리가 화끈거리며 피가 흘렀다. 넘어지면서 나뭇가지에 긁힌 것 같았다.

  “크윽! 씨발. 죽을 순 없어 나는 살아야해!”

  혜성은 뭐에 홀린 듯 같은 말만 되뇌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발목도 삐었는지 걸을 때마다 시큰거리고 숨이 차올라 입에선 단내가 나올 지경이었다.

  “저기 있다! 잡으라우!”

  쫓아오던 북한군의 발자국 소리가 빠르게 가까워졌다.

  ‘숨을 곳이 필요해, 이러다 잡히겠어!’

  혜성은 주변을 살피며 숨을 곳을 찾았다. 일반적인 산길이 아니었기에 숨을 곳은 넘쳐났다. 그는 재빨리 풀숲에 가려진 구덩이 사이로 몸을 던졌다.

  북한군은 혜성이 몸을 숨긴 풀숲을 다다랐다. 혜성은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그리고 두 눈을 꼭 감고 죽은 듯이 있었다. 혹시나 숨 쉬는 소리라도 들릴까봐 양손으로 입까지 틀어막았다. 북한군들의 대화소리가 진환이의 귓가에 들렸다.

  “리수환 동무, 아새끼의 종적이 사라졌습네다.”

  “쥐새끼 같은 간나 새끼, 아직 근처에 있을 테니깐 샅샅이 찾으라우! 그리고 찾는 즉시 사살하라우!”

  “알겠습네다.”

  지휘관으로 보이는 북한군이 명령하자 북한군들이 그에게 경례를 한 뒤 사방에 흩어졌다,

  모든 북한군들이 흩어지자 리수환이란 불린 지휘관은 혜성이 숨어 있는 풀숲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렇게 잠시동안 쳐다보더니 어깨에 걸려 있는 소총을 꺼내들었다. 그는 무심한 얼굴로 총구에 있는 대검으로 풀숲 깊숙이 찔렀다.

  푹!

  다행히 혜성이 숨어 있는 곳과는 다른 곳이었다. 그러나 리수환은 이번엔 정확히 그가 숨을 곳을 향해 총검을 겨누었다. 그런데 그때.

  탕! 타앙!!

  숲속에서 우레와 같은 총소리가 메아리쳤다. 혜성은 깜짝 놀라며 눈을 떴고 리수환도 총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바라보았다. 그의 허리에 걸려 있던 무전기가 지지직거리며 울렸다.

  [찌지직. 리수환 동무! 지금 남조선 아새끼들이 몰려오고 있습네다.]

  리수환은 매우 신경질적으로 무전기를 빼들고 짜증을 내며 무전기를 향해 대답했다.

  띠릭.

  “이 종간나 새끼들아 그게 무슨 소리네?!”

  [잘 모르겠습네다. 아무래도 마을에 생존자가 신고를 한 것 같습네다.]

  “젠장! 일단 마을에 있는 다른 동무들과 합류하도록!”

  [예.]

  그 무전을 끝으로 리수환을 빠르게 산을 내려갔다. 혜성은 입을 틀어막은 손을 내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 살았나?”

  혜성은 믿기지 않은 듯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풀숲 사이로 바깥을 바라보았지만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긴장이 풀리자 몸이 축 늘어졌다.

  “하하하하하.”

  그는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살아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일까? 아니면 죽음이라는 너무나 큰 공포 때문에 미쳐버린 걸까? 알 수 없었다.

  “엄마, 아빠. 나 살았어요. 하하하······. 크크크윽. 흑. 흐윽.”

  혜성은 광기어린 얼굴에는 눈물이 맺혀 흘렀다. 웃음은 어느새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울음이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혜성의 서러운 울음소리는 간간히 들려오는 총소리에 파묻혀버렸다.

  탕! 탕! 탕!

  “씨발! 씨발! 씨발!!! 나 혼자 살아남으면 뭐하냐고! 엄마······.”

  이제 그는 혼자였다, 엄마도, 친한 친구도 모두 없었다. 외로웠다. 바닥에서 올라온 한기가 그의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퀴퀴한 풀내음이 코끝에 스며들었다. 꽃집을 하던 엄마의 품에서 나던 냄새. 그가 눈을 감을 때마다 엄마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어렸을 적에 덤벙거리고 넘어져 무릎이 까졌을 때 약을 발라주던 엄마의 얼굴이,

  철이 없어 항상 사고만 쳐, 남의 부모님에게 고개를 숙이던 엄마의 얼굴이.

  마음 다 잡고 공부한다니깐 우리 아들 힘내라며 간식까지 챙겨주시던 엄마의 얼굴이.

  피로 범벅이 되 새빨개진 얼굴로 도망가라고 소리치던 엄마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리며 눈물을 타고 흘렀다. 이제 혜성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럴 순 없어. 내가! 우리 엄마가! 뭘 그리 잘못했는데!!’

  “이 빨갱이 새끼들, 다 죽여 버리겠어!”

  한참을 울던 혜성의 슬픔은 분노로 변하였다. 광기에 사로잡힌 그는 다리가 아픈지도 모르고 지친 몸을 이끌며 리수환이 내려간 길로 따라 내려갔다.

