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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징 패스트볼
작가 : 조선생
작품등록일 : 2017.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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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우완투수
작성일 : 17-07-27     조회 : 287     추천 : 0     분량 : 4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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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를 타지 않고 집까지 걸어가기로 마음먹은 진감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카페에서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기 시작한다.

 

 "저는...용무고등학교에는 진학할 생각이 없습니다"

 "...!"

 이어지는 진감의 말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정준호가 눈을 크게 떴다.

 "...왜? 대체 왜..."

 "진학하고 싶은 고등학교가 있습니다"

 콰당!

 순간 준호가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분명... 분명히 이전에 만났을 때는 진학할 학교를 정하지 않았다고 했지 않나?"

 집중되는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중얼거린 준호가 진감을 바라본다.

 갑작스러운 준호의 행동에 놀랄 법도 하건만 진감은 익숙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숭례고등학교에 가고 싶습니다"

 "숭례고? 숭례고라면..."

 말 끝을 흐리던 준호가 팍하고 인상을 찡그렸다.

 "손시훈이랑 조승현이가 가기로 한 그 숭례고?"

 사실 준호는 개승중학교에서 진감 뿐만 아니라 시훈과 승현, 심지어 주전포수인 태수까지 눈독들이고 있었다.

 "예"

 "친구놀이라고 하고 싶은거냐?"

 "아니요"

 "그럼 대체 왜! 숭례고 야구부는 최근까지 전국대회에서 우승은 커녕 8강에도 들지 못하고 있는 약소팀이다! 차라리 우리 학교에서 니 야구 커리어를 쌓는 것이 더..."

 "감독님"

 말을 잇던 준호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진감을 바라본다.

 "감독님은 제가 용무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하나요?"

 "물론이지! 내가 그렇게 만들어 주겠다! 메이저리거? 나만 잘 따라온다면 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을 남길 수 있는 투수로..."

 "박광현 선배"

 순간 준호가 눈을 부릅 떴다.

 "저는 박광현 선배처럼 되고 싶지 않습니다"

 "너...너..."

 순간 말문이 막힌듯 입을 뻐끔거리는 준호를 바라보며 진감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죄송합니다. 감독님의 제안은 거절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진감이 그대로 걸음을 옮겨 카페 밖으로 나갔다.

 

 정준호 감독과의 대화를 떠올린 진감이 씁쓸하게 웃었다.

 더 나중에 이야기지만 회귀 전 진감이 마이너리그에서 패전투수로 생활하고 있을 무렵, 사람들은 용무고등학교를 가리켜 '투수 유망주들의 무덤' 이라고 불렀었다.

 매년 전국대회에서 뛰어난 성적을 올리는 야구 명문고등학교임에도 그런 별명이 붙은 이유는 용무고등학교 출신 투수들의 선수생명이 상당히 짧았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메이저리그 신인왕 출신에서 한 순간에 마이너리그 패전투수로 몰락한 진감과 진감의 두 해 선배인 박광현이었다.

 

 박광현.

 용무고등학교 1학년 때 최고구속 94마일(약 151km)의 위력적인 공을 뿌려대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던 투수 유망주.

 졸업도 하기 전에 그저그런 투수로 몰락하여 평생을 2군에서만 보내게 되는 투수.

 그 때 당시에는 몰랐으나 지금의 진감은 박광현이 몰락한 이유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정준호 감독은... 그저 메이저리거 시절 자신의 명성을 끝까지 이어나가기 위해 학생들을 소모품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진감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아쉬울 건 없다"

 회귀 전에는 메이저리거 대투수 출신인 정준호를 존경했고, 그의 노하우를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은 마음에 용무고등학교를 선택했다.

 지금의 진감은 정준호의 노하우는 물론이고 7년간의 KBO생활, 4년간의 미국생활을 통해 축적한 노하우까지 모조리 머릿속에 박혀있는 상태다.

 

 모르는 사람들은 진감이 타고난 재능으로 그 위치까지 올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상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구보다 피를 토하고 뼈를 깎는 노력을 했던 진감이었다.

 고등학교 진학 이후 줄곧 좌완 투수로 선수생활을 이어온 진감에게 왼쪽 어깨 재기불능 진단은 그야말로 청천벽력(靑天霹靂)이었다.

 메이저리그 첫 해 신인왕을 수상한 이후 사이영상, 투수 올스타, MVP,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남기는 상상까지 하던 진감은 그 시점에서 절대 야구를 포기할 수 없었고 남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노력 끝에 중학생 때 기억을 살려 우완투수로 전향하는데 성공한다.

 실제로 왼쪽 어깨가 완전히 망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구단에서 진감에게 방출통보를 했음에도 그 상황에서 우완 투수로 전향하여 트리플 A까지 올라가는 쾌거를 이루어 냈으니까.

 

 '실수는 한 번이면 족하다'

 속으로 중얼거린 진감이 왼쪽 손을 꼼지락거렸다.

