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로맨스
기억의 문
작가 : 최윤정
작품등록일 : 2017.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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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바닷가 - 3
작성일 : 17-06-28     조회 : 312     추천 : 0     분량 : 5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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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주경 환자가 다녀간 지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아침에 상담 세션 2개, 오후에 3개를 진행하고 짬짬히 약물 처방환자들까지 본 수희는 지칠 대로 지쳐 진료실에 엎드려 있던 참이었다.

 

 방 실장이 노크를 하고 들어왔다. 전화를 받아보라며.

 수희는 상담 세션 동안 수신 거부를 해놓은 전화를 풀어 통화를 연결했다.

 

 “한 수희 부원장님이시죠? 저는 지난 월요일에 거기서 치료 받았던 신 주경이 엄마입니다.”

 

 수희는 눈을 비비며 정신을 여몄다. 혜인이란 어린 아이 목소리로 말하던 환자가 떠올랐다. 혹시.......

 

 “아, 네. 신 주경씨 다음 주 월요일 4시 상담 잡혀 있는데요.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긴 한숨이 전화기를 통해 흘러나왔다.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거기서 상담 받고 돌아오다가.”

 

 긴장한 몸이 좀 풀렸다. 환청이 심해졌다거나, 다른 인격이 두드러지게 나와 일상을 해치는 증상이 아니었다. 심한 교통사고가 아니라면 치료하기만 하면 되니까. 몸은 쉽게 치료가 되니까.

 

 “아, 저런. 많이 다치셨나요?”

 

 “몸은 별로 다치지 않았다고들 하는데, 문제는.......”

 

 수희의 심장 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왼손도 덩달아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수희는 왼손을 바라보며 어머니의 말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애 눈이 안보여요. 검사로 이상이 없다는데 눈이 안보인대요. 병원서는 충격이 어쩌고 하는데, 주경이도 말이 없고 내가 답답해서.”

 

 왼손이 검은색 볼펜을 들고 꿈틀거리며 혼자 여자를 그렸다.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는.

 

 “정신적인 충격으로 눈이 안 보인다는 말씀이신가요? 병원에서 그렇게 말했다구요?”

 

 “네, 애가 말도 안하고 잠만 자려고 해요. 그래서 애 아버지랑 제가 너무 답답해서.”

 

 “거기 정신과에서는 뭐라 합니까? 정신과 협진이 들어갔을텐데.”

 

 “우리 애가 말을 안한대요. 신경 자체에는 이상이 없는데 애가 말을 안하니까....... 너무 답답해서....... 근데 애 차에서 선생님 명함이랑 약이 나와서 전화 드린 거에요. 저기, 혹시 좀 들러주실 수 있으신가 해서요. 출장비는 드릴게요. 아무래도.......”

 

 환자 어머니는 출장비 이야기를 하다가 실례라고 느꼈는지 말을 얼버무렸다.

 

 “오늘 퇴근하고 찾아뵙겠습니다. 병원 이름과 병실 호수 알려주세요.”

 

 수희가 와준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는지 어머니의 목소리가 확 밝아졌다. 수희가 오면 모든 것이 나이질 것처럼. 하지만 수희의 마음은 주소를 받아 적으며 점점 더 무거워만 졌다.

 

 심인성 시각 상실.

 

 통화를 끝낸 수희는 왼손이 그린 그림을 바라보았다. 양 눈을 가린 여자.

 

 신 주경, 당신은 무엇이 그토록 두려운가? 무엇이 그리 두려워 눈까지 안보이게 하며 한사코 외면하는가.

 

 수희는 서랍에서 진료 시간에 왼손이 그렸던 빨간 소녀와 초록 소녀 그림을 찾아내 방금 그린 그림 옆에 나란히 놓았다.

 

 “어이 청의동자, 뭐라고 좀 써보든가?”

 

 수희는 오른손으로 왼손을 툭 치며 중얼거렸다. 왼손에 깃든 해리 증상의 인격을 수희는 언제부터인가 아이라고 수희는 마음대로 단정하고 있었다.

 아니 마음대로는 아니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수희는 왼손에 깃든 인격이 어린아이이고, 그 아이는.........

 

 

 ‘니 손에 봉인된 몸주신은 청의동자여. 아가, 휘둘리면 안되야. 휘둘리지 않으려면......’

 

 아니다, 아니야.

 

 수희는 고개를 저어 꼬리를 물고 비집고 새어나오려는 생각들을 털어냈다. 왼손은 방금과 달리 미동도 하지 않았다. 수희를 놀리는 것처럼, 내가 그리 호락호락할 줄 아냐는 것처럼.

