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렬!"
심판의 외침에 마산중학교 선수단과 개승중학교 선수단이 차렷 자세를 취한다.
"페어 플레이!"
이윽고 양 선수단이 서로를 바라보며 손을 맞잡는다.
진감이 손을 맞잡기 위해 다가오는 윤용성을 보며 몸을 움찔했다.
"오랜만이다, 박진감이. 소식은 들었다. 설마설마 했는데 진짜 야구를 시작했을 줄이야..."
"..."
진감이 침묵하자 용성이 씨익 웃으며 손을 뻗어 진감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꽈아아아악
"마!"
그 모습을 본 태수가 큰 소리로 외치자 손을 휘휘 저은 용성이 진감의 귀에 입을 가져다 대고 조용히 소곤거린다.
"...!"
말을 마친 용성이 입을 때자 진감의 표정이 팍하고 구겨진다.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난 용성이 작게 웃으며 진감의 어깨를 토닥였다.
"하하하, 덕분에 여름에도 머리가 시원해서 좋다야. 이번 경기... 잘 부탁한다"
"으득..."
이를 가는 진감을 보며 태수가 빠르게 다가간다.
"양 팀, 위치로!"
때 맞춰 귓가를 때리는 심판의 목소리에 용성이 마운드 위로 걸음을 옮기자 인상을 찌푸린 태수가 진감에게 물었다.
"점마가 뭐라대?"
"...아무것도"
"뭐 또 욕이라도..."
"태수야, 아니 주장"
"...?"
"이 경기... 꼭 이기자. 잘 부탁해"
진감의 말에 태수가 씨익 웃으며 가슴을 두드린다.
"내만 믿으라. 니는 그냥 내 미트만 보고 평소처럼 꽂아 넣으면 된다"
"선수! 위치로 돌아가라!"
결승전에서 개승중학교는 선공(先攻).
이미 마산중학교 학생들이 수비를 위해 경기장 곳곳에 위치해 있었다.
진감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 태수가 더그아웃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가자"
이윽고 진감도 태수를 따라 더그아웃으로 돌아가자 경기가 시작된다.
"플레이!"
심판의 외침과 동시에 경기가 시작되었다.
*******************
'어떻게 괴롭혀줄까...'
스트레칭을 마친 개승중학교의 유격수, 1번 타자 손시훈이 타석에 들어서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시훈의 키는 162cm로 야구부 내에서 가장 단신(短身)이지만 타고난 순발력과 빠른 발을 이용해 많은 내야안타를 만들어 내는 전형적인 1번 타자였다.
평범한 땅볼도 안타로 만들어 내는 시훈의 빠른 발은 상대 투수들에게 항상 부담으로 작용한다.
마운드 위에 자신보다 족히 30cm는 더 큰 거구(巨軀)의 소년을 바라보며 시훈이 씨익 웃는다.
'키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마'
휙, 휙, 휙
준비를 마친 시훈이 타격 자세를 취하더니 손에 쥔 배트를 휙, 휙 돌리기 시작한다.
마치 상대방을 도발하는 듯한 그 특유의 자세에 피식 웃은 용성이 와인드업 자세를 취한다.
족히 시훈의 허리 두께는 될만한 좌측 허벅다리를 가볍게 차 올린 용성이 힘있게 오른팔을 휘둘렀다.
뻐어어어어어억!
털썩
둔탁한 미트소리와 함께 바로 코 앞을 스쳐 지나가는 공을 피하기 위해 몸을 젖혔던 시훈이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볼!"
심판의 외침과 함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시훈이 마운드 위의 용성을 노려봤다.
'저 새끼가...!'
고의성이 짙은 위협구에 시훈이 속으로 욕지꺼리를 내뱉었다.
190cm가 넘는 용성의 릴리스 포인트는 2m가 훌쩍 넘었다.
그 위치에서 마치 찍어 누르듯 뿌려지는 공이 시훈에게 엄청난 위압감을 줬다.
부웅~ 부웅~
"스트라잌! 아웃!"
"샹!!!!"
팍!
맥없이 삼진 아웃 당한 시훈이 배트를 바닥에 휘둘렀다.
