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차례 손이 거쳐지자 모든 식사준비가 끝났다. 스프도, 렉터 구이도, 버터롤 빵도. 이 정도면 거의 진수성찬 아니야?
둘렀던 앞치마를 앉을 의자에 대충 걸어놓고 안젤라의 연구실이 있는 지하실로 발걸음을 돌렸다. 지하실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바로 아래로 난 층계를 이용하면 바로 내려갈 수 있었다.
안젤라의 거처는 그리 넓지 않았다. 산중턱에 집을 지었으니 협소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그녀의 집은 2층 구조로, 현관문과 거실 겸 부엌을 겸하고 있는 큰 방, 그리고 현관문과 큰 방을 잇는 좁은 복도가 있는 1층과 안젤라의 방과 내가 묶고 있는 방, 그리고 안젤라가 시약연구의 재료를 재배하기 위해 마련한 테라스가 있는 2층, 마지막으로 안젤라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연구에 힘쓰고 있는 연구실로 쓰이고 있는 지하실. 나와 안젤라가 지내기엔 그리 좁지 않은 평범한 집이었다.
현재 안젤라가 있는 지하실의 입구는 복도에, 정확히는 2층으로 올라가는 층계 밑,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현관문과 큰 방으로 통하는 문 사이에 있다. 한마디로 굳이 사람 부르려고 지하실까지 내려갈 필요가 없는 거다.
“안젤라님! 식사준비 끝났어요!”
지하실에서 연구를 하고 있을 안젤라를 큰소리로 불렀다. 하지만 내 부름이 들리지 않았던 것인지 공허하게 복도를 울리고 돌아온 내 목소리뿐이었다.
“흠. 또 연구에 집중하고 있나보네. 아마도…, 그 연금술학과의 과제에 혈안이 돼있겠지. 휴, 적당히 하면 될 것을 또 작정하고 빠져 있나보네.”
적당이라는 건 개나 주고 오직 최고만을 원하는 안젤라의 성격은 본받을만하면서도 도가 지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남들과는 차별화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은 건 알겠지만, 어느 정도는 적정선을 지켜줬으면 하는데….
“…집중하고 있을 때 부르면 싫어하는데. 음….”
늘 그래왔듯이 안젤라를 기다릴 것인지, 아니면 그녀를 그냥 불러낼 것인지 고민했다. 몇 번 연구에 집중하고 있던 그녀를 부르다 화를 입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한번은 지하실에 내려갔다가 괴식물한테 잡아먹힐 뻔한 적도 있었으니, 이 정도면 말 다했다. 그런 마음인지라 굳이 부르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약속했던 시간을 훌쩍 넘기면서까지 연구실에서 나오질 않으니….
“시간약속이라면 곧잘 지켰는데. 뭔가 잘못됐나?”
안젤라도 실력이 있기 때문에 괜히 초심자가 잘못 들어가서 일을 망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이런 생각으로 내려갔다가 죽은 몸 다시 죽을 뻔한 게 여러 번이니….
“음…. 슬쩍 확인만 해보고 올까?”
일단 본문에 충실하기로 하자. 만약 진짜 위급한 상황인데 방치했다가 안젤라가 위험한 상황에 빠지면 곤란하니까.
결단이 서자 나는 발걸음을 창문을 통해 햇빛이 밝게 들어오는 복도에 섰다. 귀에 익숙한 마룻바닥 삐걱거리는 소리가 복도를 울릴 때마다 내 발걸음은 지하실로 통하는 층계와 점점 가까워졌다.
“…음?”
보통 때와 똑같은 복도였지만, 오늘은 약간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질감이 느껴지는 분위기를 풍기는 진원지인 복도의 구석에서 기이한 기운이 일렁였다.
창문을 통해 드리운 햇빛이 비치지 않는 음영 아래로 미세한 검은색 연기가 일렁거리는 게 보였다. 그 미세하고 옅었던 검은 연기는 마치 살아 움직이는 생물처럼 한 자리에서 원을 그리며 돌더니 이내 조금씩 그 크기가 커지기 시작해 형편없이 작았던 연기의 형체는 점점 커져 크기가 성인 한 명은 완전히 둘러칠 정도의 크기가 되었다.
갑자기 일어난 변화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복도의 음영에서 회오리치던 검은 연기가 구심점을 중심으로 주변으로 순식간에 흩어지는가 싶더니, 어느 새 그 중심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홀연히 서있었다.
사람과 동물을 합쳐놓은 것 같은 괴이한 외모. 사람같이 이족보행을 하고 있었지만 온몸은 털로 뒤덮인, 그것도 보는 것만으로도 복슬복슬해 보이는 털로 덮인 몸. 발은 개과의 발과 달리 사람의 것을 하고 있는 손. 그래도 털로 덮여있는 건 똑같았다. 강아지처럼 튀어나온 주둥이와 내려앉은 길쭉하고 두꺼운 귀. 머리카락이라고 해야 할진 모르겠지만, 머리 뒤로 자란 털 중 두 줄로 묶고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풀어놓은 머리스타일. 검은색 바탕에 푸른색으로 날카로운 눈을 그린 나무로 만든 안대 형식의 가면. 그리고 손에 든 기이한 모양의 거대한 활과 등에 멘 거대한 가방. 가방 밑으로 보이는 흰색의 길고 털이 풍성한 꼬리.
