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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가 저물 때
작가 : 새하
작품등록일 : 2017.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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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나태와 색욕의 그림자 (2)
작성일 : 17-07-27     조회 : 280     추천 : 0     분량 : 4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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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오님.”

 “…….”

 “일어나셔야 합니다.”

 

 매현의 말에 희미하게 눈을 뜬 새오는 멍하게 있었다. 이내 자신이 입고 있는 갑갑한 정장을 보곤 잠에서 확 갰다. 요즘 왜 이러지. 왜 이리 잠이 많지. 또 꿈을 꾸었는데, 기억이 안나……. 하지만 무언가 품에 안고 있었다. 작고 부드러운 동물. 그것도 두 마리를 안고 있었던 것 같았는데. 향도 뭔가 독특해서 제대로 생각이 안 났다.

 

 요즘 꾸는 꿈들은 대개 이랬다. 꿈 속에선 봉인할 동물들이나 전설에 대한 정보가 파도처럼 수많이 밀려들어와 머릿속에 흔적을 남기는데 그 걸 기억해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자신이 무언가를 알고 있게 된다. 이런 느낌은 아주 끔찍했다.

 

 “후우…….”

 

 새오는 제 손을 가만히 보며 차에서 잠시 꿨던 꿈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암만 머리를 쥐어짜도 떠올려지지 않자 매현이 연 차문으로 차에서 나왔다. 그러자마자 보이는 것은 고대 그리스의 신전 같은 거대한 건물 입구부터 자신이 서있는 곳 까지 레드카펫이 깔려있었다.

 

 “이쪽으로.”

 

 매현의 안내에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밖과 달리 매우 조용했으며 웨이터들이 급히 움직이고 있었다. 미로같이 구불거리는 복도를 졸졸 따라가듯 걷자 큰 문이 나왔다. 문 옆에는 약혼식 일정이 적힌 작은 입간판 같은 것이 놓여있었다.

 

 “주인님은 먼저 가셔서 투자자들과 대화를 나누신다고 하셨습니다.”

 

 매현이 연회홀 입구로 안내를 하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새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는 표현을 하자 매현은 뒤로 슬슬 물러나더니 출구 쪽으로 가버렸다. 새오가 열려있는 연회홀로 들어가자 거대한 아이스 동상이 있었다. 여자와 남자가 손을 맞잡고 있는.

 

 새오는 익숙하지 않은 보타이를 손으로 느슨하게 만들며 걸어 나갔다. 웨이터들이 와인이 놓여진 쟁반을 들고다녔고 웨이트리스들은 음식이 놓여 진 거대한 테이블을 관리하기 바빴다. 드레스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은 와인만 깔짝거렸으며 음식엔 손도 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좀 고팠지. 새오가 거리낌 없이 접시에 핑거푸드를 덜어냈다.

 

 “어머, 시장하셨나봐요?”

 

 새오는 자신에게 말은 건 여자를 훑어보며 크래커를 씹었다. 초록색 드레스에 하얀 피부. 곱게 자란 티가 나듯 얼굴에 그을임 하나 없었다. 그러나 와인 잔을 들고있는 오른손엔 굳는 살이 박혀있었다. 초록색 드레스 여자는 새오가 끄덕인 줄 알았는지 슬쩍 더 다가왔다.

 

 “저는 란님의 수석 화가인 제힌님의 보조 시벨이에요. 반가워요.”

 

 여자가 악수를 위해 손을 내밀었지만, 새오는 힐끗 보다가 다시 음식을 입에 넣었다. 무안해진 여자는 크흠, 하고 목을 축이다가 새오를 유심히 살펴봤다.

 

 “혹시 말을 못하시는…….”

 

 어이없음에 새오가 잠시 멈칫하자 여자는 또 제 멋대로 판단했다.

 

 “그러셨군요…….”

 “…….”

 “누구나 한 가지씩 아픔을 가지고 있는 법이지요.”

