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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peness
작가 : 아웃
작품등록일 : 201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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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아이덴티티
작성일 : 17-07-06     조회 : 39     추천 : 0     분량 : 4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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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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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덧 해는 기울어 산등성이를 넘어가고 푸르던 하늘은 노을빛으로 물들었다. 작디작은 마은 금빛으로 물들어 변해갔다. 킨과 표정연기를 공부하기 전까지만 해도 한낮이었는데 벌서 시간이 이렇게 된 모양이다.

 산을 타고 내려온 바람이 뺨을 훑고 지나갔다. 깨끗한 공기가 좀 전까지 어지럽던 머리를 정화해주는 것 같았다.

 “바람 좋~네. 역시 답답한 방 안보단 밖이 훨씬 좋다니까.”

 “저…, 드레이크님.”

 한참 맑은 공기를 만끽하고 있을 때 킨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 왜? 갑자기 망설여져?”

 “…예.”

 “걱정 마. 치명타만 아니면 상관없으니까. 그건 너도 알잖아?”

 넓은 안젤라의 집 앞마당. 킨은 지금 상황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통 영문을 알 수 없어하는 표정엔 망설임이 배여 있었다.

 킨이 내 눈을 지그시 바라봤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똑바로 쳐다봤고, 내가 굽히지 않을 걸 깨달았는지 그녀는 내키지 않는 손놀림으로,

 

 자신의 활시위를 당겼다.

 

 “고통은 그대로 전해집니다. 지금이라도 그만두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못내 염려가 됐는지 킨의 걱정스러워하는 어투로 걱정을 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판을 물릴 생각은 없었다.

 나는 안젤라의 창고에서 꺼낸 목검과 방패를 고쳐 잡았다. 아마 전투용으로 만들 언데드에게 쥐어줄 생각으로 구비해놓은 것 같았지만, 좀 쓴다고 군소린 하진 않겠지.

 “걱정도 태산이다. 다치면 침 바르면 되고 찢어지면 꿰매면 그만이야.”

 부활할 때부터 전투를 치러온 킨. 하지만 정반대로 부활할 때부터 집안일을 해온 나. 상성부터 차이가 심했다. 킨이 걱정하는 건 당연했다.

 “그냥 대련해준다고 생각해. 아니면 어린애랑 놀아준다고 생각하거나.”

 내가 봐온 사람 중에서 킨만큼 전투에 특출한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장난 식으로 배운다고 쳐도 킨에게 배울 점은 상당히 많았다. 그만큼 그녀에게는 전투에 일가견이 있었다.

 “이만큼 설명해줬으면 됐지? 자, 그러면 선생님. 한 수 부탁드릴 게요.”

 “그래도….”

 여전히 망설여지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참, 덧붙이자면 내가 강해지는 건 곧 안젤라가 더욱 안전해진다는 말이랑 연결되는 거 알지? 아군의 전력이란 강할수록 좋은 거 아니겠어?”

 “주인님의, 안전?”

 순식간에 킨의 눈빛이 바뀌었다. 강가에 내놓은 애를 보는 것처럼 불안한 눈빛은 사라지고 킨의 눈엔 일말의 망설임조차 사라진 단호한 눈빛이 빛났다.

 “알겠습니다, 드레이크님. 준비 되셨습니까? 전 전투에 관해선 아량을 베풀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시작해. 만반의 준비를 갖췄으니까.”

 처음 보는 진지한 킨의 모습. 조금 무섭긴 했지만 궁금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봐온 킨이란 팔불출 엄마를 둔 엄친딸에 순수하다 못해 약간 엉성하면서 귀엽기도 한 강아지였다. 그런 이미지 때문인지 그녀가 그 무섭다는 악령을 잡을 수 있는 강한 언데드로는 보이지 않았다.

 “어서 시작하자. 해 떨어질라.”

 목도와 나무 방패를 고쳐 잡았다. 창고를 청소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게 설마 도움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그럼, 들어갑니다.”

 킨이 자세를 잡았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몸을 감싸던 봄 저녁 무렵의 시원함, 그 시원함마저 삼켜버린 싸늘한 기운이 갑자기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피부로 그 시원함을 느끼고 있던 내게 그 싸늘함은 소름이 돋게 만들었다. 하지만 더 섬뜩한 건, 그 싸늘함이 다름 아닌 킨으로부터 뿜어져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가면 너머로 가려진 킨의 눈동자는 먹잇감을 노리는 맑은 푸른색이 이채를 발했다. 그 이채로부터 전해지는 익숙지 못한 무시무시한 기세에 순간 몸이 굳어버렸다.

 정말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엄습해오는 공포감과 본능이 말해주는 위험함에 방패를 몸 쪽으로 바짝 땅겼다. 설마 이 정도일 줄은….

 왠지 모르게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만 같은 예감에 자세를 바꾸려 방패를 든 손이 몸을 가리도록 올렸다. 그때 내 움직임을 시작으로 킨이 활을 사선으로 비스듬히 들어 조준점을 내게로 맞췄다. 그러자 킨의 활대와 시위 사이에 검은색의 빛이 빠른 기세로 뭉쳐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누가 봐도 명백한 검은색으로 빛나는 흑색 화살의 형체가 나타났다.

 한 걸음 물러서며 자세를 단단히 고정시킨 킨은 자세를 낮춰 안정적인 자세를 취했고, 내 몸으로 조준된 화살을 먹인 활시위를 놨다.

 

 퍽!

 

 “…옴마야.”

  그녀의 손을 떠난 화살은 맹렬한 속도로 나를 향해 날아와 굵직한 파열음을 내며 방패에 꽂혔다. 심지어 화살대의 절반이 방패를 뚫고 들어오기까지 했다. 자칫 잘못했다간 가슴팍에 구멍 하나 만들고도 남을 정도였다.

