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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맞이 꽃
작가 : gkgkt
작품등록일 : 201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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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맞이 시작
작성일 : 17-07-07     조회 : 217     추천 : 0     분량 : 6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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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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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두컴컴한 동굴에 적응하기까지의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다. 영원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 같던 시야는 얼추 동굴 내부의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로 트였고 조금 쌀쌀하다는 것만 빼면 안락하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의 환경이었다. 톡. 톡.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웅덩이에 떨어지는 바람에 음산한 소리를 낸다는 것 말고는 무서운 것도 없었다.

 

  무료함을 달래려, 어떻게든 이웃들을 머릿속에 떨치지 않으려 애쓰며 나무 상자를 열었을 땐 종이가 곱게 접혀져 있는 것이 보였다. 종이를 집어 들어 빛이 새어 나오는 동굴 입구로 가니 흐릿하던 글자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곱게 접힌 종이를 조심스레 펴자 그 안에 써져있는 글자들이 읽힌다.

 

 

  '너무 부담감만 느끼지 말거라. 네가 1년 안에 나타난다면 네가 무사했던 것이라고 확신이 서는 것이니 우리 모두는 너를 반갑게 맞이할 것이야. 네가 우리 모두를 짊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은 안 했으면 좋겠다. 이번이 아니라면 다음번이 있지 않겠니. 너는 우리 부족에게 참으로 소중한 사람이고, 미워할 수 없는 존재란다. 네가 돌아오는 그날 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테니 이르던 늦던 돌아오기만 하거라.'

 

 

  김순매 할머니다. 부족의 대표로 할머니가 쓴 편지가 분명했고 확신할 수 있었다. 내 머리로 울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 전부터 나는 이미 펑펑 울고 있었다. '왜 이제야 저를 위로하시는 건가요?' 감동이고 슬픔이고 애달픔이었다. 단 한 번도 할머니는 우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시지 않으셨다. 하지만 나는 볼 수 있었다. 종이에 물이라도 묻은 건지 번져버린 잉크가 나를 더 슬프게 만들었다.

 

 

  '반드시 돌아갈 거예요, 1년 후에 뵈어요. 할머니.'

 

 

  나는 절대 1년이 지나지 않는 이상 이 동굴을 벗어나면 안 되었다.

 

 

 

 

  * * *

 

 

 

 

  점점 더 싸늘해지는 것으로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있었다. 동굴이 서늘해지면 서늘해질수록 밖은 어둠이 짙게 깔렸다는 뜻이었다. 혹 박쥐라도 나올까 걱정했던 나는 너무 심심하다 보니 박쥐라도 나와 줬으면 좋겠는 지경이었다. 우리의 조상과 곰의 조상은 함께 동굴에서 있다가 우리의 조상이 먼저 뛰쳐나갔다고 하는데, 남은 곰 부족의 조상님은 혼자서 이 지루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신 건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상자를 열어둔 탓인지 어느새 동굴 안은 쑥과 마늘 냄새로 진동을 하였고 갈증을 해소시키려 웅덩이의 물을 떠먹을 때면 입안에 남아있는 쑥 향과 마늘 향이 올라와 뱉어버리기를 반복했다. 그래, 우리 조상님이 포기하실 만 했다. 이런 짓거리를 통해 인간이 되기를 원하시진 않으셨을 것이다. 안 그래도 자존심이 세신 분이신데 고개 숙여 인간이 될 수 있는 방도를 알려달라고 했건만 돌아오는 것은 어두침침한 동굴과 쑥과 마늘뿐이니. 나 같아도 다 때려치우고 나왔겠지만, 이젠 엄연히 상황이 달라졌다.

 

  동굴 입구에 바짝 앉아 어떻게든 밖을 보려고 애를 쓰지만 끝끝내 보이지 않는 밖은 포기하고 한 줄기 달빛만을 바라본다. 손을 뻗어 한 줄기의 빛을 내 손에 담으니 내 손마저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만 같았다. '예쁘다' 언젠가 환연이 나에게 꽃 한 송이를 보여준 적이 있었다. 아주 노란 꽃 한 송이를. 이름은 가물가물하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꽃 한 송이를 두 손에 올려두고 달빛을 향해 뻗은 적이 있었다. 그때의 그 꽃은 마치 드디어 달에게 가까이 다가갔다는 듯 예쁘게 빛나고 있었다. 반짝반짝하는 것은 눈물처럼 보이기도 했었다.