 아직까지 자신이 과거로 돌아온 사실이 믿기지 않는 진감이었지만 이것이 현실이라면 하늘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하고 미래를 위해 철저히 준비할 계획이다.

 '몸이 완전히 성장하는 것은 고등학교 3학년 초, 그 때 까지는...'

 

 진감이 오른손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중학생 때 까지만 하더라도 진감은 자신이 역사에 남을 스위치 투수(양손투수)로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무렵에는 오른손으로 던지는 공만으로도 상대 타자들을 압도할 수 있었고, 결국 개승중학교를 전국중학야구선수권대회 결승전에까지 올려놓았으니까.

 물론 마이너리그에서의 3년은 진감이 현실을 깨닫게 하기 충분했다.

 직구 최고구속 85마일(136km), 평균구속 83마일(133km) 그나마 장점은 정교한 제구력.

 마이너리그였지만 드넓은 미국 땅에 괴물같은 타자들은 셀 수 없이 많았고, 그런 타자들에게 진감의 공은 치기 좋은 배팅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 때부터 진감은 강력한 구위로 상대타자들을 찍어누르던 강속구 투수에서 기교파 투수로 완벽하게 탈바꿈했다.

 의도적인 1)딜리버리(delivery, 투수의 루틴)로 상대 타자를 속이고, 2)디셉션을 더 교묘하게 펼쳤다.

 연이은 견제구로 상대 타자를 흥분시키기도 하고, 적절한 시기에 타임을 요청하여 한 박자 쉬어가기도 했다.

 왕따 시절 터득한 눈치는 관찰력이라는 이름으로 변모했고 끊임없이 상대 선수들을 분석하고, 또 분석했다.

 그런 경험들은 진감이 우완투수로 숭례고등학교에서 살아남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진감이 숭례고등학교를 선택한 이유도 이 경험과 관련이 있었다.

 "수비력이 뛰어난 내야진이 뒤를 받쳐주고 있다면 방어율은 매우 낮아지니까"

 조용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진감이 시훈과 승현을 떠올리고는 피식 웃었다.

 "오랜만에 만나러 가볼까"

 말을 마친 진감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

 

 집에 도착한 진감이 곧바로 휴대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들, 왜?"

 잠시 후 수화기 넘어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옅게 미소지은 진감이 말을 잇는다.

 "아버지, 저 용무고등학교는 안가기로 했어요"

 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말이 들려오지 않자 진감이 휴대폰 액정을 바라본다.

 "끊긴건가?"

 "...아들?"

 "예?"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진감이 반문했다.

 "징그럽게 아버지? 아버지라니? 이제 고등학교 간다고 그러는거야, 지금?"

 "..."

 "나 지금 닭살 돋았다. 그냥 하던대로 해라"

 "...네, 아빠"

 진감의 대답에 만족한듯 종범이 밝은 목소리로 되묻는다.

 "그런데... 용무고등학교에는 진학하지 않기로 했다고?"

 "예"

 진감이 고민도 없이 대답하자 종범이 곧바로 말을 잇는다.

 "아들이 그런 선택을 했다면... 분명 이유가 있겠지. 아빠는 언제나 아들을 믿는다"

 종범의 말에 진감의 미소가 한층 짙어진다.

 자신의 아버지는... 당신은 항상 이랬다.

 "...감사합니다"

 "어라? 너 우냐? 목소리가 떨리는게 감동해서 울고 있는 것 같은데? 사내새끼가 막 울고 그러면 안된다. 알지?"

 "울긴 누가 울었다고 그래요"

 "아니면 말고, 아빠 일단 지금 바쁘니까 끊는다. 조금 있다가 전화할게"

 "예"

 통화가 끊긴 것을 확인한 진감이 그대로 잠시 휴대폰 액정을 바라본다.

 "꼭 행복하게 해드릴게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린 진감이 다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진감이냐?"

 잠깐의 수신음 끝에 수화기 넘어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진감이 씨익 웃었다.

 "손시훈이. 잘 사냐?"

 "누가 들으면 진짜 오랜만에 연락하는지 알겠네. 본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면서. 무슨 일이야?"

 시훈의 말에 진감이 곧바로 대답한다.

 "잠시 좀 보자. 갑자기 보고싶네"

 "이 새끼가 오늘 뭘 잘못 쳐뭇나... 오글거리니까 집어치워라. 컨셉이냐?"

 "볼거야? 말거야? 이왕이면 승현이도 같이 보고 싶은데"

 시훈의 말을 한귀로 흘린 진감이 다시 묻자 시훈이 잠시 침묵을 지킨다.

 "왜 대답이 없어? 바빠?"

 "아니 그게 아니라..."

 "뭐?"

 수화기 넘어로 머뭇거리던 시훈이 이내 말을 잇는다.

 "승현이가..."

 이어지는 시훈의 말에 진감이 눈을 크게 떴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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