압권은, 나무로 만든 투박한 활의 몸체는 희미하지만 그녀의 신체를 뒤덮은 흰색의 털처럼 은은하게 흰색의 빛을, 활시위는 보기는 것만으로도 꺼려지는 칙칙한 검은빛을 발하고 있었는데, 활의 자태가 괴이한 모습과 한데 어우러지니 음영에 드리워진 그 모습이 마치 귀신을 보는 것 같았다.
굉장히 기묘하고도…, 괴기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리고……,
……….
“다녀왔습니다.”
맑고 청아하지만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공수경례를 하며 내게 한국식으로 공손히 인사했다.
덕분에 등에 멘 가방, 내가 메기에도 버거울 것 같은 그 가방의 무게가 앞으로 쏠려 볼썽사납게 앞으로 꼬꾸라졌다.
“낑!”
그래도 외모가 나름 개같…, 강아지같이 생겼다고 입에서 나오는 소리도 개가 아플 때 내는 소리를 냈다.
“킨, 괜찮아?”
“네.”
짧고 무미건조한 대답이 들려왔다.
“그렇다면 다행이네. 도와줄까?”
“네.”
내가 내민 손을 잡으면서도 역시 짧고 무미건조한 대답만이 돌아왔다.
무거운 가방에 짓눌린 기이한 생물체, 킨을 도우려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엎어진 그녀가 내 손을 맞잡는 동시에 다른 손으로는 일어나기 쉽게 그녀의 가방끈을 잡았다.
양손에 이질감이 확실히 감기는 게 느껴져 힘껏 끌어올리자 킨은 별 무리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킨이 먼지를 터는 등 몸을 추스르는 사이, 그녀가 떨어뜨린 활을 집었다.
“조심하라고. 죽었다지만 하나뿐인 몸이잖아. 간수 못하면 안젤라가 슬퍼할걸?”
“주의하겠습니다.”
킨이 내가 건네준 활을 받으며 내 당부에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딱딱한 어투와 자세. 몇 번을 봐도 느끼는 거지만 로봇이랑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여전히 딱딱하네.”
“무엇이 말씀입니까?”
“어투나, 자세나. 이것저것이 전부 다. 참견이 심했나?”
“불편하신 겁니까?”
“아니. 뭐랄까, 어깨에 힘 좀 빼라는 거지. 전에도 말했지만 집에서까지 밖에 있던 것처럼 몸에 긴장을 넣고 있을 필욘 없잖아?”
“노력하겠습니다.”
킨의 무덤덤한 대답에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뭐, 그렇게 말하면 도리가 없지. 얼른 짐 정리하고 와. 오늘은 식탁에 고기 나왔다?”
“고기…!”
고기 한 마디면 그나마 저 무덤덤한 말투를 없앨 수 있었다. 오랫동안 지내다보니 자연스레 알게 된 사실이다. 천성은 못 버린다고, 겉모습은 이랬지만 알맹이는 영락없는 강아지였다. 겉으로 보기만 하면 냉정해 보이는데 이렇게 보면 참 단순했다. 언제 봐도 참 순수한 녀석이라니까.
“며칠만에 온 거니까 영양보충 좀 하라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감사하긴.”
안젤라가의 첫 번째 언데드. 그것이 바로 킨. 한마디로 내 언데드 선배 격이다. 안젤라에게 듣기론 킨은 원래 그녀의 애완동물이었다고 했다. 킨이 동물일 적 수명을 다하고, 킨의 빈자리에 쓸쓸해하던 안젤라가 기어코 킨의 영혼을 회수해 인공신체인 ‘젤’을 만들어 의식을 통해 언데드로 부활시킨 것이다. 그것도 10살이라는 나이에 말이다.
“킨! 돌아왔구나!”
그때 뒤에서 안젤라가 반가워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굴엔 함박웃음을 띄우며 킨을 품에 껴안았다.
“주인님.”
얼떨결에 안젤라에게 껴안긴 킨은 여전히 덤덤한 말투였지만, 목소리에서 미세하게 느껴지는 반가운 기색을 숨기지 못한 킨도 안젤라가 반가운 건지 그녀의 꼬리가 살랑였다.
“약간 소란스러운 것 같아서 나와 봤더니, 이렇게 반가운 얼굴을 보게 될 줄이야. 그동안 잘 지냈어? 어디 다친 데는 없고?”
“네. 주인님 덕분에 무탈할 수 있었어요. 이렇게 좋은 몸을 주셨는걸요.”
“역시 킨. 어쩜 이렇게 예쁜 말만 골라서 할 수 있을까?”
안젤라가 자신의 뺨을 킨의 얼굴에 비비며 애정표현을 했다. 킨은 그녀의 애정표현이 좋은지 안젤라의 허리를 살포시 껴안았다. 누가 보면 몇 년 동안 떨어진 자매로 착각할 정도로 둘만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 모습을 보니 괜스레 한쪽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금강산도 식후경…, 아니지. 일단 식사가 마련돼 있으니까 먹으면서 마저 이야기 하시죠? 음식 식습니다.”
“그게 좋겠다! 킨, 우선 들어가자. 많이 배고프지? 자자! 빨리 가자!”
안젤라가 내 말에 반색하며 킨을 품에서 떼더니 킨의 손을 잡고 곧장 큰방으로 이끌었다. 킨은 안젤라의 이끌림에 군말 없이 총총걸음으로 안젤라를 따라갔다.
큰방 쪽으로 사라지는 안젤라의 얼굴에는 산뜻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평소에는 저렇게 환하게 웃지 않는 안젤라였지만, 이렇게 킨이 나갔다가 돌아오는 날이면 보기 좋은 미소를 지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