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다. 대화소리와 숨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이, 이렇게 하면 되는 겁니까?”
킨이 어색하게나마 시늉을 해봤지만 여전히 부자연스럽다. 무어라 할 수 없는 불만족감이 든다.
“아니. 그렇게 하면 안 되지. 근육을 약간 느슨하게 풀어주면서 천천히.”
“그러면, 이렇게 하면?”
“좀 더.”
“이게 제 최선입니다…. 이 이상은 저라고 할지라도 무리입니다. 더 이상은….”
“흠….”
킨은 어떻게든 시키는 대로 해보려고 노력하긴 했지만, 그녀도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았다. 문제는, 그녀가 한계에 도달할 때까지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내 마음엔 영 차진 않았다는 거다. 노력하는 기색을 봐서라도 넘어가주곤 싶었다. 하지만 이건 킨이 자발적으로 부탁을 해온 이상 철저하게 짚어줄 생각이었다.
부자연스럽게 앉아있는 킨에게 손을 뻗었다. 본인이 교정하기 힘들다면 직접 교정해주면 될 노릇이다. 그게 내게도 편하고 좋았다.
“으…!”
“뭐야? 갑자기.”
내가 손을 뻗자, 혼자서 안간힘을 쓰던 킨이 흠칫했다. 약간 놀란 눈치였다.
“드, 드레이크님이야 말로 왜 갑자기 손을 뻗으시는지?”
“부드럽게 한다는 게 뭔지 직접 알려주려고 그러지. 이런 식으로 했다간 날밤을 새도 너나 내나 원하는 데는 발치에도 못 닿을 같아서.”
“그, 그렇게 부족합니까?”
내 지적에 킨이 적잖이 당황해했다. 아마 그녀는 자신 자연스럽게 행동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착각도 유분수지.
“역시, 저로서는 안 되는 걸까요….”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야. 힘내. 분명 좋아질 거야.”
“네.”
내 격려에 킨이 자신감을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고자하는 의지는 확실히 다진 것 같았다.
그녀는 다시 결의를 다졌고, 나는 그런 그녀에게 다시 손을 뻗었다. 이번엔 그녀도 거부하지 않고 피부로 전해지는 내 손길에 의식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이런 느낌으로 한다고 생각하면 돼. 별로 어렵지 않지?”
살며시 눈을 감은 킨은 한참이나 의식을 피부로 전해지는 감각에 집중했다. 나는 그런 그녀가 내가 하고자 하는 방향을 이해할 수 있게 더욱 세밀히 손을 놀렸다.
“음…. 역시 잘 모르겠습니다.”
휴….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진전이 없다니. 이렇게 되면 나로서도 방도가 없었다.
“휴.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과유불급이랬어, 과유불급.”
벌써 2시간째였다. 성과는 전혀 없었고, 성과 없는 되풀이에 나는 물론이고 킨도 지쳐갔다.
“죄송합니다. 아직 서투르다보니.”
“아냐. 서투르다고 말하긴 좀 그런 게, 억지로 웃는다고 해서 웃어지면 그게 더 웃긴 거지. 웃는 걸 강제할 순 없는 일이니까. 이으으윽!! 계속 앉아있었더니 여기저기가 찌뿌둥하네.”
미안해하는 킨을 위로하며 앉았던 의자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폈다. 같은 자세로 2시간이나 앉아있었더니 관절이란 관절은 전부 쑤셨다. 쑤시는 관절과 딱딱하게 굳은 근육을 풀려 기지개를 펴니 저절로 눈물이 나올 정도다.
눈가에 고인 눈물을 손으로 훔치며 진전이 없는 갑갑한 심정에 머리를 긁적였다. 손가락으로 입매를 치켜들어 올리는 다소 억지스러운 짓까지 했는데도, 그녀의 무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이게 마지막 남은 조치였는데.
“재밌는 거 보는 것도 해봐고, 웃긴 걸 보는 것도 해봤고, 간질여도 봤고.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봤는데 전혀 차도가 없네. 역시 주입식교육에는 한계가 있는 건가?”
“표정을 공부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닌 걸까요?”
“흠….”
표정이란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표현수단 중에 하나였다. 기쁠 땐 웃음을 짓고, 화가 날 땐 얼굴을 찌푸리고, 초조해면 입술을 깨무는 모든 표정들 하나하나가 감정을 표현하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본능적인 방법이다. 표정은 공부를 하는 게 아니었다. 공부를 한다면 그건 연기에 불과할 뿐이었다. 표정은 숨길 순 있어도 배울 수 없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킨에겐 절대로 말할 수 없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역시 안 되는 거군요….”
저 실망스러운 표정을 보고 있으면 말하고 싶어도 망설여진다. 무덤덤한 말투였지만 킨의 어투에서 작은 실망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간의 노력들이 수포로 돌아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 일을 시작한지 일수로 따지면 일주일, 즉 킨이 영혼채집을 나갔다 돌아온 모든 기간 동안 하루에 2시간가량 정도를 그녀와 표정연기를 위해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장장한 시간동안 킨은 내게 표정을 연기하는 법이랑 자잘한 표현방법들을 배웠다. 그녀는 정말 내가 진이 빠질 정도로 열심히 연습했다. 눈에 보일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지금 도출된 결과처럼, 앞으로의 과정이 그리 순탄치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실망해하는 킨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실망하지 말라고. 그래도 넌 나하곤 다르게 영혼이란 게 있잖아? 영혼이 있는 한 노력하다보면 꼭 결실을 맺을 거야. 너무 낙담하진 마.”
