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씨 눈치를 챈 것 같습니다.”
“그러길래... 왜 그런 유혹을 한거죠?”
“저는 아닙니다. 여기 있는 악마도 그런 생각을 주입한 적은 없다고 합니다.”
“그럼 순은 자기 의지대로만 하고 천사와 악마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보면 되는 건가요? 저 여자와 똑같군요.”
“확실하진 않습니다만... 그런 것 같습니다.”
“알겠어요. 악마에게 말하고 그냥 물러나세요.”
“네”
그렇다면 저 둘을 천사로써 어떻게 관리를 해야 하는 것일까?
난 천사다. 하지만 인간을 관리 하는 천사가 아니다. 인간을 관리하는 천사를 관리하는 것이 내 일이었다. 저 둘이 나타나기 전까진 말이다.
평소와 다름없이 하늘과 땅을 오가며 천사를 관리하던 나에게 다른 지령이 떨어졌다. 유래가 없던 종류의 천사를 하늘로 압송하고 그 인간을 관리하라.
그 명령을 듣고 조금은 기뻤다. 여느 천사들과 마찬가지로 한 인간과의 연을 맺어 아름답게 소멸한다. 내가 꿈꾸던 천사의 생이었다.
“순 아저씨 언제까지 옷 그렇게 입을 거예요?"
“옷? 이게 왜?”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잖아요!”
하지만 저 인간은 어느 순간에나 내 예상을 벗어났다. 서운함? 억울함? 어떤 기분이 전제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몹시 화가 났다. 남들처럼 잘 해낼 줄 알았건만...
“혼 아저씨! 아저씨가 좀 말해줘요!”
“하...”
그래서 다시 부름을 받은 저 천사는 어찌하여 저리 천박하고 멍청한지 악마의 탈을 쓰고 있어서 그런가? 하늘을 오갈 때마다 이런저런 소문과 소식을 듣곤 한다. 물론 순에 대한 소문도 들었다. 꼬리가 달린 천사.
“순씨? 인간들에게 모습이 보이는 이상 눈에 띄지 않게 하고 다녔으면 좋겠군요.”
“왜? 당신도 나랑 같은 옷을 입고 있잖아?”
“저는! 모습이 보이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아~”
하늘에서 어떤 새로운 지령이 내려올지는 모르겠지만 하루 빨리 일을 마감하고 원래의 내 생활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근데 옷을 어디서 구해?”
“맞네? 혼 아저씨! 혹시 돈 없어요? 난 없는데?”
나를 보는 저 초롱초롱한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잘 들어 보세요. 저는 인간의 돈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쓸 수도 없고요. 그런데 제가 인간의 돈을 가지고 있을까요?”
“그렇네.”
“이 나라 돈이라면 나한테 있는데?”
조용히 따라오던 악마가 넌지시 말을 던졌다. 왜 이자는 인간의 돈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악마씨? 왜 인간의 돈을 소지하고 있는 거죠?”
“그냥 지옥과 땅을 오갈 때 심심해서 땅에 떨어진 돈을 주웠거든 자!”
악마가 들고 있던 가방을 뒤적뒤적 하더니 백 원짜리와 오백 원짜리가 그득한 봉투가 나왔다. 그중에는 천 원짜리가 조금씩 보였다.
“이런 거 벌을 받아야 하지 않나요?”
“하늘은 어떤지 몰라도 지옥은 그렇지 않아 이 정도는 눈 감아 준다고”
하늘에 보고해야할 상황이 하나 더 늘었다.
“우와...”
돈을 본 지선이 조그맣게 감탄사를 냈다.
“혼 아저씨랑 다르게 윤 아저씨 능력자네요!”
“그 돈으로 옷은 살 수 있는 건가요?”
“그러게요 일단 은행에 가서 돈부터 바꿔야겠는데요?”
‘제발 돈이 모자라 길...’이라고 빌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헌 옷 수거함이 보였다.
“일단 지금은 옷이 너무 눈에 띄니 저길 한 번 찾아볼까요?”
내가 손가락을 헌 옷 수거함을 가리키자 순과 윤, 지선 모두가 내가 가리키는 헌 옷 수거함을 봤다. “크 흠” 지선은 헛 기침을 한 번하고 순의 등을 밀었다.
"그냥 이거 입고 있으면 안 돼?"
“안 돼요!”, “안 돼!”, “안 됩니다!”
우리 셋은 누구라도 할 것 없이 동시에 순을 향해 외쳤다.
“알았어...아!”
우리 셋에게 기가 눌려 보인 순이 갑자기 뒤를 보며 유레카! 하는 표정으로 나를 봤다.
