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다저스 산하 트리플A 오클라마호마 시티 구단 경기장.
지역 라이벌인 샌프란시스코 산하 트리플A 구단인 새크라멘토 리버캣츠와의 주말경기.
마이너리그 경기임에도 많은 관중들이 자리를 채운 가운데 승부는 3:12라는 큰 점수 차로 리버캣츠가 앞서고 있었고 7회 말, 오클라마호마 시티의 공격으로 이어진다.
팽팽한 접전이 속에 오클라마호마 시티 감독이 투수교체를 요청했다.
잠시 후 키 190cm가 조금 안될 것 같은 체구의 익숙한 남자가 마운드 위로 올라간다.
지지직 거리는 스피커 소리와 함께 투수 교체를 알리는 사회자의 목소리가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 교체투수, 넘버 99 진감 박 ]
그을린 황색피부에 검은 눈동자를 가진 동양인이 마운드에 올라서자 일부 관중들이 야유를 보내기 시작한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썩 꺼져! 옐로우 몽키!"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KBO 7시즌 통산 방어율 1.87, 선발 최저 방어율을 기록하고 리그 최약체로 평가받던 소속팀을 20년만에 한국시리즈 준우승까지 올려 놓은 투수.
시리즈 직후 연봉 총액 6년 5000만 달러에 마지막 해 옵트아웃 권리까지 포함하는 최고의 대우를 받고 메이저 리그 명문 구단 중 하나로 손꼽히는 LA다저스에 입단한 투수.
시즌 첫 해, 어깨 부상으로 수 십일을 쉬었음에도 불구하고 28경기에 선발 등판해 172이닝 12승 6패, 평균 자책점 2.19를 기록하며 한국인 최초로 NL(내셔널리그) 신인왕을 거머쥔 투수.
그리고...
미국으로 넘어온지 4년차가 되는 현재, LA다저스 산하 트리플A구단인 오클라마호마 시티에서 패전 처리용으로 이용되고 있는 투수.
마운드 위의 동양인 투수, 진감이 이제는 관중들의 야유소리가 익숙한 듯 한 귀로 흘리며 배터리를 이룬 포수를 바라본다.
키가 2m는 훌쩍 넘을 것 같은 동양인 포수가 오른 손으로 미트를 팡팡 두드리며 자신만 믿으라는 듯 씨익 웃고 있다.
"진감이! 신경쓰지 말고 팍팍 던지라! 다 받아줄게!"
동양인 포수, 태수가 큰 소리로 고함쳤다.
왼손에 글러브를 낀 채 오른손으로 공의 실밥을 매만지던 진감이 심판의 플레이볼 사인과 동시에 상대 팀 타자를 직시했다.
이윽고 와인드업 자세를 취한 그가 오른손에 쥔 공에 악력을 가했다.
발바닥으로 마운드를 힘껏 박찬 진감이 팔을 휘두름과 동시에 손을 떠난 공이 포수의 미트를 향해 빠르게 질주했다.
그 순간...
따아아아아아아아아악~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공이 외야로 멀리, 멀리 뻗어 나갔다.
********************
LA에 위치한 한인식당.
구석에 위치한 테이블에서 익숙한 얼굴의 두 남자가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진감이"
식당 벽 쪽에 앉아 있던 남자, 태수의 부름에 진감이 고개를 들었다.
"괜찮다. 호랑이는 끝까지 호랑이다. 분명히 다시 치고 올라갈 수 있을기다"
"..."
입을 다문 채 침묵을 지키는 진감을 보며 태수가 멋쩍게 웃었다.
"내 니가 이글쓰를 준우승 시킬 때 진짜 눈이 튀어 나올 뻔 했다아이가. 그것 뿐이가? KBO리그 출신으로는 최고의 계약조건으로 메이저 리그에 직행했제, 거기다가 한국인 출신으로는 최초로 신인왕까지! 와 진짜 만년 마이너 포수인 내는 상상도 못할..."
