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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 생활기
작가 : 내일만은
작품등록일 : 2017.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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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론에 정착하다.
작성일 : 17-07-16     조회 : 46     추천 : 0     분량 :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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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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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곤 시원한 새벽의 우물물이 선사해 주는 더할나위 없이 차가운 물의 감촉을 온 몸 깊숙이 음미할 새도 없이, 여전히 싱글벙글한 얼굴로 그 속내를 알 수 없게 하는 웃음을 띄고 있는 카르디엠의 뒤를 쿡 턱으로 한 차례 짚어 내었다.

  뒤이어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말싸움 할 시간도 아까우니까 이제 좀 나가세요. 안 그러면 경비를 부르겠습니다."

  "형제 님의 뜻이 정말 그러하신다면 저로서는 어쩔 수 없지요."

  질기게 달라 붙었던 방금 전과는 확연히 다른, 나아가 고개까지 끄덕이며 순순히 긍정의 표시를 보이는 카르디엠에게 또다시 어떠한 무언가가 대화의 주제로 붙잡힐까 염려스러웠는지, 그의 망설임 없는 대답에 되려 당황한 델리스는 재빨리 고개를 홱홱 돌려 카르디엠의 관심을 살만한 물건이 지금 이 자리에 있나 다급히 둘러보았다.

  다행히 그런 물품은 없었으나, 금방이라도 나갈 것만 같던 어조로 뱉어냈던 말과는 달리 카르디엠은 여전히 그 무거운 엉덩이를 의자에서 떼어내지 않고 있었다.

  그저 앞에 놓인 빈 나무 컵을 만지작거리며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듯, 조용히 숫자를 차례차례 읊어 대기만 할 따름이었다.

  그런 카르디엠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델리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그가 여태껏 봐온 돌팔이 사제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차이가 나는, 다시 말해 신을 찾아 부르짖는 성직자들의 고요한 고해를 보는 것 같은 정갈하고 압축된 신앙심이 카르디엠의 자세 하나하나에, 조금만 더 기다리면 금세 시각적으로도 확인이 가능할 것만같이 선명하게 깃들어 있던 까닭이었다.

  그건 흡사 오랫도록 신을 믿고 따른 순결한 사제의 진실된 모습과도 같았고, 어떻게 보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성력을 온 몸에 꾹꾹 눌러 담은 교황의 모습과도 비슷했다.

  직접적으로 신과 대면하며 신과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신탁을 받을 수 있는 알맞은 그릇이 마치 카르디엠이란 인간에겐 기본적으로, 그러니까 선천적으로 존재하고 있던 것만 같았음이다.

  "아… 이제야 오셨군요."

  그 때, 약 십 분 가량이 지나도록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마냥 카운트를 나타내는 숫자를 총 '632'까지 세어내던 카르디엠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들고 있던 나무 컵을 '쾅' 소리 나게 탁자 위에 내려놓은 뒤 다소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델리스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황급히 밖으로 뛰쳐나갔는데, 자칫 발이 걸려 넘어져도 할 말이 없는 긴 법복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검문소를 박차고 나가는 그의 발놀림은 그 일련의 행동을 눈에 기록하고 있는 델리스가 깜짝 놀랄 정도로 매우 재빠르고 갑작스러웠다.

  "뭐, 뭐가 왔다구요?!"

  괜한 관심은 주지 말고 얼른 나가라는 말을 계속해서 토해내긴 했지만, 정말로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고 저 혼자만 튀어나갈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지, 델리스는 서둘러 카르디엠의 뒤를 쫒아 달려나갔다.

  "야! 델! 이제 근무 시간이야!"

  그러자 뒤에서, 정확히는 바람같이 스쳐 지나간 카르디엠의 뒤를 쫒아 뛰어가는 델리스조차 막지 못하고 보내 준 검문소의 커다란 대문을 지키는 두 명의 경비병들 중, 비교적 가벼운 진갈색 하드레더를 걸치고, 끝이 두 갈래로 나뉘어진 창을 들고 서 있는 푸른 머리카락을 가진 경비병의 외침에, 그러니까 카일로스의 다급한 외침에 델리스는 잠시 멈칫, 몸을 경직시켰지만, 그건 아주 잠깐일 뿐인 머뭇거림이었다.

  "이 새끼야! 너나 잘해! 남 사생활 막 꼰지르고 다니는 게 뭔 경비병이냐?! 넌 나중에 나한테 뒤질 줄 알아! 죽기 싫으면 대장한텐 그냥 적당히 얼버무려, 이 빌어먹을 자식아!"

  주먹을 휘두르며 소리를 꽥 질러대는 것으로 카일로스의 외침에 대답 아닌 대답을 날려보낸 델리스가 이내 다시금 카르디엠을 쫒아 뜀박질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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