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름 마리아, 방년 23세. 누구는 꽃다운 나이라고, 참 좋을 시절이라고 부러워들 하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등 따시게 해줄 제 집이 있는 이들이나 배부르게 해주는 능력 있는 부모님을 가진 이들에 한해서 이지 여기 그녀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 얘기였다.
거칠게 갈라진 손끝과 딱딱해진 굳은살이 박힌 손바닥은 한창 꽃처럼 아름다울 여인의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에구구..”
숙였던 허리를 피며 나오는 신음소리에 그녀의 고단함이 묻어나왔다. 따뜻한 가을이 한 걸음 물러나고 차가움이 몰려오는 초겨울의 밤. 평소엔 절대 하지 않는 편의점 야간 알바였지만.
새해를 맞는 오늘 밤. 시급의 세배를 줄 테니 대신 뛰어달라는 야간 조 알바의 부탁만 아니었다면 10평 남 짓하는 월셋방에서 홀로 맥주를 홀짝이고 있었을 텐데.
손댈 수 없는 예쁜 맥주 캔들을 차가운 냉장고안에 버려둔 채. 그녀는 그렇게 한해를 떠나보냈다.
“하아.. 드디어 제르도 성인이 됐구나.. 축하해. 축하해 제르.”
결코 전해줄 수 없는 축하를 나지막이 중얼거리던 그녀는 아침에 퇴근하는 대로 보육원에나 잠시 들러야겠다고 생각했다. 구정에는 꿀 알바가 많아 들리지 못 할 테니까.
***
마리아는 대학 문턱도 넘지 못했다. 꽤 괜찮은 성적이었지만 성인이 되는 그 순간부터 세상에 강제로 밀려나와 겨우 원룸 보증금 정도만 지원받았기에 월세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무한지옥 알바세계로 뛰어들어야 했다.
그 덕에 24살이 된 지금은 술집에서 몸 파는 것 말고는 안 해본 것이 없는 경지에 이를 수 있었다. 가끔 그녀처럼 보육원에 버려진 여자애들이 손쉽게 돈을 벌고자 화류계로 빠지는 것을 보았지만 쉽게 들어오는 돈 뒤에 말도 못할 영혼의 상처들을 받는 것을 알기에.
멀쩡한 육체를 굴리는 쪽을 선택했고, 다행히 일 년에 한번 아픈 것 말고는 무탈하게 따라와 주는 체력덕분에 다른 사람에게 손 벌리며 살지 않았다.
누군가 알아주진 않아도 부끄러운 행동들도 조심했다. 부모 없이 자라 못 배웠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혹시 보호자가 없다고 함부로 대할까봐 남자문제에도 조심스러웠고 길거리에 쓰레기 한번 버리지 않았었다.
사실 일 년에 한번 만날 그에게 당당하고 싶어서 였는지도 모른다. 알 수 없는 세계였지만 한 나라의 왕자님인데다 아주 잘생기고 귀티가 흘러넘치는 사람인지라.
올바르게 살면 조금이라도 자신도 그처럼 빛이 날까 싶어서.
그렇게 소중한 등대와 같던 빛나던 이를 만날 시기가 다가왔는데도 올해는 이상하게도 아프고 싶지 않았다.
‘혹시 태자비랑 같이 나오는 건 아니겠지?’
저도 모르게 해열제를 두 알씩 계속 복용하면서 오르려는 열을 막아내 봤지만, 힘겨운 노동을 끝내고 돌아와 차가운 방바닥에 몸을 눕히자마자 몸은 의지를 배신하며 그녀를 또 다시 금목서향이 일렁이는 곳으로 안내했다.
‘...무슨 냄새지? 설마! 집에 불났나?!’
매캐한 그을음 냄새가 콧속을 찔러 들어왔다. 소중한 보금자리가 화마에 삼켜진다는 생각에 화들짝 놀란 그녀의 두 눈이 빠르게 떠졌다. 하지만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익숙한 천장대신 검은 연기로 가득한 붉은 하늘이었다.
종류를 알 수 없는 고기가 타는 냄새, 숯 덩어리처럼 보이는 까만 나무들, 아직도 수그러들지 않고 곳곳에 넘실거리는 화염.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멀리 신비스럽게 솟아있던 첨탑도, 그의 곁에 앉아 쓸어보았던 푸른 잔디도 보이질 않았다. 한층 더 아름답고 남자다워졌을 소중한 그 마저도.
13년간 단 한 번도 늦은 적 없던 제르의 모습이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
용의 가호를 받던 에스트레야왕국이 동맹국이던 바르니아제국의 칼날아래 망국으로 불타버린 날로부터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계절은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한 뜨거운 태양볕 아래에서 이글이글 불타는 여름을 맞이하고 있었다.