 

  옛 생각에 급격히 우울해지려는 기분을 풀려 쭈그려 앉았던 자세를 고쳐 섰다. 뭐라도 해 볼까 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동굴 안쪽이 눈에 들어왔다.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들어갔다 올까 싶어 혹시 모르는 비상상태에 대비해 그나마 먹을 것인 쑥과 마늘을 반 줌씩 챙겨 저고리에 달려있는 복주머니에 넣었다.

 

  질퍽거리는 흙들을 밟고 동굴의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작은 소리라도 더 크게 울리는 것이 느껴졌다. 혹 이상한 생물체라도 나올까 싶어 보폭을 작게 하며 걷는데 순간 오싹함이 내 어깨를 스쳐 지나갔다. 그에 저절로 움츠러든 어깨를 억지로 펴고 조금 더 빠른 속도로 앞으로 향했다. 지금 당장 돌아가도 되겠지만 이대로 돌아가기엔 뭔가가 굉장히 아쉬운 느낌이었다.

 

  그렇게 계속 동굴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다 보니 동굴 속에 또 다른 동굴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신기한 광경이 아닐 수가 없었다.

 

  깜깜하기만 한 동굴 속에서 이보다 더 어두워 보이는 동굴을 발견하니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무서움이 나를 덮쳤다. 돌아갈까? 라는 생각은 자꾸만 들지만 동굴에 꽂힌 나의 시선은 옮겨질 줄 몰랐다. 그렇게 치맛자락을 꽉 쥐고는 동굴 속에 있는 동굴로 들어갔다.

 

 

  '세상에 신기한 게 많다고 그걸 직접 체험해 보려는 욕심 따위는 접어두거라. 자칫 하단 함정에 걸릴 수도 있는 게 우리 부족의 상황이니.'

 

 

  어머니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지만 지금 걸음을 멈춘다 해도 언젠간 다시 들어올 것 같은 확신이 들어 멈추지 않았다.

 

  정말 어두워서 시야마저 완벽히 차단되었다는 걸 느낄 때쯤 그제야 나는 걸음을 멈추었고 동굴 안쪽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자 말도 안 되게끔 건너편에서 빛이 흘러나오는 게 보였다. 흐릿하긴 하지만 빛은 빛이었다. 나는 마치 바닷속의 오징어가 된 듯이, 가로등의 나방이 된 듯이 빛을 향해 다가갔다. 꿀꺽하니 절로 침이 넘어가고 심장이 빠르게 뛰어 고동(鼓動)의 소리까지 들릴 정도는 나는 흥분한 상태가 되었다.

 

 

  '아름다운 것에 심취했을 때는 그 뒤에 가려져 있는 위험요소들을 확인하지 못 하게 되어버려선 안 된다. 그것은 곧 너의 목숨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칼날 보다 위험한 것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함정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름다운 것에 심취해버렸으니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래서 더 다가가니 마침내 도달한 빛의 근원지에선 충격적인 모습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 이게, 뭐야..?"

  '네가 위험에 빠진 것 같으면 그 뒤론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도망치거라, 죽을힘을 다해서.'

 

 

  동굴의 천장에서부터 내려온 꽃은 계속 엮이고 엮이다 아주 기다란 꽃줄기를 만들어 내었고 그 꽃줄기에서 빛이 쏟아져 나오고 있던 것이었다. 또한 아름답긴 아름다운 꽃들 사이에 이물질처럼 껴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백성들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시체가 대롱대롱 동굴 천장에 매달려져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 한 상황에 입만 벌리고 있으니 시체 썩은 내가 진동을 한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도대체 무슨 짓거리를 해놓은 것이 길래 후각에 민감한 나조차도 잠시 동안 못 느낄 수 있는 냄새로 조작한 것인지. 순간적으로 끼친 소름은 잠시 팔을 비비게 만들 틈도 없이 그 장소에서 도망치게 만들어냈다.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동굴의 입구 쪽으로 달리니 심장이 더욱더 쿵쾅 쿵쾅 거리며 뛰는 것이 느껴졌다. 숨이 점점 차오를 때쯤 동굴 입구 쪽에 도착하자 여전히 커다란 바위로 가로막혀 있는 입구의 모습에 그 바위에 등을 기대 숨을 골랐다. 이런 일을 저지른 자는 과연 누구일까? 곰 부족이라면 어느 정도 그에 따른 의도는 추정할 수 있었다. 곰 부족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내가 이 동굴을 1년 이내에 나가기만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래야 자신의 부족이 우리를 짓누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엄연히 이 나라에서도 살인은 사형을 초래하는 범죄였다. 사형이 두렵다면 이 동굴에서 벗어나라는 뜻이겠지. 협박일까, 경고일까, 예고일까. 설마 하는 우연은 생각지도 않는다. 우연으로써 살인사건의 장소가 된 이곳이 내가 1년 동안 지내야 되는 곳이라는 우연으로 연결 지어 질 수는 없다. 안일하게 우연이라 칭하기에는 시체들을 너무 정교하게 매달아 놓았었다. 마치 나를 맞이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정교하게.

