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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약과 함께 한 시간
작가 : 엘리엘리스
작품등록일 : 2017.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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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디 고운 노래가 끝날 즈음
작성일 : 17-07-26     조회 : 37     추천 : 0     분량 : 18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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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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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하필 제가 고른 사람이래요? 물론 그때 부탁받은게 있으니 ... 이젠 그만 할 생각이긴 했지만..."

 

 사모님의 목소리는 침착했으나 , 별로 인자하게 들리진 않았다.

 

 

 "..... 아마도 잘 모르니까 그러시는거 아니시겠어요.. 제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이사님이 왠지

 

 순순히 이렇게 접지 않으실것 같아요 ... 제 생각엔 .. 지금이 너무 소중하셔서 좀 과잉 반응 하시는것 같기도...."

 

 

 강비서는 이까지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지혁이가 다 말하지 말라던가요?"

 

 

 

 사모님이 싸늘한 목소리로 되 물었다.

 

 

 

 강비서는 긴장을 숨기고 목소리를 담담히 내려고 애를 썼다.

 

 

 

 

 "... 아닙니다. 작가님은 사모님은 아마 말 안해도 다 아실거라고 하시던데요- 벌써 다 들키신거 같으니까..... 그저... 회장님께

 

 절대 들키지 마셨으면 하시더군요- 자신으로 모자라 다른걸로 또 이거해라 저거해라 하면 그땐

 

 도망이라도 치겠다고...."

 

 

 

 

 어제의 작가님은 강경했다. 이까지 온거 더 이상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였다.

 

 

 

 강비서는, 창립기념일 파티 후에 이사쪽에 사람을 많이 심어두었다. 가장 큰 불안감을 느낀건 그 사람들이 가지고 온 얘기들이 물증은 없어도

 

 심증으로 가득한 것들이기 때문이었다.

 

 

 

 심이사의 심기나 김희영이 비서까지 다 내보내고 했던 이야기들이나- 두 사람이 만날일 없는데도 둘이 은밀히 만나 회동을 가졌다는 것이나-

 

 

 지금 작가님이 가지고계신 자산 규모등을 사람을 시켜 알아보는 것만해도 그랬다. 사실 작가가 되어 개인으로 모으신 재산까지 알아봤다는게

 

 더 의구심이 이는 행동이었다. 설마 작가니까 자기껄 넘볼 정도의 재산은 아니겠지 싶으니까 알아보라고 하는건지 아니면 지금 쥐고 있는것의

 

 총액을 알고 싶은건지- 그런것 까지 파악할만한 단서는 아니었다.

 

 

 

 그저 이상한 행동이었다.

 

 

 

 일반적이지 않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작가님에게는 모조리 다 이야기 하진 않았는데도 작가님은 이제 스스로가 움직일 생각을 하고 계셨다.

 

 더 이상은 물러날 곳이 없다는 뜻으로 들렸다. 그런 마음은 순전히 하임씨 때문일테고 작가님은 자신에게 올 피해보다 하임씨를 작가님의 약점으로 보고 ,

 

 하임씨를 괴롭게 할 다른 것들을 겁내시는 것 같았다.

 

 

 

 하임씨에게만 있는 힘이 뭔진 몰라도- 작가님은 평소와는 판이하게 다르게 움직이고 계셨다.

 

 

 

 

 "그리고 아마 그 사람을 고르신 건 작가님이 그런 쪽 사람을 잘 모르시기 때문이실 거에요

 

 실력 있는 사람이니... 솔직히 김희영을 따로 감시하는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동태가 수상한건 사실이니 본다고 손해 볼건 없겠지요-

 

 이사님은 물론 , 화가 나셨겠지만 더 영악하게 움직일 쪽은 김희영이죠 "

 

 

 

 

 "......"

 

 

 

 

 사모님께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작가님께 물은건 자신이었다.

 

 

  누구 하나는 자신의 아니 작가님의 편이어야만 했다. 그것이 다소 미덥지 못한 쪽이더라도.....

 

 

 그러러면 당연히 선택은 한가지밖에 없었다. 사모님 뿐이었다. 회장님은 이사님 다음으로.. 아니, 어쩔땐 이사님 이상으로 사람을 몰아 붙이실줄 아셨다.

 

 

 

 

 언제나 작가님을 회사로 끌어들일 궁리를 하셨으니 약점이 잡히면 자유는 끝이었다. 말하자면 회장님의 사랑은 방법이 너무나 이상했다.

 

 

 

 말을 꺼낼때만 해도 당연히 거절할줄 알고 설득하고자 꺼낸 이야기였는데...

 

 작가님은 생각외로 빨리 알겠다고 하셨다. 회장님에게 들킬까봐 걱정은 하고 계셨는데 빨리 수긍하신건 아무래도 벌써

 

 사모님이 눈치를 챘다고 생각하셔서 인듯했다.

 

  강비서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사모님도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냉정을 찾으셨다고 할까... 냉정해 지셨다.

 

 무엇보다 예전엔 어떤 말이든 회장님의 말을 그대로 들어주시는 편이셨다면 이제는 뭐든지 ,

 

 특히 작가님의 일이라면 사모님을 거쳐 지나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미 회장님은 실권을 잃은 셈이었다.

 

 설마 눈치를 채신다고 해도 사모님이 막아 주실거라 믿고 있었다.

 

 

 

 "강비서도 많이 성장했네요- 예전엔 ... 그저 아이가 하자는 데로 휘둘린다고 생각했는데-"

 

 

 

 

 분명 내용은 면박같지만 왠지 말하시는 분위기가 칭찬으로 들린다. 얼굴 끝에 걸리신 쓸쓸한 미소-

 

 

 "칭찬 감사합니다-"

 

 

 뻣뻣하게 꺼낸 말에 사모님은 씩 웃으신다.

 

 

 "봐요- 금방 전의 말을 칭찬으로 듣네요- 다행이네요- 지혁이 곁에 강비서가 있어서..."

 

 

 사모님은 씁쓸하게 한마디를 덧붙이신다.

 

 

 

 "어느순간 욕심이라곤 내질 않으니까요- 아무것도......처음부터 자기 것이었는데도 주라고 할 만큼..."

 

 

 역시 그랬구나... 역시 사모님은 작가님에게 주실 생각이셨음을 알자 난 사모님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수 있었다.

 

 어쩔수 없이.... 사모님은 아픈 손가락이 작가님인것이다.