 

 수희가 1인 입원실 문 앞에 섰을 때 마침 안에서 주경의 격앙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가 일부러 안보고 있다는 거야?”

 

 “아니, 내 말은 네가 마음을 굳게 먹으면 나아질 거 아니냐고. 심리적인 문제라며.”

 

 로스쿨에 다닌다는 주경의 남자친구인 모양이었다. 주경이 학비를 대고 있다는, 홀어머니의 아들.

 

 “내가 진작 마음을 굳게 먹었으면! 아냐, 관두자. 그만 가, 오빠. 나 피곤해.”

 

 “아, 아니, 주경아, 오빠는 네가 너무 걱정되니까 이러는 거지.”

 

 화 내는 주경이 낯선 듯 남자친구는 당황한 목소리로 더듬기까지 했다.

 

 “다음 학기 학비가 걱정되는 건 아니고?”

 

 “너! 무슨 말이 이러니? 오빠가 설마........ 아니, 주경아 너 왜 이래? 너 이런 애 아니었잖아.”

 

 “애 아니야. 어른이야, 직장인. 그만 가. 피곤하다.”

 

 다음 순간 문이 열리고 남자 친구가 뛰쳐나왔다. 불쾌함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그는 수희를 힐끗 보고 인사도 없이 그대로 복도 끝으로 사라졌다.

 

 수희는 남자가 열어 놓은 문으로 병실에 들어갔다. 주경은 쿠션에 등을 기댄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주경씨, 한 수희입니다. 어머님께서 연락주셨어요.”

 

 주경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정확하게 수희 얼굴을 보지 못하고 얼추 비슷한 방향을 바라볼 뿐이었다.

 

 “엄마 아빠는 지금 식사하러 가셨어요.”

 

 수희가 마치 부모님 때문에 온 것처럼 주경은 말을 했다. 자신을 반기지 않는 주경의 태도에 아랑곳없이 수희는 의자를 당겨 주경의 침대 옆에 앉았다.

 

 주경은 다시 눈 앞의 허공을 멍하니 응시했다.

 

 “보고 싶지 않다고 계속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보지 않는다고 그것이 그냥 사라지지는 않아요.”

 

 주경은 아래턱을 내밀며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내가 무엇을 보든 말든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는 듯했다. 무기력한 우울감에 빠져 있는 것보다 훨씬 좋은 예후여서 다행이었다.

 

 “이상한 기억을 심으셨어요. 영화가 맞았어. 최면은 이상한 거라더니.”

 

 주경이 따지듯 물었다.

 

 “무엇이 이상한 기억입니까?”

 

 주경은 입을 다물었다.

 

 “주경씨, 제 최면 세션은 집중을 좀 깊게 하는 정도입니다. 그 때 떠오르는 낯선 것들은 평소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혹은 기억하기 고통스러워서 묻어둔 것들이지, 제가 심은 것이 아니에요. 아시고 계시잖아요?”

 

 “몰라요, 저는 몰라요. 알고 싶지 않아요.”

 

 고개까지 흔들며 주경은 단호하게 거부했다.

 

 수희는 잠시 망설였다. 눈까지 안 보이는다는 건 정말 떠올리기 두렵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또한 눈이 안보이는다는 것은 그 진실을 더 이상 외면하고 살 수는 없다는 몸의 반응이기도 했다.

 

 “무엇입니까? 무엇이 그렇게 두려워서 차라리 눈이 안보이길 택하신 겁니까?”

 

 주경은 입술을 앙물었다. 말하고 싶은 욕망과 도저히 말할 수 없다는 두려움으로 주경의 입술이 마구 떨렸다.

 

 수희는 주경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손아귀에 힘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손에 자극을 주었다.

 

 “주경씨, 무슨 일이 있었든 그 때 주경씨는 겨우 다섯 살이었습니다. 다섯 살. 다섯 살 아이들을 떠올려 보세요. 그 애들이 얼마나 어리고, 얼마나 연약한지.”

 

 “혜인이는 연약하지 않았어요. 겨우 다섯 달 먼저 태어난 주제에 꼭 언니라고 부르라고 얼마나 못살게 굴었는데.”

 

 손에 가해지는 자극 때문에 몸의 긴장이 풀리며 말하고 싶은 욕망도 풀려났다.

 

 “내가 지 엄마를 빼앗다면서 어른들이 안 볼 때는 꼬집어대서, 제 팔 안쪽이 맨날 퍼렇게 멍들었어요. 새엄마는....... 그걸 보고 불같이 화내면서 언니를 혼냈지만.......”

