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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는 나의 것
작가 : 을순이
작품등록일 : 201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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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억을 봉인하다(1)
작성일 : 17-07-03     조회 : 399     추천 : 0     분량 : 5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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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시간이 다 되었구나."

 

 캄캄한 좁은 방 안에 조그마한 빛이 살며시 들어왔다.

 숯으로 칠한듯 새카만 머리에 다소곳하게 앉아 눈을 내리깐 여인이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사삭. 사사삭. 여인의 끄덕임에 흰색 소복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랑하는 나의 아이야. 이제 그만 나가도 좋다."

 

 밝은 빛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인자하고 따스하며 그 방안을 가득 차게 했다. 기다렸다는듯, 그 여인은 고개를 숙이고 일어나 그 빛 앞에 숨죽이듯 서 있었다. 환하디 환한 빛은 이내 여인을 확 감싸 안으며 방 안을 환히 밝혔다.

 여인이 빛에 섞여 여러가지의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숯같이 검었던 머리는 어느새 탐스러운 은빛이 되었으며 흰색 소복의 웃옷은 소매가 펑퍼짐하여 여인의 가녀림이 부각되며 가슴이 강조되어 상부가 좁혀져있어 몸매가 훤히 드러났다. 아랫도련은 넓고 붉은 화려한 옷이 되었다. 여인은 서서히 눈을 뜨며 슬며시 미소를 지어보였다.

 

 "당신의 아이. 영겁의 시간을 지내 이만 나가보겠사오니 부디 몸조심하시어 당신의 아이가 험난한 속세에 잘 디딜 수 있도록 지켜봐 주시길 바라옵나이다."

 

 여인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이 그 빛은 더욱 밝게 여인을 비추며 서서히 사라져갔다. 여인은 그 빛을 한참동안이나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이내 그 어두운 방안에서 빛이 살며시 보이는 곳으로 향해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발걸음은 마치 사뿐사뿐 깃털날리듯 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여인이 빛에 다다른 순간, 그 곳은 이미 다른 공간으로 바뀌어 있었다. 여인은 이미 알고있었다는듯 자연스레 문 두개를 향하여 섰다. 왼쪽의 문은 굳게 닫혀져 있지만 빛이 새어나와 눈을 찡그릴수밖에 없었고 오른쪽의 문은 틈새로 나무와 들판이 보여 마치 새소리가 들리는듯 했다. 물끄러미 그 여인을 바라보던 흰 로브를 입은 사제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이 왼쪽 문으로 나가시면 당신의 모든 기억은 잊혀질 것이며 당신이 가지고 있었던 모든 능력은 봉인이 될것입니다. 다만 당신이 당신의 기억을 생각해내신다면 봉인이 풀릴 것입니다.만약 좀 더 안일한 삶을 원하신다면 오른쪽 문, 즉 이곳에 머물러도 좋습니다. 결정은 당신의 몫이므로, 당신의 손으로."

 

 흰 로브를 입은 사제가 말을 마치자 여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붉고 작은 입술로 힘차게 말했다.

 

 "제가 항상 바라왔던 대로 전 그 곳으로 향하겠습니다. 보내주시지요."

 

 당연하다는 듯이 혹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흰 로브의 사제는 씁쓸한 미소를 짓고는 일부로 열어놓은 듯한 오른쪽 문을 닫고는 힘차게 왼쪽 문을 열기 시작했다. 밝은 빛에 눈을 뗄수 없었던지 여인은 한참동안이나 그곳에 서서 빛을 바라보았다.

 

 "그럼 안녕히, 다시 만나게 되는 그 날까지 부디.."

 

 "그자에게 전해주세요. 지금 복수하러 가겠다고.."

 

 

 ***

 

 한적한 숲속, 한 여인이 나무에 기대어 거친 숨을 내몰아 쉬고있었다. 가녀린 손으로 자신의 배에 꽂혀진 검을 꼭 쥐고. 새빨간 피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흘렀다.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당신의..뜻이라면.."

 

 그녀는 눈물로 가득찬 눈을 힘껏 치켜띄우고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결심한듯 천천히 눈을 감았다. 거친 숨소리가 들리지않을무렵, 그 여인의 몸에서 환한 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 환한 빛은 평범한 갈색이였던 머리색을 하야디 하얀 은색으로, 피로 얼룩졌던 드레스를 다시 처음의 상태로 변화시키고 되돌렸다. 마치 처음부터 그 여인이 이런 모습이었어야하는것처럼. 이내 환한 빛은 점점 사그라들며 없어졌고 숲속엔 작은 숨소리만 가득했다.

 

 

 

 

 짹. 짹.

