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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가 저물 때
작가 : 새하
작품등록일 : 2017.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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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나태와 색욕의 그림자 (3)
작성일 : 17-07-27     조회 : 285     추천 : 0     분량 : 4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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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나왔냐고? 그야 우리 신랑 자랑하려고 나왔지.”

 

 시엔이 싱글벙글 웃으며 새오의 어깨를 두 손으로 짚었다. 새오는 인상을 찡그리며 어깨에 걸쳐진 손을 쳐내려고 했지만, 시엔이 평소와 달리 세게 잡고 있었다. 그걸 본 엔도는 콧웃음을 쳤다.

 

 “그 놈한테 코가 꿰였나? 그림을 그리려면 적어도 이 수준은 돼야 하는 거 아닌가?”

 

 엔도가 제 양어깨를 으쓱였다. 옆에 서있는 백금발 남자도 여자, 시벨도 모두 명문대 출신이거나 전시회를 몇 번이나 한 몸이었다.

 

 “하하, 그들이랑 대화하면 알아듣긴 해? 넌 중학교도 안 나왔잖아.”

 “뭐, 뭐! 이 개새끼가!”

 “그만!”

 “아, 아버지!”

 

 대머리 다음으로 유일한 약점인 학벌이 거론 되자 엔도가 진짜 시엔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사태를 멀리서 지켜보던 아버지, 마샤오가 아니었다면. 마샤오는 미간을 찌푸리며 손가락을 까닥였다. 엔도는 분통을 참으며 제 아버지인 마샤오에게 걸어갔고 일행은 그 뒤를 따랐다. 오직 백금발의 남자만이 반듯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방금 전 무례를 대신 사과드립니다.”

 

 새오는 사과를 하는 백금발의 남자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특히 붉은 눈을. 자신이 쳐다보고 있는 걸 알았는지 백금발의 남자는 눈을 접어 웃었다.

 

 “제 이름은-.”

 “주제 파악이 안 되는 것 같군.”

 

 대답은 시엔이 낮은 저음으로 뱉어냈다. 항상 싱글벙글 혹은 얄밉게 말을 쏘아내던 것과 달리 위엄이 서린 목소리였다.

 

 “누가 너 따위가 내게 말을 걸어도 된다고 했지? 내가 하문했나?”

 “실례를 범했습니다. 사과를 드리지요. 하지만……. 옆에 계신 여성분은 제 이름을 이미 알 것 같군요.”

 

 그럼 이만. 백금발의 남자가 뒤돌아 엔도를 향해 걸어갔다. 낯선 시엔의 무표정을 살펴보던 새오는 어깨에 올려 진 손을 슬쩍 내려놨다. 그러더니 시엔은 휙, 고개를 돌려 새오를 내려 보았다.

 

 “쟤 이름 어떻게 알아?”

 “뭐?”

 “요즘 밤에 쟤 만나러 돌아다닌 거였어?”

 

 다시 새침하게 투덜거리는 모습에 백금발의 정체를 말하려던 새오는 입을 다물었다. 뭔, 말도 안 돼는 소리를.

 

 “말 못하는 거 보니까 맞네. 어떻게 바람을 피워?”

 “왜 날 여기 부른 거지?”

 “파티? 말했잖아.”

 

 휙!

 

 시엔이 새오의 팔을 잡아당기더니 그대로 꼭 안았다.

 

 “자랑하러 온 거야.”

 “…….”

 “이렇게 금슬 좋게 잘 살고 있습니다. 이런?”

 

 새오가 팔을 뿌리치며 시엔의 옆에 있는 천숑을 쳐다봤다. 진짜 맞냐는 눈빛으로. 천숑은 한숨을 뱉었다. 진짜였군. 미친 새끼. 새오는 급히 시엔에게 떨어져 다른 방향으로 걸어 나갔다.

 

 “어디가?”

 

 새오는 답변 대신 턱짓으로 화장실이 표기 된 안내판을 가리켰다. 시엔은 제 손목에 있는 시계를 톡톡 쳤다.

