삑.. 삑.. 삑.. 삑..
"으윽...."
규칙적으로 울리는 기계음을 들으며 간신히 눈을 뜬 진감의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새하얀 천장이었다.
"여기는..."
수 차례 눈을 깜빡여 내리 누르는 눈꺼풀을 가까스로 들어 올린 진감이 누운 채로 주변을 휘휘 돌아봤다.
넓은 방 안에 자신이 누워 있는 침대 하나만 덩그러니 위치해 있었고 손등에는 링거 주사기가 꽂혀 있다.
마지막으로 코 끝을 강하게 찌르는 프로포폴 냄새.
"병원? 윽..."
몸을 일으키려던 진감이 순간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 잡으며 다시 몸을 뉘였다
그 때...
덜컥
입원실 출입문이 열리고 병실 안으로 들어오던 간호사가 몸을 일으킨 진감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다.
"정신이 드세요? 불편한 곳은요?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과장님! 과장님!"
큰 소리로 외치며 병실을 뛰쳐나간 간호사가 잠시 후 중년의 의사와 함께 병실로 들어왔다.
"학생, 정신이 드나?"
"예? 예, 예..."
의사가 다소 놀란 눈초리로 묻자 진감이 얼떨결에 대답했다.
"저.. 물 좀"
진감이 갈라지는 목소리로 갈증을 호소했다.
"여기요!"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간호사가 진감에게 물을 가져다 줬다.
꿀꺽, 꿀꺽
"크으..."
"어디 불편하거나 아픈 곳은 없나?"
진감이 몸을 이리 저리 돌려보더니 대답한다.
"제가 얼마나 누워있었죠?"
"오늘로 3일 째야. 위험할 뻔 했지."
의사의 대답에 진감이 눈을 크게 뜬다.
"제가 3일이나 누워있었다구요!? 경기... 경기는!?"
"경기라니...?"
의사가 의아한 얼굴로 반문하자 옆에 있던 간호사가 의사의 귓가에 소근거렸다.
"그 부분은 자네 보호자가 직접 얘기해야 할 것 같군"
"예?"
"학생 아버지와 학교에 학생이 깨어났다는 사실을 알렸으니까... 곧 오실거야"
"아..."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진감이 의식을 잃기 전 기억을 떠올린다.
'7회 초, 타석에서 윤용성의 공에 집중하고 있다가 몸 쪽 높게 파고드는 공에 그대로...'
당시의 기억을 떠올린 진감이 순간 지끈거리는 통증에 머리를 부여잡았다.
"괜찮나?"
"...제 부상이 심각한 수준이었나요?"
"위험했지"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의사를 보며 진감이 멈칫한다.
"저... 설마 다시는 야구를 하지 못한다던가..."
불안한 눈빛으로 중얼거리는 진감을 보며 의사가 피식 웃었다.
"어디서 본 건 있군. 물론 자네는 야구를 할 수 없네"
"예!?"
큰 소리로 반문한 진감이 삐걱대는 몸을 벌떡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아, 아! 그냥 있게.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네. 충격받은 부위가 부위다 보니까... 머리 뼈에 금이 가면서 뇌진탕이 왔지. 다행히 뇌출혈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아서 지금 자네가 이렇게 정신을 차린 것이고"
"아..."
안도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뱉는 진감을 보며 의사가 짐짓 표정을 굳힌다.
"야구를 상당히 좋아하나 보군"
"예?"
의사의 말에 진감이 곰곰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과연 내가 야구를 좋아하는가? 한 평생을 아버지를 괴롭힌 야구, 감독님의 권유로 어쩔 수 없이...'
순간 진감이 멈칫한다.
'어쩔 수 없이?'
이내 진감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어쩔 수 없이 야구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감독님의 권유가 있었지만 처음 야구부원들이 모두 지켜보는 앞에서 공을 던졌을 때의 그 짜릿함, 그 전율을 잊지 못해 야구를 시작하게 된 것이니까.
"예. 좋아합니다"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진감을 보며 의사가 말을 잇는다.
"사고 당시 외관상으로 머리에 피를 흘렸고 엑스레이 결과 머리 뼈에 금이 가 있는 상태였지. CT도 찍어보고 정밀검사도 해봤는데 학생 머리에서 뇌출혈같은 특별한 이상징후는 발견되지 않았지. 그런데도 3일이나 의식을 잃고 있으니 주변 사람들이 많이 놀랐다네"
"아..."
"위험한 부위에 순간적으로 받은 충격이 컸겠지. 앞으로 6개월 간 야구는 절대 금지네"
"..."
