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프로토타입은 오지 않을 모양입니다.
포근하게 내리쬐는 아침 햇살의 모순적인 추위와 싸늘함에도 불구하고, 테론의 생명체들이 임의적으로 이름을 붙인 거대한 풍혈, 즉 '겨울나기'에 의해 만들어진 '바람의 계곡'의 꼭대기라 할 수 있는 직각으로 깍여진 절벽 위에 서서, 흡사 일개미처럼 모여드는 사람들의 형형색색 파도에 휩쓸리기 시작한 검문소를 지그시 바라보던 소유의 넥타이 같은 구슬에서, 자그마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비록 그러한 말투 곳곳에는 높낮이의 구분하는 운율 같은 게 없었기에, 프로토타입형 휴머노이드를 찾는 마더의 음성엔 그 어떠한 분노도, 그렇다고 실망감이라 불러도 좋을 여린 감정의 파편들이 전혀 녹아들어 있지 않았지만, 소유는 직감적으로 마더가 프로토타입을 당장 이곳으로 호출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건 막연한 추측이 아니라, 아예 마더의 생각을 흡사 스캔을 하는 파일처럼 삽시간에 읽어 내려갔기에 든 자연스런 생각이었다.
소유는 곧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프로토타입의 주거지라 할 수 있는 해안 도시, 정확히는 사방이 땅과 산으로 이루어진 슈르벤과 정 반대의 지역인 '코홀'이란 나라의 해안선과 밀접한 변방 도시들 가운데, 프로토타입의 거처지인 '데본'이란 이름을 가진 도시의 외관과 내부를 세세하게 떠올려 보고는,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었다.
"그냥 부르지 마. 나중에 찾아가도 되잖아."
-괜찮으시겠습니까? 프로토타입이 있다면 좀 더 빠르게 테론에 정착하실 수 있습니다.
어차피 프로토타입으로 인해 절약되는 시간은 길어 봐야 하루가 전부였다.
그나마도 테론에 대한 기초적인, 혹은 고유의 사항을 읊어주는 역할만이 유일하게 프로토타입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사항이었기에, 사실 없어도 그만, 있어도 그만인 가이드가 바로 프로토타입이었다.
그렇기에 소유는, 굳이 자신의 존재를 모르는, 또 창조주인 마더의 존재를 모르는 프로토타입을 일부러 이곳까지 부를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했다.
장장 10년을 테론에서 지낸 프로토타입이다. 마더의 정보에 따르면, 프로토타입은 '셀티아'란 버젓한 이름을 가지고 있고, 도시의 이름을 그대로 따 만든 '데본'이란 여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필요에 따라선 땡볕의 밭일도 서슴치 않고 실행할 정도로 평범한 인간의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거기다 아직 아이는 없지만, 건장한 체격을 지닌 관문 경비대장의 아내로써 벌써 3년을 함께 거주하는 중이었다.
이제와 호출을 한답시고 잠들어 있던 프로토타입의, 그러니까 셀티아의 기계 부품들을 구태여 자극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일단 프로토타입에 대한 처분은 추후로 미루어 두겠습니다. 하지만 또다시 이 같은 오류가 발생할 경우, 소유 님의 허락 없이 자체적으로 회수, 처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소유의 생각을 읽었는지, 푸른빛이 뿜어져 나오는 구슬에서 여지없이 긍정을 표시하는 마더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누군가 접근합니다."
그때, 낙하하는 우주선 안에서와 마찬가지로, 꼭 망부석이 된 것처럼 꼿꼿하게 서서 오직 소유의 날개옷처럼 흩날리는 머리카락과, 살짝살짝 보여지는 새하얀 어깨, 그리고 자그마한 등을 미동 하나 없이 바라보던 베타가 꾹 다물어져 있던 입을 열고 말했다.
"2명입니다. 종족은 인간이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제서야 뒤를 돌아 베타를, 그러니까 금방이라도 튀어나갈 것같이 공손하게 앞으로 모아 두었던 두 팔을 자연스럽게 풀어내고, 품 속을 뒤적여 흡사 손바닥만한 크기로 축소시킨 듯한 철봉 비스무리한 막대기 하나를 꺼내든 베타에게, 소유는 미미하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