 

 여자가 슬슬 귀찮아진 새오는 구석에 가서 와인이나 먹을까 생각하며 자리를 뜨려고 했다. 여자가 무안함을 느끼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지만 않았어도. 여자의 귀엔 머리카락에 가려진 작은 은색 뱀 귀걸이가 걸려있었다. 이번에는 멧돼지나 호랑이가 착용했던 것처럼 크지 않고 피어싱 처럼 작은 귀걸이였다.

 

 “시벨!”

 

 새오가 귀걸이를 더 살펴보려고 할 때 뒤에서 여자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니 남자 세명이 걸어오고 있었다. 대머리와 보디가드로 보이는 덩치 큰 놈. 그리고 백금발의 남자.

 

 “오, 넌 누구지?”

 

 세 명중 당당하게 가운데를 꿰차고 있는 대머리가 다소 건방진 말투로 새오에게 말했다. 하지만 역시 새오는 말하지 않았다. 대머리는 한 번도 무시당한 적이 없었던 모양인지 허, 하고 놀람을 토해냈다.

 

 “너 같은 것들은 많이 봐왔지.”

 “…….”

 “내 말을 일부러 무시해서 내 관심을 끌려는 거지?”

 

 뭔, 신종 개소리지? 새오가 미간을 찌푸리며 대머리를 올려봤다. 하지만 대머리는 그 눈빛을 보곤 껄껄 크게 웃더니 제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게 단단히 반했군. 너.”

 “…….”

 “난 여자를 좋아하는데 이를 어쩌지? 가여운 녀석! 하하하!”

 “저, 엔도님. 이분은 말을 못하십니다…….”

 

 여자, 시벤의 말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입을 틀어막고 큭큭 웃어댔다. 대머리, 엔도는 씩씩거리다가 애써 크흠, 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여기서 화를 낼 수 없었다. 그것도 장애인에게.

 

 “보아하니 그림을 그리는 놈 같은데, 너 어디소속이지?”

 “…….”

 “아직 소속이 없나보군. 그래 여기에 너 같은 녀석들은 많아. 후원을 받고 싶어서 온 모양이지? 좋아. 내 눈에 띄었으니 후원해주지.”

 “어머!”

 

 후한 대접에 다들 눈을 크게 뜨며 이쪽을 돌아봤다. 특히 아무 말 없이 무표정으로 대머리, 엔도를 쳐다보는 새오를.

 

 “뭐, 대학은 나왔겠지?”

 “…….”

 “요즘은 뭐 재능만 있으면 오케이지. 전시회는? 몇 번이나 냈지?”

 “…….”

 “설마……. 작품도 안 낸 건 아니겠지?”

 

 부러워하는 눈빛으로 보던 이들이 전부 새오를 위아래로 훑어보기 시작했다. 새오는 샴페인을 마시던 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돌렸다.

 

 “시끄러워.”

 “마, 말을 할 줄 알았어? 왜 대답을 안했지?

 “그런 너는 왜 머리카락이 없지?”

 

 자신의 유일한 단점이 회자되자 대머리, 엔도는 씩씩거리며 제 머리를 만졌다.

 

 “이건 패션이야! 멋이라고.”

 “…….”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천지회의 후계자로 거론되는 남자였다. 심지어 그의 아버지인 마샤오 마져 안타까운 시선으로 쳐다보는 반짝반짝 머리통이었다. 대머리, 엔도가 새오를 욱해 새오에게 세게 손을 뻗었다. 제 얼굴로 다가오는 손이 아주 느리게 보이던 새오는 몇 초간 고민했다.

 

 맞아줘서 사태를 조용히 할 것인가 아니면 쳐내고 달아나야하는 건가. 그렇게 된다면 시엔, 그 놈이 이 파티에 오라는 이유를 파악할 수 없는데. 새오가 맞기로 결심 했을 때.

 

 탁!

 

 대머리, 엔도의 손을 잡은 건 그의 옆에 있는 백금발 남자였다.