 

 

 

 "......저는 작가님이 아무런 악의도 안 품으셨음을 남을 해칠 분이 아니심을... 전 믿습니다. 그게 제가 작가님 사람이 되기로 한 가장 큰 이유입니다..

 

 참으로 오랫만에 어떤걸 욕심 내신다면... 그것이 온전히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 그리고 조금 이기적인 선택이 된다고 해도

 

 

 제가 도와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내 다소 주제 넘은 말에도 사모님은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고 그저 날 깊은 눈으로 응시하셨을 뿐이다

 

 그 눈에는 동감의 빛만 떠올라 있었다.

 

 

 나는 말 없이 조심스레- 아주 조심스레 사모님을 남겨두고 그 자리를 떴다.

 

 

 

 

 -

 

 

 

 

 그는 내게 옷을 입으라고 하더니 옷 갈아입고 집으로 오라고 했다. 나는 좀 어리둥절했다. 아무데도 못가는 사람이

 

 어딜 가자는 걸까? .. 난 하민씨를 보러 가는게 아닐까 란 생각을 잠시 했다. 하지만 그는 어느순간부터 그녀에게

 

 가고 있어도 간다는 티도 내지 않았기에 그런것 같진 않았다.

 

 

 그건 그 사람만의 비밀이 되었다. 그 마저도 내가 붙어 있는 시간이 많았으니 그는 시간내지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마음이 좀 아팠다. 그 작고 하얀 그녀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았는데... 그녀에게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라곤... 그밖에 없는데

 

 나는 그 손에서 그까지 뺏고 그 사람의 마음에도 나만 있었으면 해서 그 사람의 마음까지도 그녀의 손에서 뺏은

 

 사람은 나였다.

 

 

 마음 아픈것 까지도 뻔뻔한 일이리라... 결국엔 뺏고 싶어하고 뺏은건 나니까......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는 그녀의 아픔을 외면하고 싶어졌다.

 

 

 

 

 어쩔수 없이 가볍게 입었다. 면으로 된 도톰한 원피스를 입고- 후드가 달린 두터운 코트를 입고 야트막한 운동화를 신었다. 어디가자고 했는데

 

 발은 여전히 구두를 싫어했으니까- 구두를 신으면 어딜 걸을수도 없을것 같았다. 머리를 빗고 단장이랄까 조금이라도 얼굴에 찍어바르고 그의 집으로 갔더니

 

 그는 최종본을 들고 마지막 언질을 적어 편집부로 보내려는듯 안경을 쓰고 메모를 하고 있었다.

 

 

 사무적인 모습이 멋지다. 늘 쓰는 안경을 쓰고 있는 얼굴- 몇글자 적고는 책상위의 갈색 봉투에 최종본을 넣는다. 그리곤 내게 싱긋 웃어보인다.

 

 안경쓰는 남자를 예전에 좋아했었던가? 늘 차갑기만 했던 그는 요즈음 눈만 마주쳐도 웃는다. 그런 얼굴이 마치 없었던 것 처럼-

 

 

 그는 내게 등을 지며 책상위를 살짝 정리하며 어깨 너머로 물었다.

 

 

 "뭐 먹고 싶은거 없어?"

 

 ".... 나가도 되는거에요?"

 

 

 그 말에 그는 싱긋 웃는다.

 

 

 "그날 이후로 생각을 좀 했었거든- 편한 차 하나 있었으면 해서-... 선팅 짙게 했으니까 사진 찍힐 일 없을거야.. 아마-

 

 뭐 따라 붙을경우도 배제할순 없지만.... 그런 것 때문에 너무 못한게 많더라고- "

 

 

 그는 안경을 벗는다.

 

 

 정갈한 손으로 안경을 살짝 접어서 내려놓고는 말을 잇는다.

 

 

 "운전은 니가 해야 하니까 - 좀 미안하긴 하지만-"

 

 

 "차를 한대 더 샀어요?"

 

 

 내 의뭉스런 물음에 그가 고갤 들고 날 바라본다. "내 명의로 사진 않았어- 그럼 금방 알테니까.."

 

 

 정말 생각의 방향이 다른 사람이긴 하다. 그런다고 차를 또 살줄은 몰랐어서- 물론 같이 못한게 많긴 했다. 그는 매스컴에서

 

 떨어져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어쨌든 그룹의 2세였고- 그 때문에 그와 어딜 나가서 평범한 데이트를 한다는게 좀 어렵기도 했다.

 

 내 팔자에 이런 사람과 만날거라고 솔직히 생각도 못했다. 정말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 처럼 들렸으니까-

 

 그러나 그는 그 어떤것도 집의 돈으로 뭘 할만한 사람임을 티 낸적이 없다. 전의 옷도 그 외의 것들도

 

 

 결국엔 그 자신이 번 것인 경우일때가 많았으니 집에 붙잡혀 있는게

 

 어느 순간부터는 전혀 물질적인게 아닌거 같았다. 어쩔수 없이 붙잡혀 있는건 아마도 그가 어떻게 할수 없는것 때문인것 같았다.

 

 

 하민씨나.. 어머니.... 혹은 그가 그토록 두려워 하는 또 다른 어떤것 그는 말했다 나를 잃는게 가장 두렵다고..

 

 나는 그의 약점이 되는게... 설사 그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된다 해도..

 

 

 이젠 좀 안타깝고 슬퍼졌다.

 

 

 

 

 그래도 이따금은 그런걸 하고 싶었다. 차 마시고- 맛있는 점심이나 저녁을 먹고- 바람 좋은곳에 가서 앉아서 놀고- 이야길 나누고

 

 그는 너무 오래도록 좋은 바람따위 머금지 못한 사람이니까- ... 같은 곳에서 좋은 곳에서 바람 쐬는게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

 

 많이 했었지만 그가 그걸 눈치채고 있을줄은 몰랐다. 아니... 내가 기쁜것은 그가 눈치챘다는 것 보다- 정말 그가 원해서

 

 그도 나와 그런 시간을 보내기를 원해서 그 차를 마련한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었다.

 

 

 

 "차는 어디에 있는데요?"

 

 "지하에-"

 

 

 

 그가 가볍게 대답한다. 가벼워 보이지만 도톰한 코트를 걸치면서- 코트는 짙은 먹색이다. 목에 얇은 스카프를 맨다.