 일어나라는 듯 시끄럽게 우는 새소리에 저절로 눈이 뜨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무들이 울창하게 심어져 있었으며 꽃 또한 무성했다. 아무런 기억이 나지않았다. 내가 살던곳만이 흐릿하게 떠올랐다. 내가 누군지 왜 여기있는건지에 대한 의구심은 가지지않았다. 멍하니 눈만 깜박이다 이내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았다.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사람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티안 마을에서 몇일 묵고 가자구. 아 거참 짐도 많으니."

 

 "꾸물 거릴 시간이 없습니다. 한시가 급한데 또 쉬시다뇨."

 

 "내참. 앞뒤가 꽉 막힌 친구야. 답답해서 어디 쓰것나. 허이."

 

 "저희는 지금 놀러다니는게 아니잖습니까. 어서 영주님께 전해드려야합니다! 어디서 나타날지모르는 그 신을 피해야한다구요!"

 

 "미치겠네. 찬물도 급히 마시면 체한다고. 엉? 미지근할때 가자고."

 

 남자 두명의 투닥거림을 가만히 듣고 있다 툭툭-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희미하게 떠오르는 내 집의 위치를 알려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러려면 이곳 지리에 대해 아는 사람이 필요한 참이였다. 허둥대다 저 일행에게 일부로 부딪혀 그들이 실수한것으로 피해보상으로 받아내면 되겠지. 발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자 나는 서서히 비틀대기시작했다. 이쪽 , 저쪽 ,왼쪽 ,오른쪽. 내 예상에 맞게 , 한발자국 내딛음으로 내 몸은 먼저 걸어오던 한 남자에게 부딪혔다.

 

 "아,아니! 괜찮으시오? 다친덴 없는거요?"

 

 허리춤에 칼을 찬 사내는 내가 쓰러지자마자 조심스레 어깨를 잡고 일으켜 세운후 걱정스레 물었다.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고 눈을 슬쩍 떠 나머지 한명을 살폈다. 이제 막 기사일을 시작한듯 칼이 언제 빠져나가도 이상치 않게 허리춤에 칼을 찬 마른 사내였다. 합격! 이 일행이라면 날 데려다줄거야! 마음속으로 함박웃음을 지은후 몰려오는 피곤함에 쓰러지듯 눈을 감았다.

 

 "쓰러진게요? 이런! 이리와서 이 여인을 안고가게! 사람의 생명이 달려있는 일에 또다시 재촉하진않겠지!"

 

 등을 받쳐주고 있던 녹스는 갑자기 쓰러지는 여인을 붙잡고 다급히 외쳤다. 못마땅한 얼굴로 멀찌감치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마른 사내는 여인에게 다가와 녹스의 도움을 받아 여인을 업었다.

 

 "..예. 어쩔수 없는 일이군요. 영주님께 연통을 넣어야할 모양입니다."

 

 "암, 그렇지. 그런데 이 여인,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군. 뭐 어느 귀족집 따님이신가."

 

 그들이 여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산을 막 내려가던 참에 가까운 곳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사,살려줘! 누구 없어? 아악! 사람살려!"

 

 기사답게 그 두명은 천천히 비명소리를 향해 숨죽여 걸었고 비릿하게 퍼지는 피냄새에 마른 사내는 여인을 근처 수풀에 누이고는 녹스를 따라 더 깊이 들어가자마자 마물을 보는 동시에 몸이 굳어버렸다. 살아있는 인간의 피를 빼서 먹는 다는 치. 검은 액체같은 몸으로 사람을 감싸안아 액체 혀로 사람의 목을 뚫어 피를 뽑아 먹는 마물이었기에 매우 끔찍한 살해 장면이었다. 시체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웠던지 눈을 뜨고 죽어있었고, 저항이 심했던지 시체들의 한부분씩은 찢겨 널부러져 있었다.그리고 마지막 한명의 생존자의 소리에 그들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치에게로 향했다. 금발의 사내가 치에게 덮혀 검은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살려줘! 어서, 어서! 도와달란 말이야!"

 

 계속해서 소리 지르는 사내를 치는 더욱 빠르게 검은 액체로 덮어가기 시작했다. 청각에 예민하다는 마물이라는걸 모르나보군. 녹스는 속으로 혀를 차며 자신의 칼에 서서히 마력을 주입시켰다. 단 한방에 날려야해. 아니면 나까지.. 그는 땀으로 흠뻑 젖어가는 손을 옷에 닦으며 치에게로 서서히 다가갔다. 녹스는 심호흡을 하며 치에게 다가서자마자 검을 휘둘렀다. 휘익- 흡사 바람과 같았던 칼날덕분에 금발의 사내는 상처하나 없이 살아났다. 금발의 사내는 치가 죽은지도 모르는 듯 계속해서 소리를 질러댔고 칼이 자신의 목에 와서야 정신을 차렸다.

