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소유 생활기
작가 : 내일만은
작품등록일 : 2017.6.28
  첫회보기
 
테론에 정착하다.
작성일 : 17-08-03     조회 : 58     추천 : 0     분량 : 3437
뷰어설정열기
기본값으로 설정저장
글자체
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본래 미지의 생물체에겐 모두가 경외심과… 약간의 두려움을 갖기 마련입니다. 신께서도 그러하시구요. 이곳에선 볼 수 없는 무언가를 감시한다는 건, 그래도 올바른 파수꾼의 역할 아니겠습니까?"

  여전히 여유로운, 하지만 조금 힘겨운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을 이어가는 사내에게, 잠시 침묵을 지키던 알파가 물었다.

  "너는 신의 대변인인가?"

  그에 사내 또한 질문 전의 알파처럼 입을 다물고, 삽시간에 내려앉은 침묵을 알파보단 좀 더 길게 이어가는가 싶더니, 곧 다시 입을 열고 말했다.

  "따지지면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요. 신께 직접 신탁을 받기도 하니까요."

  그러자 알파가 보란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군. 그렇다면, 신이 하는 일이 뭐가 있지?"

  "가장 기본적인 일이라면 역시 세상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겠지요."

  "그럼 신은 그걸 맞추는 작업에 추가될 톱니바퀴가 너무 크다고 생각하고 있나?"

  단 1초의 시간도 허비하기 싫다는 양, 사내의 말이 마침표를 찍자마자 알파가 재차 사내에게 물었다.

  "그 톱니바퀴가 저희가 익히 알고 있는 나무로 만든 톱니바퀴가 아니기 때문에, 신께선 이러시는 겁니다."

  사내도 막힘없이 대답했다.

  그에 알파가 자신의 손바닥 위로 돌연 톱니바퀴 모양의 검은색 덩어리를 소환하더니, 그것을 사내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다시 그에게 물었다.

  "이게 나무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나?"

  그것을 빤히 바라보던 사내가 가볍게 대답했다.

  "적어도 겉모습은 확실히 나무가 아니군요."

  그러자 손바닥 위의 톱니바퀴를 다시 어디론가 전송한 알파가 딱딱하게 사내의 말에 반응했다.

  "맞아, 나무는 아니지. 흑광철. 이곳에서 나오는 광물로 만든 톱니바퀴다. 하지만 나무로 만든 톱니바퀴와 기능은 똑같지. 굳이 차이를 둘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그렇다곤 하나, 나무 톱니바퀴가 들어가야 할 곳에 굳이 철로 만들어진 톱니바퀴를 넣을 이유는 없지요. 그것도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톱니바퀴라…. 제 마음대로 해석해도 괜찮겠습니까?"

  "…이건 단지 철일 뿐이다. 그리고 난 그걸 그냥 너에게 보여 주고,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어 보이냐란 질문과 기능을 설명했을 뿐이지. 그런데 너는 나의 이 행동을 마음대로 해석하려고 하고 있군. 신도 그렇게, 당신처럼 마음대로 해석을 했나? 마음대로 생각하고, 마음대로 결정을 지은 건가? 우리가 이 세계의 균형을 깨드릴 것이란 결론은 이미 내린 것 같군.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야… 신조차도 막을 수 없는 무기를 가지고 계시니… 그럴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멋쩍게 뒷통수를 긁적이며 예의 넉살 좋은 표정을 짓는 사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알파가 대뜸 오른손을 하늘 위로 뻗어 올렸다.

  그리곤 다소 멍한 표정으로 자신과 사내를 번갈아보는 소유를 돌아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허가만 해준시다면, 일단 이 행성의 정화 작업에 들어가겠습니다."

  "정화 작업?"

  그리고 지금까지도 멍하니 알파의 말을 듣고 있던 소유가 마침내 입을 열고 묻자, 알파가, 그러니까 마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무래도 이 행성의 생명체들은 저희들을 위험 분자로 본 것 같습니다. 차라리 행성 자체를 깨끗이 청소하고 정착을 하시는 게 더 나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곳의 생명체들은?"

  "아쉽지만, 다시 원시의 상태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최초 생명체의 발생까진 앞으로 몇억 년이나 걸릴 지 몰랐다. 그 기간동안 멀쩡히 살아 있을 가능성은 머릿속이 내놓은 결과대론 약 99%에 육박했지만, 소유나 알파, 베타, 그리고 마더 이외의 생명체의 등장이 이루어질 확률은 제대로 측정조차 할 수 없는 미지수의 수치였다.

  행성을 정화한 뒤 수억 년을 이곳에서 보낸다 하더라도, 모든 생명체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원핵생물이 나올지는 도저히 예측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소유가 알파에게, 마더에게 물었다.

  "정화를 안 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신이라는 전지적인 존재에게 그다지 환영을 받지는 않을 것입니다."

  "신…. 역시 신의 존재는 꽤 거추장스럽구나."

  신.

  그들이 존재함으로써 낳는 파급력은 지구에서의 사건을 예로 들면 간단히 설명이 되었다.