 

 수희는 그 때 병실 문이 열리는 것을 감지했다. 문가에 주경을 닮은 선한 인상의 중년 남성과, 얼핏 보면 좋은 인상이나 깊은 상처가 담긴 입매를 가진 중년 여성이 문가에 서 있었다.

 

 상담을 잠시 중지할까 고민했지만 신 주경 씨의 깊은 우울감에는 지금 짚어보는 사건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걸 부모님도 아실 필요가 있다고 결론 내렸다.

 

 수희는 방문자용 소파를 가리킨 다음 입에 손가락을 대어 소리 내지 말 것을 당부했다. 두 분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고, 재차 입에 손가락을 대어 침묵할 것들 단단히 당부했다.

 

 “주경씨, 숨을 길게 내쉬세요. 말하기 힘들면 언제든 멈춰도 됩니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명심하세요. 다섯 살짜리 어린 아이가 책임져야 하는 일은 없습니다. 주경씨는 그 때 아주 어렸습니다. 그 사고 이후 주경씨도 보호 받고 위로 받았어야 할 어린아이였어요. 오늘 우리가 사고 장면과 죽은 언니 일을 되돌아보는 이유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다시 한 번 보고, 그 장면에서 기인된 주경씨의 죄책감을, 무의식에 깊게 각인된 죄책감을 없애고자 하는 것입니다. 주경씨의 눈이 안 보이는 것이 결국 그 장면에서 일어난 일들의 진실을 보기 두려워하는 데서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수희는 주경씨보다는 부모님이 듣기를 바라면서 길게 설명을 했다. 그분들이 무의식적으로나마 주경을 비난하고 있었다면 이제 그 행위를 멈춰주길 바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들도 그 사고에서 벗어나길, 함께 치유되길 바랐다.

 

 “그렇게 혼내는 것도 내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알아요? 새엄마가 혜인이를 그렇게 혼내면, 혜인이 기집애는 엉엉 악을 쓰며 울었어요. 그리고 졸리다면서 자장가를 불러달라고. 그러면 새엄마가 무릎에 그 애를 앉혀서 흔들면서 자장가를 불러줬어요. ‘자랑 자랑 웡이 자랑’ 어쩌고 하는 거. 나도 그 자장가 듣고 싶었는데 나한테는 맨날 그 서글픈 굴 따러 가는 노래나 불러주고.”

 

 주경의 새어머니가 헉 소리가 새어나오는 입을 황급히 막는 것이 보였다. 수희는 어머님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힘들어도 참고 계시라고, 당신의 따님은 지금 눈이 안보이도록 두려웠던 기억을 풀고 있다는 걸 새어머니가 납득해주시길 바랐다. 다행이 아버님이 아내의 손을 꽉 잡아주었다.

 

 “그날도 그랬어요. 엄마가 해삼 주우러 들어갔다가 저 멀리서 손을 흔들어서 나도 막 손을 흔들었더니 혜인이가 내 손을 탁 쳐내렸어요. ‘내 엄마야!’ 하면서. 그러면서 내 엄마 보러가야지 하고, 아빠가 입으라고 준 내 코트를 냉큼 낚아채서 입고는 엄마 쪽으로 달려갔어요. 나도 코트를 입고 달려갔는데, 혜인이가 바위 위에 못 올라오게 밀었어요. 그래서.......”

 

 주경의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주경씨, 숨 내쉬세요, 길게. 후우~ 너무 힘들면 좀 쉬었다가 말해도.......”

 

 “아니, 나 말할래요. 말해야겠어. 혜인이가 밀어서, 무릎이 까졌어요. 쓰리고 아프고, 속상한데 저기서 엄마가 손짓을 했어요. 그랬더니 혜인이가 나를 보고 메롱하면서, ‘니 엄마는 저런 것도 못 갔다주지? 죽었으니까?’놀렸어요. 나는 너무 화가 나서....... 하지만 그냥 나처럼 무릎을 까지라고 그런 거지........ 절대 물에 빠지라고 그런 건 아니야. 밀었어요, 살짝. 밀었는데....... 혜인이가 갑자기 발이 꼬였는지 바다 쪽으로 미끄러지면서, 내 손을 잡았어요. 그래서 우리 둘이.......”

 

 “민 게 너였어? 우리 혜인이가 민 게 아니고 니가 민 거였어?”

 

 갑자기 소파 쪽에서 어머님의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주경의 온 몸이 어머니의 목소리에 빳빳하게 굳었다.

 수희는 어머니를 보고 고개를 흔들고, 떨리는 주경의 어깨를 감쌌다.

 

 “어머님. 어릴 적의 사고입니다. 장소가 위험해서 그랬지 주경씨는.......”

 

 어머님은 수희의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주경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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