 

 "대체 왜 이렇게 늦게 구한건가! 내가 다 죽을뻔 했잖아!"

 

 목숨을 걸고 살려냈더니 버럭 소리치는 금발의 사내를 향해 녹스는 어이가 없어 코웃음을 치려다 자신의 신분을 기억해내고는 고개를 숙였다. 사람을 살려내고도 사과를 해야한다니, 참 역겹군. 녹스는 고개를 숙인채로 금발의 사내에게 비웃음을 마음껏 날려주었다.

 

 "제가 모자라서 그랬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흠, 그래. 알았어.자, 그럼 네 일행들은 어딨지? 보다시피 내 일행들은 모두 죽었어. 한마리도 빠지지 않고 말야."

 

 한 마리? 녹스는 이마에 힘줄이 튀어나오는걸 막기 위해 애던히 노력을 하고는 조용히 자신의 옆에 서 있는 고크에게 속삭였다.

 

 "여인에게 가보게. 치는 여럿이 다니는 경우가 많으니 혹시 모르네."

 

 고크는 녹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여인을 뉘운 수풀로 허겁지겁 달려갔다. 그런 고크의 모습을 확인하고, 녹스는 사내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저희는 디코프 마을 영주님의 기사입니다. 영주님의 아가씨께서는, 약간의 신력을 가지고 계셔서 사제분들이 신탁을 받을때면 기사들과 함께 신탁을 받으러가십니다. 이번에도 그러셨죠. 죄송하지만, 저희는 임무가 있어.."

 

 퍼억-.

 녹스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주먹이 날아와 그의 오른쪽 볼에 꽂혔다. 금발의 사내는 매우 화난표정으로, 녹스를 바라보며 주먹을 또다시 쥐었다. 녹스는 이렇게 될 줄 알고있었다는 듯 약간의 허탈한 미소를 잠깐 띄우다 다시 말을 이어갔다.

 

 "죄송하지만, 저희는 임무가 있어.."

 

 또다시 날아오는 주먹에 녹스는 눈을 부릅 뜬 채 금발의 사내를 쳐다보았다. 금발의 사내는 그 행동에 더욱 화가 난듯 이윽고는 발을 같이 쓰기 시작했다. 녹스는 단 한대라도 치게 될경우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알기에 온 몸의 고통을 참으며 입술을 씹었다.

 

 "감히! 고작 영주 기사따위가! 내가 누군지 알고! 이 버르장머리 없는 것!"

 

 고크가 여인을 안고 도착했을 때, 마구잡이로 녹스가 맞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신이 끼어들어 말린다면 똑같은 상황을 초래할 것임을 잘 알기때문에 섣불리 나설수도 없었다. 자신의 뒤에서 시선을 느낀 금발의 사내는 뒤를 돌아 보고는 자신을 멍하니 서서 우두커니 바라보는 고크에게 잔뜩 격양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뭐야. 너도 맞고싶어? 처벌 중엔 끼어들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 안 꺼져?"

 

 그 말에, 고크는 녹스를 한번 보고 금발의 사내를 한번 보며 어떻게 해야할지 갈팡질팡하기 시작했다. 금발의 사내는 그런 고크를 보고는 어이없다는 듯 하- 웃더니 천천히 고크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고크는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지만 그만큼보다 더 앞서 나온 금발의 사내에게서 멀어질수 없었다. 고크가 한대 맞을 각오로 눈을 꽉 감고있을때 , 행운인지 불행인지 그 사내의 시선이 그가 안고있는 은발의 여인에게로 가있었다.

 

 "은발이라니.. 내 생에 처음보는 머리색이군. 어디가문이라 했지?"

 

 느껴지지 않는 고통에 살며시 실눈을 뜨려는 고크에게 금발의 사내가 물었다. 고크는 그 질문에 얼굴이 새하얗게 변하며 자신도 모르겠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로 소리쳤다.

 

 "저..정말 모릅니다! 우연히 부딪혔는데 쓰러지셔서.. 절대로 그런 생각으로 .... 아닙니다!!"

 

 "쯧, 그런것쯤은.. 말로 안해도 안다. 따라오라. 아버지가 이곳 영주이시니."

 

 금발의 사내는 고크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며 위아래로 훑었다. 그리고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으며 먼저 앞서나갔다. 녹스는 그에 핏줄이 터져라 주먹을 쎄게 쥐었고 고크는 자신이 -공주님 안기로- 안고있는 여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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