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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맞이 꽃
작가 : gkgkt
작품등록일 : 201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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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맞이 준비
작성일 : 17-07-02     조회 : 371     추천 : 0     분량 : 5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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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도 참 너무 하신 거 아니에요? 우리 조상님은 엄연히 육식이고 안 그래도 참을성 없는 분이기로 유명하셨다고 지금까지도 전해지는데. 그 조상님의 피를 그대로 물려받은 저에게 조상님을 대신하여 동굴에서 마늘과 쑥만 먹으라니요!”

  “할머니 입장에선 배가 아프신 게지. 우리와 양대 산맥으로 있던 곰 족인데 이젠 뒤꽁무니만 쫒는 입장이니. 네가 이해하고, 1년만 어떻게든 버티면 되지 않느냐.”

  “1년 동안 풀떼기만 먹으라는 게 지금 자식에게 할 소리십니까? 조상님도 100일이었습니다. 100일도 포기하신 조상님인데 제가 어찌 1년을 버틸 수 있겠습니까?”

 

 

  온 집안이 뒤집어져라 나는 동굴로 가는 길을 부정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알 수 없는 금발의 여인을 모실 시종을 구한다는 이유로 왕께서는 우리 가문에게 동굴로 들어가 1년 동안 마늘과 쑥만 먹으라는 명령을 내리셨다. 그에 당연하다는 듯 우리 가문 최고 어르신인 김순매 할머니께서는 나를 지목 하셨다. 우리 가문에서 육식으로는 최고라고 고기가 남아나질 않겠다고 진절머리를 치신 분이 김순매 할머니시면서 나를 지목했다는 게 모순적인 거 같다는 생각이 떨쳐지지가 않는다. 나는 절대 풀떼기만 먹으면서 살고 싶지도 않고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날 것이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기에 이에 대한 충격은 이 나라를 뜰 까 하는 깊은 고민으로 이어졌다.

 

 

  “달만 보면 울어대는 저의 본능은 앞으로 육류가 그리워 슬피 우는 소리로 변질 될 것이에요”

  “벌써 수긍을 한 것이구나. 참 잘 되었다, 나가서 마늘과 쑥이나 넉넉하게 사오너라.”

 

 

  하나 뿐인 딸을 저렇게 독하게 키우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나도 저렇게 되면 훌륭한 어미가 될 수 있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은 든다만 너무 냉정하신 어머니는 나를 참 슬프게 만들었다. 내가 먹을 쑥과 마늘을 내 손으로 사오게 하시다니.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최대한 맵지 않은 마늘을, 최대한 식감이 육류 같은 쑥을 사오는 것도 방법이라 생각하고 길을 나섰다.

 

 

  “다란이 왔구나, 그래 일주일 후에 동굴로 들어가기로 했다면서?”

 

 

  이미 마을에는 소문이 다 퍼져 있다는 것은 나도 알았지만 어딜 가던 나의 동굴 소식만을 말씀해 오시는 이웃 분들 때문에 기분이 더 축축 쳐졌다.

 

 

  “꼬리와 귀가 축축 쳐졌구나, 어지간히도 가기 싫은 모양이다?”

 

 

  조상님께선 비록 인간이 되는 길을 포기하셨지만 그 잠깐이라도 고생했다며 최초의 왕께서는 우리에게도 인간의 몸을 수여하셨다. 다만 호랑이의 귀, 꼬리만은 그대로 남겨두신 상태로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감정은 금세 귀와 꼬리로 바로바로 나타났다. 할머니께서는 이렇게 어중간하게 있을 바에야 완벽한 인간이 되자고 왕의 제의를 받아들이셨고 그에 희생양이 나이니, 정말 앞길이 막막할 수밖엔 없다.

 

 

  “우리 가문에서 가장 참을성이 없는 저를 이용하여 우리 가문의 위대함을 보여주시려는 거겠죠? 그렇다면 가문에 먹칠하지 않도록 죽어서라도 동굴에 있어야 할 터인데, 걱정이 많이 됩니다.”

  “너무 그리 부담감을 가지진 말거라, 우린 네가 본능을 쫒았다 하더라도 원망하지 않을 것이니.”

 

 

  이웃 분들은 언제나 참 다정하신 분들이었다. 그렇기에 동굴에 발을 들였다면 더욱 빠져나가기 힘들 것이 분명했다. 이에 애초에 발조차 들이밀지 않는 것이 나의 목표였건만 이 목표는 생각하자마자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김 씨 아주머니께 쑥 세 줌과 마늘 30 쪽을 받아들고서 집으로 향하는 길, 나의 오랜 벗인 환연이라도 만나고 갈 까 싶어 그의 집으로 방향을 트니 유독 오늘따라 반짝거리지 않는 달이 더욱 애달프게 느껴졌다. ‘어흥-’하고 한 번 울어보니 여기저기서 ‘어흥-’하는 소리가 연달았다. 많이 그리워지겠지, 햇빛은 못보고 오로지 달빛만이 나를 비쳐주는 모습을 봐야 할 것이다. 달이 유일한 나의 벗이 될 것이고 외로이 혼자 쑥과 마늘로 한 끼를 때울 때 달만이 내 옆에 있어줄 것이다.