 

 저런것도 가정교육의 영향일까? 그는 옷 차림을 언제나 말끔하게 하는데- 거울을 보고 특별히 살피지 않아도 손 끝이 매운지

 

 금방 맵시가 난다. 안쪽으로 스카프를 말아 넣고서 그는 선글라스를 챙기다 물었다.

 

 "겨울에 선글라스- 좀 거슬리겠지만 참아줘- "

 

 나는 괘념치 말라는 듯 고갤 흔들었고 내가 물었다.

 

 "그런데 지하엔 주차공간 없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 말에 그가 씩 웃는다. 내가 기억한 것에 놀란거 같다

 

 "응.. 그런데 한 두공간은 있어- 아무래도 밖에서 타는 것 보단 나을것 같아서- 한공간 빼 뒀으면 해서-"

 

 압력을 넣어서 된 일인가? 나는 더 묻지 않았다. 그래- 조심해서 나쁠것 없으니까- 어차피 이 오피스텔을 주거용으로 쓰는 사람이래봤자

 

 우리 둘... 그 외에 마주친것 없는 한 두집이 다였으니까.... 나는 궁금증이 줄어들었다. 그건 내게 일반적인 일은 아니었다.

 

 나는 그와 어느순간 속도를 맞추려 애 쓰고 있었다. 이런점이 그랬다. 예전같으면 집요하게 물어보고 알고 싶어했을 일들을

 

 모두 접어 두는것- 좋은게 좋은거지 하고 그냥 넘어가는 것들-

 

 

 마음속의 희미한 위화감이 나를 싸늘하게 스쳤다.

 

 

 

 우리는 함께 지하 층수를 누르고 내려갔다. 엘리베이터는 써늘했고 그는 말없이 손을 잡았다.

 

 이런게 정말 좋았다.

 

 아주 잠시인데- 손을 잡는거- 어차피 차에 다다르면 손을 놓을건데도 잠시- 공기가 써늘하다는 생각만 해도

 

 먼저 손을 잡아주는 그런 자상함이 있다. 나는 픽 웃었고 그는 내 생각을 눈치 챈듯이 눈으로만 미소를 지었다.

 

 

 차는 그야말로 평범했다. 한가지 다른거라면 썬팅이 짙다는 것 정도였다. 눈에 띄는 차가 아니었다.

 

 그는 내게 차키를 건내주었고 우린 곧 차에 탔다. 나는 의자를 한참이나 앞으로 조정해야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그가

 

 

 

 큭큭 거리면서 웃었다.

 

 "왜 웃어요?"

 

 내가 발끈하자 그가 웃음기를 감추며 말을 이었다.

 

 

 "강비서도 키 큰편은 아닌데....

 

 

 "쬐그만해서 미안하게 됬네요-"

 

 

 내가 짜증난다는 척 대답하자 그는 다시 웃었다.

 

 "난 니가 작은게 좋은데...."

 

 

 

 

 "뭐야 가진자의 비아냥이에요?"

 

 "그렇게 작은편은 아니잖아.... 아닌가?"

 

 

 "........"

 

 나는 그저 대답을 말았다.

 

 

 

 

 그가 날 계속 쳐다보기에 한참만에 물었다..

 

 "어디로 갈까요? 점심 먹으러 갈까요? 점심은 좀 늦었나?"

 

 그 말에 그가 대답했다.

 

 " 너 뭐 먹고 싶은거 있으면 거기로 가자-"

 

 나는 딱히 생각나는게 없었다. 그리고 아는데가 있다고 해도 그가 뭔가를 맛있게 먹을 것 같지도 않고-.....

 

 "음.... 당신은 음식 가리는 거 많잖아요- 당신부터 말해봐요-"

 

 

 내 말에 그는 피식 거리면서 대답한다.

 

 

 "뭐라도 상관없어- 위장에 뭐든 담을 사람이 골라야지- "

 

 말하는 투 하고는 난.... 그에게 대답한다.

 

 "당신 살좀 쪄야되요- 지금은 너무 말랐어요-"

 

 그는 스스로를 내려다 본다. 소매 품을 보더니 은근하게 대꾸한다.

 

 "왜.... 뭐.... 딱히 ..."

 

 

 내가 새침하게 쏘아붙였다.

 

 

 "자기도 옷 품 보니까 할말 없으면서- 핑계는....."

 

 그 말에 그가 미간을 찡그린다.

 

 "은근슬쩍 반말하는거 봐-.... 혼나-"

 

 

 "혼 내줘요 그럼- "

 

 

 내가 볼을 살짝 내밀자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더니 가볍게 볼에 뽀뽀를 해 준다.

 

 나는 배시시 웃고 만다. 사랑스러워서 이 작은 순간순간이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물어 보았다.

 

 "사람 많은데 가도 되요?"

 

 그 말에 그가 날 쳐다본다.. "어딜가게?"

 

 "음... 저는 좀 외곽에 가고 싶어요- 아니면 중심이어도 사람 없는곳?"

 

 그가 씩 웃었다. 그러더니 생각난것 처럼 그럼 내가 정할까? 라고 조용히 중얼거린다.

 

 

 "그럼 여기로 우선-"

 

 

 그는 익숙한 듯 이름을 검색한다- 외곽이긴 한데- 여긴 어떻게 알았을까?

 

 나는 묻고 싶지만 묻지 않는다- 우리 사이의 이상한 불문율이다- .... 어쩌면 나만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도 세진이 일을 많이 묻지 않는다. 그를 잘라낼 거냐고도 그와 어디를 갔냐고도 .... 아무것도 묻질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밖에 나오니 좋았다. 그는 선글라스를 끼고는 창을 살짝 열었다. 겨울 바람이 살짝 살짝 스치우고

 

 그는 밝게 웃는다. 소리 내어서- 그 소리가 왜 이리도 듣기 좋은지...

 

 "시원하다- 속이 트이는거 같아- "

 

 

 그는 낮은 소리로 속삭인다- 뭐가 그렇게 답답했을까? 그의 형이? 아니면 우리의 상황이?

 

 

 이건 드라이브지만 나도- 그도 그런 말은 하지 않는다. 나는 운전에 신경을 쓰면서 그를 힐끔힐끔 바라본다-

 

 그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내 쪽을 보았다. 그리고 지나가듯이 말한다.

 

 

 "힐끔힐끔 안 봐도 돼- 보고 싶으면 실컷 봐- "

 

 

 그는 웃고있다. 눈은 선글라스에 가려져 보이지 않지만 입은 활짝 웃고 있다. 이런게 좋았다면 좀 줄곧 나왔다면 좋았을까...

