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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색 왕과 검은색 기사
작가 : TiAmo
작품등록일 : 2016.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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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동굴 안의 드래곤(2)
작성일 : 16-08-19     조회 : 469     추천 : 0     분량 : 6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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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린은 월린의 손을 잡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알고 있던 모습과는 많이 다르지만 드래곤이라고 하는 존재와 악수를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월린의 손이 두꺼워서 인지 어떤지는 잘 몰라도 손은 땀에 젖어 축축할 것 같았다. 나린은 손을 잡지 않기 위해 허리를 살짝 숙여서 인사를 했다.

 

  "난 나린이야. 그것보다 아까전에 곰에 대해서 설명을 끝내줬으면 하는데."

 

  "아, 그런가요? 솔직히 그것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제 책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제가 마법을 쓸 수 있게 하는 주문이 적힌 책을 흘리는 바람에 그 곰이 그걸봐버려서 그렇게 된거거든요."

 

  "잠깐, 곰이 마법을 배웠다고 하는거야?"

 

  "불가능한 일이 아니에요. 뭐 바깥에서는 마법이 인간의 전유물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죠?"

 

  "정확히는 인간과 드래곤의 전유물이지."

 

  "그렇군요. 하지만 마법은 누구나 쓸 수 있어요. 지금 나린씨도 그 책을 보기만 하면 당장이라도 마법을 쓸 수 있죠. 다만 금방 죽겠지만. 기본적으로 마법은 생명을 사용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이 있는 존재라면 그 어떤 존재라도 그것을 읽을 수 있고 사용할 수 있죠.

 

  참 마법같은 일이죠. 뭐 마법이니까 어쩔 수 없지만."

 

  나린은 월린이 마지막에 한 말은 듣지 않았다. 자기 나름대로 농담을 하려고 한 모양인 것도 같은데 안듣느니만 못한 말을 뱉었다.

 

  "역시 못믿겠다는 표정이시니까."

 

  월린은 책꽃이로 다가가서 책 한권을 꺼내서 가져왔다. 상당히 오래 된 모습이었다. 책 표지는 가죽으로 되어있었는데 그 표지가 터지고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나린은 그 책을 건네받고 잠깐 월린의 표정을 살폈다. 월린은 어서 펼쳐보라는 듯이 눈썹을 위로 움직였다. 나린은 천천히 책 표지를 넘겼다. 책에서 엄청난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그런 일은 없었다.

 

  평범한 종이에 알 수 없는 글자들이 적혀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무슨 내용인지 읽을 수 있었지만 이해는 할 수 없었다. 나린은 다시 토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이번에는 토를 하지는 않았다.

 

  그런 울렁거림이 몇 십초 지속되더니 이내 사라졌다. 하지만 방금의 울렁거림 때문에 기분은 좋지 못했다. 나린은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게 뭐야?"

 

  "머리 속에 남아있는게 없나요?"

 

  "응."

 

  "아무래도 마법이 체질에 안맞나 보네요. 토를 하는 사람이야 저도 그랬고 제 어머니 아버지도 그렇다고 했으니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마법 자체를 쓸 수 없는 인간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내가 마법을 못쓰는 특이체질이다?"

 

  "뭐 그렇죠. 저도 그런 체질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저희 할아버지 쯤 세대에서는 왜 그런지 알고 계셨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곰도 할 수 있는 걸 못한다는 건 좀."

 

  월린은 손으로 입을 가렸다. 손 뒤에 입모양이 어떤지는 뻔히 알고 있었다. 명백히 나린을 비웃고 있었던 것이다. 나린을 향해 곰보다도 못한 존재라고 비웃고 싶은 것을 참고 있는 것이다. 나린은 당장이라도 월린의 뚱뚱한 배를 걷어차주고 싶었지만 마법이 마음에 걸려서 그러지 못했다.

 

  "뭐, 안된다면 어쩔 수 없지만요. 이 마법은 신체능력을 두 배로 만들어주는 마법이었어요. 수명을 세 배로 사용하기는 하지만 당신에게라면 쓸모가 있을 것 같았는데, 이렇게 되면 쓸모가 없네요."

 

  "난 그런 거 없이도 충분히 강하다고 생각하는데?"

 

  "아까 곰을 상대할 때는 그렇지 않았을걸요? 뭐 곰이 본 마법도 이거였으니까 나린씨의 신체능력이 두배가 됐다고 해서 그게 달라진 건 또 없었겠지만요. 그리고 솔직히 개인적으로 조금 놀랐어요. 그 곰한테 칼을 꽃아넣을 수 있을거라고도 생각 못했거든요. 그게 바로 정신력이라는 건가 보죠.