자신의 말에 침묵을 지키는 진감을 보며 의사가 말을 잇는다.
"대답안하나? 약속하지 않으면 6개월 동안 퇴원은 없네"
"알겠..."
한숨을 내쉬며 진감이 대답하던 그 때, 병실 문이 벌컥 열리며 한 사람이 뛰어온다.
"진감아!"
"아빠..."
빠르게 다가온 종범이 진감의 손을 꼬옥 쥐었다.
"괜찮... 괜찮니?"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오는 종범을 보며 진감이 쓰게 웃었다.
"괜찮아요. 걱정 시켜 드려서 죄송..."
뚝, 뚝
종범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발견한 진감이 입을 다물었다.
"미안... 미안하다"
"..."
"너까지 야구를 시키는게 아닌데... 미안하다, 아빠가 미안해. 내 욕심 때문에... 이제 그만..."
자신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진감을 보며 종범이 멈칫했다.
"...진감아?"
"아니에요"
"...?"
"아빠 때문에 야구를 하게 된게 아니라구요"
"..."
"아빠는 당신의 꿈을 끝내 이루지 못한 한(恨)을 제가 풀어주기 위해 야구를 시작한 것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그건 아니에요"
"그럼..."
진감이 양 손을 들어 종범의 눈 앞을 향해 내밀었다.
"...!"
진감의 양 손으로 시선을 돌린 종범이 순간 눈을 크게 떴다.
지금 아들의 손에 있는 자국들을 종범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너 굳은살이..."
지금 진감의 손에 있는 굳은살은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있는 그런 종류가 아니다.
하루에 족히 수 천번은 배트를 휘두르고, 공을 던져야 저 정도 굳은 살이 생길까?
종범이 멍하게 자신의 손을 바라보고 있자 진감이 입을 열었다.
"야구가 좋아요"
"...!"
"처음 공을 던졌을 때 그 짜릿함. 그 전율을 저는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친구들과 함게 던지고, 치고, 달리는 그 단순한 운동이... 저는 정말 좋아요"
말을 마친 진감이 진심으로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자 그 모습을 발견한 종범이 움찔 몸을 떨었다.
처음이었다.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 자신의 앞에서 저런 표정을 짓는 것은...
그 때 또 다시 병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일단의 무리가 들이닥쳤다.
"박진감이!"
"진감아!"
가장 먼저 자신에게 다가온 주전포수 태수부터 코치님, 감독님, 그리고 함께 운동장을 누빈 친구들.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여 진감이 환하게 웃었다.
"저는 정말 야구가 좋아요"
"니 괜찮나 박진감이!?"
태수의 물음에 진감이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이지. 나 튼튼해"
"하아,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나? 니 누워있는 동안 내 꼬추가 시훈이만해져 있었다이가"
"아니 근데 이 새끼가..."
옆에 있던 시훈이 발끈했다.
"야 까봐. 시발, 보자보자 하니까 사람을 보자기로 아나. 어이가 없네. 함 보자. 니 꼬추가 진짜 내만한가!?"
"아! 마! 놔라! 안 놓나! 옆에 간호사님 있다이가! 마!"
자신의 바지춤을 붙잡은 시훈이 그대로 바지를 벗겨내려고 하자 태수가 필사적으로 막으며 외쳤다.
"호호호호"
"하하하하하"
훈훈한 분위기 속에 웃음소리가 병실을 가득 채우자 잠시 미소 짓고 있던 진감이 입을 열었다.
"태수야"
"아, 잠깐만 진감이. 마 쥐방울 새끼야! 좀 놔라! 내가 졌다. 함만 봐대! 좀!"
"아 꺼져. 오늘은 내가 꼭 니 꼬추를 봐야 겠다"
"제발! 앞으로 절대 안 놀릴게. 어! 함만, 함만. 어?"
"까불고 있어, 새끼가"
이내 자신의 바지춤에서 손을 놓는 시훈을 보며 한숨을 내쉰 태수가 입을 열었다.
"그래, 진감이. 왜? 머리 괜찮제?"
"내 별명이 돌머리야"
진감의 말에 태수가 피식 웃었다.
"그 이쁜 쌍판에 상처났으모 가씨나들이 기겁을 했을긴데. 다행이다"
"태수야"
조용한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진감을 보고 태수가 움찔했다.
"...어?"
"경기는... 경기는 어떻게 됬어?"
진감의 물음에 일순간 병실이 조용해졌다.
잠시 뜸을 들이던 태수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경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