 어째, 이거 심상치 않은데.

 “이게 화살이야 창이야…. 방패를 뚫는 화살이라니, 너무한 거 아니야?”

 생각외의 위력에 식겁한 나머지 하마터면 목검을 놓칠 뻔했다. 이게 대체 무슨 시츄에이션인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킨의 실력을 너무 낮잡아본 듯하다.

 “어이, 킨. 좀 살살하다고.”

 처음의 태도와 달라진 내 저자세가 창피하긴 했지만, 이 정도 수준의 대련을 바랬던 것이 아니었다. 그저 단순히 낙심한 마음을 풀 수 있도록 그녀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종목으로 위로해주려던 것뿐이지 방패가 뚫릴 정도의 무식한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려고 이 일을 계획한 것이 아니다. 사실상 말뿐이야 다치면 침 바르고 찢어지면 꿰맨다는 거지, 아파본 적이라고는 몸살감기랑 레고 밟은 것뿐인데 상처를 꿰맬 정도의 상처가 생겼었을 리 없잖아!

 퍽!

 “우왁!”

 하지만 내 부탁에 대답 대신 되돌아온 것은 여전히 엄청난 위력을 품은 흑색 화살이었다. 흑색 화살은 어김없이 방패에 박혔고 어느새 킨은 내게 날릴 또 다른 화살을 메기고 있었다.

 젠장. 내 말이 전혀 안 들리나보네.

 이젠 몸으로 부딪혀야 할 듯싶었다. 말이 안 통하니 방도가 없었다. 완전히 지금 상황에 집중하는 것 같았다.

 다시 메겨진 세 번째 화살이 킨의 손에서 벗어나 공기를 가르며 날아와 이번에도 역시 화살은 방패에 박혔다. 그런데 워낙 위력이 세다보니 화살이 박히자마자 나무로 만들어진 방패가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화살에 방패가 갈라지다니, 이거 완전 사기잖아! 애초에 방패자체가 튼튼해야지 제 구실을 하는 건데 고작 화살 세 대에 부서지기 일보직전이라니. 대체 어떤 식으로 화살을 쏘면 이 지경이 되는 거지?

 이대로 계속 화살만 막았다간 승산이 없었다. 화살 세 대에 이 정도라면 킨이 한 번 더 화살을 방패에 맞혔다간 그대로 방패를 뚫고 나를 맞힐 게 분명했다.

 “이거 에누리가 없네.”

 단 하나의 실수가 생사를 결정한다. 물론 죽지는 않겠지만. 아마 죽을 만큼 아프긴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로 아픈 건 사절이었다.

 잔꾀는 통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산전수전으로도 모자라 우주전까지 겪었을 킨에게 같잖은 수작은 통할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내게 남은 건 전진뿐이다.

 결단이 서자 나는 방패를 치켜들고 킨을 향해 돌진했다. 그녀는 내 돌진에도 노련함을 발휘해 차분하게 화살을 쐈다. 무서운 속도로 날아온 화살은 또 다시 내 방패로 쇄도했다.

 화살이 방패에 꽂히자 예상했던 대로 위태위태했던 방패는 박살이 나는 소리와 함께 그 형태를 잃었고, 그대로 방패를 뚫은 화살은 거대한 반동을 주며 어깻죽지에 꽂혔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화살이 준 반동과 엄습해오는 고통에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고통스러워도 몸에 위해는 없었다. 어차피 시체니까. 시체에 난도질한다고 시체가 과다출혈로 죽을 리 없다. 게다가 출혈로 흘릴 피 따윈 안젤라가 나를 언데드로 만들어버렸을 때 죄다 뽑아버린 지 오래였다. 이미 나는 생존이라는 것에 얽매이기엔 거리가 너무 먼 존재였다.

 피 한 방울 흐리지 않는 어깨에 관심을 끊고 차분히 마음을 다스렸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 흥분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다. 위급한 상황일수록 머리는 차갑게 해야 한다.

 한층 가라앉은 감각을 뒤로하고 목도의 끝을 킨에게 겨냥했다. 킨은 여전히 물러설 생각이 없는 듯 활에 다음 화살을 먹였다. 킨의 위협적인 태도는 대련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게 그녀의 방식이며, 그녀의 성격이었다. 모든 것에 진심을 다하는 것. 어떤 의도에서든 킨에게 대련을 청한 이상 물러설 길은 없다. 아마 그녀라면 내가 전투불능이 될 때까지 화살을 쏠 것이다.

 어깨로 전해지는 고통을 애써 무시하며 앞으로 내달렸다. 이제 나를 지켜줄 무구는 없었다. 목도로 킨의 화살을 쳐내지 않는 이상 말이다. 이젠 최선의 방어가 공격이라는 말을 몸소 실천해야 할 때다.

 “가만히 당하고만은 있지 않을 거라고!”

 한쪽 어깨와 방패 하나를 희생하며 달린 결과, 킨과 십여 걸음 정도까지 거리를 좁힐 수 있었고 그녀가 나 같은 실력의 조무래기는 상대도 안 되는 명사수라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제아무리 뛰어난 명사수라도 그건 활을 쏠 수 있는 요건이 됐을 때 이야기다. 고작 몇 걸음 달려가면 좁힐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이상 그녀의 능력은 이제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침묵을 유지하는 킨. 화살을 맞을 것을 각오하며 내달리는 내 발걸음. 내가 더 빠를까, 아니면 그녀가 내게 화살을 맞히는 게 더 빠를까.

 

 정답은 내 발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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