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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나엘
작가 : 레이나비
작품등록일 : 201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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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작성일 : 17-07-03     조회 : 218     추천 : 0     분량 : 5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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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로부터 얼마 후, 신전을 나와 그를 따라 온 곳은 단탈리온 저택이었다.

 에일 단탈리온, 그는 무려 귀족이었다. 그것도 몰락귀족.

 그는 그 이상의 사연은 이야기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묻지 않았다. 그가 말하고 싶어 하지 않다고 여겼고, 그 것을 캐내 묻는 것도 내 성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좀 더 나중에 나는 그에게 ‘좀 더 빨리 물어볼 걸.’ 하고 후회했다.

 

  아무튼 지금 당장 내가 알지 못하는 사연 있는 단탈리온 저택은 과연 귀족의 저택이라고 부르기에 무리가 있는 형태였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는 철문과 휑한 정원, 그리고 구석에 있는 정체불명의 텃밭. 건물 벽 여기저기 어지럽게 타고 오르는 덤불까지. 흡사 밤이 되면 유령이라도 나올 것 같은 모습이다.

 

  내부 사정도 비슷했다. 낡고 색이 바란 카펫, 구석에 보이는 희미한 먼지, 천장의 거미줄, 흔한 액자 하나 없이 썰렁한 복도. 엔티크라고 보기에는 힘이 없어 보이는 목재가구들.

 

  공기가 차다. 바깥은 봄이었는데, 이 저택은 겨울을 닮았다. 마치 계절이 바뀐 걸 따라가지 못하는 것처럼.

 

  차가운 공기에 나도 모르게 움츠린 건 본 건지 에일이 자연스럽게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의 손이 닿은 곳이 따뜻하다. 이 온기에 닿으면 어딘가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져 왔다.

 

  나는 자연스럽게 걸음을 앞으로 움직여 그의 손에서 멀어졌다.

 

 “이 정도는 괜찮아요. 집이 넓어서 좋네요.”

 

  천천히 숨을 들었다 내쉬었다. 희미한 먼지 냄새, 오래된 나무향, 창문을 넘고 들어오는 흙냄새. 눈을 감고 있으면 귀족저택보다는 시골의 고즈넉한 집을 연상시켰다.

 

  창틀을 손가락으로 스윽 닦아보았다. 먼지가 고스란히 손가락에 묻어나온 걸 확인하고는 가볍게 ‘후’하고 불어버렸다. 그럼에도 모서리가 닳아있는 낮은 협탁이라던가, 바닥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신발 자국 같은 소소한 것들이 사람이 살고 있는 장소라는 것을 내게 증명해주었다.

 

 “마음에 드신다니 그건 참 다행입니다.”

 

 에일의 목소리가 아니다. 그와 닮았지만 그와 닮지 않은. 잔뜩 날이 서있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에단 단탈리온 전(前)백작. 에일의 동생으로 이즈나엘의 도련님 되는 사람이다.

 

  이래봬도 사회생활을 한 몸이다. 목소리의 높낮이. 눈썹의 모양, 패인 주름만 보아도 대충 그 사람의 감정 정도는 읽어 낼 수 있다. 엄청난 능력처럼 떠들어대긴 했어도 사실 어지간히 눈치 없는 자가 아니라면 누구라도 이 사람이 보이는 적대감은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게 그는 자신의 감정을 전혀 숨기지 않고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니까.

 

 하지만 어째서.

 

  10년 만에 깨어난 형수를 달가워하지 않는 다는 건 그저 시월드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이미 쓰러지기 전부터 골이 깊었던 사이었나.

  뭐가 어찌되었든 나는 그를 향해 웃어보였다. 그 쪽에서 감정을 드러냈다면 이쪽은 감정을 숨기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

 

 “네, 에단 도련님. 인사가 늦었습니다. 제가 기억이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고도 바로 찾아뵙지 못한 점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과연, ‘기억을 잃었다.’ 라. 형님께 이야긴 들었습니다만 직접 보니 확실히 알겠군요.”

 

  에단은 뭔가 더 말하려든 듯 잠시 망설이더니 침묵하기로 마음먹었는지 그대로 방향을 돌려 계단 위로 올라가버렸다.

  에일과는 정반대의 성격이다 싶었다. 굳이 비유를 들자면 에일은 순한 강아지를 닮았고, 에단은 도도한 고양이 같았다. 개와 고양이라니, 꽤 재밌는 형제이지 않는가.

 

 “에단이 말투가 저래서 그렇지, 좋은 아이야.”

 

  아이, 라고 불리기엔 좀 크지 않나.

