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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빈의 수랏간
작가 : 취련
작품등록일 : 2017.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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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2
작성일 : 17-07-27     조회 : 304     추천 : 3     분량 : 3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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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혜주는 혜림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엘리트들만 모여서 공부한다는 그곳에 합격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단지 입시체제의 덕분이었다. 예전처럼 시험만으로 대학을 가는 것이었다면 수학탐구시험을 제 시간 안에 풀 수 없는 혜림은 절대 붙을 수 없었을 것이다. 멋지게 학습계획서를 써서 한국 대학에 붙어 놓고서 어느 날 꼽힌 전통궁중요리 덕분에 모두를 이해할 수 없는 자퇴서를 던지고 나온 혜주의 언니가 아니던가.

 게다가 고자 부랄 터지는 소리래. 그런 소리 아무나 내뱉기도 힘들고, 또 그런 말이 저렇게 자연스럽기는 더 힘들 테고. 1년에 고작 한번 있는 전통궁중요리 국가자격증 시험을 치루기 시작한 게 벌써 4년, 그 사이 동기들은 죄다 졸업을 해서 자리를 잡았거늘 오늘도 혜림은 누구나 알지만 본인만 모르는 이유, 본인만 인정할 수 없는 이유, 바로 시간 초과로 인한 광탈(빛의 속도로 떨어지는)에 초조하고 또 초조하였다. 아침에 혜림에게 끌려나오는 혜주 뒤편으로 한 번도 들을 수 없던 엄마의 절규가 들렸다.

 “내가 이년아, 니 아빠도 안 해주던 아침밥을 해주겠다고 그 꼴똑 새벽잠을 3년을 포기했어 3년을! 길을 막고 물어봐라 어! 아무리 니 의사를 존중해준다 해도 한국대학 자퇴가 뭐냐 자퇴가. 휴학이라도 했으면 내가 이렇게 황당하지가 않지! 이번에 또 떨어지기만 해봐. 넌 다시 수능을 쳐야 할 거야! 싫으면 저기 케냐 가서 고양이 똥 사향 커피나 주워서 돈이나 벌어 우라질아!”

 언니만큼은 아니지만 혜주는 분명 언니 욕의 근원은 엄마일거라고 생각 하고 있었다. 넋을 놓고 엄마의 외침을 듣고 있는 혜주의 팔을 혜림이 잡아끌어냈다. 그렇게 그녀들은 현관문 밖으로 날아오던 신발을 겨우 피했다. 그 순간만큼은 혜주가 알던, 집안의 평화만을 사랑한 그런 엄마가 아니었다. 엄마가 신발을 던지다니. 하긴, 혜주는 질질 끌려나와 준혁의 차에 머리가 구겨지도록 밀어 넣는 혜림을 보며 자신의 딸이 혜림 같다면....... 상상만 해도 어이없는 딸이 아닐 수 없다. 아마 신발이 아니라 더한 것도 던졌으리라.

 “동생이 뭘 보고 배우겠냐!”

 혜주는 혜림이 엄마의 마지막 말을 듣지 못했으면 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언니, 그래서 놀아준다기 보다는 자신을 가지고 노는 데에 재미가 있었던 언니를 미워하거나 없어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주문 따위는 외워본 적도 없었다. 언니가 놀아주는 게 가장 행복했고 거칠고 투박한 언니의 언사에도 즐거웠던 혜주였다. 자라면서 늘 혜림이만 바라보았고, 혜림에게서 모든 것을 배웠던 혜주는 언니가 최고의 인생 멘토였다.

 언니가 던진 자퇴서만 아니었다면 자신도 끝까지 언니를 지지 했을 터였다. 아니, 자신에게 한마디 의논만이라도 했더라면 이만큼 언니에게 실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혜림에게 혜주는 여전히 비눗방울을 만들어 줄 테니 꼼짝 말고 가만히 있으라며 놀이터 한가운데 세워놓고 혼자 놀러 나가버리는 그런 어린 동생일 뿐인 모양이었다. 그래도 ‘언니야’ 하고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자신을 가자 많이 울리기도 했지만 가장 따뜻하게 달래주고 보듬어주는 언니이기도 했기에 혜주에게 혜림은 여전히 최고의 우상이였다.

 언니 옆에 꼭 붙어 늘 헤실헤실 웃어대는 저 미련 곰탱이 준혁만 아니면 언니는 완벽히 혜주의 것일 텐데. 소꿉동무란 명목으로 저렇게 붙어 다니는 게 혜주는 미친 듯이 얄미웠다.

