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스쿨
2. 딸기 우유
"난 이민형이야"
나의 말에 그 남자는 나를 유심히 바라 보았고 왠지 같은 반이라는 걸 진작에 알고 있었다는 듯한 표정으로 피식 웃어 보였다. 나는 그제서야 부끄러움을 느꼈고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선생님은 둘이 아는 사이였냐며 그럼 둘이 같으라고 옆에 있던 짝궁을 원래의 이민형 자리에 보냈고 모르는 거 잘 알려주라며 내 옆에 앉게 했다.
조례가 끝나지 않길 눈 감고 빌었지만 선생님은 나의 텔레파시를 느끼지 못했는지 조례 끝이라며 문을 열고 나가셨다. 선생님 안돼요. 플리즈. 항상 선생님이 나가시자마자 시끌벅적 하던 반이 오늘은 왠일인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아이들의 시선은 전학생인 이민형에게 향했고 시선을 느꼈는지 이민형은 이렇게 말했다.
"뭘 꼴아봐"
반 아이들은 이민형의 한 마디에 재빨리 각자 할 일들을 했다. 역시 개싸가지. 날라리가 맞네 맞아.
"우리 또 보네?"
"어..그러게..요?"
저 표정 왠지 존나 무섭다. 비웃는건지 웃는건지 도대체 알 수 없는 미묘한 웃음에 쫄았는지 존댓말을 쓰고야 말았다. 이민형은 내가 존댓말 쓴 게 웃겼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쳐 웃었다. 아 개쪽팔려.
"야 이민형"
복도에서부터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리며 가까워지자 뒷문을 열고 박지성이 들어왔다. 둘은 원래부터 아는 사이였는지 이민형을 친근하게 불렀다. 아 쟤네 둘이 친한 사이면 잣 되는데. 이민형은 오랜만에 만났다며 와썹 맨을 말하며 박지성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렸다. 와썹 맨은 개뿔. 누가보면 외국에서 몇년 산 줄. 저런 인사까지 하는 정도면 뭐 끝난거지. 한 마디로 나 잣 된거라고.
"김여주랑 짝임?ㅋㅋㅋㅋㅋ"
박지성이 아는 체 안했으면 좋겠다 싶어 얼굴을 돌리니 어느새 본 건지 이미 말 하고 난 뒤였다. 이민형은 둘이 아는 사이였냐며 묻자 박지성은 소꿉 친구 라며 나를 소개 했고 그럼 자기랑도 짱친인 거 아니냐는 잣 같은 논리를 펼쳤다. "맞지 김여주?" 저 날라리한테 아니라고 했다간 남은 학교 생활이 평탄하지 않을거야. "응.. 맞아"
1교시 수업이 시작 되었다. 날라리의 안좋은 편견 때문에 수업시간도 늦게 들어오고 그럴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재때재때 시간에 맞춰 들어온 이민형이다. 교과서를 꺼내고 필기구를 꺼내는 거 보면 역시 전에 좋은 학교 다녔던 게 티가 난달까? 그렇게 힐끔힐끔 쳐다보자 이민형과 눈이 마주치자 뭘 꼴아보냐는 말에 풀이 죽어 미안하다며 교과서만 쳐다보는 나였다. 얼굴은 순하게 생겨가지고 말 좀 이쁘게 할 수 없나.
역시 한국사 수업은 지루해. 수학이 싫어서 문과로 왔다만 선생님의 말씀이 마치 자장가처럼 들려왔다. 그렇게 난 잠이 들고 말았다. 어느새 수업이 끝난건지 종소리가 경쾌하게 내 귀에 들려왔고 누워 있는 채로 눈을 살며시 뜨는 것도 잠시 눈이 크게 떠질 수 밖에 없었다. 날 보고 있었는지 아니면 동시에 깨어난건진 잘 모르겠지만 얼굴이 마주친 채 서로 누워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놀라 악이 나오려고 하던 찰나에 이민형의 엄지손가락이 나의 코로 다가와 쉿- 하는 행동을 했다. 너무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진 거 같아 급히 자세를 똑바로 고쳤다.
"코를 너무 골길래 잠을 못잤네"
혼잣말인건지 일부러 들으라고 한 소리인지 나 원 참. 이민형은 그 말을 한 뒤로 반 밖으로 나가버렸다. 저 개싸가지 지는 코 곤 적 없나. 아무튼 그 뒤로 옆에서 자는 게 너무 신경이 쓰여서 잠이 오는 수업에도 난 버틸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있다 4교시 수업에 잠이 온건지 이민형은 누워서 자는 듯 싶었다. 이제 코 골아도 뭐라 안하겠지 하며 마음이 놓이면서 자려고 하자 옆에서 소곤소곤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흥 지도 코 고네"
"다 들린다"
뭐야. 방금까지 분명 자고 있었는데 그 말 한마디에 깬 거 보면 많이 예민한가 보다. "미안 일부러 그런건 아닌데.." 일어나서 뭐라고 할 줄 알았지만 계속 자는지 아무 말 없는 이민형이다. 아 오늘 왜 쫄릴 일이 많냐. 그렇게 불편한지 몸을 계속 뒤척일 때 마다 깜짝깜짝 놀랬다. 김여주 그만 쫄아. 니가 뭐 잘못한 게 있다고. 혼자 토닥하며 마음을 위로했다.