 그래도 방금 발언으로 짐작해 보건데 형제 사이가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이렇게 감싸는 걸 보면 우애가 깊은 형제일지도.

 

 우선 조금 더 지켜보자.

 

  이 집의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부터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그것은 소리도, 형체도 없었지만 이 저택을 딛고 서있는 내 발을 타고 스물 스물 나를 기어 올라왔다. 불쾌하다? 아니 그것보다 더 뭐랄까. 익숙함. 이 저택이 익숙하다. 그럴 리 없는 사실인데도 말이다. 이건 이 몸에 남겨진 기억 같은 건가. 정말 몸 따로, 머리 따로 다.

  두통이 오는 것 같다.

 

 저택을 안내해 주겠다는 그를 따라 천천히 걸어보았다. 4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이지만 모두 천장이 높아 그 보다 훨씬 커 보였다. 사용하는 층은 1,2층이 전부. 1층이 주방과 서재, 응접실 등의 공용 생활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2층은 각자의 방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나마도 사용하는 방이 적어 열어보지 않은 빈방이 많았다. 호기심에 사용하지 않는다는 빈 방을 몇 군데 열어보았지만 모두 가구하나 없이 부연 먼지만 내려 앉아 있는 걸 확인하고 더는 열어보지 않았다.

 

 이 저택은 마치 잠을 자고 있는 것 같았다.

 조용하고, 단조로웠으며, 텅 비어 있었다.

 

  왜 단탈리온 가는 몰락했어야만 했을까. 그것은 언제부터.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는 에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긴 속눈썹, 옅은 녹안,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는 금빛 머리카락. 선한 인상이지만 이 사람이 가지는 분위기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이런 걸 기품이라고 말 하는 건가. 내 시선을 느꼈는지 그가 날 바라보고 다정하게 ‘왜’라고 물어왔다. 나이 먹은 아저씨가 저렇게 웃다니, 반칙이다.

 역시 물어보는 건 실례되는 거겠지. 관두자.

 

 “그냥. 참 잘생겼다 싶어서 봤어요.”

 “당신은 전에도 내 얼굴을 좋아했지.”

 “그래요?”

 

  이즈나엘이란 여자 저랑 취향이 같네요.

 

 에일 정도 외모의 사람이라면 부인이 쓰러진 뒤로 많은 여자들이 작업 걸었을 것 같은데, 이 사람은 어떻게 깨지 않는 사람을 10년 동안이나 흔들리지 않고 부인을 기다렸던 걸까.

 

  ‘변치 않는 사랑’이라 이건가.

 

  우리 부모님은 이혼했다. 그 때 내 나이가 스물이었다. 사이좋은 원앙 같은 부부는 아니었더라도 싸우거나 다툼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 그래서 더 의아했다.

 그들은 서로가 사랑이 아니었음을 알아서 그런 결정을 했다고 한다. 단지 내가 성인이 되기만을 기다렸을 뿐.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모든 부부가 사랑으로 사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냥, 살다보면 미운 정으로도 산다고 사람들이 말하는데, 이제 와서 왜 이혼을 한다고 말해오는 걸까. 그 사랑이라는 게 나이를 먹어서도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인걸까. 그래서 이혼을 결정하고 서로가 다른 사람과 그렇게 재혼을 할 수 있었던 건가.

 

  눈앞의 이 남자는 부인이 쓰러지고도 10년을 기다렸고, 아들 셋을 키웠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지고지순, 순정파 남자. 그래서 더 다가갈 수 없었다, 내가 이 몸에 들어왔다고 해서, 그녀인 척 그를 사랑하는 건 이 좋은 남자를 향한 기만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와 떨어져 혼자 후원으로 돌아 나왔다. 후원에는 저택의 3층 높이 까지 닿을 만큼의 커다란 나무가 있었다. 오래된 나무 같은데, 몇 살이나 된 건지 궁금했다. 커다란 덩치에 비해 아직 봉오리도 맺지 못한 헐벗은 가지들이 초라하다.

 

  나무에 매달린 그네는 홀로 바람에 흔들거렸다. 매달려있는 끈이 제법 두꺼워서 쉽게 끊어질 것 같진 않아 그 곳에 앉아 천천히 풍경을 둘러보았다.

 

  아무 것도 없는 판판한 땅에 마른 나뭇잎이 바람에 돌아다니고, 이름 모를 하얀 들꽃들이 듬성듬성 피어있었다. 그 가운데는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은 게 분명한 분수대하나가 덩그러니 있었고, 그 주변을 하얀 암탉한마리가 돌아다녔다.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뭐야 저게.