 

 “딴 년한테 물주지 말고 빨리 와~.”

 

 새오는 개소리를 무시한 채로 화장실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원래는 별 볼일 없는 파티라는 걸 알았으니 밖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그 전에 정말 화장실을 가고 싶어졌다. 화장실과 파우더룸이 있는 골목 코너를 돌자 귀 따가운 소리가 들렸다.

 

 “꺄악! 이러지 마세요!”

 “어차피 후원받으러 온 주제에 뭘 이리 튕겨!”

 

 체구가 작은 은발 소녀가 술이 잔뜩 취한 남자에게 밀쳐지고 있었다. 벽에 부딪친 은발 소녀는 부들거리며 주저앉았고 치마가 들어 올려 져서 그런지 다리가 드러났다. 남자는 침을 흘리며 소녀에게 손을 뻗었다.

 

 “도와주세요!”

 

 소녀는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 싫어서 뒷걸음질 하던 새오에게 손을 뻗었다. 새오는 한숨을 밷다가 손가락을 까닥였다.

 

 “넌 뭐야? 푸헉!”

 

 벽에 있던 그림자가 길게 늘어나 희롱하던 남자의 뒷통수를 내려쳤다. 남자는 털썩 쓰러지며 정신을 잃었고 울먹이며 눈을 감았던 소녀는 고개를 들었다. 제 앞에 쓰러진 남자를 보다가 새오를 보곤 표정이 밝아졌다.

 

 “고맙습니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새오가 구해줬다는 건 눈치 챈 모양인지 소녀는 방긋 웃으며 일어났다. 이내 새오에게 다다다 달려와 와락 안겼다. 순식간에 진한 재스민 향이 맡아졌다. 몸집도 작고 어려 보여 방심하고 있던 새오는 제게 안긴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헤헤, 언니 아니었으면 저 아야 할 뻔 했어요.”

 

 새오가 말없이 소녀를 밀쳐냈다. 소녀는 이잉, 하며 아쉽다는 듯 앙탈을 부렸지만 새오는 손을 휘휘 저으며 출구를 가리켰다.

 

 “싫어요! 저 혼자 있고 싶지 않아요.”

 “…….”

 “언니가 저 구해줬으니까 이제 나도 언니 도와줄게요!”

 “…….”

 “무슨 말이라도 해봐요. 나 심심한데!”

 

 심하게 발랄해 방금 큰 일을 당할 뻔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건 네 사정이고 라는 표정으로 소녀를 내려다 본 새오는 뒤돌아 화장실로 들어가려고 했다.

 

 “주제는 언니가 왜 말을 안 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걸로?”

 “너…….”

 “내가 누군지 기억나요? 아까 꿈에서 인사했잖아요.”

 “……사슴이군.”

 “딩동댕!”

 

 소녀는 활짝 웃으며 손뼉을 쳤다. 새오는 뒤돌며 아까 사슴을 껴안던 꿈부터 그동안 꿨던 꿈들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럼 그동안 꿨던 꿈들 모두 네가 한 건가?”

 “어머. 꿈을 조종했던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자신의 정보를 그대로 제 입으로 까발린 새오는 아차 싶어 입술을 깨물었다. 그걸 본 소녀는 제 은발을 귀 뒤로 넘기며 빙긋 웃었다. 귀에는 아무 것도 걸려있지 않았다.

 

 “후후, 저를 그런 천박하고 멍청한 동물로 생각하면 안 되죠. 승천 못한 이무기의 조종은 당하지 않는 답니다.”

 “협력은 했겠지.”

 “눈치가 빠르네요. 그럼 내 능력도 알겠네요.”

 “능력?”

 “멧돼지는 빠른 속도. 호랑이는 강력한 힘을 여태껏 가지고 있었죠.”

 “뱀은 정신 조종이겠고.”

 "맞아요!"

 

 소녀가 다시 활짝 웃으며 손뼉을 쳤다.

 

 “그럼 저는 뭘까요?”

 

 새오는 대답 대신 손가락을 까닥였다.

 

 슈욱!

