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들어서는, 동화 속 아름다운 푸른 들판 한가운데 과자로 지어진 마녀의 집처럼, 몽환적일 것만 같은 ‘고양이 까페’는, 예상외로 지하철 역 4번 출구의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것도, 여기저기 군데마다 타일이 떨어져, 조금은 을씨년스러워 보이는 건물의 2층. 대학가 주변이어서 그런지, 이리저리 유흥거리마다 보이는 쓰레기들이,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기천의 눈에 들어왔다. 그런 기천의 기분을 눈치 챈 화영의 손이, 발랄하게 기천의 어깨를 때린다.
“야 들어가기도 전에 실망하면 어떡해! 일단 들어가 봐. 알았지?”
따뜻하지만, 어딘가 날카로운 화영의 눈길에 주눅이 들었는지, 기천은 그러겠노라고 고개를 끄덕였고, 잠시 후, 기천과 화영은 건물의 조그만 계단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냥이의 꿈 -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
건물의 외관과는 달리, 가게의 입구는, 밝은 색의 목재를 사용해 꽤 화사한 느낌으로 인테리어 되어 있어, 기천은 살짝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동화속의 마녀의 집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어릴 적, 학교 앞 문구사에서 친구들이 모르는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했던 기억처럼, 어딘가 가슴 따뜻한.
“괜찮지?”
기천의 고개가 절로 위 아래로 끄덕여진다. 화영은 오랜 기천과의 만남을 통해, 그의 취향을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그의 여자친구나, 다른 친한 지인들보다도. 그에게 이 가게를 보여준다면, 틀림없이 좋아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 예상이 그대로 들어맞은 것이, 너무나 기뻤기에,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는, 어찌보면 살짝 바보 같기도 한 표정으로, 배시시 웃으며 가게의 문을 열었다.
딸랑-
저녁 7시 30분. 사람들이 꽤 있을 시간이었는데도, 가게 내부는 꽤 한산 했다. 그래서였을까. 가게 내부의 인테리어들과 구조물들 사이에서 자유로이 시간을 보내는 고양이들이 자연스럽게 기천의 눈에 들어왔다.
조금은 엉성해 보이는 구조물들 사이에서도 고양이들은 신나보였다. 천정과 벽을 잇는 원통형의 목재 사이로 고개를 내민 검은 고양이와 눈이 마주치자, 기천은 땀에 젖은 손을 주머니에서 꺼내, 멋쩍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검은 고양이는 그런 기천의 노력이 귀찮다는 듯, 슬쩍 고개를 돌리더니, 하품을 연신 해댄다. 기천이 어색한 손을 슬며시 내리자, 그걸 보고 있던 화영이 자지러지게 웃었다.
“아하하. 너 차였구나. 얘들은 엄청 도도해. 게다가 키츠는 이곳의 왕이야.”
“왕...? 고양이도 그런 게 있어?”
고양이에 대한 질문 때문일까. 자칭 고양이의 연인을 주창하는, 화영의 어깨가 으쓱거린다.
“어느 세계에서나, 우두머리는 있지. 키츠 저 녀석, 엄청 프라이드가 높아서, 사장 말고는 쳐다보지도 않아.”
고양이까페의 왕에게 건방지게 손 인사를 했다며, 킥킥 거리며 기천을 테이블로 안내한 화영은, 마실 것을 가져오겠다며 자리를 떴다.
첫 만남의 충격 때문일까. 주변에 가득한 고양이들에게 손을 뻗을 엄두가 나지 않는 기천은, 어색한 자세로 화영을 기다리며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그의 머리에 따뜻한 손을 올린다. 화영인가 싶어서 그는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그가 고개를 돌린 그곳에는 파란색 고양이가, 소파의 끝자락에 모둠발로 선 채, 자신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따뜻한 눈빛을 보내고 있다.
파란색... 어찌 보면 보라색과 회색도 섞여 보이는, 그 오묘한 색의 고양이는 신기하다는 듯, 기천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동그란 눈동자를 크게 뜨고, 무언가를 감정하는 듯한 눈빛으로 기천을 보고 있다.
사람이 고양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고양이가 사람을 구경하는 현상에, 기천은 헛웃음이 나왔다. 도도해 보이는 파란색 고양이는, 기천의 머리에서 손(발일지도 모른다.) 을 떼더니, 이내 그의 왼 어깨에 자신의 양 앞발을 가져대 대고, 기천의 어깨 위로 뛰어올랐다.
“어, 으앗!?”
갑작스런 고양이의 행동에, 놀란 기천의 입에서 자지러지는 소리가 나자, 같이 놀란 파란 고양이가 폴짝 옆의 테이블로 뛰더니, 고개를 갸우뚱 하며 작게 갸르릉 거렸다.
놀라지마. 그냥 인사일 뿐이야.
라고 말하는 듯 하다. 놀란 자세 그대로, 멍청히 앉아있는 기천의 모습이 재밌는지, 반대편 테이블의 소녀들이 귀엣말로 속닥대더니, 이내 깔깔댄다.
“신고식 당했구나?”
고개를 돌려보니, 화영이 쟁반에 아메리카노와 포장에 싼 무언가를 들고, 얼굴에 미소를 띤 채, 테이블 앞에 서 있다. 기천은 문득, 자신이 파란 고양이가 머리에 손을 댔을 때부터, 입을 벌리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기천은 부끄러움에 얼굴이 뜨거웠다.
“아, 그래. 그게 신고식이구나.”
“카운터 까지 들리더라. 웃겨 죽는 줄 알았어. 너답다. 너다워. 아하하.”
잔뜩 무안해진 듯, 머리를 긁적이던 기천이, 갑작스레 가게 중앙의 인조 나무를 타고 있는, 파란색 고양이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런 기천의 손 끝을 따라, 눈길을 옮기던 화영이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음, 쟨 반이야. 호기심이 많아서 주로 신고식 담당이지. 너 반에게 당했구나? 킥킥.”
“반.. 이름이 반 이구나. 분위기가 지영이를 닮았어.”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허기로 가득한 기천의 시선이, 꿈속의 도시에서 파랑새를 찾는 아이처럼 몽환적인 눈빛이, 그러한 시선조차도 귀찮아하며 외면하는, 파란 고양이를 향해 있다.
지영. 햇살처럼 다가와 바람처럼 떠나버린 그녀. 갑작스럽게 기천의 마음속에 들어와, 한 켠에 자신만의 공간을 남겨두고는, 다가왔던 것처럼 갑작스럽게 떠나버린 사람.
제 멋대로 내게 손을 얹은, 저 파란 고양이와 그녀는 너무 닮았다. 그렇게 생각하자 이상하게도, 콧속에 겨자씨라도 들어있는 것 마냥, 핑 하고 매워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