 

 그랬지만 그의 사고를 알기에- 그게 어떤 일에서 비롯된지 알기에 말 꺼내기도 쉽지가 않다. 시원하게 바람이나 쐬러 나왔다가

 

 두 사람은 죽음 가까이 뚝 떨어졌으니까- 그 경험이 어찌 쉬운 경험이라고 할수 있겠는가- 경험도 아니다... 잔인한 사실에 불과할 뿐-

 

 

 한참이나 달려서 도착한 곳은 외딴 곳에 떨어진 가게였다. 가게는 꽤 컸다. 옆에는 화원 비슷한 허브 농장이 딸려 있다고 적혀 있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는데 요일이 그래서 그런지 사람은 적었다. 테이블에 깔린 하얀 면보에선 깨끗한 향이 풍겼다.

 

 

 그는 내게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와서 의자를 밀어주었다. 나는 너무너무 어색하게 그가 밀어주는 의자에 앉았다.

 

 이런게 좀 부끄러웠다. 그에겐 아무렇지도 않게 배여있는 이런 에티켓이나 배려가 예전엔 한번도 받아 본적이 없는 것들이라는 게

 

 내 태도를 보면 그는 금방 눈치챌 것이었다.

 

 하지만 의자를 밀어주는 배려는 뭐 지금 시대에 보면 흔치않은 일이긴 했다.

 

 

 그는 자기 자리로 가서 의자 소리를 거의 내지 않고 우아하게 앉았다. 나는 내가 너무 애처럼 입었나 싶어서 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전혀 그런걸 신경쓰지 않는것처럼 보였다. 선글라스를 벗어 코트의 단추구멍에 살짝 걸치자 소리도 없이 웨이터가 다가왔다.

 

 

 그는 몹시 예의바르게 나와 작약을 거의 쳐다보지 않았다.

 

 

 " 어떤 코스로 먹을까? - 파스타부터 골라 봐- 오일도 있고 토마토 소스도 있네-"

 

 나는 메뉴를 내려다 보았다. 온통 꼬아놓은 영단어 밑에 한글로 된 설명을 눈으로 따라 읽었다.

 

 그는 씩 웃으며 그런 나를 지켜보았다. 나는 한참을 읽고 나서 더듬 더듬 마치 질문처럼 주문했다.

 

 

 "토마토 소스... 시푸드 파스타... 할께요?"

 

 "그럼 메인 코스는 둘다 립아이로 할게요- 파스타는 하나면 될것 같네요- 음료는?"

 

 

 나는 그 물음에 나도 모르게 술이라고 대답하려다 차를 생각하고 답을 바꿨다.

 

 

 "운전해야죠- 탄산수면 충분해요-"

 

 "탄산수 부탁할게요- 산 펠레그리노로 부탁합니다- "

 

 

 웨이터는 간단히 메모를 하더니 굽기를 물었다. 그는 내게 눈짓으로 물었고 나는 웰던이라고 대답하고 그는 미디엄 레어라고 대답했다.

 

 

 대답을 듣고는 그는 왔을 때 처럼 또 말도 없이 사라졌다. 그제야 옆의 풍경이 눈에 확 들어왔다.

 

 

 옆은 겨울의 색으로 물든 풍경이 잘 보였다. 위층까지 쭉 이어진 창의 유리는 빛을 그대로 통과시켰고 이른 오후의 빛이 따스하게 안을 비추었다.

 

 화이트로 된 벽에 빛의 황금빛이 더해지자 아름다웠다.

 

 

 "마음에 들어?"

 

 그는 내게 물었다. 나는 조금 수줍게 대답했다....

 

 "예쁘네요- "

 

 그 말에 그는 기쁘다는 듯이 웃었다.

 

 

 "진짜, 생각보다 강비서의 정보력이 쓸만하네- 내가 물었더니 여길 추천해 주더라고- 예전엔 이런 심미안 까진 없었는거 같았는데...

 

 얘도 예민해 졌나보다 장소를 '나처럼' 고르네 어느 순간부터-"

 

 

 

 그 말에 가슴께에 확 퍼지는 안심- 그도 여기가 처음인것이다. 누군가와 온 기억에 날 덧씌우는게 아니라- 원래 있던 자리에 나를 더 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 처음인 순간인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웃음이 안심과 함께- 차갑게 식었던 피에 포근한 핑크빛을 퍼뜨린다.

 

 

 

 "풍경이 예뻐요- 사람이 적은것도 마음에 들구요-"

 

 나는 좌악 늘어선 잔이 거꾸로 매달려 있는 바에 시선을 주었다. 바는 밤에만 운영되는듯 깔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뒤에 놓인 이름 모를 술병들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는 내 시선을 자신의 눈으로 쫓으며 - 내가 자신을 쳐다볼때까지 기다렸다가. 눈이 마주치자 말을 이었다.

 

 

 

 "좋아해서 다행이야- 너무 조용해서 싫어할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예쁘게 웃는다- 그는 나를 아직도 잘 모르는 것 같은 말을 가끔 한다- 의 옆에 뽀글뽀글 기포가 오르는 물이 놓이고 그는 내게 묻는다-

 

 "그건 그렇고- 술 한잔 하고 싶지 않았어?"

 

 

 "운전해야죠-"

 

 

 

 그는 그 말에 미안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린다-

 

 

 "미안해-... 나 때문에- ...... 그래도 어디 갈때마다 불안하고 싶진 않아- 혼자라면 상관 없지만-"

 

 나는 그 말에 말을 멈추었다가 그 말이 미워져서 약간 화난듯 대답한다.

 

 "혼자라면 왜 상관이 없어요, 스스로도 운전 안전하게 해야죠- 혼자라서 상관이 없단 말은 나쁜 말이에요

 

 

 당신 기다리고 당신만 보는 내가 있잖아요-"

 

 

 그 말에 놀란듯 그는 잠시 대답않고 망설인다... 한참만에 입을 연다

 

 "그래 내가 잘못했어-.... 그래도 이젠 내 옆자리에 누굴 태우고 싶진 않아- 그 댓가가 얼마나 혹독한지 알거든-"

 

 

 

 

 그 말에 대답을 못하게 되는건 나다- 내가 옆에 있는 잔을 들어 그저 한모금을 마시자 그는 픽 웃으며 말을 꺼낸다

 

 

 

 "참 이상하지- 니가 이사오기 전엔 혼자 갈땐 운전 해서 간적도 있었어- 물론 운전 할땐 전화도 못받고 운전만 해야 했지만 말야

 

 니가 이사오면서 부터 운전이 올 스탑이었어- 다리가 다시 아팠거든-"

 

 

 의아한 이야기다, 그럼 나 때문일까?

