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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급수 로맨스
작가 : 하으미
작품등록일 : 201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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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니?
작성일 : 17-07-06     조회 : 393     추천 : 0     분량 : 5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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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중충한 잿빛 하늘.

 파란 하늘은 어느 때인가부터 고전 로맨틱 코미디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근래에 들어 더욱 보기 힘들어졌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처럼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이 스카이라운지 통유리창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 쓰레기. 양아치. 넌 진짜 최악이야.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흐르는 스카이라운지 안의 인공적인 평화로움을 깨는 누군가의 원망 가득한 목소리.

 순식간에 그 공간의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한 커플에게로 집중됐다.

 

 “나쁜 년.”

 

 육안으로는 사람과 구별할 수 없을 만큼 똑같이 제작된 로봇과 공존하는 최첨단 시대에도 남녀의 이별 멘트는 어쩜 이리 변한 게 없을까.

 잿빛 하늘만큼이나 어둡고 심드렁한 표정의 여자.

 대충 틀어올려 묶은 머리카락 아래로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어깨까지 이어진 길고 흰 목이 도드라졌다.

 그녀는 맞은편에 앉아 거의 울 듯한 얼굴의 남자를 한심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니가 이래서 질리는 거야. 내가 너랑 결혼이라도 했니? 결자해지. 사람이 만나다 보면, 헤어지기도 하고 그러는 거지. 너 나랑 백년해로할 생각이었어?”

 “그래도... 난 너랑 결혼까지 생각했어.”

 “풉.”

 

 아, 나 미치겠네... 라는 표정으로 신경질적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다시 틀어 올리는 여자.

 기어이 눈물을 쏟고 마는 남자.

 점점 가관이다.

 

 “자기야. 끅... 나 진짜... 자기랑 결혼하려고...끅... 진짜... 아, 진짜.. 왜 이래. 나. 찌질하지?”

 

 그걸 알면 이러지 마.

 작전을 바꿔야겠다.

 지아는 온 힘을 다해 모든 감정을 끌어 올린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울음을 터뜨렸다.

 점차 그녀의 울음은 오열에 가까운 수준이 되어 버린다.

 작은 어깨를 들썩이며 목 놓아 우는 그녀.

 남자는 생각지도 못한 지아의 행동에 오만 생각으로 복잡해진다.

 다시 한 번 사람들의 이목이 이들에게 집중된다.

 한참을 울고 난 지아는 겨우 입을 연다.

 

 “그래.”

 

 어안이 벙벙한 남자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그저 멀뚱히 지아를 바라봤다.

 

 “우리 헤어지지 말자.”

 

 울음을 삼킨 지아의 표정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낀 남자는 침을 꼴깍 삼킨다.

 

 “나... 얼마 못 살아. 내일 입원하거든. 그래, 나도... 할 수 있다면, 여생 너랑 보내고 싶어. 근데 어떻게 너한테 내 뒤치다꺼리 해달라 그래.”

 

 벙쪄 있던 남자가 정신을 차린 듯, 호흡을 가다듬는다. 걸려들었다.

 

 “... 아니... 저기... 그게... 미안한데, 우리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참, 솔직도 하다.

 그렇게 울고불고 매달린 땐 언제고...

 하긴, 요즘 세상에 남을 위해 희생하며 산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전통 미덕이긴 하다.

 그래도 그렇지.

 

 “솔직히 자신 없지? 그러니까 보내줄 때 가란 말이야. 이 등신아.”

 “휴... 고마워. 이렇게 얘기해 줘서.”

 

 남자는 손등으로 눈물을 쓱 닦는다.

 지아는 겉옷을 챙겨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스카이라운지를 벗어났다.

 

 미션 클리어.

 

 건물을 나오자, 곧바로 하늘에서 비가 쏟아졌다.

 길가에 낯익은 롤스로이스가 세워져 있었다.

 그 여자의 차다.

 지아는 쏟아지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걸어가 롤스로이스에 올라탔다.

 

 운전석에는 운전기사가 앉아 있었고, 뒷좌석에 그녀가 있었다.

 운전기사는 요즘 최고 인기를 달리고 있는 송성주와 똑같은 외모를 가진 로봇이었다.

 송성주의 얼굴이 아니었으면 로봇인지 못 알아볼 뻔 했다.