 

  하지마 확실히 정신력만으로는 이길 수 없었잖아요?"

 

  월린은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제 그만 사실을 받아들이라고 나린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를 강하게 해주려고 하기라도 했다 이거야?"

 

  "뭐 제 딴에서의 작은 보답을 하려고 했다는 거죠. 곰에 죽을뻔한 책임은 저한테 있으니까요. 별로 티도 안나는 마법을 알려드리려고 한 것 뿐이에요. 게다가 마법이라는 건 자기가 쓸지 말지를 정할 수 있는 거니까요. 당신의 힘을 더 강력하게 해줄 선택지가 있다고 해도 당신에게 나쁠 건 없죠."

 

  "하지만 결국에는 안됐잖아?"

 

  "뭐 그렇죠. 하지만 마법을 배운다는 것이 굉장히 쉬운일이라는 것은 알았죠? 그런 목적도 있었으니까요."

 

  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책 표지를 넘기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그 뒤는 몸이 알아서 반응했다. 자연스럽게 읽고 난 후에 잠깐 울렁이지만 확실히 몸에는 변화가 일어났다. 개운함이 느껴지지만 동시에 벌레 한 마리가 몸 속을 기어다니는 듯한 느낌도 든다.

 

  "그런 식으로 그 곰도 책을 봤고 신체가 강화된 겁니다. 하지만 워낙 멍청해서 그렇게 직선으로만 공격했으니까 곰에게는 불행이고 나린씨 일행에게는 다행이죠. 그 덕분에 제가 녀석을 보내버리는 것도 쉬웠구요. 하지만 역시 제가 없었더라면 나린씨는 그대로 죽었겠죠?"

 

  "앞으로 그런 곰과 다시 맞붙을 일은 없어."

 

  "그렇게 너무 낙천적으로 살아서는 안되요 나린씨. 인생은 언제나 불행의 연속이라고요? 그렇지 않았나요? 특히나 나린씨의 인생은."

 

  "너 뭔가를 알고 있기라도 한거야?"

 

  나린이 목소리를 굉장히 낮게 깔며 말했다. 눈에는 어느새 살기가 한가득 차올라 있었다. 상대가 자신보다 약한지 강한지와는 상관없이 언제라도 죽이기 위해 달려들 것 같았다.

 

  "아뇨, 전혀요."

 

  월린은 두 손을 들어서 항복표시를 했다.

 

  "하지만 다시 그런 곰과 만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은 없잖아요? 그렇죠? 솔직히 말하면 그 곰보다 위험한 사람들은 세상에 얼마든지 많다고요? 게다가 그 곰은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닌 사람도 많죠."

 

  "그래서? 어쩌라는거야? 방금 네가 말했잖아. 마법이 안 맞는 체질인가보다고."

 

  "아뇨, 단순하게 나린씨가 인정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런 표정을 보니까 이제 조금 만족스럽네요."

 

  나린의 얼굴은 분노로 붉게 물들어갔다. 윌린은 실실거리며 웃고 있을 뿐이었다.

 

  "여긴...어디야?"

 

  정신을 차린 스노우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스노우는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어지러움과 두통이 느껴졌다.

 

  "스노우."

 

  "일어나셨군요. 스노우씨."

 

  월린이 스노우를 아주 잘 아는 듯이 불렀다. 하지만 스노우는 월린의 목소리는 커녕 월린의 존재마저도 눈치채지 못하고 나린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린 어떻게 된건지 설명을 좀..."

 

  "저 무시당하고 있는건가요?"

 

  그제서야 월린의 말을 들은 스노우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월린을 바라보았다.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크게 놀란 경향이 없잖아있지만 그렇다고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 엄청난 곰을 상대하고 난 후에 바로 벌레들을 뱉어냈으니 월린을 사람이 아닌 다른 것으로 봤어도 뭐라고 할 말은 없다.

 

  게다가 월린의 엄청난 살덩어리들 때문에 확실히 덩치는 곰만 하다고나 할까.

 

  "그렇게까지 놀랄 이유가 있나요?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지만..."

 

  "사람이었군..."

 

  스노우는 안도감에 내뱉은 한마디였지만 그것이 월린에게는 적잖은 마음에 상처가 되어 돌아갔다. 아무리 마법사라고 해도 마음에 상처까지는 고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스노우, 괜찮아. 안전한 곳이야. 곰도 어떻게 처리됐고."

 

  "다행이다. 정말 죽는 죽만 알았어."

 

  "아, 그리고 이쪽은 월린이야."