 

 

 

 "나 때문인거에요?"

 

 

 그는 짐짓 화난 듯이 장난스레 대답한다.

 

 "처음엔 그런가 했는데.... 글쎄 니가 이렇게 소중하게 될줄 다리가 먼저 알아챈 걸지도 모르지-"

 

 "....."

 

 

 "다리는 언제나 더 예민하거든- 내 이성보다- 감정보다-... 이상하지? 감정이 흔들려야 다리가 아픈건줄 알았는데-

 

 아 내가 복잡하게 흔들리는구나 깨닫기 이전에 다리부터 쓰려-"

 

 

 

 "ptsd는 아직도 심한 거에요?"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말에 그는 그런 이야기 하고 싶지 않은듯 잔 속만 들여다 보다가 힘겹게 대답한다.

 

 

 

 "괜찮은 날도 있고 , 아닌날도 있고... 그래 하지만 못것을만큼 아픈날은 요 근래엔 좀 줄었어- 약을 시간 맞춰 먹고

 

 또 신경도 쓰니까.... 처음엔 인정할수가 없었다니까.... 이건 감정적 약한것에 무너지는 거니까... 내가 허약하다는 생각에 괴로웠지."

 

 

 

 "당신의 기억은 누구라도 오래도록 아플만한 기억이니까 그런 말 말아요"

 

 

 내 생각보다 내 입에서 단호한 말이 나가고 그는 그 말을 하는 내 얼굴을 빤히 보다가 곧 쓸쓸하게 웃음 짓는다.

 

 

 "당신에게 미안한게 너무 많아- 예를 들면... 나는 당신이 아침에 뛰는걸 가끔, 아니 자주 보곤 했어-"

 

 

 

 "...? 진짜요?"

 

 

 그런것 까진 몰랐었다. 귀신같이 타이밍을 맞추는 줄 알았지..전화나 메세지도 .... 그런줄만 알았는데

 

 

 그는 장난스레 웃었다 내 마음을 간파한 것처럼-

 

 

 "창으로 내다보면 당신이 보이거든- 중간 중간에 당신이 듣고있는 곡을 바꾸러 멈춘다는 것도 알지- 같이 러닝하는 사람끼리 인사를 간단하게 하는것도-

 

 그런 생각을 할때마다 미안했어- 내 다리가 좀 튼튼했으면 내가 같이 달려 줬을텐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들거든- 그럼 당신이 힘들어 할때 옆에서

 

 같이 뛰어줄수 있을텐데, 그런 생각을 해-"

 

 

 

 "........."

 

 

 뭐라 위로해야 이 사람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내가 괜찮다는 걸 이해시킬수 있을까를 난 생각하지만 어떤 말도 이치에 닿지 않을것 같다.

 

 그것뿐이 아니었던 듯 그는 말을 잇는다.

 

 

 "내가 뭐 잘났다고 - 이런 데이트한번 제대로 못 해 준것도 미안하고-.... 이번이 처음이어서 미안해-

 

 그동안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서 내가 지독히 서툴어서- 너를 더 많이 안아주고 감싸줄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아서

 

 

 그런게 미안해 -"

 

 

 

 그 말에 난 나도 모르게 웃는다.

 

 

 "서툴지 않아요- 내가 전에 이야기 하지 않았던가요? 당신은 어디에나 배려가 배여 있어요 - 가끔 그런게 좀 놀랍긴 해요

 

 정말 젠틀하니까-... 연애한다고 그렇게 변할줄 몰랐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대접이 싫지 않아요-

 

 아가씨가 된거 같거든요-"

 

 내가 말을 끝맺으며 수줍게 웃자 그는 웃었다.

 

 

 

 "아가씨지 그럼"

 

 

 "하지만 누가 이렇게까지 대접해주는건 처음인거 같은데요 다른 사람들은 안 그렇거든요 "

 

 

 그 말에 그는 좀 미간을 찌푸리며 곰곰히 생각하며 대답한다.

 

 

 "예전에도 그랬었는지는 모르겠어- 나이가 들어서 바뀌게 된 것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너는 나를 위해 많은걸 해주는데

 

 의자 뽑아주고- 추울때 뭐 입혀주고- 머리 쓸어 넘겨주고 - 손 잡아주고- 그런것도 못해주면 내가 해 줄수 있는게 뭐가 있겠어-"

 

 

 달달한 목소리로 그 말을 하며 테이블 위에 있는 내 손을 뻗어 잡는다- 그가 칠해준 분홍빛 손톱이 빛에 반짝이고 나는 그와 내가 함께하기로

 

 결정한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너무나 부드럽게 내 손에 스미는 그의 손에 당연하다는 생각과 함께

 

 감사한다.

 

 

  그가 내게 이렇게 스며들수 있는것에- 내가 품은 색들이 그에게 힘이 되는 색들이었던 것에

 

 그와 이렇게 오후의 시간을 보낼수 있음을- 감사한다.

 

 

 그는 요리가 나오자 말 없이 내 접시를 가져가서 그의 깔끔한 솜씨로 고기를 잘라서 그대로 예쁘게 모아서 내 그릇을 돌려 주었다.

 

 이런게 그렇다는 뜻인데- 예쁘게도 잘랐다.. 그는 전혀 느끼지 못한거 같다.

 

 

 "요리가 나왔는데 손 놓기 싫다."

 

 그의 애교있는 목소리가 듣기 좋다. 이렇게 애교 있는 사람일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천천히 식사를 한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가 뭔가를 그래도 제대로 먹는 걸 보는게 너무나 오랫만이라 내 얼굴에도

 

 밝은 미소가 걸린다- 나도 모르게 웃게된다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나는 그 오후에 그렇게 생각하였다.