 가장 잘나가는 배우가 갑부 여자의 운전기사를 할 리가 없으니...

 

 살결은 물론 머리카락이며 손등에 튀어나온 힘줄까지 그 로봇은 거의 사람이나 다름없어 보일 정도로 세밀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물론 이런 로봇은 무척 고가다.

 일반적으로 상용되는 보급용 로봇은 철제로 제작된 깡통로봇이거나 실리콘으로 어설프게 사람을 흉내 낸 경우가 많았다.

 

 “잘 처리했어요?”

 “네. 완전히 떨어져 나갔어요.”

 “수고했어요. 여기.”

 

 샤넬 슈트를 입은 여자는 지아에게 칩을 하나 건넸다.

 지아는 칩을 받아들었다.

 여기엔 엄청난 위자료가 달린 이혼을 위해 그 남자의 내연녀 역할을 대행한 대가가 들어있었다.

 당장 서울 어딘가에서 아파트 보증금과 월세 정도를 해결할 수 있는 액수의 돈이었다.

 지아는 칩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

 

 빗줄기가 더 거세졌다.

 

 지아는 문득 쇼윈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흰 블라우스에 짧은 스커트가 비에 쫄딱 젖어 속옷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경계 어린 눈초리가 느껴졌다.

 요즘 세상에 대기 오염 물질의 결정체인 비를 그냥 맞는 건 지아 뿐일 것이다.

 어딘가에 들어가 비를 피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한 지아는 주위를 둘러봤다.

 캡슐 형태의 술집이 눈에 들어왔다.

 지아는 서둘러 술집을 향해 발길을 재촉했다.

 

 술집 안에는 제법 사람과 비슷한 로봇이 서빙을 하고 있었다.

 국물 요리와 소주 한 병을 주문하고, 칩을 스마트폰에 끼워 액수를 확인했다.

 

 역시 정확한 여자야.

 

 지아는 기분 좋게 소주를 한 두 잔 마시기 시작했다.

 예나 지금이나 여자 혼자 술을 마시고 있으면, 치근덕대는 남자들이 꼬이기 마련이다.

 호시탐탐 지아가 술에 취하기만을 기다리거나 은근슬쩍 지아 옆에 앉았다가 싸늘한 철벽 반응에 돌아가는 남자들이 수두룩했다.

 싸구려 술집이니 온 남자들의 수준은 알만했다.

 

 그런데 12시가 막 지났을 무렵, 이곳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남자가 들어왔다.

 완전히 빗어 넘긴 검은색 머리칼과 짙은 눈썹.

 길고 날카로운 눈매와 날렵한 턱선은 콧잔등에 얹혀 있는 금테 안경과 어우러져 이지적인 느낌을 자아냈다.

 아르마니 슈트를 입은 그는 천천히 걸어오더니 지아의 맞은편에 앉았다.

 지아는 인상을 찌푸리며 뭐야, 하는 눈빛으로 그를 훑어 봤다.

 압도적인 이미지에 지아는 잠시 숨이 막혔다.

 

 “같이 앉아도 되겠습니까?”

 

 사무적이고 딱딱한 말투다.

 이런 데 와서 여자한테 집적대는 그런 류의 남자는 아닌 것 같은데...

 지아는 그에게서 어딘지 싸늘함을 느꼈다.

 긴장을 풀어보려 지아는 잔에 소주를 따라 들이켰다.

 로봇 종업원이 쏜살같이 와서 남자 앞에 빈 잔을 내려놓았다.

 

 “저 알아요?”

 

 지아의 말에 훗, 웃으며 남자는 잔을 내밀었다.

 

 “그게 중요한가요? 그쪽이랑 오늘 밤, 술 한 잔 하고 싶을 뿐입니다.”

 

 남자의 너스레에 지아는 픽, 입가가 느슨해졌다.

 그래. 까짓 거 아무렴 어때. 남자의 외모는 하루 술상대로 괜찮겠다 싶어 지아는 그의 잔에 소주를 채워주었다.

 

 그리고 다음 날, 그녀는 낯선 공간에서 눈을 떴다.

 

 

 

 

 2.

 

 낯선 남자. 싸구려 술집과는 생경하리만큼 어울리지 않았던 남자와 동석을 했고.

 도대체 술을 얼마나 마신 건지...