 

 

  “다란아!”

 

 

  마치 내가 올 줄 알았다는 듯이 집 앞에서 나를 맞이하는 환연이를 보니 울컥 눈물이 나왔다. 원래 울음이 많은 나였지만 지금 이 상황은 울 수밖엔 없는 상황이었다. 내 한 몸 희생해야 우리 가문이 더 힘이 세 진다는 것은 나도 아주 잘 알고 있다. 나만 잘하면, 나만 잘 버티면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이다. 금발의 여인을 모신다는 것은 우리의 계급이 한 층 더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렇게 된다면 곰 족과 어느 정도 실력을 겨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대로 라이벌 집안인 곰 족과 우리 족은 어느 한 쪽이 멸망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우리 아가씨 왜 눈물을 보이실까?"

  "나 진짜 잘할게, 잘 버티고 돌아올 때까지 나 기다려줘."

 

 

  환연은 우리 가문이 위기에 처했을 때 한 쪽 눈을 잃었다. 그래서 늘 안대를 끼고 있었고 우리 가문 대표로 팔에 새겨져 있는 패배자의 표식은 절대 없어지거나 사라지는 표식이 아니었다. 모두를 대표해서 환연이 희생했다. 그때 나는 한 쪽 눈이 멀어져버린 환연을 붙잡고, 한 쪽 팔에 패배자의 문장이 새겨진 환연을 붙잡고 엉엉 울었었다. 너무 슬프고 비참해서. 나는 환연을 미련하게 좋아했고 사랑했지만 그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서 나 자신에게 화가 났었다. 울화통이 터졌고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우리는 찢어져 버린 한복을 입고 서로를 힘껏 껴안으며 울었었다. 상대의 울음소리가 자신의 울음소리에 가려지길 간절히 바라면서.

 

 

  "무사히 돌아오기만 해. 곰 족이 분명 움직일 거고 생명이 위태로울 거야. 그럼에도 넌 무사히 돌아와야만 해."

  "버틸 거야, 누가 나를 위협해 오면 내가 그 자를 다시 위협할 거야. 맹세할게."

 

 

  우리는 맹세의 의미로 두 손바닥을 맞대어 엄지손가락들은 턱 밑에 대고 나머지 네 손가락을 붙여 검지를 입술에 닿게 한 채로 이마를 맞대었다. 애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환연과 같은 일들이 반복되지 않기를, 우리 가문이 다시 일어설 수 있기를. 나 또한 무사 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 * *

 

 

 

 

  아침부터 모두가 분주했다. 드디어 오늘이 내가 동굴로 떠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자그마치 1년 치 마늘과 쑥을 나무 상자에 담아 천으로 감싸고 곱디고운 청색 치마와 노란 저고리를 입고 왕의 행차를 기다린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된 느낌이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그저 동굴로 들어가 빨리 1년이 흐르길 바랄 뿐이었다.

 

 

  “왕께서 거의 다 오셨다고 합니다, 나가시지요.”

 

 

  굳게 닫혀 있던 대문이 서서히 열리고 그 사이로 보이는 왕의 모습에 내 눈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올해로 17살, 왕의 자리에 오른 지도 이제 1년 째. 나와 나이가 같으면서도 서로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왕의 옆에는 곰 족인 선아가 말을 타고 오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 부족인 사람이 있었을 수도 있는 저 자리. 한동안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금발의 여인은 보이지 않았다. 대문이 활짝 열리자 나는 고개를 숙였고 왕과 선아는 말에서 내려 내 앞에 섰다. 곧이어 처음 듣는 왕의 목소리가 내 귀를 찔렀다.

 

 

  “내 의뢰에 흔쾌히 응해주어서 감사하다 생각하고 있소, 그대를 시험한다고 생각하여 기분나빠하진 말고 무사히 다녀오기를 내 심히 바라고 있겠소.”

  “영광입니다.”

 

 

  왕과의 대화는 길지 않았다. 곧바로 우리는 대형을 갖춰 섰고 우리 부족이 나를 중심으로 빙 둘러 걸어가고 그 뒤를 왕이 함께 했다. 동굴로 들어가는 건데 뭐가 이렇게 거창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에겐 간절함이 달린 일이었다. 우리 부족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시작을 잘 해주어야만 한다. 쑥과 마늘로 버텨야 하면서 모든 위험요소들을 해치워야 한다. 갑자기 습격을 당할 수도 있고 자연재해로 인해 동굴이 무너질 수도 있다. 1년 동안 무슨 일이 생길지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 가 없다.

