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자차를 전부 마신 소유는 변이 탁자 위에 조심히 찻잔을 내려 놓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여전히 뱀 같이 뻗어있는 긴 복도를 지나 중앙 홀로 나온 소유는 좌우로 지어진 계단의 왼쪽을 올라갔다. 1층과 마찬가지로 쭉 뻗은 복도가 눈에 들어왔다. 허나 깔려있는 카펫의 색은 1층과는 달리 파란색 계통의 바다와도 같은 색이었고, 방도 전체적으로 1층보다 훨씬 적었다.
소유는 천천히 그곳을 둘러보았다. 이미 천신의 내부에 대한 상세는 마더가 전달해 준 정보 덕에 구석구석에 뭐가 있는지 자세히 알고 있었지만, 직접 눈으로 보고 좀 더 명확히 수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소유의 몫이었다. 때문에 천신의 전체적인 구조 같은 건 약간 우그러진 것 같은 모습으로 보관돼 있었다. 그래봤자 결국 미미한 수준이었지만, 어차피 이건 일종의 성능 테스트나 마찬가지였다.
마더가 저장하는 정보는 순전히 대기 중에 떠있을 수억 대의 'Flying Capture'에 의한, 그러니까 그들의 수준에 따른 정보였다.
만약 그것들에게 약간의 하자가 있거나, 심어진 렌즈의 상태가 나쁘다면, 그건 그것대로 낮아진 품질을 그대로 유지하며 마더에게 저장이 되었다.
다시 새롭게 그러한 곳을 정찰하고 새롭게 정보를 받지 않는다면 아니, 그럴 필요도 없이 조금만 마더가 수정을 한다면 금방 새 것 같은 정보로 탈바꿈이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마더가 전해주는 정보는 결국 비 오는 날의 창문과 같은 흐릿한 정보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정보를 전송 받은 소유는 그러한 흐릿함을 제거하기 위해 천신의 내부를 훑어보는 중이었다.
그렇게 푸른색 복도를 따라 걷던 소유에게로 마더의 음성이 들려왔다.
-준비가 모두 끝났습니다. 지금 소유 님이 계신 2층 객실에서 되돌아 나오시면 문 하나가 보이실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오십시오. 그곳이 격납고입니다.
"응, 알았어."
살짝 고개를 끄덕여 보인 소유가 이내 마더의 말에 따라 천천히 푸른색 복도를 되짚어 나갔다.
푹신한 카펫이 깔린 탓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기 때문인지, 아니면 테론이란 신비한 행성에 갈 수 있다는 기대감 덕분인지, 소유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벼워 보였다.
그렇게 마더의 안내대로 거대한 중앙 홀의 오른쪽, 그러니까 격납고로 가는 길목이라는 복도에 들어선 소유는 이번에도 역시 거의 반사적으로 옮기려던 발걸음을 갑자기 우뚝 멈춰 세우고 말았다.
마치 포탄이라 얻어맞은 듯, 방금 전 보았던 푸른색의 카펫이 깔려 있는 왼쪽의 복도완 달리 오른쪽은 여기저기가 부서지고 깨져나가 있었던 탓이었다. 과거엔 필시 객실이라 불렸을 각 방의 문들은 모두 너덜너덜하게 망가져 있었고, 그 안에 마련된 각종 물품들은 하나 같이 어딘가 박살이 난 채 바닥을 뒹굴어 다니고 있었다.
복도를 비춰줘야 할 전등은 아예 깨져나간 상태였으며, 심지어 불 탄 카펫의 이곳저곳엔 커다란 구멍이 뻥뻥 뚫려있었다.
그 아래로 거대한 기계 장치, 즉 천신을 가동시키는 열두 개의 엔진과, 그러한 엔진을 둘러싼 어마어마한 크기의 냉각 장치가 있었는데, 뿜어내는 냉기로 인해 복도는 금방이라도 얼어붙은 것 같은 차가움을 한껏, 나아가 '과다'란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실컷 들이키는 중이었다.
흡사 자신도 알지 못하는 새에 버려진 우주선에 올라탄 것이 아닐까하는 착각이 머릿속을 점령할 만큼, 너무나도 뜬금없이 펼쳐진 갑작스런 광경에 소유가 조용히 입을 열고 물었다.
"마더, 여기가 아직 복구가 안 된 곳이야?"
-예. 급한대로 소유 님이 사용하실 왼쪽 선체는 어느정도 복구해 놓긴 했지만, 아직 오른쪽 선체는 엔진실과 격납고, 식당, 그리고 총제어실만 복구시킨 상태입니다.
아키프리아 인들의 공격으로 천신의 대부분이 파손 되었다는 말을 듣기는 했어도, 마더가 보낸 천신 내의 정보들은 모두 과거의 것, 약 37년 전의 정보였기에, 현재 소유의 머릿속에 입력된 천신의 모습은 비교적 멀쩡한 모습이었다. 상태가 안 좋은 Flying Capture의 의해 흐릿해진 흑백 사진 같은 장소가 총 두 군데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 제외한다면, 소유가 알고 있는 천신은, 지금 눈을 통해 보는 엉망진창인 천신과 확연히 다른, 온전한 내외부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었다.
본래 이곳에 깔린 카펫은 저런 불 탄 자국이 선명하게 그슬려진 검붉은 카펫이 아닌 밝은 연녹색의 카펫이었다. 천장의 전등은 여지없이 탁한 빛이었지만 저렇게 깨져 있지 않았고, 객실들은 죄다 고풍스런 진갈색의 문을 가지고 있었다.
또 낭떠러지를 보는 것 같은 구멍은 아예 뚫려 있지도 않았으며, 그 아래의 냉각기가 뿜어내는 냉기로 인해 사방을 둘러싼 벽 표면에 새하얀 서리가 맺혀 있지도 않았다.
그저 일반적인 호텔의 객실 같은 광경.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장면이 37년 전의 천신이 가졌던 본래의 내부 장면이란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