 

 

 

 

 -

 

 

 김희영은 어떤 사람과 막 통화를 끝내고 전활 끊었다. 지견이 연결시켜준 간호 조무사였다. 지견에게 연결 될려면 5다리에서 6다리는 건너야 할 만큼

 

 지견의 디펜스는 만만치 않았다. 하여간 약았기는- 희영은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그 여자와 자신은 통화를 했지만- 전화기는 대포폰이었고 심지어는 서로의 이름도 몰랐다. 물을건 몇개

 

 없었지만 신중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장하민에겐 24시간 상주하는 간병인이 딸려 있었고- 잠시 그 사람이 자리를 비우는 사이에

 

 호흡기를 떼는 정도로 뇌사를 시킬수 있는지도 미지수였다. 그리고 호흡기가 떨어지면 자동으로 울리는 장치가 있었기에

 

 병원 의료팀이 이상 징후를 눈치챌 확률이 너무 높았다.

 

 주사가 필요했다. 언제나 꽃고 있는 혈관 주사에 한방울 흘리는 것만으로 뇌사로 이를수 있는 약한 약물이 필요했다.

 

 그리고 나서 cctv, 그것만 처리하면 완전했다. 방금 통화한 여자는 여러가지 약물을 권했지만 .... 원래가 약체가 되어 있는 장하민을

 

 완전히 죽이지 않기는 몹시 힘들었다. 어떤 약을 투여해도 불안했다. 아무리 직업 윤리가 무너질 대로 무너진 세상이라지만

 

 이 여자로 해결이 안되면 다음은 의사여야 했다. 병원 의료팀쪽에 매수할 사람이 없나 알아봤지만 원래도 고위층이 요양원으로 쓰는 곳이라

 

 쉽진 않을것 같았다. 하지만 한가지 진실- 돈 싫어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는 거였다. 어려우면 그렇게라도 해야지 하고 마음을 굳힌 참이었다.

 

 

 

  그리고 희영은 확신했다. 죽여서는 안된다- 아직은-

 

 죽이는 것이었다면 오히려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죽이는게 목적이 아니었다. 일단 옆에서 그 남자를 어떻게든 건저 줄 그 여자를 떼어내는게 목적이었다.

 

 이상적인건 남자가 보내주는 거였다. 여자는 오해할 테고 오해하면 돌아오기가 더 시간이 걸리고 더 어려워지겠지..... 희영은 자신이

 

 아직도 이런 기분을 안다는게 생소했다. 어떻게 해야 더 상처일지 더 아플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까...

 

 

 

 지견은 그 면에선 생각한거 한참 이상으로 둔하다 못해 아예 그럼 감각 자체가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이해를 못하는 그를 보면서

 

 내가 아무리 이 사람을 맘에 품어도.... 아무리 오랫동안 품어도.. 이 내 맘에 품은 한조각이 따뜻해질 일은 없겠구나를 직감하였다.

 

 그럴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날 지견이 오기 전 ... 희영도 나름대로 철저하게 준비를 했다. 계약서에 싸인을 해달라는건 그저 명목상의 일에 불과했다.

 

 

 녹음기에다 카메라까지 설치해 놓고서 기다렸다. 그런 설치를 하면서도..... 이걸 쓸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엔 유용하다 못해 자신을 방어하는 가장 큰 벽이 되었다. 지견이 도와줄 일을 나열하는 목소리와 약속하는 확언이 담긴 음성을

 

 몇개나 복사하였다. 복사하면서 울지 못해 쓸쓸하게 토하듯 웃었다. 그 영상도 마찬가지였다. 지견이 다 지울수 없을만큼 여러군데다 숨겼다.

 

 자신의 컴퓨터에는 흔적도 없지만 어쨌든 자신이 잡히기만 하면- 자동으로 알려지게끔 만들어 놓았다. 지견도 빠져나가긴 쉽지 않을것이다.

 

 그저... 지견에게 내 스스로 그런 영상이 있음을 알리는 일은 없기를...

 

  희영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자신이 이런 일을 하는게 조금은 비참하고 초라했지만- 곁에만 있다면 마음을 돌릴수 있기를 그저 바랄 뿐이었다.

 

 

 나는 왜 그랬을까- 저쪽은 철저히 이용일 뿐인데

 

 

 

 나는 어쩌자고 그리 독한 남자를 내 맘에 품고 말았을까- 처음 얼음처럼 차갑게 언 조각이었던 그 남자는 여전히 가슴에 박혀

 

 냉기로 자신까지 얼리고 있었다. 이 일을 계획하면서 가장 큰 충격중 하나는... 자신이 느끼는 죄책감이 터무니 없이 작다는 것이었다.

 

 그럴수도 있잖아- 로 시작된 합리화는 너무나 편안하게 가슴에 스몄다. 그 이후에 일을 진행할때 마다 아무렇지도 않은 자신에게

 

 크게 , 아주 크게 놀랐다.

 

 

 

 원래도 크지 않았던 - 자라면서 사라져온 인간성의 소멸을 느꼈다. 그런 자신이 두려운 자신에게도 조금은 실망했다.

 

 원래 없는척하면서 살았는데... 그래도 어느 정도의 마음은 남아 있겠지 그곳에 있겠지 하며 살아왔는데

 

 

 돌아보니 하나도 남지 않은것 같았다. 있을거라 생각한 곳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남은건 애증과 증오, 그리고 무시한 자들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 뿐이었다. 그래- 지견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 지견을 자신만 보게 하고 싶은 욕구

 

 

 

 결국 이 일을 완수해도...... 지견은 자신만을 보고 있지는 않을걸...... 알면서도-

 

 

 

 희영은 한참을 고갤 숙였다. 이젠 눈물조차 나지 않는 자신을 비치는 창에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이미 돌이킬수 없을 만큼 왔다.

 

 스스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돌이킬수 없을 만큼 왔다고- 사실은 그렇지 않은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말해야 더 용감해 질것 같았다.

 

 그리고 나에겐- 애초에 돌아갈 곳 따위가 없질 않은가.....

 

 

 

 그리곤 다시 전활 걸었다. 이제는 간병인을 치울 방법을 궁리해야할 시간이었다.

 

 

 

 

 -

 

 

 

 하임이 내내 웃는 낯으로 내 앞에 있어주니 나는 좀 숨통이 트이는거 같았다.

 

 이런 게 행복인가 싶은 소소한 이야기들- 이런 그녀와 함께라면 뭘 해도 행복하다. 강비서에게 시킨 지저분한 짓도

 

 어쩔수 없을 만큼 이 순간들이 소중하다. 마치 처음 숨을 쉬는 기분이다. 하임이에게는 절대로 말할수 없겠지만

 

 하민이를 처음 만났을때 내가 잊고 있었던 것들을 찾은 기분이었던 것처럼- 하임이를 만나고 나서 나는 숨을 쉬었다.

