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무리겠군"
타석으로 올라온 용민이 퉁퉁 부어오른 진감의 오른팔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던질 수 있습니다"
진감의 말에 용민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당장 눈으로 보이는 것만 해도 이렇게 부어올랐는데 대체 뭘 더 던질 수 있다는거야!?"
"그래, 진감이. 너무 무리하지 마라. 투수가 니 하나만 있는 것도 아이고..."
용민의 말을 옆에 있던 태수가 받았다.
"교체하자"
말을 마친 용민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진감이 덥썩 용민의 손목을 잡았다.
"...?"
"던지게 해주십시오. 코치님"
"아, 안돼! 뼈에 이상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 꼬라지로 계속 공을 계속 던지겠다고? 절대 안돼!"
"코치님. 꼭 던지고 싶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중얼거리는 진감을 보며 용민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야! 박진감이! 이번 대회를 끝으로 은퇴할거야!? 아니잖아! 앞날이 창창한 놈이 왜 이렇게 고집을 피워! 나중에 돈 많이 받아서 메이저리그도 가고 사이영상(Cy Young Award)도 받아보고 해야할 것 아냐!?"
용민의 말에 잠시 눈을 감았다 뜬 진감이 입을 열었다.
"메이저리그... 가고 싶습니다. 사이영상은 물론 MVP, 더 나아가 제가 갈 팀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시키고 싶습니다"
진감의 말에 용민이 반색한다.
"그래. 그러니까 더더욱 여기서는 무리하면 안되지. 어서 교체를..."
"그래서 더 던지고 싶습니다"
"뭐?"
진감의 말에 용민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겨우 이정도 부상으로 여기서 교체당하면... 그 꿈들을 이룰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게 무슨..."
"코치님이 말씀하셨죠? 고작 이 경기를 끝으로 야구선수 생활을 은퇴하고 싶냐고"
"..."
"그런데 저는... 코치님이 말씀하신 고작 이 경기를 여기서 포기하면 절대 메이저리거가 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말을 마친 진감이 더그아웃을 돌아본다.
"이렇게나 저를 믿고 따라와준 친구들을... 중학교 3년간 흘린 땀방울이 드디어 결실을 맺을 이 마지막 경기를 여기서 포기하면... 그런 제가 과연 야구선수로서 성공할 수 있을까요? 친구들의 기대를 져버린 제가..."
"야임마! 물론 심리적인 충격이 오래갈 수는 있겠지만 그건 회복할 여지라도 있지! 너 촉망받는 유망주가 한순간에 몰락하는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뭔지 알아!? 바로 지금 딱 니 상황이야. 싱싱한 몸 하나 믿고 멋 모르고 마구 던져대다가 결국 고질적인 부상을 안게 되고, 그 부상 못 고쳐서 선수생활 마감하는 놈들 이 바닥에 태반이야! 아직도 모르겠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용민이 침을 튀겨가며 말을 이었다.
"코치님, 너무 흥분하신 것 같네예..."
태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자 용민이 말한다.
"이 새끼 이거 당장 교체시켜!"
"..."
"건방진 자식. 지 아니면 경기 지는줄 알고 있어. 그렇게 친구들의 믿음이 고마우면 그 친구들을 믿어줄줄도 알아야지"
"...!"
용민의 말에 진감이 눈을 크게 떴다.
"너 말고 다른 투수 애들은 다 호구야!? 말해봐, 박진감이!"
"그건..."
"그 쯤 하지"
순간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용민이 멈칫한다.
"감독님..."
태수의 중얼거림을 들은 용민이 몸을 훽하고 돌렸다.
"아니, 감독님! 임마 이거 팔 좀 보십쇼. 심하면 뼈에 금이 갔을지도 모를 놈이 자꾸 던지겠다고 고집을 피웁니다. 감독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혹사당한 유망주의 말로를..."
"..."
용민의 말에도 성곤이 입을 다문 채 가만히 진감을 바라보기만 했다.
잠시 후...
"진감아"
"예, 감독님"
고개를 숙인 채 대답하는 진감을 보며 성곤이 말을 잇는다.
"더 던질 수 있겠냐?"
"...감독님!"
성곤의 물음에 경악한 용민이 큰 소리로 외쳤다.
"사람은 일생동안 3번의 큰 기회가 찾아온다고 한다"
용민의 외침을 한 귀로 흘린 성곤이 말을 이었다.
"지금 이 경우에는 기회(機會)라는 단어 보다는 위기(危機)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겠지만... 이 경기를 포기한다는 선택을 함으로써 니가 큰 부상을 피할 수 있다면 이 또한 기회로도 볼 수 있겠지"
"..."
입을 다문 채 말 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진감을 보며 성곤이 계속 말을 잇는다.
"그런 기회가 왔을 때 사람은 선택이란 것을 한단다. 찾아온 기회를 잡느냐, 잡지 않느냐"
"..."
"인생에 볼넷은 없다. 찾아온 기회를 기다리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지. 해서, 너는 선택을 해야한다"
"어떤..."
