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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환상곡
작가 : 하이아라키
작품등록일 : 201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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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 죽음의 문턱에서
작성일 : 17-07-06     조회 : 718     추천 : 2     분량 : 2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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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logue - 죽음의 문턱에서

 

 두렵다.

 두렵고 무섭다.

 

 죽음을 앞둔 자들의 심정을 이제야 비로소 십분 이해 할 수 있을 거 같다.

 마석으로 온 몸을 지배 당해 꿈적도 할 수 없다.

 염력도 무력도 아무런 힘도 내 뱉을 수 없다.

 

 온전히 평범한 인간 그 자체로의 내가 되었다.

 영웅의 탈을 쓰고 날뛰던 생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나의 아르셰, 이젠 그녀의 채취도 맡을 수 없겠지.

 영웅 놀이 따위 진작에 그만두고 아르셰와 함께 멀리 멀리 떠났으면 어땠을까?

 

 그러나 모두 부질없는 망상이다.

 이제 곧 특무대의 법 집행이 이루어질터,

 생의 마지막을 부질없는 망상따위로 낭비할 순 없잖은가?

 아니, 그러면 좀 어때?

 나의 소중한 아르셰를 떠올리는 게 왜 망상이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여자다.

 그래 찰나의 순간까지 그녀를 기억하자.

 차라리 그렇게 맞이하는 죽음이 더 나을 지도 몰라.

 

 눈을 질끈 감았다. 온 몸이 사시나무 떨듯이 떨려왔다.

 차가운 칼날이 내 목을 썰고 지나갈 때의 느낌은 과연 어떤 것일까?

 내 칼끝에 희생되었던 자들의 비웃음이 사방에서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그들도 지금의 나와 똑같은 기분이었을까?

 아니지, 그들은 고통을 느낄 시간 조차 없었다.

 베어지는 것 조차 체감할 수 없었을테니까!

 내 광속의 검은, 생의 경계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빨랐을터~

 

 휴, 이제 준비하자.

 붉은 마석에 온 힘이 봉인을 당했지만.

 촉 만큼은 봉인 당하지 않았나보다.

 전달 되어 온다.

 죽음의 냄새가 코끝을 찌르고 예리한 검날이 목 위로 드리워졌음을 직감할 수 있다.

 

 곧이다. 이제 곧이야.

 잘린 직후에도 신경은 완전히 죽지 않을 것이다.

 시야에 내 몸체가 온전하게 들어와 잘린 몸통을 확인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어처구니없게도 약간은 두려움이 사라지는 듯 했다.

 체념하고 나니 되려 덤덤하다.

 죽음의 공포는 결국 누구에게나 동등할 터이다.

 그저 삶의 무게가 달라 아쉬움의 크기가 차이날 뿐.

 

 비우자 그리고 받아들여라.

 위대했던 제타의 영웅답게 모든 것을 받아들여라.

 그리곤 기억해라.

 너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나로 인해 희생된 그 누구도 역시 헛되지 않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되었다. 이제는 그어라. 어서

 그리고는 눈을 감았다.

 

 싸늘한 파공음이 귓가에 들려왔다.

 둔탁한 도가 일으키는 전형적인 파공음이었다.

 내 목을 잘라낼 거대한 대도의 파공음이 귓가에 다다르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정적이 흘렀다.

 감았던 눈을 사알짝 떠 보니 세상 모든 것이 멈추어 있었다.

 바람과 공간을 가르던 특무대의 대도 역시 멈추어 있었다.

 목을 살짝 비틀어 주변을 확인했다.

 

 익숙한 인형의 그림자가 내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원하는 공간 내, 대기의 흐름을 멈출 수 있는 자

 불멸의 염마 '초로'

 

 초-로

 

 녀석이 설마 날 구하러 와준건가?

 그럴리가 없는데

 그럴리가 없잖아

 초로는 적이다.

 

 "일어나라. 마석의 결계는 풀렸다."

 

 몸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꼈다.

 막혔던 기운의 흐름이 전신을 타고 흘렀다.

 말 그대로 마석의 결계가 풀린 것이다.

 

 "초로, 네 녀석이 날 구해준 이유가 뭐지? 댓가가 무엇이냐?"

 

 거칠고 직선적으로 물었다.

 

 "피~, 웃겨, 땀이나 좀 닦아라. 겁쟁이"

 

 사실이었다.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마치 비라도 맞은 것 같았다.

 

 "쓸데 없는 얘기, 이유를 말해!"

 

 단호했지만, 떨림이 새어나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살았다는 안도와 왠지모를 불안감이 동시에 엄습해 왔기 때문이다.

 

 "일단은 이곳을 떠나서, 천천히 얘기하지, 더 이상은 공간을 잡아 둘 수 없다. 특무대에게 정체가 노출되면 피곤해질게 뻔하니까. 뭐 어차피 내 소행이라는 것을 못 알아챌리는 없겠지만, 여기서 다툴 순 없지. 쟁쟁한 녀석들이 무더기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초로는 내 시야에서 완벽히 사라졌다.

 초로가 사라지자 멈추었던 대기의 흐름이 다시 생기를 찾기 시작했다.

 의식의 멈춤이 돌아와 시야에 사물이 확보될 것이다.

 어서 자리를 떠야 한다. 빼앗긴 검은 나중에 찾도록 하자.

 

 잃었던 능력을 되찾은 기분이란 이런것이었던가?

 모든 것이 소중했던 것들이었다.

 

 재빠르게 공기를 가르며 황궁의 벽을 넘었다.

 

 잠시 후 특무대의 대도가 허공을 갈라 바닥을 내리치고 있었다.

 

 "깡"

 

 형을 집행하던 집행인을 포함해 주변 대부분의 특무대원들은 어리둥절한 짓고 있었다.

 다만, 몇명의 특무대 인원들은 비릿한 미소를 띄우며 서서히 상황을 파악했다.

 

 "햐, 손님이 다녀가셨다."

 

 의문의 사내가 아쉬움을 토로했다.

 

 "순식간에 사라진거 같은데, 특무대의 눈을 피해 '쿠로'를 데리고 이곳을 빠져 나갈 만한 녀석이 과연 있을까요?

 

 누군가 의문의 사내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순식간에 사라진게 아니야. 시공간을 멈추고 천천히 사라진거지"

 

 의문의 사내는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이 제타에서 시공간을 멈출 수 있는 몇 안되는 인물중에, 7성위의 쿠로가 필요한 녀석은 단 한 놈 뿐이다."

 

 의문의 사내는 여기까지 말을 하고는 침묵한 채 텅 빈 집행장을 응시했다.

 

 "설마?"

 

 의문의 사내에게 질문을 던졌던 특무대 일원은 얼굴이 사색이 된 채 이름을 되뇌이고 있었다.

 

 "초~로"

 

 "쿠로가 이곳에서 형을 집행중이었다는 것을 도데체 어떻게 알았을까요? 비밀리에 집행을 준비했는데 말입니다."

 "흠 글쎄, 이제부터 차근차근 알아봐야지~ 자 집행은 끝났다. 전원 해산토록"

 

 특무대장의 외침이 있자, 집행장의 특무대원이 일제히 사라졌다.

 놀랍도록 민첩하고 신속한 행동이었다.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집행장 내 공터는 그렇게 텅 비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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