 

 

  “다란아.”

 

 

  바위 뒤에서 들려오는 낯설지 않은 목소리에 깜짝 놀라 굽혔던 무릎이 저절로 펴져 두 손으로 내 입을 막은 형태가 되어버렸다. 뭐지? 타이밍 한 번 끝내주게 들려오는 목소리는 내가 그저 지금 잠들어 있는 상태라고 밖에 생각하지 못 하도록 만들어야만 했다.

 

 

  “원래 이곳에 오면 안 되지만 마을이 너무 우울해서 와 봤어.”

 

 

  환연이다. 이 어두운 시간에 한 쪽 눈도 보이지 않으면서 산을 올랐다는 게 제일 먼저 걱정이 됐지만 나는 지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시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서도 문제가 생길 것이고, 내가 지금 깨어 있다는 걸 알려서도 애매한 상황이 될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두 손이 덜덜 떨리고 어느새 공포에 달라붙은 눈물 때문에 금방이라도 울며 말해 버릴 것 같았다. 저 안에 시체가 있다고. 우리의 백성들이 죽임을 당한 것 같은데 이게 궐 안에까지 소식이 들어간다면 나는 분명 100%로 사형을 당할 것 같다고, 더 최악의 상황은 우리 부족이 이에 따른 사실을 알면서도 숨겨 몰살당할 억지까지 씔 것 같다고 술술 말해 버릴 것 같았다.

 

 

  “오늘은 그 누구도 잠을 자지 못 할 것 같은 밤이야, 나는 지금 네가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고 알 수도 없는데.. 네가 무사했으면 좋겠어. 진심으로, 그렇게 바라고 있는데 앞으로는 못 찾아올 것 같아. 오늘은 네가 들어간 날이니까 할머님께서도 쉽게 허락해 주셨지만.”

 

 

  순간적으로 떠오른 시체들의 모습에 헛구역질이 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고 환연이 말하는 한마디 한마디를 귀 기울여 듣는데 자꾸만 떠오르는 시체들은 마치 악몽과도 같았다.

 

 

  “네 숨소리라도 들으려고 온 건데, 가야겠다. 산속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하는 바람에 다란이 너의 흔적은 들어보지도, 보지도 못한 채로 가야 된다는 게 아쉽다.”

 

 

  나뭇잎이 부스럭 거리는 소리들로 환연이 돌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뭇잎의 소리가 점점 더 멀어져 어렴풋이 들려질 때쯤 눈물과 함께 몸속의 모든 것들이 역류하여 밖으로 나왔다. ‘우웩-’하는 듣기 싫은 소리와 함께 목 부분이 후끈거리며 숨쉬기가 힘들어지고 금방이라도 발작이 일어날 듯 온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기절이라도 할 것 마냥 정신이 아득하고 내 몸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게워 냈을 땐 또다시 생각나는 시체들의 모습에 위액까지 다 토해내고 서야 그대로 주저앉아 드러누울 수 있었다.

 

  원래부터 비위가 약하기는 했다. 쥐의 사체만 봐도 토를 하기 일쑤였고 내가 게워낸 것들을 보고 또다시 게워 내길 반복했던 적도 많았다. 축 처져 있던 팔을 들어 보자 방금보다는 덜 하지만 어쨌든 떨리는 팔이 보였다. 그 모습에 또다시 울컥한 나는 이젠 힘차게 울 준비를 하는데 또다시 들려오는 나뭇잎 밟는 소리에 ‘헙-' 하고 두 입술을 꾹 붙였다.

