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영웅환상곡
작가 : 하이아라키
작품등록일 : 201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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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반란군, 날개를 달다.
작성일 : 17-07-11     조회 : 286     추천 : 0     분량 : 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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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반란군, 날개를 달다.

 

 따사로운 햇살이 그저 한 없이 평화로운 오후의 어느 한적한 성당 지붕 위를 비추고 있었다.

 케스파라 성당은 이 곳에서 오래 거주한 지역 주민이 아니라면 그 위치나 역사, 존재 자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작은 성당이다.

 성당 내부는 행사를 치루는 듯, 왁자지껄 소란스러웠다.

 평소의 성당 분위기와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아르셰 누나 이제 진짜 마지막이네"

 

 소년은 얼굴을 조금 붉히며 그렇지만 당당하게 소녀에게 말했다.

 소년과 소녀는 성당 정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꽤나 유서깊은 커다란 고목 밑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응, 그래 칸, 하지만 언젠가 또 다시 만날 수 있는 날이 있을거야."

 소녀는 태연하게 소년의 말에 응대했다.

 살포시 지어지는 미소가 매우 아름다운 소녀였다.

 

 "성년식인줄로만 알았는데 출정식 같은 것이 되어버렸잖아. 칫, 다들 뭐 때문에 쉬쉬 거린거람"

 소년은 투정 섞인 표정을 지으며 불만에 찬 목소리로 투덜 거렸다.

 

 "칸에겐 미안해, 주민들에게는 내가 부탁한거야. 괜히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거든"

 소녀는 그런 소년에게 타이르듯 부드럽게 말했다.

 

 "누가 걱정을 한다고 그래, 어차피 누난 강하잖아. 스스로 충분히 헤져나갈 수 있는 거잖아.그런거잖아"

 소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소녀는 그런 소년을 그대로 꼭 껴안아 주었다.

 소년은 소녀의 품에서 마침내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한참을 울고 난 소년의 눈시울이 붉게 변해 있었다.

 

 "꼭 돌아와야 해, 누나, 돌아 오면 이제는 장난도 치지 않고 말도 잘 들을게, 꼭 돌아와야 해"

 소년은 진심으로 간절하게 부탁했다.

 

 "응, 칸, 약속할게"

 그렇게 소녀는 모든 주민들의 환대속에 비로소 정든 이곳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소년과 헤어진 소녀는 마지막 여장을 챙기며 복기하듯 얼마전 기억을 떠올렸다.

 

 -

 마을 회관에서 환자를 돌보던 한 소녀가 있었다.

 소녀의 이름은 아르셰였다.

 가녀린 체구와 하얀 피부, 황금빛깔이 매력적인 긴 생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눈동자는 푸르고 코는 오똑했으며, 입가에는 항상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그녀는 아주 어렸을 적 이 마을로 입양되었다.

 마을 공동체를 통해 키워졌으며 심성이 착해 사랑을 듬뿍 받으며 성장했다.

 부모에 대한 기억은 없었지만, 그런 것은 필요하지 않았다.

 마을 할아버지가 아버지였고 할머니가 어머니였다.

 케스파라 성당이 그녀의 집이었고, 마룬 마을이 그녀의 고향이었다.

 

 마을 회관과 성당 등지에서 마을 사람들과 주변 주민들을 치료하기 시작한 것은 아르셰가 열 살이 되던 해 부터였다.

 아르셰는 자신이 마을 주민들과는 다른 무언가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회관의 어르신에게 사실을 알리고부터 본격적으로 자신의 힘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녀의 능력과 그에 관한 이야기는 조심스럽게 인근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소녀는 여느날과 마찬가지로 회관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돌아가실 거 같아서 먼 길 달려왔습니다. 호흡이 가쁘고 도무지 치료 방법이 없어서 부탁드립니다.아가씨"

 

 소녀는 어느덧 성장해 있었다.

 멀리서 내달려 왔다는 아주머니는 아버님의 병세가 짙어져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소문의 발자취를 따라 이곳 케스파라 성당까지 찾아 왔다고 했다.

 

 아르셰는 가만히 노인을 쳐다보았다.

 안색이 창백했고 곧 숨이 멎을 것만 같아 보였다.

 아르셰는 걱정이 가득한 아주머니를 향해 사알짝 미소를 지어보였다.

 순간, 아주머니는 조급함이 사라짐을 느꼈다. 마음 속 알 수 없는 무언가가 평온과 안식을 가져다 주는 것 같았다.

 아주머니가 조금 진정 된 듯 보이자 아르셰는 손을 들어 노인의 가슴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노인의 가슴위에 올려진 아르셰의 손 주변으로 서서히 푸른 빛이 일더니 그 푸른 빛이 삽시간에 사방을 밝혔다. 그러더니 곧바로 사라졌다.

 그 광경을 본 모든이가 숨을 죽였다.

 찰나의 정적을 깬 것은 다른 아닌 환자의 한 마디였다.

 

 "어떻게 된 일이지? 난 긴 꿈을 꾸고 있었던 것 같아."

 

 "아버지~"

 

 아주머니는 정신을 차리고는 의식을 되찾은 아버지를 와락 껴 안았다.

 아르셰는 다시금 사알짝 미소를 보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회관 밖으로 나갔다.

 약간의 어지러움이 있었지만 여느때와 다르지는 않았다.

 

 회관 앞의 고목에서 숨을 고르고 있을 때였다.

 그녀는 누군가가 그녀의 옆으로 다가 오고 있음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얼마 되지 않아 누군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아르셰?"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중후하면서도 둔탁하지 않고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멋 스러움이 베어 있었다.

 

 "누구세요?"