바르니아 제국의 수도. 벨란은 거대한 도시로 가운데 바르니아여왕이 기거하는 황성을 중심으로 귀족들의 사택과 부유한 상인들의 주택들이 장벽처럼 둘러싸여 있었다.
외곽으로 나갈수록 시설은 더러웠으며 또 가난하고 신분이 미천한 자들이 살았다. 하지만 감히 수도의 장벽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한 시설이 있었으니. 범죄자들이나 노예들을 맞붙여 싸움으로 돈을 버는 검투장이었다.
원형의 경기장 아래에 둥근 회랑으로 둘러싸인 검투장은 오늘 무척이나 유명한 경기가 열리는 날이었다. 바로 2년 전 혜성처럼 등장한 쿠안이라는 검투사의 경기가 있는 날이라서 그런지 모두가 경기장에만 모여 있었다. 평소 같으며 오고가는 사람들이 많았을 회랑은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대신, 얇은 기둥을 베개 삼아 기대고 앉은 검은 머리의 사내가 눈을 감고 있었다.
‘인생의 곳곳에 수많은 슬픔들이 존재하는 것은 보다 큰 행복에 다다르기 위해서란다.’
그리 말했던 사내의 목이 잘리던 순간이 아직도 그가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그려졌다. 빛을 잃어가던 동공, 마지막 숨을 내뱉고 피를 토하던 입술.
묻고 싶었다. 그렇게 죽어버리면 행복이고 뭐고 소용없지 않느냐고.
“이봐! 쿠안! 네 차례야! ”
순간, 고막을 때리는 우렁찬 목소리에 감겨있던 그의 눈꺼풀이 살짝 움찔거렸다.
“지금 설마 자는 거냐?”
뜨거운 제국의 햇살을 피해 경기장 외곽에 있는 회랑 아래 숨어 들은 것이 고작 30분도 되지 않았는데. 제 앞 경기였던 길루안이 예상보다 빠르게 그를 찾아왔다.
“길루안.. 왜 이렇게 빨리 끝낸 거야?”
“상대할만한 놈들이 나와야 쇼라도 할 텐데. 오늘은 영 아니었어. 얼굴이 뜨거워지기라도 한거야? 너도 상태가 별로인거 같은데?”
잘 태운 구리빛 상체 위에 가죽 갑옷을 걸친 길루안이 바늘도 안 들어 갈 것 같은 우람한 근육을 움직여 쿠안의 정수리를 헤집었다.
“..여긴 햇살이 너무 강해.”
행여나 닿을까 조심하면서도 그런 조심스러움을 숨기려는 손길에 쿠안은 여전히 기둥에 머리를 기댄 채 중얼거렸고 길루안은 헤집던 손을 옮겨 얼굴을 덮고 있던 긴 앞머리를 살짝 들어올렸다.
“그야 바르니아제국의 여름은 뜨겁기로 유명하니까. 별수 없어.”
“가을이 좋은데.. 시원한 가을.”
“한 달만 참아. 짧긴 해도 제국도 가을이 있으니.”
딱히 괜찮냐고 묻지도, 괜찮다는 대답도 없이, 여상스럽게 날씨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서로의 신경은 온통 쿠안의 한쪽 얼굴을 뒤덮은 검은 비늘에 쏠려 있었다. 쿠안의 검은 머리카락만큼이나, 그의 무저갱 같은 눈동자만큼이나 까만빛이 스며든 비늘이었다.
왼쪽 얼굴을 눈동자와 턱만 제외하고 뒤덮어버린 그것은 검은 용린이었지만 노예 검투사 쿠안을 아는 자들은 모두들 한 결 같이 이렇게 얘기했다. 용의 저주를 받았노라고.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는 망국의 에스트레야에서는 흔히 볼 수 있었던 색상이었기에 모두들 쿠안이 자신의 나라를 배신하고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공공연하게 떠도는 소문 중에 에스트레야가 내부 배신자로 인해 제국에게 짓밟혔다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배신자들은 모두 부귀영화는커녕 죽거나 저주를 받아 고통스럽게 살고 있다는 소식들이 간간히 들려와 쿠안 역시 그런 인간중의 하나라고들 여겼다.
하지만 노예 검투사들 중 그런 사연하나 없는 이가 어디 있을까. 특히나 제국민들에게는 그런 망국의 애달픈 스토리 따위야 신경 쓸 대상이 아니었기에, 쿠안은 그저 재미난 구경거리였을 뿐이었다.