 

 

 

 

 “계속 여기 있을 거지?”

 혜림의 말 한 마디에 ‘간식 줄게 기다려!’ 하고 교육을 받은 우리 집 강아지 혜키처럼 두 눈을 반짝이며 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혀만 안 내밀었지 혜키야 혜키,’ 혜주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코웃음 쳤다.

 “준혁이 심심하니까 혜주가 같이 있어. 오빠한테 기어오르지 말고, 확 그냥.”

 혜림이 반 협박하는 어투로 혜주에게 당부를 하였다.

 “됐어. 시간이나 잘 지켜.”

 혜림이 종종걸음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준혁과 혜주는 그녀가 완전히 사라지고 난 후에도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시선을 돌리는 순간, 어색해지는 기류는 어쩔 수 없다는 걸 둘 다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내기 할래?”

 여전히 건물 안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로 혜주가 먼저 입을 뗐다.

 “무슨 내기?”

 “뭐겠어, 이 곰탱이 푸림아. 시간 내에 음식을 만든다 못 만든다. 난 못 만든다에 한 표,”

 “에이, 혜림이는 잘 할 거야. 잘 해야지, 이번엔 꼭 따야지.”

 “오빤 만든다에 한 표인 거다! 오빠가 이기면 나는 오빠를 우리 집 사위로 밀어주겠어.”

 “진짜야? 헤헤, 완전 좋아. 너는 뭐가 갖고 싶은데. 혜림이가 자격증 따던 못 따던 내가 다 들어주겠어.”

 “헐, 무슨 내기가 이래. 뭐 나쁘진 않지만.”

 혜주는 바짝 흥이 오른 채로 준혁의 차에 올랐다. 준혁은 여전히 혜림의 자취를 따라 건물 안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했지만 무지막지한 혜주의 인터셉트에 차안으로 끌려 들어오고 말았다.

 “거래는 확실히. 오빠 아까 한 말 진짜지?”

 “당연하지. 날 사위로, 너의 형부로 인정해주겠다는데 뭔들 아깝겠냐? 우리 처제, 하나 밖에 없는 귀여운 내 처제님, 무엇이 갖고 싶은가요?”

 “오오오! 쫌 손발이 오글거리긴 하지만 램프의 요정 지니 모드 참 좋아. 형부, 난 큰 거 안 바라고 소박하게 블리자드 현질 좀 해주라. 오버워치도 할 겸.”

 “오버워치 해? 그거 맛 들리면 공부 완전 포기 하는 거 아냐, 처제?”

 “왜 갑자기 어른답게 굴어? 이러면 곤란하지. 거래 파기야?”

 “노노노, 얼마 해줄까. 만 원? 아니면 삼만 원?”

 “삼십만 원. 퉤퉤퉤. 싫으면 디 엔드.”

 혜주는 끝날 때 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준혁을 앞세워 근처의 PC방으로 향했다. 시험은 총 4과목, 두 과목 끝나고 쉬는 시간이 있으니 (그것이 첫 번째 탈락자가 나오는 시간이니) 그 시간에 맞춰서만 가면 되는 거다. 세 시간이나 시험을 보는데, 아니 게임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세 시간이나 있는데 시간 낭비를 할 수 없지 않은가. 게다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30만원이라는 현질,,,,,,

 ‘내 캐릭터에서 가장 탐났던 스킬이 뭐였더라.’

 혜주의 머릿속엔 벌써 오버 워치의 총알들이 드드드득 날아가 박히는 것만 같았다. 준혁은 마지 못해 차에 시동을 걸긴 했어도 막상 PC방 안에 들어서니 혜주만큼이나 오버워치에 정신을 빼앗겼다.

 “실은 언니 기다리면서 나도 매일 이거 한다. 우리 처제는 내편이지?”

 게임 초기 화면에 캐시가 들어오자 혜주는 눈을 휘둥그레 동글리며 박수까지 쳐 댔다.

 “당연하지! 형부, 내가 평생 형부 편이 되어줄게, 우리 언니와 결혼해줘.”

 영혼까지 팔아먹을 기세였다. 혜주와 준혁, 모두가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컴퓨터의 모니터 빛만이 가득한 실내, 헤드셋을 쓰고 다들 저 할 일에 바쁜 실내에서도 준혁과 혜주는 유난히 바빠 보였다.

 “어어어, 시간역행 아이템, 혜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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