 

 드디어 폐 속에 공기가 들어오자 나는 물 위로 떠올랐다. 떠오르니까 돌아가고 싶지 않아졌다. 내 앞에서 어린시절 이야길 하는

 

 저 여자를 내 여자로 만들고 싶었다. 이렇게 작은 시간들이 예전엔 소중하단걸 왜 몰랐을까...

 

 

 아니... 다 버리고 이 여자를 데리고 외국이라도 가 버리면 안될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죄책감은 옅어졌다. 이 여자가 내 곁에 가까이 있으면 있을수록 더 그랬다. 아니 옅어진게 아니라 내가 잊는거다

 

 잊으려 애쓰는 거다. 처음엔 시도였지만 이 여자가 곁에 있다는게 느껴지면... 사실을 잊는다. 그냥 까먹는 것 처럼-

 

 

 하민이와 이런 레스토랑은 수없이 왔었다. 수백번은 왔었을 텐데- 이 여자를 데리고 온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때는 왜 더 몰랐을까,

 

 사랑하는 여자의 얼굴에 닿는 오후의 햇살은- 너무나 아름답다. 하얀 테이블 보가 반사해서 더 환하게 비치우는 그녀의 얼굴-

 

 

 그녀는 내 일에 대해서 물었다. 작가가 되면서 난 내 자신이 작가가 되는게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일방통행인 길이었다. 후퇴도 다른것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물어오니 대답하면서 내가 이런 생각도 품고 있었나 하는 걸 많이 느낄수 있었다.

 

 

 "당신 만나기 전에 내가 당신 책 다 사서 읽고 간거 알아요?"

 

 

 그 말에 놀랐다. 다작까진 아니어도 책이 꽤 나온 편인데...

 

 

 "다..? 다 읽었어?"

 

 그녀는 코 끝을 찡긋거리며 말을 이었다.

 

 

 "당신은 원래 신비주의였잖아요- 점수 좀 따볼까 해서 읽었다가... 완전 빠져 들었죠-"

 

 "점수?"

 

 "당신이 삽화가 안 보는건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거든요-"

 

 

 비싼척한다고 생각했겠군- 그녀가 투덜거렸을 소리가 왠지 들리는 듯 하다. 나는 웃었다.

 

 

 "그랬구나... 몇권일줄 알았지 다 읽었을거라곤 생각 못해서-... 다행이었어 당신이 그림에 욕심을 내서 그래도 계약은 할수 있겠다 싶어서 다행이다

 

 그랬거든"

 

 

 그녀가 흥 하고 새침하게 날 쳐다본다.

 

 

 "그날 그런 티 전혀 안냈잖아요- 얼마나 심술궃던지......"

 

 

 나는 머쓱하게 웃는다. 그래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나는 그녀여야만 했다. 그림 이면에서 느껴지던 그 열정과 열망-

 

 이 여자가 그렸다는 걸 알았을때... 놀랐기도 했지만 계약 자리에 나간건 그래도 이사가 내 얼굴까지 비추고 나면 이 여잘 설득해 주겠지 하는

 

 기대감도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다 의외로 이 여자는 생각보다는 순순히 계약에 응해 주었다. 강비서는 순순히라고 말하면

 

 절대 그렇지 않았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심술 부린게 아니라... 원래 내가 그랬어- 욕 많이 먹었으니 장수할거 같아."

 

 

 

 "원래 그렇게 딱딱한 사람이 어디있어요- ... 그보다 내 그림은 어디서 알았어요?"

 

 

 

 

 

 그 말에 지혁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한다.... 아.... 아직도 그 이야기는 안했구나..... 잠시 하임을 살피다가 지혁은 어쩔수 없이 실토한다.

 

 ".... 이사 온 이후에... 혹시 어떤 사람일까 싶어서 살짝..."

 

 

 하임의 눈이 무섭게 변한다

 

 들어본적 없는 목소리가 나온다. 무서운 목소리

 

 "아.... 그래서 사람을 시켜 알아보셨다?"

 

 

 

 ".........그게 아니라-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하임이 혀를 찬다-

 

 

 "어쩐지 포트 폴리오에도 안 넣어놓은 그림을 들고 이야길 하더라니... "

 

 

 나는 조심스레 덧붙인다.

 

 

 "기분 나쁠까봐서 그 동안은 이야기 안 했어-.... "

 

 

 

 

 그 말에 하임은 대답이 없고 지혁은 좀더 목소릴 가다듬고 진심을 다해 다시 한번 말한다.

 

 

 

 "미안해- 그런걸 욕하면서 결국엔.. 그런거 밖에 모르는 사람이 나였어..... "

 

 

 하임은 한참을 내 눈을 바라본다. 숨 막힐만큼 오래- 그녀의 갈색 눈은 냉정한데도 매몰차진 못하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그녀가 새침하게 웃자... 뻐근할만큼 긴장하고 있던 심장이 툭 하고 떨어지듯 안심이 된다.

 

 

 

 

 

 "됐어요- 한참이나 전 일이고... 알아보면 알지 않았어요? 나 지독하게 평범한거..."

 

 

 내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애매하게 웃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내 그림을 그때 봤을테고-.. 안 그랬음 계약할 생각도 안했을테고.... 또-.....

 

 

 안 그랬음 당신도 못 만났을 테니까요-"

 

 

 내가 간절하게 고갤 끄덕였다. 동조의 눈빛을 보내면서 그 모습에 그녀는 피식피식 웃었다.

 

 웃으니까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 같다.

 

 

 "우리 사이의 시간이 생각보다 기네요-.... 내가 아는 것보다도 더- ... 이젠 나한테 그냥 물어봐요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몰라도 이제 나 당신이 묻는건 대답 할 테니까-"

 

 

 "그때 그렇게 알아본거 나도 미안하게 생각해...... 그래도 놀랐던건 사실이지- 그림을 보고 정말 놀랐어-"

 

 

 

 "내가 그런 그림을 그려서요?"

 

 

 말투에 약간 뾰족함이 남아있는데 나는 그저 그 모습이 귀엽다.

 

 

 "아니... 그림에 남아있는 애틋한 열망이 느껴져서-"

 

 그녀는 처음에 내게 물었다. 작약 그림... 그 그림을 어떤 마음으로 그린거 같으냐고-... 그 물음에 나도 모르게

 

 아주 진지하게 답했다. 그녀는 내 대답을 듣고는 아주 틀리지는 않다고 - 아주 다르지는 않다고 내게 대답했었다.