 

  나린은 잠깐 월린의 성을 말할까 말까에 대해서 고민했지만 말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안녕하세요? 월린 드래곤입니다."

 

  쓸모없게 되버렸지만.

 

  월린의 자기소개를 들은 스노우의 두 눈은 휘둥그래졌다. 스노우에게 있어서 드래곤이라는 이름은 꽤 큰 의미가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 존재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스노우에게는 있었다. 하지만 곧내 눈은 다시 생기를 잃었다.

 

  나린은 분명 반응을 보일거라고 생각했던 스노우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스노우에게 물었다.

 

  "스노우, 드래곤이라고? 드래곤?"

 

  "이 사람의 성이 드래곤인거지 내가 찾는 그 드래곤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그 드래곤이 아마 이 드래곤이 맞을거라고 생각하는데?"

 

  "무슨 소리야 너 원래 마법 같은거 안 믿었잖아. 어디서 나를 속이려고. 딱 봐봐. 전혀 아니잖아."

 

  스노우는 월린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나린은 그런 스노우를 계속 설득하려고 했고 스노우는 그 때마다 그럴리 없다는 반응이었다. 그 이유는 말하지 않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월린의 뚱뚱한 모습이라는 것 때문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계속 그렇게 몰라주시면 솔직히 말해서 좀 섭섭한데요."

 

  결국 참다못한 월린이 나린에게 했던 설명을 처음부터 다시 하는 것으로 스노우에게 겨우 마법과 드래곤이라는 것에 대한 존재에 대해서 이해시킬 수 있었다. 스노우는 예전부터 그런 것을 믿어왔기 때문에 스노우를 믿게 하는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스노우가 궁금한 것에 대해서 하나하나 전부 물어보았기 때문에 꽤 시간이 걸렸다.

 

  월린이 나린에게 마법을 하나 알려주려고 했는데 나린은 마법을 쓸 수 없는 굉장이 특이한 체질인가보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월린은 말을 마쳤다.

 

  월린은 땀을 뻘뻘흘리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이렇게 말을 많이 해본것은 월린의 인생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대부분 동물과 대화하거나 혼잣말 뿐이었던 월린의 인생에서 대화라는 것은 흔치 않은 경우였고 또 힘든 일이었다. 월린은 의자에 앉아서 축 늘어졌다.

 

  "잠깐만 쉬죠. 힘들어서요."

 

  "대단해."

 

  스노우가 말했다. 확실히 마법이라던가 드래곤이라던가 하는 것을 좋아하는 인물에게는 굉장히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 였던 모양이다.

 

  "그게 끝이야?"

 

  나린이 물었다.

 

  "그럼 뭐가 더 있어야해?"

 

  스노우는 질문의 의미를 조금도 이해 못하겠다는 투로 답했다.

 

  "나는 네가 좀 더 대단한 반응을 보일 줄 알았는데?"

 

  "뭐 신기하기는 하지만 그게 다인거잖아? 하지만 기쁘기는 하네 내가 평생 믿고 오던 것이 실제로 존재했다고 하니까 말이야. 내가 생각하던 거랑은 조금 다르지만."

 

  스노우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월린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월린의 숨은 많이 진정되어 있었다. 월린은 스노우의 눈동자를 보았다. 티끌하나 없이 맑은 눈동자였다. 왠지 모를 부끄러움이 느껴져 뺨이 살짝 붉어졌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주세요. 조금 쑥쓰럽거든요. 그것보다도 여러분들은 조금 특이한 것 같네요."

 

  "응, 뭐가?"

 

  "뭐 제 잘못된 선입견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여러분은 저에게 마법을 가르쳐 달라던가 힘을 빌려달라던가 하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으니까요. 다른 사람을 만나본 적은 없지만 제 부모님이 들려준 이야기 속에서 다른 인간들은 저희에게 항상 그런 부탁을 해왔다고 들었거든요."

 

  나린과 스노우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 모두 아예 그런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말이다. 뭐, 나린의 경우 마법으로 최대 어느정도의 힘을 낼 수 있냐고 물었으니 아슬아슬했지만 말이다.

 

  "언제 떠나시나요?"

 

  월린이 물었다.

 

  "내일이 가장 좋다고 생각해. 사실 지금이 오전인지 오후인지 몰라서."

 

  "그러니까 지금은...저녁이네요."

 

  "좋아, 그럼 내일 아침에 떠나는 걸로 할게."

 

  "그럼 두사람은 여기서 편히 쉬세요. 제가 내일 아침에 다시 오겠습니다."

 

  월린은 힙겹게 의자에서 일어난 후에 문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월린은 다음날 아침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나린과 스노우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우선은 휴식을 취하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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