 

 벽에 있던 그림자들이 길고 날카로워 지더니 소녀에게 빠르게 다가갔다. 이내 푸욱, 하고 소녀의 가슴을 꿰뚫었다.

 

 푸훅!

 

 소녀는 피를 뱉더니 점점 모습이 희미해져갔다. 아차 싶은 새오는 얼른 그림자를 움직여 주변을 살펴봤고 그 그림자를 사뿐히 밟은 소녀의 모습이 진해졌다. 방금 상처 따윈 입지 않았다는 듯 뚫린 가슴은 멀쩡했다. 새오는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환각인가.”

 “글쎄요……. 후후, 또 공격할 건가요?”

 

 피슛!

 

 소녀가 에메랄드 눈을 접어 웃을 때. 하얀 얼굴에 베인 상처가 생기면서 피가 흘렀다. 그대로 표정을 굳히며 제 얼굴을 만져보던 소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육탄전은 약한 가보군.”

 “맞아요……. 이대로 날 죽일 건 가요?”

 

 새오가 몰라서 묻냐는 듯 손을 움직여 그림자를 꿈틀거리게 만들었다. 소녀는 제법 비열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손가락으로 새오의 뒤를 가리켰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림자가 있어야할 자리였다.

 

 “내가 언니의 비밀을 알고 있다고 해도?”

 “……상관없어.”

 “나는 비밀에 대한 해결도 알고 있죠.”

 

 휙!

 

 새오의 손짓에 따라 날카로운 그림자들은 맹렬하게 소녀를 쫓아다녔다. 그림자가 소녀를 찌르려고 하는 순간마다 소녀의 형체는 사라져만 갔다.

 

 “그 남자가 그림자가 없는 이유를 알려준다고 하던가요? 그럼 진실을 알게 되면요?”

 

 휙!

 

 “그 다음엔 뭘 할 거죠?”

 

 휙!

 

 “그 남자는 진실을 알려줄 뿐 근본적인 해결은 해주지 못해요!”

 

 푸슉!

 

 마침내 새오의 그림자들이 소녀의 다리를 찔렀다. 소녀는 크흑, 하고 괴로워하더니 손을 뻗었다. 그대로 허공에 홀로그램처럼 영상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작은 소녀가 컨테이너 박스 그늘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고 그 주변, 넓은 정원엔 빨간 머리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었다.

 

 “이건…….”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작은 아이는 비밀을 알고 싶을 뿐이었죠.”

 “닥쳐!”

 

 과거의 편린이 보여 지자 새오가 미친 듯이 그림자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림자 세계를 구축할 생각도 못한 채. 흥분을 해서 그런지 전부 빗나갔으며 그럴수록 소녀의 움직임은 더 빨라졌다.

 

 “자신이 왜 그림자가 없는지. 왜 말을 하면 안 되는지.”

 

 휙!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죠. 심지어 스승마저. 그러다가 어느 날 어떤 남자가 알려줄 수 있다고 하네요?”

 

 소녀가 새오의 그림자를 피하면서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냈다. 그러자 이번엔 새로운 영상이 허공에서 그려졌다. 새오와 시엔이 처음 만났을 때였다.

 

 “하지만 진실을 알 게 된다고 한 들 뭐가 달라질까요?”

 

 휙!

 

 “자신이 다른 인간들과 다르다는 비참함?”

 

 휙!

 

 “그것 때문에 삶이 비틀렸다는 원망?”

 “닥쳐!”

 “속 시원함? 해소? 천만에, 그것은 아주 잠시일 거예요.”

 

 휙!

 

 “깊은 공허함과 미칠 것 같은 외로움. 이 두 가지만 가득하겠죠. 인간이란 원래 그런 존재니까요.”

 

 팔랑~

 

 소녀는 유유자적하게 새오의 그림자를 피하며 제 주머니에 있는 명함을 던졌다. 새오는 그것을 받지 않고 곧바로 소녀의 팔을 노렸다. 슈슛, 하고 그림자들이 빠르게 소녀의 팔을 낚아 채려고 할 때.

 

 “멈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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