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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peness
작가 : 아웃
작품등록일 : 201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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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그녀의 강아지
작성일 : 17-07-03     조회 : 38     추천 : 0     분량 : 4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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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세계로 떨어진 후, 적응하지 못할 것만 같았던 이세계에서의 생활은, 참 웃기게도 익숙해져 갔다. 오히려 시간이 전보다 더 넉넉해졌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가볍게 세안과 양치질. 그 뒤엔 안젤라를 위한 아침식사를 준비한 다음 안젤라를 깨우고, 그 이후로 점심일과를 시작하기 전까지 근처 산에 올라 요리 때 쓸 장작이나 몇 개 패오면 아침일과 끝. 점심부터는 그녀를 돕거나 그 밖의 집안일, 그리고 그녀가 부탁하는 일들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저녁때가 되면 저녁식사를 마친 뒤 나머지 잔업을 마친다. 그 이후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이게 하루일과였다. 지구에서의 생활보다 훨씬 간단하고, 내가 자율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시간도 많았다.

 맑은 공기, 탁 트린 정경, 그 아래로 보이는 조그만 안젤라의 집과 저 멀리 군집해있는 조그만 마을. 그리고 내 시야로는 절대 눈에 전부 담을 수 없는 넓디넓은 평원. 한마디로 정말 요양하기에 여기만큼 좋은 장소도 없을 것이다. 이런 경치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산을 타는 모양이다. 왠지 모르게 들끓는 감성이 충만해지는 느낌이 가슴속에 가득했다. 그 충만해진 감성이 고달픈 몸도 치료해줬음 좋겠지만.

 “에고, 이 정도면 충분하고도 남겠지. 휴, 언데드면 뭐해? 쑤시거나 아픈 건 그대로인데.”

 손에 영 익지 않은 작업이라 그런지 거목을 자르려 도끼를 치켜들 때마다 근육이 찢어는 것 같은 고통에 몸 이곳저곳이 비명을 질렀다. 끊어질 듯이 저린 등을 쭉 펴기도 하고 팔을 빙빙 돌려보기도 하며 몰려오는 근육통을 풀어줬다. 하는 김에 목까지 풀려고 고개를 좌우로 꺾자 우악스러운 뼈소리가 들렸다.

 “어후, 여기 와선 몸 쓰는 일밖에 하질 않아서 그런지 여기저기가 쑤시네.”

 평범한 인문계 출신 대학생이 힘 쓸 일이라고는 전공책 드는 게 전부인데 도끼질을 해봤을 리 있겠나. 처음해보는 도끼질이니 자세가 엉성한 건 당연하고, 요령도 없어 무식하게 힘으로만 내려찍어서 그런지 몸이 고생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무식한 도끼질도 요 몇 주 동안 하루에 3시간 정도씩 한 덕분인지 이제는 어느 정도 요령이 생겨 몸이 덜 피곤했다는 거였다.

 지게에 적당히 쌓인 장작들을 보니 더 이상 장작을 패봤자 담을 수도 없을 것 같아 이미 내 손에 익어버린 도끼를 적당한 나무에 세워두고 기지개를 폈다.

 “으으으! 후, 익숙해졌긴 하지만 역시 영 쉬운 일이 아니야.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지만, 역시 몸을 쓰는 건 내 타입이 아니야. 살아서나 죽어서나 어찌됐든 똑같은 몸이라는 걸까나?”

 이미 오래 전에 알게 된 사실을 새삼 되새기자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내가 걸어 다니는 시체, 즉 언데드로 부활했다는 걸 알게 된 직후, 약간의 패닉에 빠지긴 했지만 그 뒤론 크게 동요하거나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거나 하진 않았다. 어차피 버스에 치여 그대로 끝났을 인생이었다. 여러 번 생각해보니 죽긴 죽었어도 감각이나 이성은 멀쩡하니까. 영화나 소설에서 봤던 것처럼 끔찍한 삶도 아니니 언데드로서의 인생도 꽤 나쁘지 않다고 여겨진다. 다만 이게 앞으로도 그럴 것인지, 아니면 지금까지만 그런 것인지 결정하기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겠지만.

 “엄마 아빠는 잘 지내고 있으려나.”

 이렇게 멀쩡하게, 아니지. 시체니까 멀쩡하진 않지. 쨌든, 사지 멀쩡하게 달려있는데도 엄마 아빠의 얼굴을 못 보게 되는 것이 이렇게나 천추의 한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쪽 시간이 어떻게 흐리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지구에선 이미 내 장례를 치렀을 수도, 아니면 이제 막 장례를 치르고 있을 수도, 그것도 아니라면 그 차디찼던 아스팔트 도로 위에 아직도 널브러져 있을지도 모른다. 같은 우주에 있어도 다른 시간이 흘러가는데 다른 세계라고 안 그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으니까.

 이곳에 와서 부쩍 부모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가족이라는 것이 손에 잡히는 곳에 불변적으로 남아있을 존재들이었기에 그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진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니 그 빈자리가 얼마나 큰 지 새삼 느끼게 된다. 소중했기에 더 소중히 해야 했음에도 언제나 곁에 남아있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에 신경 써야 할 곳에 제대로 신경 쓰지 못했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차라리 날 잊었으면 좋겠다.”

 여기 와서 이런 생각을 해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차라리 저쪽 시간이 완전히 멈춰졌으면, 아니면 나의 존재 자체가 사라져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았으면 하는 상상도 했다. 그렇다면 엄마 아빠가 나에게 쏟았던 애정만큼 슬퍼할 일도 없을 테니까. 애정을 쏟았던 존재 자체가 없던 것이니 쏟을 애정도 없을 테고.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내 스스로가 부모님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다. 내게 애정을 주셨던 만큼 나 또한 존경하고 사랑했으니까.