"태수야"
순간 자신을 부르는 진감의 목소리에 태수가 입을 다물었다.
"나 강등당했다"
"...!"
진감의 말에 태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뭐라고?"
"내일 당장 짐 싸서 더블A로 내려가래. 구단에서는 애물단지인 나를 논웨이버 공시하고 방출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지만... 잭 코치 덕분에 그건 피한 것 같다"
"..."
진감의 말에 태수가 그대로 굳은 채 입을 다물었다.
"태수야"
"..."
"나 그냥 한국... 돌아갈까?"
콰당!
순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태수가 큰 소리로 외친다.
"그게 말이가!?"
"..."
"내셔널리그 신인왕까지 먹은 놈이 고작 3년 마이너 생활했다고 뭐 한국? 씨팔! 쪽팔리지도 않나? 지금 한국 가면? 뭐 누가 알아줄 것 같나?"
"..."
"아~ 알아주기는 하겠네. 기자들이 아주 그냥 좋다고 니 기사 쓰기 바쁘긋다. 기사제목은 '몰락한 메이저리거, 국내로 쫓겨나다' 이 정도가 딱 적당하겠네!"
여전히 입을 다문 채 침묵하는 진감을 보며 태수가 큰 소리로 외친다.
"마! 내는 10년 째 마이너리거다! 초 엘리트 출신인 니랑 다르게 내는 메이저 리그 문턱도 못 밟아봤다! 이제 꼴랑 3년 뛴 놈이 뭐 국내복귀? 씨팔! 그래 끄지라! 한심한 새끼"
"나보고 어쩌라고!"
콰당!
순간 의자가 뒤로 넘어지며 진감도 벌떡 일어났다.
"...!"
이전에 없던 진감의 반응에 태수가 눈을 크게 떴다.
"나는...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줄 알아? 이 어깨!"
진감이 자신의 왼쪽 어깨를 오른 손으로 툭툭 두드렸다.
"이 어깨가 병신이 됬는데 대체 나보고 어쩌라는거야! 금방 고쳐질거라고? 오른손으로도 충분히 메이저리그에서 통할 거라고? 개소리!"
진감이 무너지듯 바닥에 주저 앉았다.
"난 그저... 잠깐 반짝한 유망주, 퇴물일 뿐이라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흐느끼는 진감을 태수는 멍하니 바라만 볼 수 밖에 없었다.
********************
비틀, 비틀
자정이 다 되어 가는 시각, 야경이 사방을 환하게 비추는 LA의 길거리에서 술에 만취한 진감이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비틀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툭
순간 자신의 어깨를 툭하고 지나가는 동양인을 발견한 흑인 남성이 팍하고 인상을 찡그렸다.
"왓 더!"
빠르게 진감에게 다가간 흑인 남성이 그대로 진감의 멱살을 쥐어 들어 올렸다.
"헤이 맨, 죽고 싶어!?"
흑인 남성이 무어라고 소리쳤지만 듣지 못한 듯 초점 없는 눈빛으로 진감이 흑인 남성을 바라본다.
그런 진감을 잠시 바라보던 흑인 남성이 험악하게 인상을 구긴다.
"쉣!"
파악!
욕지거리를 내뱉은 흑인남성이 그대로 진감을 뒤로 밀치며 멱살을 놓았다.
비틀, 비틀, 비틀, 비틀
진감이 순간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찢어질 듯 커진 눈동자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흑인 남성, 귓가를 시끄럽게 울리는 트럭의 경적소리, 강렬한 라이트 불빛.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무언가에 부딪히는 듯한 느낌과 함께 몸이 붕 뜨는 듯한 느낌, 빠르게 튕겨져 나간 진감의 몸이 바닥에 한 차례 충격하더니 저 멀리 나가떨어졌다.
그리고...
조금씩 흐릿해져가는 시야 속에서 진감은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