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영웅환상곡
작가 : 하이아라키
작품등록일 : 201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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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연이라는 것
작성일 : 17-07-06     조회 : 291     추천 : 2     분량 : 4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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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연이라는 것

 

 언제부터 길을 나섰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먹을 것이 없으면 동물을 잡아 먹거나 수풀을 뒤져 열매를 찾아 먹으며 가까스로 부질없는 생을 유지할 뿐이었다.

 죽으려고 고향을 등진 것은 아니었지만, 굳이 살아남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허기가 지면 먹을 것을 찾아 해맸다.

 그럴 때 마다 생존 본능이란 것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새삼 느끼곤 했다.

 

 어릴적 아버님께 들었던 이야기가 있었다.

 태천위를 지닐 위대한 영웅의 후예, 그게 바로 나라는 이야기

 허무맹랑함을 넘어 유치하고 쓸모 없는 이야기

 그런데 그게 뭐라고 우리 가족은 몰살 당했다.

 정작 그 태천위를 지닐 영웅의 후예라고 아버님이 그렇게나 주지시켰던 나는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

 태생 1성

 태어날 때 1성의 성위를 지니고 태어난 영웅족

 쓰.레.기

 훗날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도 없고, 성장이라는 것 조차 의미가 없는 태생 1성의 성위를 확인하고는

 비웃 듯 코웃음 치며 나를 살려두었다.

 마치 두 부모의 죽음앞에 스스로 무력함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 죽음보다 더욱 더 잔인한 형벌을 내린 것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살아남았고, 손가락질을 견디다 못해 고향을 버렸다.

 애초부터 그곳이 진짜 고향인지도 알 수 없었다.

 

 한 걸음을 내 딛는데도 꽤나 시간이 걸렸다.

 기력이 다해 발 디딜 힘도 없었다.

 그 때 강한 진동이 두 다리로 전달 되었다.

 묘한 설레임이 가슴을 때렸다. 미지의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더 크게 작용한 탓이다.

 

 이렇게 큰 떨림은 근래에 느껴본 적이 없었다.

 정확히 어디즈음 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이 주변으로 거대한 동물이 서식하거나 한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 때 또 다시 강한 진동이 울렸다.

 이번에는 온 몸을 휘감을 정도의 떨림이었다.

 얼마 후 부터는 떨림의 간격이 좁아지고 강도도 세졌다.

 강한 호기심 때문이었는지 다리의 움직임이 이전보다 좋아졌음을 느꼈다.

 마치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기라도 한 것 처럼 진동의 근원지를 향해 발걸음을 빠르게 떼었다.

 

 드디어 진동의 근원지에 도달했다.

 두 눈에 들어온 그것은 무시무시하고 무지막지한 영웅들의 싸움이었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태어나서 단 한번도 저토록 격렬한 싸움을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영웅족의 싸움은 그저 어렸을 때 아버님으로부터 들었던 무용담이 전부였다.

 그런데 지금 내 시야에 화려한 전투, 아버님에게 들었던 이야기보다도 더 격렬하고 더 위험천만한 그런 실제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형체를 쫒는 속도가 더디긴 했지만 최소한 몇 명이 싸움을 벌이고 있는지는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일 대 일의 정당한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다섯이 싸움을 벌이고 있었는데, 누가 보아도 일 대 사의 분리한 싸움이었다.

 

 조금 더 접근 해 보았다.

 허기도 잊은 채 어느샌가 나 역시 싸움에 몰두해 있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 정도로 치부하며 그저 흘겨 들었던 스스로를 꾸짖었다.

 돌아가신 아버님의 미소띤 얼굴이 생각나 잠시 안구에 습기가 차 오르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눈 앞 바닥으로 건장한 체구의 두 사내가 쳐박혀 자욱한 먼지를 일으켰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놀랄 겨를조차 없었다.

 안개가 걷히자 사내들의 모습이 확연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이미 숨을 거둔 모양이었다.

 복부가 시커멓게 그을린 것이 마치 무언가로 심하게 데인 듯한 외상이었다.

 

 이제 싸움은 이대 일로 어느정도 균형을 맞춘 듯이 보였다.

 숨을 죽인 채 싸움에 몰두하자 드디어 전투 장면을 조금이나마 읽을 수 있었다.

 어렸을 때 부터 아버님께서 해주시던 이야기가 있었다.

 누구보다 좋은 눈매를 가지고 있던 탓에 보고 배움이 빠르고 습득이 남달랐다.

 그것이 나의 큰 장점이라고 항상 그렇게 이야기 해주셨다.

 그것이 무슨 쓸모가 있느냐며 받아 쳤지만, 이제 와서 보니 그것은 꽤나 유용한 것이었다.

 엄청나게 빠른 저들의 싸움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자 전개의 양상을 알아챌 수 있었다.

 

 수세에 몰린 자들은 같은 편으로 보이는 두 남녀 였다.

 어느샌가 겁도 없이 전장 가까이 접근해 있었다.

 그들의 대화 소리도 들릴 정도 였다.

 

 "이미 은퇴한 노인에게 무슨 볼일이 있기에 목숨까지 걸어가며 싸움을 걸어온 것이냐?"

 

 "칫, 능구렁이 같은 영감이 잘도 주절거리는구나. 그 이유는 당신이 더 잘알고 있겠지."

 

 이야기를 들어보니 남은 두 남녀가 상대인 노인을 찾아 온 것으로 보였다.