 분명 슬픈 일이다.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잊혀야만 하는 것이 유쾌할 리 없다. 하지만 왜일까? 내 눈가에는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흐르지 않았다. 마치 눈물이 말라버린 것처럼. 그때도, 내가 처음 시체라는 걸 알았을 때도, 이제 가족을 만날 수 없다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눈물은 나지 않았다.

 “…영혼이 없다는 게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네.”

 내 증상에 대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안젤라가 말하길, 인간에게 가장 중요하고 없어서는 안 될 내 영혼이 차원을 넘어오면서 갈기갈기 찢겨졌을 거라고 말해줬다. 물론 그것도 단순히 이론에 불과하며 자세한 건 자신도 알 수 없다고 했다. 영혼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가 부서지기 시작하면 완전히 소멸하기 때문이랬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의 영혼은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감정 같은 정신적인 부분을 담는 그릇이며, 영혼이 없는 존재는 그저 살아서 움직이는 인형이라고 할 정도 공포, 불안, 고통, 분노, 슬픔, 기쁨 같은 기본적인 감정들은 물론이고 이타심이나 자비, 신념, 의지, 믿음같이 부차적인 인간으로서 가져야 하는 감정들에 무감각해진다고 했다.

 안젤라에게 이 사실을 들은 후 나는 점점 내 감정이 무뎌졌다는 걸, 쉽게 깨달을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해졌다는 걸 얼핏 느꼈다. 평소 같으면 화가 나거나 슬퍼할 일도 아무렇지 않았고, 정말로 감정이 폭발할 수준이 되어야만 겨우 그 감정을 느낄 정도였다. 그나마도 영혼의 잔재가 남아있던 덕분인 것 같다고 안젤라가 덧붙였다. 하지만 그것도 확실하지 않다고 했으니 결국 내 몸에 대한 의문점들은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었다.

 이론만 난무한 내 몸에 이질감이 느껴졌다. 내 몸인데, 내 몸이 아닌 것 같았다. 몸은 기억하지만 마음이 기억하질 못하는 콱 막힌 감각들이 너무 혼란스러웠다.

 

 ……………

 

 “에휴, 혼자 궁상떨고 있어서 뭐하냐? 할 일도 다 했는데 그만 내려가서 잔업이나 마저 하자.”

 멍청하게 앉아 지나가버린 일들을 되새겨봤자 더 괴로울 뿐이다. 뒷사정이야 어쩌든 우선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있다.

 얼른 잡념을 떨어버리고 하산을 하려 자리에서 일어나 짐들을 챙겼다. 지금 이상으로 산에서 정경을 감상해봤자 머리만 더 복잡해지기만 했다. 게다가 안젤라가 성화를 내기 전에 한시바삐 점심도 준비해야 하고, 아직 빨지 않은 빨랫감이 제법 쌓여있고, 그놈의 시약연구를 하면서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가운들을 빨다보면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걸 볼 수 있을 정도니. 그것도 손빨래로! 안 그래도 하도 깔끔을 떨어서 흰 가운에 얼룩덜룩 묻은 시약들을 하얗게 원상복귀하고 나면 진이 빠져서 온몸이 너덜너덜해진다. 애초에 더러워지는 게 싫으면 흰 가운을 입지 말던가.

 그걸 다 요구하는 안젤라도 대단했지만, 그걸 다 해내고 있는 나도 참 신기한 놈이다. 집안일이라곤 거의 손도 안 댔던 나였는데, 어느 새 벅찰 것만 같던 일과들을 능숙하게 처리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제 나도 어엿한 살림꾼이라는 건가? 인문계 대학 나와서 가정주부라니, 부모님이 이런 날 보시면 무슨 생각을 하시려나.”

 아마 그리 좋아하시진 않으실 거다. 힘들게 대학 보내놨더니 고작 한다는 게 가정주부라니. 내 스스로도 웃긴 처지인데 부모님은 오죽할까.

 “뭐, 새로 시작한 삶이니까 전생의 스펙은 초기화됐다고 생각하자. 이제 슬슬 내려가야겠다. 안젤라가 또 보채기 전에 얼른 준비를 해놔야지.”

 

 

 “음……. 나쁘지 않네.”

 패온 장작들로 불을 지핀 화로 위에 놓인 냄비. 그 냄비 안은 여러 채소들과 렉터라고 불리는 공룡같이 생긴 식용동물의 고기를 넣고 끓인 스프가 끓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오늘의 점심메뉴의 주인공인 ‘이거 하나면 3일은 삼시세끼 걱정이 없는 영양만점 렉터 스튜’다. 내가 만들고, 내가 이름 붙였다.

 “이 렉터 고기. 은근히 맛이 좋단 말이지. 싸기도 하고. 생긴 건 우락부락한 육식공룡인 주제에 육수로도 좋고 식감도 좋단 말이야.”

 일전에 마을로 내려갔을 때 한 번 본 적이 있던 렉터가 떠올랐다. 외모는 파란색 피부를 가진 티라노사우루스 축소판처럼 생겼는데 사람 말은 참 잘 따르던 놈이었지. 정육점 사장님이 말씀하길, 원체 번식력도 좋고 순해서 잘만 길들이면 10마리로도 1년만 지나면 50마리는 금방 불린다고. 역시 역사는 밤에 이루어지는 법. 10이 50으로 불어나는 생명의 신비란.

 “렉터 구이도 거의 다 돼가고, 빵은 어제 미리 사놨으니까 이제 스프만 준비하면 만사 Ok. 그럼 슬슬 안젤라를 불러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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