  사이비 종교 집단.

  신이라는, 무척이나 편리한 이름을 가진 절대자를 믿고 따르며 '휴거', 즉 세상의 종말을 부르짖으며 매 세기마다, 혹은 매 해마다 집단 자살을 이어가는 신을 따르는 광신도들.

  그들의 병적인 증세는 이미 지구에 있었을 때, 연구소 안에 갇힌 채 실험을 받던 소유마저 몇 번 TV를 통해 보았을 정도로 극성이었고 위험했다.

  헌데 그러한 신이 테론엔 아예 구체적으로 나뉘어져 있음을 새삼스레 인식한 소유는, 괜스레 머리가 지끈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곳의 역사에 따르면, 신이 인간을, 나아가 이종족과 몬스터들을 만들었다고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신의 존재를 관측할 수 있었으니, 아마 마냥 거짓된 역사는 아닐 것입니다. 때문에 소유 님이 생각하시는 지구의 기원은 테론에 그다지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나마 생명체의 등장 시기를 추측한 마더의 말이 복잡하게 흐트러진 머릿속에 엉겨붙자, 소유는 이 인간만의 전유물이라 할 수 있는 두통이 꼭 환상처럼 벗겨진 머리를 미약하게 끄덕여 보였다.

  "그렇구나. 그럼 총 소요되는 시간은?"

  "10초면 충분합니다."

  "응, 그래. 그럼 난 어디로 가있으면 될까?"

  "우주선에 올라타십시오. 공간 도약을 준비하겠습니다."

  여전히 오른손을 하늘 위로 뻗은 채 가만히 소유의 다음 행동을, 둥둥 떠있던 우주선에서 에스컬레이터처럼 내려온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알파가, 곧 베타에게 말했다. 아니, 그렇게 하기도 전에 전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사내에게 삽시간에 제지를 당하고 말았다.

  "…지금, 뭘 하려는 겁니까?"

  평소 얌전한 사람이 진정으로 화가 나면 그 누구보다 무섭다고 했던가?

  우지끈!

  딱 그렇게만 보이는 사내가 뿜어내는 기운은 잔잔한 바람과 풀숲, 그리고 나무가 일순 뒤틀리며 꺾일 정도로 어마어마했지만, 알파나 베타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질 않았다.

  대신 베타에게 향하려던 시선을 그에게 옮긴 알파가 그의 말에 알맞은 맞장구를 쳐줄 따름이었다.

  "정화 작업이다. 아, 그렇지. 우선 맛보기를 보여 줘야 하나? 지구나 이곳이나, 인간들은 뭐든지 눈 앞에 가져다 놓아야 믿는 것 같으니까."

  그리고 알파는, 다시 말해 마더는, 천천히 손을 내리면서 펼친 검지로 정확히 사내를 가리켰다.

  "대체 뭘……."

  픽.

  퍼억!

  그 알 수 없는 행동에 사내가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무언가를 말하려던 찰나, 대뜸 바람이 빠지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곧 사내의 몸뚱아리가 산산조각이 나며 터져 나가 버렸다.

  상상할 수도 없는 아득한 공중에서 떨어뜨린 수박이 마침내 지표면과 맞닿아 폭발하듯, 최소한의 자국만을 남긴 채 흔적도 없이 소멸해 버린 것처럼, 미처 말을 다 잇지 못한 사내는, 정수리에서부터 우그러지는 자신의 신체 또한 미처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폭죽같이 몸을 터쳐내며, 잘게 분해된 고깃조각들을 사방으로 흩어내었던 것이었다.

 
 

맨위로맨아래로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67 수도 마할레스 3/15 287 0
66 수도 마할레스 3/9 307 0
65 수도 마할레스 2/7 349 0
64 수도 마할레스 1/30 307 0
63 수도 마할레스 1/23 288 0
62 수도 마할레스 1/1 315 0
61 수도 마할레스 12/9 330 0
60 수도 마할레스 11/17 312 0
59 수도 마할레스 11/12 299 0
58 수도 마할레스 11/6 312 0
57 수도 마할레스 10/29 327 0
56 수도 마할레스 10/26 331 0
55 테론에 정착하다. 10/24 312 0
54 테론에 정착하다. 10/15 301 0
53 테론에 정착하다. 10/11 332 0
52 테론에 정착하다. 10/6 312 0
51 테론에 정착하다. 10/3 302 0
50 테론에 정착하다. 10/2 310 0
49 테론에 정착하다. 9/27 310 0
48 테론에 정착하다. 9/26 339 0
47 테론에 정착하다. 9/23 324 0
46 테론에 정착하다. 9/17 292 0
45 테론에 정착하다. 9/11 316 0
44 테론에 정착하다. 9/10 317 0
43 테론에 정착하다. 9/8 306 0
42 테론에 정착하다. 9/3 306 0
41 테론에 정착하다. 9/1 297 0
40 테론에 정착하다. 8/29 309 0
39 테론에 정착하다. 8/27 305 0
38 테론에 정착하다. 8/23 319 0
 
 1  2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