  내 주위로 보이는 모든 것들이 이젠 마지막일 수도 있다. 허름한 집들과 그래도 그 곳에서 힘차게 공놀이를 하던 아이들의 옛 모습. 후대를 위해서라도 나는 무사히 돌아와야만 한다. 걷는 동안 잠시 눈을 지그시 감고 뜨자 환연이 보였다. 맨 앞에서 나를 이끄는 환연의 모습에 눈물이 차올랐지만 이번만큼은 참았다.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나 스스로 다짐했던 것이 오늘 새벽이었다. 한복을 입으면서도 다짐했고 왕을 기다릴 때도 다짐했다. 초라한 모습을 보여서는 모든 것이 다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압박감이 있었다.

 

 

  “어젯밤 이슬비가 내려서 그런 것인지 돌길이 매우 미끄럽습니다. 조심하세요, 아가씨.”

 

 

  고개를 푹 숙이고 걷는데 환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내 옆에 서서 나란히 걷고 있었다. 나의 발걸음 속도에 맞춰 천천히. 떠나는 날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내 마음을 다독이며 환연과 손을 잡았다. 곰 부족은 지금만큼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또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나 약해졌다. 왕의 명령에 자그마한 저항도 못 할 정도로.

 

 

  “도련님도 조심하세요, 슬퍼하지 마시고요.”

  “슬퍼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무사할 것이라 믿고 있을 것인데.”

  “같이 바다라도 보고 올 걸 그랬습니다, 도련님과 하고 싶은 일들이 이제야 떠오르는 군요.”

  “1년 후 함께 하도록 하지요.”

 

 

  천방지축 뛰어놀던 아이들도 오늘만큼은 얌전히 행렬을 따르고 살인자들마저도 눈물을 흘리는 오늘이다. 오늘이란 날은 우리 부족의 약함을 보여주는 날이고 참으로 비통한 날이 분명했다. 웃는 것마저도 오늘만큼은 우리 부족에겐 허락되지 않은 날이었다.

  산을 오르고 나무들을 헤집고 산 깊숙이 들어가자 동굴의 입구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다 온 거 같군요.”

  “서로를 존대하는 말이 이토록 애달플 줄은 몰랐던 것을 깨달은 날이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야 우리는 잡았던 손을 놓았다. 나를 위한 길이 열리고 사람들을 스쳐지나 갈 때마다 가슴이 저릿했다. 너무나 들어가기 싫은 곳이기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어 보았다. 부모님께는 육식을 할 수 없어 슬프다고 앙탈을 부렸지만 사실 육식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나로 인해 모든 것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다. 참을 수 없는 부담감이었다. 맹하기만 하고 할 줄 아는 것이라곤 그저 땅따먹기와 구슬치기, 딱지치기와 같은 것들. 평소 참을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 볼 수 없던 나에게 1년 동안 쑥과 마늘만을 먹으며 위험한 것들에서 벗어나라 하는 건 어떠한 것들로도 형용할 수 없는 압박감이었다. 나는 내 자신을 믿지 못 하고 나조차도 나를 믿지 못하는데 내가 어떠한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에는 자신감이 없었다.

  쑥과 마늘이 든 나무상자를 동굴 안에 놔두고 온 사람들이 자신이 원래 행렬에 서 있던 위치로 돌아가자 나는 동굴 입구로 가까이 갔다. 그 뒤, 뒤를 돌아 서니 고개를 숙인 우리 부족이 보였다. 분명 나의 안녕(安寧)을 비는 것이겠지. 그 와중에 말 위에 타고 있어 너무나도 높게 보이는 왕과 선아는 나를 내려다보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고는 입술을 떼었다.

 

 

  “모두의 안녕을 기원합니다.”

 

 

  그런 뒤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밖에 있는 사람들이 내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깊숙이 들어가니 곧이어 ‘쾅-!’하는 큰 소리가 들려왔다. 무엇인가가 무너지는 소리였다. 다시 동굴의 입구로 다가가니 동굴의 입구는 이미 커다란 바위로 막힌 상태였다. 다행이도 이로 인해 내가 도중에 동굴을 뛰쳐나가는 일은 막았지만 그에 따라 한줄기의 빛을 빼곤 모든 빛이 차단되었다. 바위 틈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나의 유일한 동무가 되었다.

 

 

  “벌써부터 걱정이 됩니다. 모두, 잘 계시는 지요?”

 

 

  드디어 나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려 버렸다. 모두가 떠나는 소리가 들렸다. 간혹 가다 누군가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바위는 나에게 모든 것을 차단시키지 못했다.

  털썩 주저 않으니 진흙이 느껴졌다. 바위 틈 사이로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마음을 굳게 먹으려고 하지만 이 슬픔은 도저히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앞으로 1년, 내가 이겨내야 할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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