 

 내가 방금 한 대답에도 그녀는 놀란듯이 잠시 말이 없다가 아무런 말 없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내 손을 꽉 잡았다.

 

 그 손이 지독하게도 따뜻했다. 우리 사이의 간격은 이미 좁아 졌는데 볼이 맞닿을 만큼 따뜻한데 왜 이리도 확실하게

 

 안심이 안 되는 걸까- 한참만에 잡았는데 아주 많은걸 버리고 잡았는데도 언제나 그녀의 무게가 너무 가벼워서

 

 우리의 손이 헐거워서 서로의 간격이 아무리 가까워도 지나가는 바람결에도 그녀가 날려서 휠휠 날아가 버릴까봐 불안하다.

 

 눈앞의 그녀는 그런 일 따위 없으리란걸 말해 주고 싶은듯이 현실감이 충만하게 내 앞에 앉아있는데도

 

 나는 내일의 불안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 시간만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크나큰 창에 드는 겨울의 빛 - 그 아래 앉은 그녀를 마음속 아주 깊은 곳까지 - 한자 한자 글로 그렸다.

 

 그림실력은 형편없지만 글로 한자 한자 채워서 그녀를 내 마음속 아주 깊은곳에 가득 채웠다.

 

 잊지 않도록 잃어버리지 않도록- 내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내가 손을 놓치지 않을수 있도록-

 

 

 -

 

 며칠 뒤- 드디어 서점에 책이 나왔다. 삽화가 이름은 그대로 실리니까 내게도 엄청난 문의 전화가 왔다. 한동안은 전활 꺼 둬야 할

 

 정도였다. 출판사에서도 소수의 사람들만 알고 있었다. 내가 그와 실제로 만난적이 있는 사이인걸 - 그런 삽화가는 내가 유일했고

 

 다른 사람들은 그걸 끈이라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그가 끊임없이 내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수습하는걸 알고 있었음에도 생각보다 사람들은

 

 끈질겼다. 결국 나는 전화번호를 바꾸었다. 그는 그 때문에 한참을 내게 미안해 했다.

 

 "프리랜서가 ... 전화를 바꿔도 돼?"

 

 그 말에 나는 그저 웃었다. " 전화번호야 알리면 되죠- .. 이제 당신 덕분에 나도 유명해지겠네요-"

 

 실제로 그랬다. 예전의 일의 몇배의 돈을 제안하는 계약이 말하자면 쏟아졌으니까-

 

 

 책에 대해서는 비판도 호평도 균형을 맞춰서 쏟아져 나왔는데 그는 호평에도 비판에도 그렇게 흔들리는거 같지 않았다.

 

 그런거에 일일이 흔들리면 글 못쓴단 말을 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평소처럼 평안해 보였다. 베스트 셀러가 됬다는 말을 들었을때도 뛸듯이

 

 기뻐하는거 같진 않았다. 그저 웃었을 뿐이다. 다행이라면서

 

 

 

  그가 책으로 기쁜듯 한 날은 딱 하루였다. 책 발매일 첫날- 그는 아주 이른 오전에 나온 책을 한권 들고는 사라졌다가

 

 돌아왔는데 그때는 정말 기쁜듯한 안색이라 나도 좀 놀랐었다.

 

 그리고 나서 돌아선 그의 팔꿈치에 묻어있던 걸 보고 내 심장은 끝을 모르고 추락했다.

 

 

 팔꿈치에는 작약 꽃잎이 묻어 있었다. 그는 미처 몰랐던 듯 하지만- 그리고 내가 그걸 보고

 

 눈치 챌거라고 생각도 못했겠지만- 나는 알수 있었다. 하민씨에게 책을 가져다 주러 갔음을-....

 

 

 나는 차마 묻지도 웃지도 못하고 자리에서 얼었다.

 

 

 그날 나는 그를 차마 쳐다볼수가 없어서 집으로 도망치듯 돌아갔다.

 

 날이 갈수록 더 그랬다. 분명히 그의 마음에 하민씨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점점 그녀가 설 곳이 없어지는걸 뻔히 아는데도 나는 더 - 더 그의 마음엔 나만 있었으면 하는 질투에

 

 사로잡혔다. 더 화가 나는건 그런걸 전혀 티 내고 싶지 않아하는 내 자신이었다. 이런 추악한 마음을 그가 눈치 못챘으면 하는

 

 나 자신이 싫었다. 미치도록 질투하고 그녀를 이제 미워하기까지 하는 내 자신... 글 쓰는게 그렇게 즐겁다고 하면서

 

 결국 그 글까진 나를 위해서는 써주지는 못하는 구나... 심지어 나는 그의 그 고통스러운 러브레터에 그림까지 그려준 얼간이구나

 

 하고 생각하자 내 자신이 비참했다.

 

 

 

 

  그는 눈치 채지 못한거 같았다. 죽어라고 연기했으니까- 더 없이 행복한 연기를 했다. 연기가 아닐때도 분명히 있었는데

 

 연기라고 생각하게 되는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자꾸만 제동을 거는건 단 하나였다.

 

 

 그는 여전했고 다정했고 점점 더 나를 더 사랑해 주는걸

 

 나는 모를수가 없었다. 그러나 제동은 다른게 아니었다. 나머지 한손-

 

 그 손이 내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책이 나온지 딱 10일만이었다. 나는 창 밖을 보고 있었다. 겨울은 이미 중반이 와 있었다.

 

 아주 이른 아침- 푸르스름하게 낀 안개가 창밖 풍경을 물들이고 있었다.

 

 나는 전화기에 뜬 그의 이름을 보고 나도 모르게- 올게 왔군 하는 생각을 했다.

 

 

 아마 고민했을것이다. 금방 알아보고도 한참을 망설이고 오랫동안 내게 할 말을 떠올리면서

 

 고민했겠지..

 

 

 어느새 나는 작약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그토록 하지 못했던 것들이 많이 익숙해져 있었다. 거짓말과

 

 연기- 고통이 수반된다고 해도 지켜내고 싶은것들을 지키고 우선 순위를 세우고 , 포기하고 싶지 않을걸 포기 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살짝 웃으면서 전화를 받았다.

 

 

 " 응 세진아-"

 

 

 푸른 내 방에 울려퍼지는 내 목소리는 내 귀에도 낯설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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