“혼 당신은 인간들한테 안 보이잖아? 당신이 해줘”
“제가요? 제가 왜...”
“그래 그게 좋겠네.”
“헌 옷 수거함을 뒤진 사람이랑 다니면 분명 저는 고개를 못 들고 다닐 거예요...”
저 눈빛들은 당신이 하지 않으면 돈도 없고, 천사의 역할을 못하는 그런 무능력한 존재로 볼 것이라고 보는 셋의 눈빛이었다.
“하면 되잖아요!”
난 터덜터덜 헌 옷 수거함에 다가갔다.
“아! 그 사물을 만지려면 기를 모아서...”
“알고 있습니다! 저희 사자들은 당신들과는 다른 교육을 받으니까요!”
“아 그러고 보니 이 악마도 인간의 돈을 잡을 수 있었지? 알았어! 예쁜 옷!”
“하...” 한 숨이 왜 이리도 깊고 크게 나오는지... 난 헌옷 수거함을 통과해 들어가서 옷을 골라서 대충 아무거나 상의 하의를 골라 꺼내 줬다.
“아니 이 아저씨가 이런 걸 어떻게 입어요! 다른 거 다른 거.”
“아니 그냥... 아무거나”
“아무리 잠깐이라 하더라도 옷을 입을 때는 어울리는 옷을 골라야 하는 겁니다!”
한마디도지지 않으려는 저 말 버릇! 분명 순이 천사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악마가 존재하지 않은 아이에게서 저런 면이 있을 수 가 없다고 생각했다.
난 그렇게 십분 동안 철로 된 통 안을 들여다봐야 했고, 결론적으로 키가 큰 순에게 맞는 옷이 내가 처음 가지고 나온 옷 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니 지금 이게!”
“에이 순 아저씨는 쓸 때 없이 키는 커서 이거라도 가서 입고 와요”
지선은 무안한지 내 말은 듣지 않고 헌 옷을 순에게 주며 말했다. 순은 헌 옷을 들고는 근처 골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왔다.
“근데 이건 어떻게?”
순이 원래 입고 있던 천사의 옷을 들고 물었다.
“그건 제가 보관하고 있겠습니다.”
천사의 흔적이 최대한 남지 않게 하는 것도 나의 일이었다. 하늘에서 만들어진 옷을 땅에다가 아무렇게나 둘 순 없다고 생각했다. 난 순의 옷을 받아서 가방에 넣고 시간을 봤다.
“지선양? 이러다 지각하겠는데요?”
“아 맞다! 학교!”
내 말을 듣자 지선은 허겁지겁 뛰기 시작했고 순도 지선을 따라서 마구 뛰기 시작했다. 얼마 가지 않아 순은 지쳐서 골골 댔지만,
“아니 아저씨 체력이 너무 약한 거 아니에요?”
“허억... 그게 허억... 이상하네... 허억”
“아마 인간의 몸이 되어가서 그런 것 같습니다.”
"에이 불편해 죽겠네.”
“아저씨! 버스와요! 저 학교에 늦으면 안 되니까 저 먼저 갈게요!"
“기다려! 허억... 인간은 허억... 천사랑 떨어지면 안 된다고!"
금방이라도 무릎을 꿇고 쓰러질 것 같으면서 지선과 함께 가겠다고 때 쓰는 모습이 얼마나 안쓰럽고 답답하던지 엉덩이를 걷어차며 ‘뛰어!’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그건 걱정 하지마! 내가 따라갈게!”
지선의 옆에 꼭 붙어있던 악마가 순에게 말했다.
“자! 이거 돈!”
악마는 버스에 타기 전 순에게 돈이 담긴 봉투를 던졌고, 버스는 곧 떠났다.
“아니 이래도 되는 거야? 악마만 따라가도 되는 거냐고!”
“어차피 지선양에게 저희는 아무런 영향이 없고 잠깐은 그런 상태여도 괜찮을 겁니다.”
난 무릎을 꿇고 바닥에 엎드려있는 순을 일으켜 주며 말했다.
“잘 되었네요. 저희는 은행에 가서 저 돈을 바꾸죠.”
“어... 그래”
뭔가 많이 아쉬워 보이는 순이었다. 누가 알았겠는가? 인간이 되어가는 천사의 체력이 저질이라는 걸.
“소희야! 밥 먹고 가야지!”
“안 먹어!”
순이 몸을 일으킬 때 바로 옆에 있던 분식집에서 교복 입은 여학생이 나타났다.
“저 아이...”
“왜? 아~ 소희라고 지선이를 못 살게 굴던 아이야.”
“천사가 보이질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