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엔이요!”
“증상이 어떠시죠? 제가 의사선생님께 전달해드릴게요!”
목을 조르는 간호사가 의사가운 비슷한 옷을 입은 새오를 쳐다보며 비웃었다.
“그이만 보면요 자꾸 화가 나요. 제 아래가요. 아래가 발딱 서요!”
“네?”
“그이한테 박고 싶어요!”
“하아! 그럼 박으세요!”
“제가 정상인지 궁금해서요. 진단을 하려면 그 안에 있는 의사선생님이랑 섹스 몇 판 해야 할 것 같은데요?”
“뭐라고?”
쾅!
어처구니 없는 말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대신 진료실의 문의 문고리가 뜯겨지더니 문이 열렸다. 진료실 책상에 목이 졸려지는 새오와 목을 조르다가 멈칫한 간호사가 있었다. 간호사가 급히 고개를 돌리자 흑발에 긴 다리와 넓은 어깨를 가진 시엔이 서있었다.
“네놈 누구야!”
“자기 의사놀이는 나랑 하기로 했잖아.”
“뭐?”
간호사가 묻던 말던 시엔은 태연하게 말했다.
“왜 다른 년이랑 해? 벌써 화끈하게 하고 있는 거야?”
“이런 씨발……. 뭔 개소리……. 컥!”
간호사가 다시 세게 목을 조르자 욕을 뱉던 새오는 다시 고통스러워했다. 그걸 본 시엔은 무표정으로 다가왔고 간호사는 매섭게 째려보며 소리 질렀다.
“꺼져! 이년 죽여 버리기 전-. 커헉!”
파악!
간호사의 목덜미를 한손으로 잡아버린 시엔은 그대로 간호사를 내팽겨쳤다. 그 뒤 신음을 뱉은 새오를 내려다보았다.
“우리 자기 이렇게 다쳐서 날 진단 해줄 수 있겠어?”
“여긴……. 어떻…….”
“자기 있는 곳은 다 알지. 근데 여기서 못나가.”
시엔이 고개를 돌리자 진료실 문으로 나가려고 기어가던 간호사는 문 밖에 있는 투명한 막을 손으로 만지고 있었다.
“네 놈 뭐야!”
“기억 못하나보네?”
간호사가 분노에 찬 얼굴로 시엔을 올려다보다가 멍한 표정이 됐다.
“오랜만이야. 탄위.”
“너, 너……. 내 여의주, 여의주 내놔!”
“내놔?”
시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감히?”
“내 여의주……. 돌려줘!”
“봉인을 풀어준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지. 안 그래?”
간호사, 탄위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시엔의 눈치를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시엔은 하찮다는 시선으로 탄위를 내려다보다가 몸을 돌렸다. 책상에 누워있는 새오를 아기 안 듯 안아들었다.
“많이 아팠어?”
“이거 놔…….”
“몸이 아파서 분노를 표출할 힘이 없나보군.”
저런. 시엔이 제 혀로 새오의 입가에 묻은 피를 핥듯 닦아주었다. 그걸 괴이하다는 시선으로 보던 간호사, 탄위는 부들부들 떨었다.
“내 여의주 돌려줘! 그게 없으면…….”
“봉인을 풀어준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기진 못할망정. 내놓으라?”
“네 애비, 옥황상제가 우릴 풀어준 걸 알면 널 자식으로 인정할까?”
“그게 내가 원하던 건데. 근데 내 아버지가 옥황상제라고 누가 그래?”
“흥미로 봉인된 우리를 풀어놓고 저 여자에게 힘을 나눠줬겠지! 뒷수습을 하려고!”
“나는 별 힘이 없는데.”
시엔이 피식 웃으며 간호사, 탄위에게 손을 뻗었다. 이내 빨간 빛이 생겨나더니 뾰족한 나무 방망이로 변해 탄위에게 세게 날라갔다.
푸욱!
간호사, 탄위의 배에 박히자 입에서 작은 실뱀이 나왔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나무 방망이는 박힌 몸에서 나와 바닥에 꼬물거리는 작은 실뱀을 쾅, 하고 짓눌러 터트려버렸다.
‘두고 봐라! 니년 놈들을…….’
쉭쉭거리는 뱀목소리는 사라지고 멀쩡한 몸으로 바닥에 쓰러진 간호사만 있었다. 그걸 흘겨보던 시엔은 새오를 안아들었다.
“빨리 집으로 가요.”
“…….”
“이젠 시엔이랑만 의사놀이해요. 알겠죠?”
이런 미친새끼……. 새오는 물어볼 것이 잔뜩이었지만, 일단 피곤함과 고통에 눈을 감았다. 그러자 새오의 어깨에 황색빛이 나오더니 시엔의 어깨에 스며들었다. 그러자 시엔의 옷 속 어깨엔 화가 나있는 호랑이가 문신으로 새겨졌다.
“흠, 벌써 두 개째인가. 너무 빠른데.”
아쉽다는 듯 입을 빼죽 내민 시엔은 새오를 안아들고 진료실을 나왔다. 그러자 투명한 막도 난투한 흔적도 그대로 사라져 깔끔한 진료실만 남게 됐다. 한참 후 바닥에 쓰러져있던 간호사가 깨어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근무를 할 뿐이었다.
5. 나태와 색욕의 그림자
“또 없어졌다구? 이런.”
매현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새오가 사는 65평 방엔 밤만 되면 아무도 없게 됐다. 밤마다 거의 헐벗고 와인을 들고 방문하는 시엔은 벌써 며칠 째 허탕만 치고 있었다.