흉측한 비늘만 가리면 반쪽이라도 아주 잘생긴 미남인데다, 늘 아름다운 검술과 압도적인 실력으로 상대를 깔끔하게 절단해버리는 기술 덕분에 그는 검투사세계에서 스타와 다름이 없었다.
쿠안이 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그늘이 끝나는 지점에 멈춰 서서 길루안이 헝클어트린 머리를 정돈하며 왼쪽 시야를 가렸다.
무심코 올려다 본 하늘에서 강렬하게 쏟아지는 햇살을 견디지 못한 오른쪽 눈이 찡그려졌다.
하지만 왼쪽 눈은 까만 머리카락 사이로 드문드문 모습을 드러내는 태양을 흔들림 없이 노려보고 있었다.
“데일은 뭐래?”
“오늘은 입질이 온 거 같다고 분발하라고 하던데.”
어느새 쿠안을 따라온 길루안이 그의 앞으로 나서 햇살을 가로 막으며 대답했다.
“그 소리 벌써 서른번도 넘게 들었어.”
“어쩌겠어. 큰 물고기를 잡으려면 그만한 고생을 해야지.”
결국 대어가 걸릴 때까지 계속해서 이 쇼를 해야 한다는 변치 않은 사실만이 남았다. 그리고 이 쇼에서 자신들의 상대가 될 제국의 범죄자 놈들 역시 살아 돌아갈 수 없으리라.
마른 먼지를 날리며 쿠안이 길루안을 제치고 강렬한 햇살 속으로 발을 내밀었다.
한발, 두발. 뜨겁다 싫어하는 것 치곤 망설임이 없는 발걸음이었다.
훤칠한 키에 알맞게 달린 길쭉한 팔다리. 무심하게 낡은 회색셔츠에 가려진 군살 없이 탄탄한 몸. 손바닥을 뒤덮은 굳은살과 손등을 타고 올라가는 자잘한 상흔들.
경기장을 찾은 이들에게 보여 지는 모습들은 빛바랜 기품이 배어 있는 걸음걸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는 더 이상 4년전의 제르나쿠안 드 에스트레야가 아니었다.
지금은 그저 노예검투사 쿠안일 뿐이었다.
-같은 시각 제국의 수도 안쪽 폴라레후작가-
“리아 아가씨! 다 되셨어요?”
“끄아! 아직 멀었다고!”
“어서요! 벌써 정문을 지나셨어요!”
“서..서두르고 있어!!”
두터운 물푸레나무로 만든 문 너머에서 발을 동동 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재촉하는 소리보다 더 리아에게 긴장감을 선사했지만 지금은 그런 걸 타박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유모, 머리는 어쩔 수 없어. 그냥 풀어.”
“하지만 아가씨, 너저분하다고 각하께 혼이 나실 텐데.”
“이놈의 곱슬머리 물려준 쪽이 잘못이지.”
“아가씨!”
행여나 누가 들을 세라 리아의 입을 막으려는 유모의 손을 날렵하게 피하고선 그녀가 허리에 척하니 손을 올렸다.
“변명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이거나 마저 묶어줘.”
리아로서는 일분일초가 급박한 상황이었다. 나갔다 온 것을 들키느니 차라리 헤어스타일을 지적받는 편이 나았다.
그래서 다소 과격하게 드레스 허리끈을 동여매는 유모의 거친 손아귀를 두 눈 질끈 감으며 참아내고 서둘러 화장대 앞에 앉은 순간.
달칵-
“아가씨, 각하께서 오셨습니다.”
살며시 열린 문 사이로 조금 전까지 리아를 재촉하던 시녀 히스의 정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벌써 시간이 그리 되었어?”
정말 곤란한 것처럼, 마치 방금 전까지 허둥지둥했던 적이 없었던 것처럼. 얌전하게 놀라는 귀족가의 여식이 화장대 앞에 강림했다.
“무엇에 정신을 팔았기에 시간가는 줄도 모르는 게냐.”
“송구합니다. 각하.”
날카롭게 찔러오는 여 후작의 눈빛 앞에 유모가 리아 대신 고개를 조아렸다.
“...”
그 모습이 마음에 차지 않은 듯 후작의 눈썹 끝이 살짝 꿈틀거렸다.
“죄송해요. 어머님.”
리아가 재빨리 석연치 않아하는 기운을 감지하고는 화장대에서 일어나 후작의 앞에 허리를 굽혔다.
“하루 종일 머리를 정돈할 수가 없어서 어머님의 마중을 잊었어요.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겠습니다.”
머리가 아래로 숙여지자 묶이지 않고 나풀거리는 눈부신 은색의 실들이 그대로 쏟아져 내렸다.