"날아오는 공을 치고 나가서 기회를 잡던가, 시원하게 삼진을 당하던가"
"..."
"이 경우에는 경기를 포기하는 것이 너에게는 또 다른 기회가 될테니까... 치고 나간다는 선택이 경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겠구나"
말을 마친 성곤이 씁쓸하게 웃었다.
"모순이지? 공을 치고 나가는게 경기를 포기하는 거라니... 하지만 지금 니 부상은 그런 식으로 표현할 정도 심각하다"
힐끔 진감의 오른팔을 바라본 성곤이 말을 잇는다.
"개인적으로 나는 니가 이 쯤에서 다음 친구에게 공을 넘겨줬으면 좋겠구나"
"...!"
"너희 아버지와 내가 한 약속...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
무언가 말하려던 진감이 이어지는 성곤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바로 교체 준비하겠습니다. 감독님"
말을 마친 용민이 급히 더그아웃을 향해 몸을 돌리려고 할 때 진감이 입을 열었다.
"감독님"
"...?"
"아까 말씀하셨죠? 기회가 왔을 때 사람은 선택을 해야 한다고. 기다리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안된다고"
"..."
"안타를 치고 나가던가, 시원하게 삼진을 당하던가. 이 두가지와 볼넷의 차이점은..."
잠시 말 끝을 흐리던 진감이 성곤의 두 눈을 마주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배트를 휘둘러는 본다는 것"
"...!"
"휘둘러 보지도 않고 경기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만약 두 타자를 연속으로 루상에 내보내게 된다면... 그 때는 저도 더 이상 고집피우지 않겠습니다"
"..."
"부탁드립니다. 감독님"
자리에서 일어난 진감이 고개를 꾸벅 숙이자 그 모습을 성곤이 가만히 바라본다.
피식
"넌 니 아버지를 많이 닮았구나"
"...예?"
고개를 들어올린 진감이 멍청한 표정으로 반문한다.
"하지만 나도 감독으로서 입장이라는 것이 있다. 지금부터 어떻게 경기를 운영해 나갈 것인지 그 계획정도는 들었으면 한다"
성곤의 말에 잠시 왼 손을 쥐락펴락하던 진감이 입을 열었다.
"왼 손으로 던질 생각입니다"
"...!"
진감의 대답에 순간 눈을 크게 뜬 성곤이 허허하고 웃었다.
"자신있나?"
"예!"
큰 소리로 대답하는 진감을 바라보던 성곤이 말을 잇는다.
"딱 2이닝이다. 만약 그 사이에 2실점해서 승부가 연장전으로 접어든다면... 바로 투수를 교체할 것이다"
"감사합니다!"
말을 마친 성곤이 더그아웃을 향해 걸음을 옮기자 잠시 진감을 바라보던 용민이 급히 뒤따른다.
"감독님, 정말 괜찮겠습니까?"
"..."
"물론 왼 손으로 던지면 부상이 더 심해질 확률은 적겠지만... 지금까지 오른 손으로만 야구를 해 온 진감이가 왼 손이라니..."
용민의 말에 성곤이 허허 웃으며 반문한다.
"뭐가 걱정인가?"
"예?"
"두 타자를 연속으로 루상에 보내면 교체를 수용하겠다. 나는 분명 그렇게 들은 것 같은데 아닌가?"
"그건..."
"아니다 싶으면 바로 교체하면 되는 것이네. 일단... 지켜보지"
성곤의 말에 잠시 마운드를 돌아본 용민이 짧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한다.
"예, 감독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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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감이 부상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1루로 걸어 나가자 상대 더그아웃에서 다소 소란스러움이 있었으나 용성이 나머지 타자들을 모두 삼진으로 돌려 세우는 위력을 과시함으로써 그 소란스러움은 금새 잦아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6회말 마산중학교의 공격.
"플레이!"
심판의 외침과 동시에 마운드에 흙을 고르던 진감이 오른 손에 글러브를 낀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이런 양 손 투수들을 위한 벤디트 룰이 있었지만 국내 중학리그에서는 아직 도입되지 않은 규정이다보니 진감의 이런 행동을 아무도 문제삼지 않았다.
단지, 다시 한 번 마산중학교 선수들의 소란스러움이 있었을 뿐...
짧게 심호흡한 진감이 글러브를 끼지 않은 왼 손을 쥐락펴락한다.
'실제 경기에서 이 손으로 던지는 건 처음...'
묘한 긴장감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은 진감이 부드럽게 와인드업한다.
오른쪽 다리가 하늘을 향해 90도 각도로 곧게 뻗는 기묘한 자세.
그리고...
순간 있는 힘껏 땅을 박찬 진감의 왼 손에서 던져진 공이 미트를 향해 쏘아져 나간다.
뻐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마치 가죽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스트라이크 존보다 약간 위에 박혀드는 공을 보며 잠시 멈칫하던 심판이 더듬더듬 말을 내뱉는다.
"보...볼!"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윽고 흥분에 찬 관중들의 함성 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메운다.
잠시 후 스피드 건에 기록된 진감의 구속이 전광판에 떠오른다.
< 140k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