 

 악의가 없다는 것 정도는 금새 알 수 있었으므로 별 다른 의심없이 대답했다.

 

 "아르쎼 양이 맞다면, 이것을 읽어 주십시요. 그럼 또 뵙겠습니다."

 

 그는 다짜고짜 그녀에게 둘둘 말린 서신 하나를 건네주고는 등을 돌렸다.

 아르셰는 이번에도 별다른 의심없이 서신을 받아 들었다.

 독특한 인장이 찍혀 있었지만 특별할 것은 없어 보였다.

 그녀가 서신을 확인하고 고개를 들자 그는 이미 덩굴이 우거진 성당의 터 입구까지 멀어져 있었다.

 그녀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번도 그토록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조심스레 인장을 뜯고 서신을 펼쳤다.

 아쉬움과 두려움 그리고 설레임의 감정이 묘하게 뒤섞였다.

 

 아르셰는 천천히 서신 속 메시지를 읽어 내려갔다.

 글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그녀의 눈동자는 흔들리며 떨리다가 멈추길 반복했다.

 

 이윽고 내용을 전부 확인한 아르셰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 뜨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미소짓고 있었다.

 평화롭고 온화한 미소가 고목나무부터 시작해 성당 전체를 가득 메우며 퍼져나갔다.

 

 -

 

 "도착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도데체 왜 안오는거냐? 불안하다. 불안하다."

 

 에레시크는 초초했다.

 에레시크 뿐 아니라 그와 함께한 모든 동료들이 초조해 하고 있었다.

 

 반란군이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한 뒤로 가장 강력한 지원군을 얻을 수 있는 기로에 서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합류는 그야말로 신의 한수가 될 수 있을것이다.

 반란군은 그녀의 합류는 곧 승리라고 확신했다.

 그 만큼 그녀의 가세는 반란군에게 있어 비장의 카드이자 필승의 전략이기도 했다.

 

 "불안하다. 불안하다. 불안하다. 불안하다."

 에레시크는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보다 못한 동료가 한 마디 했다.

 

 "아 진짜, 사령관이면 좀 채통을 지켜봐요. 사람이 왜 이렇게 가벼워, 그러다가 진짜 안 오는 수가 있어요. 좀"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동료는 한 숨을 쉬고는 더 이상 대꾸하기를 포기했다.

 그 때 였다. 다리 건 너편으로 사람으로 추정되는 누군가의 실루엣이 비추었다.

 제일 먼저 발견한 반란군 요원이 사령관에게 사실을 보고했다.

 

 "진짜냐? 잠시만 확인해보자."

 사령관 에레시크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전방을 집중해서 관찰했다.

 실제로 여성의 실루엣으로 보이는 무언가가 시야에 들어왔다.

 잠시 후 온전한 그녀의 모습이 확인되자 몇 몇은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휴, 와주었구나. 아르셰, 그녀가 우리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어. 참 다행이야. 밀키 그치?"

 에레시크는 옆에 있는 동료의 어깨를 세차게 두드렸다.

 

 "아잇, 아파요. 아프다구요."

 동료는 그렇게 투덜대면서도 표정이 어둡지 않았다.

 그 또한 씨익 웃어 보이며 그녀의 합류를 기뻐했다.

 

 -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제타의 정권은 타락했고, 또한 무능하다.

 영웅족 말살 정책으로 죄 없는 영웅족의 후예들이 모두 무의미한 죽임을 당했다.

 그런고로 우리는 남아 있는 영웅족의 후예들, 그리고 특별한 동료들과 힘을 합쳐 이 정권에 대항하려 한다.

 우리는 더 나은 가치를 위해 목숨을 내 버릴 각오가 되어 있지만,

 이 혁명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당신의 힘이 필요하다.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당신 또한 영웅족의 후예이며 특별한 힘을 지니고 있다.

 당신의 힘을 이 부조리한 세상을 뒤집는데에 사용할 수 있길 바란다.

 우리의 뒤에서 우리를 지켜줄 수 있길 간절히 희망한다.

 

 우리와 합류하면 당신의 부모님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알 수 있게 될 것이지만,

 그것이 반란군 합류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중차대한 업적을 이루기 위해 뭉쳤으며 그대와 꼭 함께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반란군 사령관 에레시크로부터

 -

 

 부모님에 대한 그 무언가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알 수 없는 어떤 이끌림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큰 고민없이 반란군에 합류하기로 마음 먹었다.

 아르셰는 며칠 간의 준비를 마치고는 마을사람들과 소소히 인사를 나눈뒤 마치 언제라도 다시 돌아 올 것 처럼 편하게 또 가볍게 한 번도 떠나 본 적이 없었던 케스파라 성당을 뒤로했다.

 편지에 써 있던 약속 장소는 어린시절부터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수도 없이 들어왔었던 비치지방의 랜드마크였다. 비치지방은 마룬 마을에서도 크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찾는데 무리가 없었다.

 이 지역은 숲이 우거져 있고, 호수와 갈대 밭이 곳곳에 형성되어 있어 비밀리에 첩보 활동을 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런 이유에서 그녀는 아마도 이 주변을 기점으로 반란군의 전초기지가 형성 되어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마을을 떠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다리 건너로 흐릿하게 보이는 한 무리의 집단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은 마치 단체로 무슨 운동이라도 하는 듯, 위 아래로 격하게 요동치는 것 처럼 보였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그녀는 막연한 불안감과 두려움을 느꼈다.

 앞으로 어떤 일들일 일어날지 그녀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이제와서 멈추거나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는 스스로 그녀에게 주어진 운명에 맞서기 위해 고개를 들고 당당히 반란군 대열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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