 

 

  “무정하게 바위까지 세워 두다니 곰 부족도 참 대단하지 않은가요 다란 양?”

 

 

  다시 환연이 돌아온 줄만 알아 애써 울음을 참은 거였는데 들려오는 목소리는 오늘 낮에 처음 들어보았던 왕의 목소리였다. 왜 이렇게 늦은 시간에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는 것인지. 분명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할 게 없어 심심해하던 나는 이젠 누군가가 찾아와 말을 걸어주고 있는데도 반갑지가 않았다. 심지어 이 나라의 왕까지 찾아와 주었는데도 황송하기는커녕 두려움에 또다시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올라오는 길에 환연이란 자를 만났지 뭡니까, 너무 슬퍼 보여 애써 모르는 척했다만 참으로 애달픈 인연인가 봅니다.”

 

 

  왕의 목소리는 낮에는 못 느껴졌지만 매우 부드러운 음성이었다. 그렇기에 너무 차분하고 너무 나긋나긋해서 불안정하던 심리까지 안정을 되찾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는 약간의 불안감은 설마 하는 의혹에서부터 불거졌다. 이곳 까진 무슨 일로 행차를 하신 것인지, 설마 벌써 이 동굴 안에 우리의 백성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시체가 있다는 걸 알아 차려 온 것인지, 겁이 났지만 최대한 숨을 죽였다.

 

 

  “아무 대답이 없으셔서 제 이야기를 듣고 계신지 아니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이 말을 꼭 하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무슨 이야기일까 저절로 귀가 곤두섰다. 불행한 소식일까, 아니면 응원의 발걸음 차 오신 것일까. 나도 모르게 바위 뒤에 있을 왕을 향해 무릎을 꿇고 앉자 왕은 나에게 그나마 예의를 차릴 수 있게 해 주는 무릎을 꿇는다는 행위마저 엉망이 되게 해 버리는 말을 꺼냈다.

 

 

  “나와 같은 열일곱이라 들었습니다, 어린 나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옆에서 권위와 돈, 힘만 탐내는 60대 먹은 노인들과 70대 먹은 노인들에 비하면 싱싱한 꽃과도 같은 나이지요. 아무리 험한 일을 겪는다 해도, 이른 나이 철이 든다 하더라도 아직 그럴싸한 성숙단계를 거친 나이라고는 아니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

  “그래서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좋지 않은 환경을 전제하에 의뢰를 한 것도, 곰 부족과 다른 귀족들의 의견이 너무 강경하여 퇴짜를 놓지 못하였습니다. 다란 양과 다란 양의 부족까지 헤아리지 못 한 점 깊이 사죄드린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왕께서 힘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우리 부족에게 사과를 한다는 것은 상당히 놀랄 일이었다. 한 나라의 왕이 이젠 몰락해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귀족에게 사과를 한다? 역대 우리의 왕들을 찾아본다면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죽어나갈 때도, 제도를 잘 못 시행하여 백성들이 시름시름 앓아갈 때도 잘못했다 사죄하는 왕은 없었다. 그저 유감. 이 한 단어로 모든 상황을 정리해 버렸다. 그런데 이번 왕은 직접 산속까지 걸음 하여 미안하다 사과를 하신다. 이게 현실이다 생각이 들어 나는 감히 왕 앞에서 대성통곡을 하였다.

 

 

  “듣고 계셨다니 다행입니다. 앞으로 1년간 힘써 주세요, 다란 양이 나올 날 만을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벌써 두 번째로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에 나는 더 서럽게 울 수밖엔 없었다. 어쩌면 거리가 멀긴 하지만 1년 동안 시체와 함께 생활을 해야 할 수도 있는 거였다. 갑자기 내가 죽어버리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너무 무섭다. 무섭고 그 무서움에 또 다른 무서움이 더 덮어져서 점점 더 부피가 커져만 가는 무서움은 어찌할 수가 없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왕의 사과의 말 때문에, 빗 말 일수도 있겠지만 왕마저도 나를 기다린다는 그 말 때문에 무서움이 수그러들었다. 잘만 버틴다면, 1년 따위 잘만 버틴다면 우리 부족은 일어설 수 있다. 모든 무서움만 극복한다면 저 안에 있는 시체들도 어떻게든 해결이 될 것이다. 두 손을 모아 열심히 기도한다. 제발 아무 사건 사고 없이 1년이 지나가게 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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