 좀처럼 취하지 않는 그녀인데, 술에 약이라도 탄 건가?

 그 남자의 압도적인 분위기에 끌려 경계심을 놓쳤던 것 같다.

 어젯밤의 기억이 송두리째 없다.

 하지만 머리는 아프지 않고 깨끗했다.

 눈을 떴을 때, 코 끝에 머무는 공기하며 눈에 보이는 천장, 등에 닿는 촉감 모든 것이 낯설다는 경계심이 발동했다.

 

 이불 속 상황을 보니, 어젯밤 완전히 만취한 상태로 잠이 든 것 같았다.

 걱정할 만한 상황은 없었던 듯하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보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시트에 새겨져 있는 H 호텔 로고였다.

 이 곳은 전 직원이 인공지능 로봇인, 일종의 무인텔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연예인이나 재벌가의 스캔들에 자주 이름이 오르내리던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설이나 서비스가 최고급이어서 매우 고가의 호텔이었다.

 지아의 수입으로는 도저히 이용할 수 없는 그런 곳이었는데,

 지금 지아는 그 호텔의 스위트룸, 널찍한 침대 위에 앉아있던 것이다.

 어제 함께 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남자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가까스로 침대에서 벗어나 침실에서 나와 보니, 테이블 위에는 브런치가 놓여 있다.

 숙취가 깨지 않아 음식이 입에 들어갔다가는 도로 쏟아낼 것 같아 그냥 지나치려는데,

 지아의 눈길에 뭔가가 걸렸다.

 

 조그마한 쪽지였다.

 

 쪽지에는 ‘류’라고 하는 바의 이름과 전화번호, 그리고 날짜와 시간이 적혀 있었다.

 당장 내일 밤이다.

 지금 나랑 뭐하자는 거지?

 지아에게 일종의 선택지를 준 것 같았다.

 만나서 그 묘령의 남자에 대해 알아낼 것인지, 아니면 그냥 하룻밤 해프닝 정도로 넘어갈 것인지.

 왠지 모르게 찝찝한 기분이 지아를 따라다녔다.

 

 다시 또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왔다.

 지아는 이왕 이렇게 된 거, 잠시라도 호사를 누려보자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다시 침대로 기어들어가 아득한 잠에 빠져들었다.

 

 

 3.

 

 

 이스탄불 발 비행기가 인천 공항에 착륙했다.

 중동 사람들과 한국 사람들로 가득 찬 이코노미 좌석 한 구석에 중동 사람인지, 한국 사람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2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그는 짙은 눈썹에 까무잡잡하게 그을린 피부, 새까맣게 반짝이는 눈동자가 깊게 들어간 두 눈에 박혀 있었다.

 굵은 목선을 따라 탄탄한 근육질의 몸매가 보기좋게 자리잡고 있었다.

 언뜻 보면 한국 사람 같기도, 어떻게 보면 외국 사람 같기도 한 이국적인 외모였다.

 운동선수로 봐도 무방할 것 같은 그는 놀랍게도 울고 있었다.

 억지로 울음을 삼키려 애쓰는 티가 역력했다.

 남자 옆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보다 못해 그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휴대용 티슈를 건넸다.

 남자는 고맙다는 말도 내뱉지 못하고 그저 울음을 삼켰다.

 

 “젊은이가 타국에 와서 벌써 고향 생각이 나는가, 왜 이리 우노. 그만 뚝 해요. 한국말은 할 줄 아나?”

 

 그를 당연히 코리안 드림을 품고 온 외국인으로 안 할머니의 따스한 말에 마음이 무너져 내렸는지,

 남자는 이제 소리 내어 꺼이꺼이 울고 있었다.

 할머니는 건장한 남자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같이 눈물을 훔쳤다.

 정말 기이한 광경이라고 오가는 승무원들은 생각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게이트로 나올 때까지 남자는 어마어마한 짐을 끌고 가면서도 계속 울었다.

 

 “우준아!”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남자는 고개를 들었다.

 아르마니 수트와 검은 선글라스가 잘 어울리는 새하얀 피부는 여전했다.

 

 “혀엉...”

 

 우준은 어린 아이처럼 민후의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공항을 오가는 수많은 인파가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각자의 스마트폰에 담았다.

 그런 것쯤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두 남자는 그렇게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한참동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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