 

 “함부로 손을 올리시는 건 엔도님의 품격에 어울리지 않는 일입니다.”

 “그, 그건 그렇지. 흥!”

 

 원래 품격이 없어 뵈는데. 다른 이들이 새오와 똑같은 생각을 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백금발 남자는 싱긋 웃더니 새오를 쳐다봤다.

 

 “시엔님의 소속으로 아는데, 맞나요?”

 “…….”

 “아까 시엔님의 수하와 같이 입구에 있는 걸 봤는데.”

 

 시엔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대머리 엔도는 더 씩씩거리며 새오를 노려봤다. 주변의 구경꾼들은 다들 웅성거렸다.

 

 “설마 시엔님이 환상의 그림 작업을 하신다는 게 사실이었어?”

 “그렇다면 저 사람이 그린다는 건데…….”

 “학벌도 전시회도 심지어 작품도 안낸?”

 

 “하지만 내가 선택했다는 게 중요하지. 안 그런가?”

 

 수군거림 사이에서 시엔이 긴 다리를 움직이며 걸어왔다. 그러자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이 홀린 듯 시엔을 훑어보았다. A 브랜드의 검붉은 색 슈트는 각지면서도 입은 이의 환상적인 몸매와 길이를 자연스럽게 부각시키고 있었다. 희미한 마블링 효과를 준 넥타이와 황금색 넥타이핀은 포인트가 되어 입은 이의 미모를 돋보여주는 것에 성공했다.

 

 얼굴과 패션의 조화가 완벽해서인지 펄럭이는 하얀 정장을 입고 온 대머리, 엔도와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다. 정작 주인공은 자신의 미모에 관심 없다는 듯 다른 이, 새오의 옷자락을 잡았다.

 

 “내가 고른 옷은 다 버리더니 이 옷을 입었어?”

 “그 천 쪼가리들.”

 

 새오는 한숨을 내뱉었다. 몇 시간 전. 잠에서 깨니 가사도우미들이 옷이 잔뜩 걸린 행거를 질질 끌고 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도우미들은 이 옷을 입고 파티에 참석하라는 명이 떨어졌다며 몇 십 벌의 옷들을 보여줬다. 한결같이 파이거나 짧거나 반짝이는 것들이었다.

 

 그 중 제 몸에 딱 맞을 것 같은 와인색 정장이 보였다. 그것도 치마가 아니라 바지로 되어있어 제일 괜찮아 보였다. 그 옷을 고르자마자 화장을 도와주러 온 도우미들이 울먹였지만. 불편한 것만 빼면 그럭저럭 입을 만한 옷이었다. 시엔은 후후 웃더니 고개를 주억거리는 새오를 살펴보았다.

 

 “꼭 구미호한테 장가가는 꼬마 신랑 같아.”

 

 맞긴 맞았다. 형편없는 계약서와 구미호 못지않은 여우와 살고 있으니. 새오가 왜 이 파티에 참석을 하라했냐고 이유를 물어보려가다 고개를 돌렸다. 백금발의 남자와 대머리, 엔도가 자신과 놈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 계속 네 빌딩에서 숨어 있지 왜 나왔지?”

 “눈부셔서 대답을 못했는데. 다시 말해볼래?”

 “뭐, 뭐?”

 

 시엔이 정말 눈이 부신 것처럼 손으로 제 눈을 살짝 가렸다. 그러자 엔도가 정말 시엔을 때릴 것처럼 노려보며 이를 빠득 갈았다.

 

 “이건 패션이야!”

 “글쎄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할 걸?”

 “닥쳐! 넌 여긴 왜 나온 거지? 후계권에 관심 없던 것처럼 굴더니! 파벌은 만들고 싶었나보지?”

 “왜 나왔냐고? 그야 우리 신랑 자랑하려고 나왔지.”

 

 시엔이 싱글벙글 웃으며 새오의 어깨를 두 손으로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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