푸른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 오묘하게 물든 은발은 곱슬거리는 기운이 가득해 매끈하게 묶인 여후작의 파란 머리와는 너무나도 대조적이었다.
“정말이지.. 쓸데없는 것만 닮았구나, 정리되지 않는 꼬블거림에 아름다운 푸른빛을 망치는 회색이라니..”
“.....”
본적도 없는 아버지의 험담이 또 다시 시작하는 구나 하던 찰나였다.
“어째뜬.. 내일은 무슨 수를 쓰던지 그 머리 정리 하도록 해. 발디아른 후작의 오찬이 잡혔다. 이젠 너도 슬슬 움직여야지.”
어쩐 일로 길고 긴 험담을 끊었나 싶었더니, 리아를 세상으로 내보낼 건수를 물고 와서였다.
“전 아직 집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아요.”
“리타니아. 네가 올해로 몇 살인지 알고 하는 소리냐.”
여후작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지 보라색 새틴 장갑을 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지긋이 눌렀다.
“네, 벌써 21살입니다.”
“.. 그 일은 이미 4년이나 지났다. 그만하면...”
“제겐 아직 4년밖에 안 지났습니다.”
“리타니아 폴라레! 정신차려. 너는 보통의 처자가 아니다. 이 폴라레 가문의 다음 대 후작이 겨우 그만한 일로 4년 동안 칩거했다는 자체가 부끄러운 일임을 모르느냐!”
후작이 참았던 분노를 리아에게 터뜨리는 건 사실 흔한 광경은 아니었다. 17살때부터 사교계를 주름잡아야 했던 후계자가 4년 전의 사건으로 후작가를 벗어나지 않는 건 바르니아제국에서 꽤나 유명한 사건이었으니.
그동안에도 줄곧 밖에서 싫은 소리를 듣거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생기면 통과의례처럼 있었던 일이라 리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빨리 끝날 테니까.
예지한대로 말대꾸한번 하지 않는 제 딸에게 질린 후작이 방을 나가자 리아는 그제야 후들거리는 무릎을 부여잡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이고, 괜찮으셔요?”
“괜찮아 유모. 이번에야 말로 들키는 줄 알아서.. 좀 조마조마 했나봐.”
냉큼 달려와 리아를 부축해 일으키는 유모의 미간이 걱정으로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그러게! 이제 좀 그만 나가세요. 아니면 각하께 그냥 나가겠다 말씀드리시던가요.”
“안돼 안돼. 나간다고 하는 순간. 내 자유는 끝이야. 분명 여기저기 끌려 다니며 얼굴 팔릴게 뻔한 걸.”
유모에게 기대어 침대에 걸터앉던 리아가 손사래를 쳤다. 생각 만해도 끔찍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제국에서 한손에 꼽는 폴라레 가문의 후계자셔요. 마땅히 그리 하셔야..”
“에잉~ 조금만. 조금만 더! 벌써 발이 묶이면 안돼. 아직 못 찾았단 말이야.”
이 집에서 몰래 빠져나가는 데는 유모의 도움이 컸기에 리아는 사력을 다해 애교 3종 세트를 펼쳐 보이며 유모의 팔에 매달렸다.
“대체 4년 전에 뭘 잃어버리셨기에 아직까지 포기를 못하셨어요. 제게 말씀도 안 해 주시고.”
“하아.. 그런 게 있어. 어디에 찾아 달라 부탁도 할 수 없는 그런 곤란한 것이...”
연달아 내쉬는 한숨 속에 4년간의 그립고 안타까운 기다림이 잔뜩 묻어있었다.
“대체.. 어디에 있는 건지...”
푹푹.. 커다란 한숨이 서너번은 더 뿜어져 나와 그리움에 무게를 더해갔다. 그녀 자신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는 이 숨바꼭질이 끝나기를 기대하고 고대해왔다.
4년전. 마리아로서 불타버린 에스트레야를 발견한 날.
그녀는 마리아임과 동시에 리타니아 폴라레라는 여자아이가 되었다.
본래의 자신보다 7살이나 어린 소녀의 몸을 차지하고서 똑같은 계절이 4번이나 반복될 동안 제르에 대해 건진 정보는 너무나도 터무니없었다.
이 모든 게 결국 자신이 선택한 결과이긴 했지만..
‘치사한 용 같으니라구. 이왕 넣어줄 거면 차라리 저 후작 몸에다 넣을 것이지.. 이런 몸으로 제르를 어떻게 찾으라는 거야! ’
그녀는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화를 애꿎은 바닥만 쿵쿵대며 풀어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