"뭐야 이지은 배주현 어디감?"
4교시가 끝나면 언제든 쏜살같이 급식실로 이지은과 나를 끌고가던 배주현이 없자 이지은한테 물어 보았다. 헐. 아까 3교시 도중에 아파서 조퇴한 거 모르냐며 역시 잠만보 김여주라고 꾸짖음을 하는 이지은이다. 아 그런가.. 하하.. 이지은은 돼지갈비떡찜이 나온다고 빨리 안가면 없다면서 전속력으로 뛰기 시작했다. "야 같이 가"
열심히 뛴 덕에 앞쪽에 줄을 설 수 있었다. 헥헥 거리며 숨을 고르자 누군가 나의 등을 토닥이며 괜찮냐고 물어왔다. "선배 괜찮아요?" 괜찮다고 진정시키고 얼굴을 보니 이 학교에선 한 번도 본 적 없는 귀여운 아이가 서 있었다. 아마 신입생인듯 했다. 나를 걱정해주다니ㅠㅠ 오늘 꽤 이래저래 눈치 보느라 힘들었는데 괜찮냐는 한 마디에 뭔가 위로가 됐달까. 너무 고마워서 나의 사랑 뜌빠뜝스 딸기 우유 사탕을 마이 안쪽 주머니에서 꺼내 그 후배에게 주자 자기도 딸기 우유 맛을 좋아한다며 잘 먹겠다고 하였다.
급식을 다 먹고 배가 빵빵해졌음에 뿌듯해하며 반으로 가고 있었다. 어디서 뭔가 뒷통수가 쎄하다 느껴 바로 뒤를 돌아보자 아니나 다르게 박지성이 나의 뒤로 몰래 다가와 뒷통수를 한 대 치려고 준비 중이었다. 쟤는 어렸을 적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내가 니한테 한 두번 속냐" 다만 변한 게 있다면 나보다 쬐끔했던 박지성이 어느새 나보다 키가 훨씬 컸다는 거다. 오죽 했으면 이젠 내가 고개를 바짝 들어 올려다 볼 지경이다.
그렇게 같이 걸으며 박지성의 키를 실감하고 있을 때 뒤에서 이지은이 나를 급히 불러 세웠다. 이지은은 나에게 딸기 우유를 쥐어 주었다. "나 먹으라고?" 그 뒤로 누가 줬냐고 말을 덧붙히자 아까 급식 줄 서 있을 때 내가 딸기 우유 사탕 준 후배가 줬다고 했다.
"아 그 귀여운 신입생이 준거구나"
"귀여운 신입생이 누군데"
있어. 귀여운 신입생 남자 얘ㅎㅎㅎ 남자한테 받아본 선물이라곤 아빠랑 박지성한테만 받아봤던 게 끝인데 내 인생 귀여운 신입생한테 선물을 받아보다니. 고작 딸기우유 가지고 무슨 선물선물 거리냐고 헛웃음을 짓는 박지성이다.
"이거 어떻게 할까? 기념샷이라도 찍고 그래야 되낭?"
너무 들뜬 나머지 어떻게 할까 행복한 상상에 빠져 있는데 김여주 또 오바떤다며 박지성이 혀를 찼다.
"좋은 방법이 하나 있는데"
헐? 진짜? 하며 쳐다본 방향에는 언제 온건지 이민형이 와 있었다. 핵소름 돋아. "내가 방법 안다니까" 가까이 다가와 내가 마치 석고상처럼 굳어 있을 때 내 손에 쥐고 있던 딸기 우유를 가져가 금새 입에 넣어 잘도 마시는 이민형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잘 먹었다며 다 먹은 우유 팩을 내 손에 쥐어 주었다. 현실을 부정하고파 우유 팩을 들여다 보았지만 단 한방울도 없이 깔끔했다.
"내 딸기우유 어디갔어?..."
넋이 나간채로 이민형을 바라보자 자기도 내심 미안했는지 머리를 긁적이며 "딸기 우유 한번도 안 먹어본 사람처럼 왜 그러냐 하나 사줄게" 라고 말했다.
"내 딸기 우유를 니가 왜 먹는데!!!"
"그러니까 하나 사준다니까"
"싫어 이민형 존나 싫어!!!"
김여주 삐지면 잘 안풀리는데. 어떡하냐 이민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