“속상해라. 일을 열심히 해도 낭군이 없으니 서운하네.”
시엔은 남편을 잃은 아낙네처럼 입술을 빼죽 내밀며 한숨을 뱉었다. 그 옆에서 시엔이 대충 넘긴 서류를 보던 천숑은 기가 막히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내가 못해준 게 어디 있다고 밖을 도는 건지……. 그렇지 않니?”
매현도 시선을 돌렸다. 차마 제 주인에게 거짓을 고하기는 힘든 성격 탓이라. 아무리 무미건조한 성격이었지만 아닌 건 아니었다. 제 주인, 시엔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새오의 곁에 딱 달라붙어서 이것저것 조잘거렸다. 자신이 요즘 몸이 차져서 굿을 했는데, 무당이 누군가 곁에 있어줘야한다고 말했다, 밤마다 귀신이 괴롭혀서 무서워 죽겠다 등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새오를 귀찮게 아니 미치게 만들었다. 뚱하게 시엔을 째려보던 천숑이 한마디 했다.
“그러게 자는 사람 깨워서 인형놀이 하자고 옷 갈아입히고 밥 먹을 때 닦달같이 달려와서 이거 먹어라 저거 먹어라 쪼는 걸 누가 반깁니까?”
“하하, 말을 어쩜 그리 잘하니? 혀가 뽑히면 그렇게 말 할 수 있니?”
시엔의 해맑은 말에 천숑은 다시 서류에 얼굴을 파묻었다. 대신 매현이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식사를…… 하실 때……. 자꾸 장어를 고집하지 않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당연히 장어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말을 뱉은 매현도 지켜보는 천숑도 요리를 바치는 쉐프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기에 조심스럽게 말한 것이라. 천숑은 매현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신혼살림 차렸는데 합방을 아직도 안 한 게 믿겨지니?”
“신혼…….”
“이상하지 않아? 내 얼굴만 보고 나랑 배 맞추고 싶다는 인간들 많아. 근데 나를 피하는 게 믿겨지니?”
“그건 자꾸 개수작 부려서 그렇죠!”
천숑이 그새 못 참고 딴지를 걸자 시엔은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하녀와 눈이 마주쳤다고 결혼 준비를 하는 너보다 개수작일까?”
“그건!”
둘 다 개수작 같은데……. 매현은 말을 삼키고 눈을 감았다. 이럴 땐 그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는 게 최고였다. 왠지 새오라는 여자의 마음을 알 것만 같았다.
“혹시 큰 문제가 있는가보다 싶어서 먹이는 거지. 아직 합방도 안한 내 마음이 오죽하겠어?”
정말 그게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었다. 해답은 매현도 천숑도 빌딩의 모든 이들도 알고 있지만, 아무도 시엔에게 말하지 못했다. 장본인에게 ‘당신이 문제요’ 라고 어떻게 말하겠는가.
“아, 맞다. 엔도가 또 사고를 저질렀습니다.”
“엔도?”
“그, 마샤오 형님의 아들놈이요.”
문서를 정리하던 천숑이 손가락으로 제 머리를 가리켰다. 그제야 시엔이 고개를 까닥였다.
“아, 그 탈모.”
“본인은 탈모 아니라던데요. 여튼 런이 다른 파 놈들에게 시엔 님께 화가를 공급해주는 놈들은 죽는다고 엄포한 모양입니다.”
“하하, 재롱은.”
시엔은 피식 비웃음을 뱉으며 책상 위에 있던 약혼식 초대장을 휙 내던졌다. 그걸 운동신경이 없던 천숑이 기적적으로 받아냈다.
“이거 함부로 다루시면 안 됩니다!”
“어차피 안 갈 거야.”
“이거 무치 형님 따님 결혼식입니다.”
“걔 누구인데.”
“하, 덩치 크고 시엔 님만 보면 울먹이는…….”
“아, 그 늙은이.”
천숑은 혹시 구겨지지 않았는지 초대장을 살펴보며 투덜거렸다.
“무치 형님이 형님 아버님이 생각나서 잘해주시는 거죠. 저번 샌디베이 사건 때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지 않으셨습니까.”
“회장의 거주지를 옮겼을 때?”
작년, 병들어 지쳐있는 회장의 요양원을 옮겨야하는 일이 생겼다. 당연히 다들 후계권을 위해 자신의 구역에 회장을 옮기려했다. 옥신각신 다툴 때 조용히 지내던 시엔까지 나선 것이다. 자신이 옮기겠다고. 다들 놀랐지만 시엔의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시엔이 강력한 것은 맞지만 시엔을 따르는 파는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마샤오였는데 그는 아들 때문에 시엔에게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못했으니까.
“그때 무치 형님이 나서서 시엔 님이 옮기자는 병원으로 옮기게 됐잖아요.”
“흠…….”
“한 번은 가셔야합니다.”
“하긴. 딸을 늦게나마 낳았는데. 시집가는 건 봐줘야지.”
“잘 생각하셨습니다! 당장 내일 모레입니다! 근데……. 엔도랑 다른 놈들이 화가를 데려와서 으스댈 것 같은데…….”
“드레스는?”
“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냐며 고개를 들은 천숑의 눈동자에 잔뜩 기대하는 시엔이 비쳐있었다. 시엔은 고개를 괴며 신난다는 듯 손가락을 까닥였다.
“다들 파트너 데리고 간다며. 우리 신랑도 데려가서 자랑해야지.”
“……진심 입니까?”
천숑의 질문에 매현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새오, 그녀가 드레스를 입고 화장하는 모습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천숑도 마찬가지였으나, 시엔 혼자 콧노래를 부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