천천히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는 시훈을 바라보며 2번 타자, 2루수 조승현이 타석으로 걸음을 옮긴다.
"생각했던 것 보다 더 빨라"
스쳐 지나가며 귓가로 중얼거리는 시훈의 목소리에 승현이 쓰게 웃었다.
'어지간히 분한가 보네'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는 시훈의 어깨가 축 처져 있다.
평소 긍정과 밝음으로 똘똘 뭉친 시훈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다.
'분위기 반전이 필요하겠군'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가라앉은 더그아웃 분위기에 승현이 눈을 빛내며 타석에 들어선다.
어깨 위에 살포시 얹어 놓은 듯한 자세로 배트를 쥐고 가라앉은 눈빛으로 마운드 위를 바라보는 승현을 발견한 용성이 피식 웃었다.
'언제까지 침착할 수 있을까?'
속으로 중얼거린 용성이 오른발을 디딤발 삼아 가볍게 와인드업 한다.
"후웁~"
이를 악물고 흩뿌린 용성의 공이 높게 위치한 포수의 미트를 향해 날아간다.
뻐어어어어어억~
120km는 충분히 넘을 것 같은 빠른 공이 코 앞으로 지나감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승현이 다시 타격자세를 취한다.
"볼!"
심판의 외침과 동시에 용성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겁 대가리를 상실한 놈인가?'
중학생 급에서 용성의 공은 그 빠르기와 구속이 최상위권에 속했다.
특히나 또래 아이들에 비해 훨씬 높은 곳에서 흩뿌려지는 공은 상대 선수들에게 겁을 주고도 남았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용성이 다시 와인드업 자세를 취한다.
팍!
용성이 힘차게 땅을 박참과 동시에 손 끝에서 흩뿌려진 공이 정중앙의 미트를 향해 정확히 날아간다.
까앙!
경쾌한 알루미늄 배트 소리와 함께 용성이 급히 시선을 돌린다.
"파울!"
아슬아슬하게 파울선 바깥으로 공이 떨어지고 뒤이어 귓가를 때리는 심판의 목소리에 용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짧게 심호흡한 용성의 표정이 신중하게 변해간다.
*******************
'...일났군'
워낙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뛰어난 놈이라, 경기 초반에 자만하고 있을 때 한방 먹여주는 것이 승현의 계획이었는데 실패했다.
'배트가 밀린다'
손 끝에서 전해지는 저릿저릿한 통증에 인상을 찌푸린 승현이 잠시 손을 꼼지락거렸다.
'이 정도 구위를 받아칠 수 있는건 태수정도... 나머지는 공에 배트조차 대지 못할 확률이 높다'
빠르게 상황판단을 끝낸 승현이 눈을 빛내며 타격자세를 취한다.
'그렇다면 힘이 빠지는 후반을 노린다. 그 전에...'
꽈아악
속으로 중얼거린 승현이 배트를 쥔 손에 강하게 힘을 줬다.
'철저히 괴롭혀주마!'
휙! 뻐어어억~
"볼!"
휙! 까앙!
"파울!"
휙! 까앙!
"파울!"
파악!
마운드 흙을 짜증스럽게 걷어차는 용성을 보며 승현이 다시 타격자세를 취했다.
휘익! 뻐어어억~
"볼!"
2S 3B 풀카운트에서 힘차게 와인드업 자세를 취한 용성이 6구 째 공을 뿌린다.
휘익! 까앙!
"파울!"
"씨발!"
심판의 외침과 동시에 용성이 욕지꺼리를 내뱉는다.
손 끝에서 전해지는 아릿한 통증에도 살포시 미소 지은 승현이 다시 타격자세를 취했다.
그 미소를 용케 발견한 용성의 눈에 순간 기묘한 빛이 스쳐 지나간다.
곧이어 투구 자세를 취하는 용성의 왼쪽 다리가 이전과 달리 조금 더 높게 차올려진다.
그리고...
휘익!
용성의 손 끝에서 떠난 공이 정확히 승현을 향해 날아가자 순간 경기장 내 모든 사람들이 눈을 크게 떴다.
퍼어어어억!
용성의 공에 정통으로 가격당한 승현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다.
순간 용성의 얼굴에서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목격한 태수가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온다.
"야이 개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