 

  혜성이 절뚝거리며 산 아래로 내려오자 마을이 보였다. 아름다운 꽃, 나무와 바다가 자랑이었던 우리 마을, 자연과 어우러져 아름다웠던 마을은 모든 게 불에 휩싸여 타들어갔다. 비가 내리지만 거센 불길은 꺼지지 않았다. 불길 위로 검은 연기가 치솟아 올라 먹구름과 섞여 하늘을 뒤덮었다.

  혜성은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마을 곳곳에는 불에 타 누군지도 모르는 시체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어 마치 지옥과 같았다. 살타는 냄새와 화약 냄새가 코끝을 파고들었다. 혜성은 그 역겨운 냄새에 토가 쏠리는 걸 참아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잔잔한 파도 소리는 이미 시끄러운 총성과 처절한 비명소리에 파묻혀 사라진 뒤였다. 이곳은 이제 혜성이 알던 마을이 아니었다.

  혜성은 마을 사람들만이 아는 지름길로 자신의 집이었던 엄마의 꽃가게로 향했다. 가는 길에 누구의 것인지 모르는 소총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영화나 게임에서 어느 정도 사용법은 알기에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혜성은 소총을 챙겨들었다.

  혜성은 아무도 몰래 꽃가게 앞에 도착했지만 이미 모든 걸 집어삼킨 화마로 인해 꽃가게는 무너져 형체도 알아볼 수 없었다. 엄마의 시체 또한 가게 안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어, 엄마! 엄마! 엄마!”

  혜성은 무너진 잔재를 들쑤시며 엄마의 시신을 찾으려 했다. 혜성의 손이 검게 물들어 갔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찾아 헤매다 잿더미들 사이에서 사람의 손이 나왔다. 검게 그을어진 손에는 익숙한 낡고 빛바랜 결혼반지가 껴있었다. 혜성은 엄마의 손을 잡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오열했다.

  “엄마! 엄마···! 우리 엄마······.내가 복수해줄게.”

  혜성은 눈물을 속으로 삼키고는 엄마의 손에 볼을 비볐다, 싸늘해진 엄마의 손길을 느끼던 그는 엄마의 손가락에 껴 있는 반지를 빼내어 손가락에 꼈다. 그런 다음 얇은 나뭇가지를 바닥에 꽂아 표식을 남겼다. 이제 정말 복수할 때였다.

  “개새끼들!”

  탕! 타당!

  마침 총소리가 근처에서 울려 퍼졌다. 혜성은 소총을 단단히 붙들어 매고 바삐 걸음을 옮겼다.

  근처에 다다른 혜성은 문이 열려 있는 슬기네 집에 들어갔다. 슬기네 집은 2층짜리 단독주택이라 옥상이 있어 주변을 둘러보기 용이해 상황을 살펴보기 좋았다. 집 안에 들어서자 1층 거실에는 슬기의 엄마, 아빠의 시신이 보였다. 각자 가슴과 배에 상처가 있었고 거실바닥은 피로 흥건했다. 마을에서도 착하기로 소문난 슬기네 가족.

  혜성은 그들을 착잡한 심정으로 쳐다보다가 이내 애써 무시하고 계단을 올랐다. 계단에는 7살의 슬기의 시신이 보였다. 계단에는 슬기의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슬기는 갑작스럽게 죽음을 당했는지 두 눈을 부릅뜬 채 죽어 있었다. 혜성은 슬기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

  “슬기야······. 너도 내가 복수해주마.”

  슬기의 눈을 감겨주고 싶었지만 슬기의 원한 때문인지 눈은 감겨지지가 않았다. 혜성은 하는 수 없이 슬기의 명복만 빌어주고 그녀를 지나쳐 옥상으로 올라갔다.

  혜성은 옥상에서 몸을 바짝 엎드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좁은 골목길에서 한국군 한 명이 어깨를 부여잡고 쓸어져 있었고 그의 것으로 보이는 총은 그의 발치에 놓여 있었다. 아마도 수색 중이던 한국군이 북한군에게 기습을 당한 것 같았다. 북한군이 그에게 총을 겨누며 다가가고 있었다.

  혜성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소총을 잡고 총구를 북한군을 겨누었다. 가늠자 사이로 북한군의 모습이 보였다. 혜성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 흘러내린다.

  ‘내가 맞힐 수 있을까? 빗맞으면 어떡하지? 맞으면 죽겠지.’

  “하악···. 하아악······.”

  막상 사람을 죽인다는 압박감에 진환이의 숨이 가빠져 왔다. 혹시나 자기가 쏜 총에 무고한 한국군이 맞을까 걱정되었다. 어찌되었든 그가 쏘든 안 쏘든 저리 놔두면 한국군은 죽게 될 것이다. 이 집에 있는 슬기와 슬기 부모님처럼······.

  ‘죽인다. 우리 마을 사람들을 죽인, 내 친구들을 죽인, 우리 엄마를 죽인! 저 새끼들을 죽인다!’

  두근두근.

  혜성은 마음속으로 복수심을 곱씹어 떨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후우······.”

  혜성은 정확히 북한군의 심장을 향해 겨누었다. 그는 천천히 숨을 내쉬며 방아쇠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당겼다.

  “죽어, 이 개새끼야!!”

  탕!!

  고막을 강하게 때리는 총성이 울리며 총알은 발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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