 

  과연 이 세계에도 닭이 있긴 하구나. 뒤뚱거리며 걷는 토실토실한 엉덩이가 제법 귀엽다. 저택에 닭이라니 정말 허를 찌른다. 정원에 있던 텃밭에서 식재료를 기르고 후원의 암탉에게서 달걀을 얻는다 이건가. 과연. 누구 생각인지 현명하다. 이런 식으로 식비를 줄이다니 보통 센스가 아니다.

 

  몸을 앞뒤로 가볍게 흔들어 그네를 즐겼다. 재밌다. 그네는 오랜만이었다. 몸에 좀 더 힘을 싣고 다리를 흔들어 그 강도를 더 세게 했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에 기분마저 가벼워 졌다. 순식간에 가까워져 오는 파란 하늘에 기분이 들떴다.

  별로 어두운 성격은 아닌데, 상황파악 하느라 최근엔 제법 가라앉았다.

 

 아아-, 치킨에 맥주 마시고 싶다.

 

  시선이 닿는 2층 창가에 에일이 나를 보고 있었는지 시선이 마주쳤다. 손을 흔들어 주길래 나도 덩달아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정말이지, 유부남이 저렇게 귀여워도 되는 걸까.

 

 “저기......”

 

  소리가 난 방향에는 처음 보는 아이들이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하긴, 내가 여기서 처음보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냐마는.

  그들이 누군지 가르쳐주지 않아도 나는 그 아이들이 누군지 단숨에 알 수 있었다. 에일이 만약 저 또래였으면 딱 저렇게 생겼을 게 분명했다. 놀라울 만큼 아빠 유전자를 강하게 물려받았구나. 누가 보더라도 그들은 에일과 이즈나엘의 아이들이었다.

 

 “안녕.”

 

  방긋 웃으며 인사했다. 아이들이 생각보다 제법 크다. 어림잡아 고등학생 둘에 중학생 정도.

 이즈나엘은 생각보다 훨씬 일찍 결혼 했구나, 이 정도 외모면 좀 더 인생을 즐겨도 좋을 것 같은데 왜 하필 몰락 귀족의 남자를 선택한 걸까.

 

 “아서, 이엘, 유진. 맞지?”

 

  차례로 아이들의 이름을 불렀다. 까먹지 않으려고 몇 번이나 그 이름을 반복해서 외웠다.

 나는 아이를 가져본 적이 없다. 더불어 이 아이들은 원래 내 나이와 비교하자면 겨우 열 살 조금 더 차이 날까. 그런데 무슨 엄마행세가 가능하단 말인가. 내가 그래봤자 위선 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연장자로서의 책임감으로 저 아이들을 대하는 것 정도는 허락되지 않을까.

 에일이야 남녀 간의 감정이니 경계하고 있지만, 아이들한테는 별로 그런 게 없었다.

  10년을 헤어져 있었는데도 엄마를 그리워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울 듯 말 듯 미묘한 표정이다. 분명 이즈나엘이 쓰러지기 전에 이 아이들을 엄청 사랑해줬단 증거겠지, 그렇다면 내가 이 아이들에게 잘해줘도 언젠가 이 몸의 주인이 돌아왔을 때, 문제는 없을 것이다.

 

 “기억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응, 그래서 열심히 외웠지.”

 “깨어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고마워, 만나서 반가워. 라고 하면 이상한 인사가 되려나?”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나도, 너희들 이야기를 듣고 꽤 보고 싶었어. 내 아이들이라니, 두근두근 얼마나 기대되던지.”

 

 이것은 나의 진심. 처음에 아이들의 존재를 들었을 땐 당황했지만, 금세 그 아이들이 궁금해졌다. 나는 아이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결혼을 빨리 하고 싶었던 건 아이가 가지고 싶어서 그랬던 적도 있었더랬다. 서른 넘어서는 노산이라고 들어서 나중에 애를 몇이나 낳을 수 있을까 걱정을 한 적이 있는데, 이렇게 다 큰 아들이 셋이라니 나쁘지 않다. 가슴 한쪽이 간질간질해졌다. 나는 진짜 엄마도 아닌데, 왜 이렇게 쑥스러운 기분이 드는 걸까.

 

 “앞으로 잘 부탁할게.”

 

  아이들이 내 곁으로 한 달음에 달려왔다. 정말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다. 아아, 이즈나엘은 정말로 행복했겠다. 이즈나엘은 정말 내가 바라는 이상향의 모습을 가지고 살고 있었구나.

 

  그래선 안 되는걸 알면서도, 순간 그녀의 인생이 탐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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