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몸이 무겁다. 철컥- 철컥- 근육에 거머리가 붙어있는 느낌이다. 철컥-철컥- 쿵!
"도착했습니다. 주인님"
그렇다. 나는 주인에게 소속된 노예다. 나를 포함하여 한 때는 인류를 놀라게 한 전사들이 있었다.
우리의 키는 평균 2m 30, 키에 비해 나름 빠른 속력을 자랑하였다. 사람들은 우리를 이렇게 불렀었다.
'위대한 전투민족, 데이비스'
하지만 지능적인 인류는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들을 위협할 멸망의 원인으로 우리를 지목한 것이다.
그들은 우리를 학살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힘은 그들을 가볍게 능가했지만, 숫자와 기술에서 밀렸다. 거의
대부분의 전사가 죽고, 나머지 데이비스는 그들에게 잡혀갔다.
그들은 우리의 타고난 힘과 그들의 기술을 더하여 진보하고자 하였다. 결국 인류는 얼마없는 데이비스를
전부 개조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첨단 무기와 갑옷을 우리에게 장착시키고 우리의 생체를 노예화시켰다.
과정은 참으로 고통스러웠다. 뼈와 살이 뒤틀리고 뜯겨나가는 경험, 온 몸이 녹아내리는 경험, 오장육부가
요동치는 경험을 하였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소리쳐도 그들은 날 풀어주지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일명 '탱크맨' 총과 무기, 바퀴가 장착되고 갑옷으로 무장된 탱크가 된 것이다.
인류는 강력한 노예들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위대한 '사명'을 감당 중이다. 나는 어느 한 귀족가문에 보내졌다.
"캐리! 캐리!"
그들은 날 '캐리'라고 부른다. 참 정감 있는 이름이다. 이 이름에도 사연이 있다.
-5년 전-
"좋아! 강력한 노예여! 넌 이제 우리를 수호하고 우리의 명령도 수행한다! 그것이 위대한 인류가
너에게 허락한 사명! 명심해! 넌 우리를 위해 존재한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그 때의 나는 처음 주인의 집으로 끌려왔을 때였다. 나는 주인에게 계속 주입식 교육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주인의 뒤에는 한 여자아이가 숨어 있었다.
"주현아, 왜 숨어있어? 나와봐"
"싫어-! 아빠, 저거 무섭단말야!"
저거는 아마도 나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주인의 딸 이름은 배주현이었다. 그녀는 나를 무서워했다.
그렇게 시간이 다시 조금 지났을 때였다. 주인은 바다로 놀러 나간 주현이 무사한가 보고 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나는 바로 바다 주변으로 가보았다. 다행히도 주현은 놀고 있었다. 어릴 때보다 성장한
주현은 이제 스스로 수영을 할 줄 안다. 스스로가 몸의 주체가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그 날의
파도는 조금 거센 파도였다. 주현은 수영을 하다가 파도에 휩쓸려 허우적댔다.
"살려줘-!"
"기다리십시오! 아가씨!"
키가 큰 나에게는 그리 무시무시한 파도는 아니었다. 나는 그녀를 건져올렸다.
"괜찮으십니까?"
"어푸푸-! 흐 지금 이게 괜찮아보여?"
"ㅈ..죄송합니다."
주현은 머리를 쓸어넘기더니 간신히 진정했다. 그녀는 모래사장 한 켠에 앉아 바다를 보고있었다.
나는 그 옆에 서서 같이 바다를 보고 있었다. 이 때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넌... 현재 삶에 만족하니?"
"주인님 내외와 주현 아가씨의 보호 아래 행복합니다."
"그래봤자 노예잖아... 그리고 너 지금 대사 너무 기계적이야."
"죄송합니다!!"
"비록 너가 현재는 노예지만... 그래도 너의 진정한 주인은 너야."
"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한 번도 인간에게서는 들어보지 못한 대사였다. 나는 당시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요새 그런 생각이 들어. 어떤 존재도 구속받을 이유는 없다는 거... 사명? 생명의 사명은 자신이 주체가
되어 살아가는 거야. 너도... 너가 주인이 돼야지."
"아...아닙니다! 제가 어찌 감히..."
"너 지금 내 말에 불만있는거야?"
"으악! 아닙니다! 다 맞습니다!"
"그러고보니... 너한테 이름이 없었네..? 이름 없어?"
"개조당하면서 많은 걸 잊고 잃었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럼 내가 지어줄게! 너도 이름이 생기면 주체성을 회복할 수 있을거야."
그러더니 그녀는 머리를 쥐어짜며 고민했다. 그러더니 만족스러운듯 나에게 웃으며 말했다.
"캐리! 캐리 어때?"
"너무 멋진 이름입니다. 제가 어찌 감히 이런 이름을..."
"반응 너무 기계적이야. 제대로 말해봐."
"남자이름치고는 너무 발랄하고 촌스럽습니다."
"쳇, 그래봤자 넌 이제 캐리야. 알겠지 캐리?"
그렇게 난 그녀에게 캐리라고 불렸고, 모두에게 캐리라고 불렸다. 그렇다. 내 이름은 캐리다.
-다시 현재-
그랬던 그녀가 지금 위험에 처했다. 나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주현은 지금 위험 지역에서
길을 잃고 산짐승들을 만날지도 모를 위험에 처했다고 한다. 그녀가 보낸 구조신호를 따라 계속 나아갔다.
"주인님! 주인님! 해당지역에 왔습니다."
그러나 주인님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까부터 대답이 없었다. 통신오류인가.. 잘 모르겠다. 일단 움직인다.
이 때, 타닥타닥! 가벼운 뜀박질 소리가 들린다. 다름아닌 주현이었다.
"아가씨!"
"캐리!"
주현은 내게 안겨 울었다. 일단 그녀를 진정시키고 데려가려는데... 크르릉... 어디선가 이상한... 숨소리.
이건 사람의 것이 아니다. 짐승의 소리다. 나와 주현의 주위로 늑대와 멧돼지가 몰려왔다.
"아가씨, 잘 붙어계십시오."
"응...!"
나는 팔에 달린 캐논을 발사했다. 쾅! 내 다리에 달린 바퀴를 움직이도록 변형시켰다. 등과 몸에 달린 총과
무기들을 꺼냈다. 나는 연발로 총과 미사일을 쐈다. 날아드는 늑대와 멧돼지들이 떨어져나간다.
쾅! 쾅! 쾅! 모든 짐승들을 쫓아냈다.
"아가씨, 이제 무사합니다."
"캐리! 빨리 여기서 빠져나가야돼! 위험해!"
"짐승들 정도는 물리칠 수 있습니다. 걱정은..."
"아니! 그게 아니야! 내가 여기까지 온 건... 날 노리는 다른 녀석들이 있었어! 짐승이나 몬스터같은 게 아니었어.
다른 누군가가 날 노리고 있어..!"
"그게 무슨..."
일단 달아나기 위해 나는 주현을 안고 탱크모습으로 질주했다.
하지만 달아나는 것도 잠시... 우린 가던 길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누군가 우리 앞을 막고있었다.
"누구냐... 너희는..."
"노예 주제에 말이 건방지네."
어떤 여자가 양쪽에 자신의 탱크맨들과 군사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분명... 위기였다.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