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 이 글의 배경은 조선이나 왕, 왕세자 모두 허구임을 미리 공지 합니다.
역사는 한국사에서, 소설의 배경은 그냥 즐겨만 주세요 [이하 모든 것이 설정일 뿐이니 역사적인 관점에서 글을 분석하거나 해석하여 태클을 거는 것은 지양해주시기 바랍니다]
조선 승종 직위 22년
햇빛은 따사로웠다. 따사로운 햇살을 이불처럼 포근히 감싸 안은 초목들은 습기를 가득 머금어 통통하니 살이 올랐다. 오색의 풀밭엔 벌 나비의 향연이 온 조선에서 펼쳐지고 있었고, 그 어떤 곳도 평화롭지 않은 곳이 없었다. 단지 여기만 빼고......
“저하, 왜 또 이러십니까. 어서 수라를 드시옵소서.”
“국밥이나 먹을까?”
신 내시가 납죽 엎드려 주변을 살폈다. 살펴봐야 기미상궁 한 명, 생각시 한 명, 세자와 신 내시가 고작이지만 궁에는 항상 귀가 열려 있다 했나니. 엎드린 채로 제대로 얼굴도 들지 않았지만 분명 중얼중얼, 투덜투덜, 너 맞을래? 이런 식의 이죽댐을 잔뜩 담고 있겠지. 신 내시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부여잡고 세자를 바라보았다. 세상 다 산 듯, 깊은 한숨을 내 쉬는 세자의 곁에서 상궁과 생각시가 열심히도 수라를 권하고 있지만 모든 게 다시 접시로 내려왔다.
“짜다.”
세자가 한 마디 하자 신 내시가 서첩에 ‘전유어 - 짜다하심’이라고 재빨리 적었다.
“질기다.”
세자가 또 고개를 팩하니 돌리자 신 내시가 서첩에 ‘섭산적 - 질기다 하심’이라고 적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맛없다고, 물리라 하지 않았더냐!”
신 내시가 채 다 적기도전 급기야 세자는 밥상을 등 뒤로 한 채 돌아앉아 서책을 집어 들었다.
“저하, 벌써 닷새째이옵니다. 저하께오서 이러시면 수라간 나인들은 무슨 불벼락을 맞을지 몰라서 이러시는 것입니까!”
여전히 책에서 관심을 떼지 않는 세자는 신 내시의 간곡함에도 불구하고 밥상엔 눈길도 두지 않았다.
이런 빌어먹을! 소리가 절로 났지만 별 수 있겠는가. 궁에서 만큼은 세자와 내시의 관계가 명확한 것을. 신 내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심호흡으로 마음을 내려 앉히고는 세자의 곁에 바짝 다가가 앉았다.
“자꾸 이러시면 다시는 잠행에 동행하지 않겠습니다.”
이를 앙 물고 성질 죽여 가며 협박 아닌 협박을 나지막이 하였지만 세자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내가 누구 등을 밟고 처음으로 궁 밖을 나갔더라. 아마 그날 성에서 뛰어 내리다가 정강이를 땅바닥에 긁었다지? 으흠!”
신 내시는 난처한 기색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의 두리번거림은 습관적이고 반사적이었다. 그러고는 세자의 곁에 더욱 바짝 앉았다. 이것은 분명 먹힐 것이다. 최후의 일격, 신 내시는 비장하게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실은 채 이야기 하였다.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그러니까, 오늘 밤, 으응? 관우 행님아.”
세자 역시 신 내시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결국 오늘도 세자의 승리였다. 신 내시는 세자의 곁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수랏상은 기미 상궁이 뒤적거린 것이 전부인 채로 동궁전을 나가야 했다.
“알지? 큰방 상궁한테 들키지 않게 생각시들이랑 골고루 나눠 먹도록 해.”
“망극하옵니다.”
세자의 방 밖을 지키고 있던 나인들은 벌써 신이 났다. 저하의 남은 음식, 엄밀히 말하자면 그냥 식은 새 밥상을 먹을 생각에 신명나다 못해 춤이라도 출 지경이었다.
상이 물러지고 방에 둘만 남게 되자 신 내시의 한숨이 더 크게 내려앉았다.
“제가 죽지 못해 삽니다, 응?”
“어허, 그러니 오늘 밤에.......”
신 내시는 깜짝 놀라 서둘러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세자는 그제야 얼굴에 기대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냅다 신 내시의 무릎을 잡아끌어 베고 누웠다.
“신 내시, 그거 아니? 네 무릎은 그 어떤 배게 보다도 포근한걸.”
“저하, 이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