 

 "음, 그 따위 것, 전부 부질 없다고 그렇게 누누히 강조를 했는데도 역시나 못 알아 먹는 게로군"

 

 "쓸모가 없다니, 그것이야 말로 이 세레이아스의 모든 영웅들이 이루고자 하는 궁극의 가치가 아닌가? 더 왈가왈부 할 이유가 없다. 힘으로라도 제압해서 길드로 후송한다."

 

 순간이었다 공격 자세를 취하던 남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찰나의 순간 이었지만 나는 그자리에 얼어 붙어 꼼짝을 할 수 없었다.

 

 진공속박

 

 아버님이 그렇게 말씀해 주셨다.

 부모님이 처형 당하던 그날 아버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셨다.

 진공속박에 당해 움직일 수 없는 것이라고 말이다.

 우리 가족을 말살하던 그날, 리더처럼 보이는 자가 우리 가족을 진공 속박했다.

 무형의 기운을 이용한 속박 기술, 태생4성 이상의 영웅족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진공 기술이다.

 일종의 염력과도 같은 것으로 상대 주변의 공간을 압박해 신체를 결박하는 절정의 기술이다.

 

 순간 나는 속박당했다.

 아마도 싸움이 끝나면 싸움을 목격했다는 이유로 살해 당할 것이다.

 생각이 거기에 다다르자 소름끼치도록 살벌한 죽음의 공포가 밀려들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는데, 막상 죽음이 코앞이라고 느끼자 또 다시 살고자하는 부질없는 욕망이 버둥거렸다.

 그러나 발버둥치면 칠수록 속박은 더욱 더 나를 조여왔다.

 어느 순간부터는 호흡조차도 힘겨웠다.

 

 그날의 진공속박보다 더욱 더 강력하고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다행인지 싸움의 양상을 확인하는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단 하나의 희망, 싸움의 결말이 노인의 승리로 끝나는 것, 그것이 그나마 목숨을 연장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모르게 어느샌가 노인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응원 따위는 필요조차 없어 보였다.

 

 남자가 나를 진공속박하던 그 찰나의 틈을 노려 노인의 몸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노인은 맨손이었지만, 무기를 들고 있던 두 남녀보다도 훨씬 위협적이었고 압도적이었다.

 순식간에 허공으로 사라진 노인은 어느샌가 남자의 앞에 나타나 비릿한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곧장 여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여자는 움찔하더니 들고 있던 대검을 양손으로 들어 올려 몸통과 얼굴을 가로막았다.

 

 그 순간 남자의 몸이 허물어 지듯 쓰러지고 있었다. 변변한 방어조차 해보지 못하고 허무하게 단 일격으로 싸움에서 패한 것이다.

 억울했을법도 했지만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만연했다.

 그리고 조용히 읊조렸다.

 

 "7성 영웅이 실존했다는 말은 정말 사실이었군, 허나 이래가지고는 길드로 복귀를 할 수가 없잖아."

 

 풀석

 

 잠시 후 자신의 키를 훌쩍 넘긴 대검으로 정면 가드를 단단히 굳히고 있던 여자도 재빠른 노인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그자리에서 고꾸라졌다.

 노인이 사용한 기술은 일종의 화염 마법이었다. 공기중의 산소를 시전자의 에네르기로 태워 불꽃을 일으키고 그것을 손 주변으로 모아 응집시켜 사용한다.

 불꽃의 응집력이 강할수록 화염의 불꽃 크기는 작아져 위력이 배가 된다. 노인이 만들어낸 화염 불꽃은 과거 그 어떤 화염술사의 것보다 작고 강했다.

 여자가 쓰러지자 신기하게도 공간을 압박하던 무형의 기운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순간 속박이 해제된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전부 주..죽은건가?

 일이 이렇게 되자 그들의 생사가 걱정이 되었다.

 바람앞에 등불보다 못한 내 처지를 생각해 보면 부질없는 걱정이었다.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던 찰나 심장이 멎을 것 같은 공포가 온 몸을 휘 감았다.

 어느샌가 노인이 눈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네 녀석도 루칸의 길드원이냐?"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숨을 쉴수도 없었으며, 무슨 말을 해야할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대로 한 줌의 재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자 온 몸이 더욱더 굳어졌다.

 

 "눈 빛을 보니 악한 녀석은 아니구나. 그럼 어떻게 할까?"

 

 노인은 손을 턱에 괴고는 요리조리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나를 어떻게 처분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하는 것 처럼 보였으나, 이렇다할 대꾸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좋다. 데리고 가주마. 그 멍청하고 선한 눈빛이 마음에 들었다. 가자"

 

 순간이었다. 몸이 허공으로 들리더니 삽시간에 시야가 흐려졌다.

 시공을 초월한 빛의 이동, 아무것도 느낄수도 아무것도 알아차릴수도 없었다.

 그저 어떤 초월적인 힘에 이끌려 몸이 던져지는데로 흘러 갈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 까 그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하늘의 끝자락에 올라와 있음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카르곤의 언덕'

 

 이 곳은 카르곤의 언덕이라고 불리우는 곳이었다.

 정신을 차릴무렵 노인이 그렇게 설명해 주었다.

 아마도 당분간은 제타의 흙 바닥을 밟을 일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이 곳을 혼자의 힘으로 내려갈 수 있을 때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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