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1. 93의 의미
전 세계 인구 약 75억명. 우리는 이 75억명 가운데 하나이고 그 75억명이 지구라는 원형공간 안에서 숨을 쉬며 살아간다. 혹시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과연 우리가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지? 그리고 그 확률이 수치로 어느 정도일지? 내가 사랑하는 엄마, 아빠, 여동생 그리고 내가 아끼는 친구들 이 모든 사람들은 75억분의 1 즉, 약 0.000000013%의 확률로 만난 인연들이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평생을 살면서 로또에 당첨될 확률이 약 800만분의 1이고 번개에 맞을 확률이 600만분의 1이다. 우리가 만나서 인연을 맺을 확률에 비하면 별거 아닌 수치인 것이다. 참, 내 소개가 늦었다. 내 이름은 최인수. 인할 인에 나무 수. 나무처럼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뜻에서 지어주신 이름이다. 현재 내 나이 24세. 대학생이다.
“ 야, 진우야. ”
“ 왜. ”
지금 내가 말을 붙이고 있는 이 녀석의 이름은 이진우. 나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심지어 대학교까지 같이 다니고 있는 불알친구다. 항상 좀 무뚝뚝해서 그렇지 심성은 착한 녀석이다.
“ 내가 오늘 책을 읽었는데 깨달음을 하나 얻었어. ”
“ 니가 책도 읽어...? ”
녀석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오른손으로 내 머리를 긁적였다. 자식 무안하게...
“ 아! 읽지 새끼야 당연히. ”
“ 그래? 그나저나 깨달은게 뭔데? ”
한쪽 입꼬리가 스윽 올라갔다. 나도 모르게 뭔가 어깨에 힘도 막 들어가고 여튼 지금 이게 중요한게 아니다. 나는 괜시리 헛기침을 몇 번 한 뒤, 말을 이어 나갔다.
“ 전 세계 인구가 75억명이야. 75억명인건 아냐? ”
“ ... ”
“ 여튼 75억명인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깐 너와 내가 만날 확률이 75억분의 1이더라고. ”
“ 응 그래서? ”
“ 응 그래서? 라니 새끼야! 이게 얼마나 대단한건데! 로또에 당첨되거나 번개에 맞는건 쨉도 안되는 거라고! ”
여전히 시큰둥한 표정이다. 이 감정이 메마른 새끼. 이게 얼마나 대단한 발견인데. 나는 손에 쥐어져 있던 책을 가방에 쑤셔 넣었다.
“ 됐다. 너한테 이런 얘기를 하는 내가 멍청한 놈이지 어휴... ”
“ 야! ”
고함소리가 내 귓가에 때려 박히게 무섭게 내 뇌는 반응했다. ‘ 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 라고.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 하하... ”
아니나 다를까 내 예상대로 고함소리의 주인공은 연화였다. 연화는 대학교에 들어오자마자 친해진 여자사람친구다.
“ 뭐야 그 표정은? 내가 안 반가운가보다? ”
“ 아니야! 안반갑기는 섭섭하다? ”
눈치는 더럽게 빠르네. 연화는 2년간 휴학을 하고 얼마 전에 다시 학교에 복학했다. 2년 동안 없어서 뭔가 허전하고 그럴 줄 알았는데 하루가 멀다하고 매일 같이 연락을 했기 때문에 딱히 그런 것도 없었다. 연화를 보자마자 하나의 생각이 내 뇌리 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아니 그 불가능한 확률을 뚫고 만난 애가 왜 하필 얘일까? 정말 나는 운이 더럽게 없는 놈인가보다.
“ 근데 너네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하고 있었어? ”
“ 어...어? ”
이거 이거 멀리서부터 오면서 우리가 얘기 아니 내가 일방적으로 얘기하고 있던 것을 봤나보다. 하아, 무슨 시력은 또 이렇게 좋담? 입술이 빠짝빠짝 말라간다. 우선 내가 책을 읽었다는 것만으로 욕을 먹을 것이다. 이미 이것만으로 욕 한바가지는 예약인 셈이다. 입술에다 침을 몇 번이고 바르며 입을 뗄려는 찰나에 진우 녀석의 목소리가 보란 듯이 내 입을 턱하고 막았다.
“ 별거 아냐. 그냥 책 읽고 느낀 점 나한테 얘기했어. ”
“ 아...아니 그게. ”
식은땀이 날려한다. 죽어도 후회 없이 죽고 싶었는데 저 새끼 덕분에 아주 장렬하게 죽을 것 같다. 고맙다 진우야. 하하하.
“ 인수 새끼가 책을 다 읽었다고? ”
연화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보며 말했다. 그래 내가 얼마나 책을 안읽었으면 그러겠니. 다 내 잘못이다. 지금 내 표정은 누가 봐도 웃는게 웃는 것이 아닌 표정을 장착하고 있을 것이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하다.
“ 아...그게 하하! 오늘따라 책이 좀 땡기더라고? 하하하! ”
머리에서 비듬이 나오기 직전일 정도로 머리를 벅벅 긁어대며 말했다. 오늘따라 머리가 왜 이렇게 간지러운지 내 머리가 야속할 지경이다. 연화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나를 보고 있다.
“ 그래서 느낀 점이 뭔데? ”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차마 솔직하게 말을 못하겠다. 왜 하필 75억분의 1로 웬수 같은 너를 만났을까? 더 예쁘고 더 착한 애들이 나의 절친이 되었을 수 있었는데. 하지만 이걸 필터링 없이 그대로 얘기했다가는 절교하거나 최소한 평생 감당하고 가야된다. 나는 그럴 위인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뇌 속에서 빠르게 필터링 과정을 거쳤다.
“ 그...그게 뭐냐면 전 세계 인구가 75억명인데 말이야... 응 그렇거든. 근데 그 뭐냐... 우리가 75억분의 1이라는 불가능에 가까운 확률을 뚫고 만났다고. 하하하!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정말 인연이다 우리는! 그렇지? 하하하! ”
입만 웃고 있고 눈은 웃어지지 않는다. 울고 싶다 정말.
“ 오... 듣고보니 그렇네? 대박인데 이거? ”
어라? 왠일이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욕이 날라와 내 가슴팍에 꽂힐 줄 알았는데. 의외로 욕이 날아오지 않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마음의 안정을 취하고 있을 때 연화가 말을 이어 나갔다.
“ 너는 정말 행운이네 그럼 75억분의 1 확률을 뚫고 날 만났으니. 그에 반해 난 정말 재수가 없네 75억분의 1 확률을 뚫고 너를 만났으니. 에휴... 재수가 없네 진짜. 고맙다 다시 한번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해줘서. 기분도 꿀꿀한데 밥이나 먹자. ”
“ 응. ”
진우 새끼는 무덤덤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 내가 할 말을 저 년이 보란 듯이 해버리네 나는 그래도 예의상 필터링은 거쳤는데. 아주 주먹이 부들부들 떨린다.
“ 안가? ”
“ 가...같이가! ”
하지만 약육강식의 세계에서는 어쩔 수가 없다. 빌어먹을 약육강식.
술자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주변을 몇 번 둘러보고 사람이 없음을 확인한 뒤, 골목길 안으로 들어섰다. 다시 한번 주위를 확인했다. 아무도 없다. 오른팔 소매를 팔뚝까지 걷었다. 소매를 걷자 내 손목에는 보란 듯이 숫자가 문신처럼 새겨져있다.
‘ 9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