영혼은 모든 정신적인 능력을 담고 있다. 마나를 담는 그릇이기도 하며 지금처럼 감정을 표현하는 감정의 그릇이기도 했다. 킨이 영혼이 있는 한 언젠간 그녀 또한 자연스럽게 표정을 지을 날이 올 것이다. 그저 그 때가 언제 올 지가 문제일 뿐.
그러나 킨은 그것마저도 성에 안 차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매번 주인님이랑 대화를 할 때마다 주인님에게 너무 죄송스러운 걸요. 주인님은 제 말에 놀라시기도, 웃어주시기도 하시는데 저는, 주인님의 말씀에 전혀 웃어드릴 수 없어요. 평범하게도 부응해드리고 싶은데. 오늘도 또 그랬고요.”
킨이 죄책감에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는 단순한 부하라는 굴레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좀 더 가까운 존재서로, 안젤라의 말벗 같은 게 되고 싶은 건가?
이토록 킨이 노력해가면서까지 표정연기에 몰두하는 이유를 안다면 안젤라도 분명히 기뻐하겠지. 오직 자신만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그녀가 싫어할 리 없었다. 아마 이 사실을 알게 됐다간 분명 ‘상관없어! 난 지금의 킨도 좋으니까!’하면서 또 껴안으려 들겠지.
“안젤라는 그런 건 별로 신경 안 쓸 것 같은데? 안젤라는 네 본연의 모습을 좋아하잖아. 굳이 킨 네가 힘들여가면서까지 표정에 공들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아뇨. 주인님이 괜찮으시더라도 제가 용납할 수 없습니다.”
무릎에 올려둔 킨의 주먹을 불끈 쥐어졌다. 그녀의 목소리엔 굳은 의지마저 보였다.
“주인님은 절 다시 살려주신 데다 새로운 몸까지 주신 은인이세요. 게다가, 제가 죽기 전부터 제 주인님이셨고요. 그런데, 그러신 분에게 저는, 그저 시키는 일밖에 할 수 없는 수준밖에 되지 못해요.”
와우…. 이 정도면 세상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충신…, 충견인데?
“너 정도면 굉장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못하는 사람이 세상엔 수두룩하다고.”
이제껏 봐온 킨의 안젤라를 향한 충성심은 그야말로 상상이상이다. 아무리 시체에서 부활한 언데드라지만, 여타 다른 언데드처럼 자유와 의지가 네크로맨서에게 억압받지 않았다. 한마디로 킨의 충성심은 순수한 킨의 의지였다. 그런데 적절한 보상도 없이 며칠이나 외지를 돌아다니며 영혼을 수집하고, 악령을 신전에 넘겨주며,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다고 생각해 표정연기를 공부해가며 오직 안젤라만을 위해 혼신을 다했다. 내 생각으론, 킨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충분히 소화해내고 있었다. 본인은 불만족스러운 듯 했지만.
긴 침묵이 흘렀다. 나도, 킨도. 입에 지퍼를 채운 것처럼 굳게 입을 다문 채였다. 그녀는 자신만의 고민에 빠져 사색에 잠긴 것 같았지만, 그녀의 침묵은 내게 너무나도 불편했다.
뭔가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려야할 것 같은 기분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이대로 불편한 기류 속에서 멍청하게 앉아있는 것보단 훨씬 나겠지.
“어이, 킨. 이렇게 생각만 해서 해결되겠어? 너무 생각만 하면 과열돼가지고 오히려 잡생각만 더 들걸? 지금도 그렇지?”
“…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렇습니다.”
“그래. 자고로 머리를 굴릴 때는 쉬엄쉬엄해야 하는 거야. 과부하 걸리면 그때부턴 답 없거든.”
“하지만 무엇으로?”
“구체적으로 뭘 한다기보다는 그냥 기분전환이나 하자는 말이지. 그러면 다른 해결책이 생각날 지도 모르잖아?”
“기분전환이요?”
드디어 킨이 고개를 들어 날 바라봤다.
“그래. 머리도 식히고, 몸에 활력도 불어넣어줄 겸 말이야. 몸을 움직여야 뇌가 활력을 얻지.”
시험을 앞둔 수험생에게는 쉬기 위한 좋은 변명거리지만 지금의 킨에겐 활력소 재충전을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
내 설득에 킨은 잠시 멀뚱멀뚱 내 모습을 지켜보더니 이내 작게 숨을 토했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주억였다.
“그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네요. 지금 혼탁한 머리로 고민하느니 차라리 드레이크님이 하시자는 대로 몸을 움직여 보는 게 좋겠네요. 하지만 뭘 하면서….”
관건은 이거다. 과연 무엇을 하면서 기분전환을 하는가. 주변에 있는 거라곤 산이랑 유희시설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마을밖에 없는 이 촌구석에서 기분전환으로 무엇을 하느냐. 뭐 가볍게 산책하는 것도 좋을 테고, 시원한 음료수나 마시면서 끝내주는 경치 구경하는 것도 좋을 테지만, 역시 킨에겐 방금 떠올린 방법이 가장 좋을 것 같다.
“내가 하나 생각해둔 게 있긴 한데. 근데 그게 네 도움이, 좀 많이 필요해.”
“제 도움이요?”
킨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 네 도움. 일단 밖으로 나와. 자세한 얘기는 밖에서 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