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영웅환상곡
작가 : 하이아라키
작품등록일 : 201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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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만들어진 악
작성일 : 17-12-14     조회 : 284     추천 : 0     분량 : 1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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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만들어진 악

 

 제타의 서쪽 경계, 일리언 연합국과 인접한 중소도시 '샤이가'

 절도와 강도, 살인과 강간, 그 외 온갖 폭력이 끊이지 않는 그야말로 무정부를 방불케 하는 도시였다.

 일리언 연합국과 제타의 경계지역에 인근하여 군부대가 주변을 장악하고 있었지만 범죄 발생을 저지하는데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정부의 영웅족 말살 정책으로 일부 능력이 출중하여 정부의 개가 된 영웅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영웅족들이 처형 당하거나 실종 되었다.

 

 카누스 캘거드는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도적질을 하는 통에 다행인지 가족과 함께 몰살 당하지 않았다.

 

 "캘거드, 아무래도 너희 가족말이야. 전부 몰살 당한거 같아. 녀석들이 끝내 너도 찾아내 죽일거야. 괜찮은거냐?"

 

 동료 도적으로 보이는 불량배 하나가 캘거드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부리부리한 눈동자와 검게 그을린 얼굴, 캘거드는 20살 답지 않게 상당히 성숙해 보이는 외모를 갖고 있었다.

 

 "칫, 죽는 것은 두렵지 않아. 다만 내 부모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는게 두려울 뿐이야."

 

 캘거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묘하게 미소짓고 있었다.

 그의 동료는 그런 캘거드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그럼 이제 어쩔거야? 어차피 언젠가 발각될텐데"

 

 그는 나름 걱정어린 시선으로 캘거드를 향해 물었다.

 

 "덤비면 그저 맞서줄 뿐이야. 그 이상 그 이하도 없어. 그게 영웅족의 인생이야. 난 그렇게 살아왔어. 나약하게 살아온 부모는 결국 무기력하게 죽어버렸지. 그렇다고 해도 난 정부를 욕하지 않아. 그저 무기력하게 죽어버린 것도 죄악이야."

 

 캘거드의 눈빛은 복수에 불타지도 그렇다고 누군가를 경멸하거나 저주하는 눈빛도 아니었다.

 그저 결의에 찬 눈빛이었다.

 어떤 시련이 닥쳐도 모두 헤쳐 나아갈 것만 같은 그런 결의 말이다.

 

 그 때 주변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동료는 곧바로 낌새를 챘는지 캘거드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이고는 한 마디 말도없이 이내 사라졌다.

 

 "겁쟁이 같은 놈, 영웅족도 아닌 녀석이 뭐가 그렇게 두려운거야."

 

 잠시 후 검은 색 말을 탄 건장한 사내들이 골목 사이를 돌아 캘거드가 앉아 있던 거리로 향해 왔다.

 모두 세명이었고 군제복 차림을 하고 있었다. 가슴에 은빛 휘장이 박혀 있었는데 '디서퍼즈'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칫, 날 죽이러 온건가? 디서퍼즈, 감찰반으로 알고 있었는데 학살을 자행중인건가?'

 

 캘거드는 특유의 눈빛을 발산하면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태생 3성위로 태어난 캘거드는 누군가로부터 한번도 무술수업 같은 것을 받아 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캘거드는 본능적으로 싸움에 능숙했다.

 누구보다 빨랐고 날렵했으며 통증에 무뎠다.

 처음 도적단에 가입했을 때 단장은 그의 움직임을 보고 마치 두 명이 움직이는 것과 같다고 했을 정도였다.

 그 때까지도 캘거드는 자신이 적어도 두 개 이상의 스킬을 지니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다.

 점점 성장하면서 캘거드는 스스로가 고통에 무디다는 사실 하나는 확실히 자각했다.

 뒤이어 몇 해 뒤부터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심지어 영웅족들보다도 빠르다는 사실을 알 게 되었다.

 

 하지만 캘거드는 지금은 그런 능력들을 사용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캘거드의 몸이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세 명의 사내들이 캘거드의 앞을 지나갈 때 였다.

 캘거드는 적어도 저 중에 한 사람, 가운데에 있는 사람만큼은 자신이 상대할 수 없는 수준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것은 저 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잠깐"

 

 캘거드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캘거드는 손을 말아쥐고 여차하면 먼저 공격할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최대한 빠르고 간결하게 저 두명을 처리하고 그와 1대1로 붙어야 그나마 그 뒤를 바라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심장소리가 저들에게 들릴 만큼 쿵쾅거리고 있었다.

 

 "자넨, 왜 우릴 경계하고 있지? 영웅족인가?"

 

 캘거드는 침묵했다.

 그러나 속으로 생각했다.

  ' 역시 보통 녀석이 아니야. 상대도 영웅족일 것이다.'

 

 "영웅족이나 그렇지 않은 자들이나 신 아래 모두 평등하다. 그것은 변함 없는 사실이지. 영웅족들이 과거 벌였던 그 살육의 역사를 모두 인정하더라도 지금에와서 그 후손들을 말살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캘거드는 머리가 아파왔다.

 그리고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의 눈 빛을 한 동안 바라보면서 캘거드는 묘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런 힘도 없이 가치따위를 운운하는 것 만큼 바보같은 짓도 없지. 그저 죽는거다. 힘을 가지지 못한자는 그렇게 죽어 없어지는 거야. 그것 또한 변함 없는 사실이지."

 

 캘거드는 두통이 가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한번 그의 눈빛을 바라보았다.

 그는 수려한 외모에 턱수염이 멋드러진 전형적인 제타 인이었다.

 디서퍼즈에서도 꽤나 높은 자리에 있을 것이다.

 캘거드는 무언가를 생각해냈다.

 그리고 사내는 캘거드의 생각을 읽어 냈다.

 

 "내각 의원 '마라우이'를 살해하고 날 찾아와라."

 

 캘거드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무언가를 잘 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실패하면 자결해라. 만약 성공한다면 네 운명은 그 순간 바뀌게 될거다. 뒷 목을 보여라."

 

 캘거드는 앞으로 조금 다가가 그에게 목 뒤를 보여주였다.

 

 "살아서 내 앞에 나타난다면 그 성위를 6성까지 올려주마. 가자~"

 

 캘거드는 온 몸을 덜덜덜 떨고 있었다.

 그리고 사내는 유유히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일단 침착할 필요가 있었다.

 캘거드는 크게 숨을 한 차례 들이쉬고는 생각하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린 뒤에 그가 생각한 첫 번째는 그 사내의 말을 모두 신뢰할 수 있는가였다.

 과연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가? 그럴만한 사람이냐는 게 첫 번째로 생각해야 할 거리였다.

 그러나 캘거드는 곧 바로 다음 문제를 생각했다. 캘거드는 그를 믿었다. 적어도 그 눈빛을 믿었다.

 캘거드가 다음으로 생각한 문제는 마라우이라는 내각의원이 누군가하는 것이었다.

 캘거드는 스스로 왕국 내로 잠입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제타는 알만 대륙 내에서도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 대국이었다.

 왕국 내에는 정규군 말고도 특수부대가 즐비했다. 디서퍼즈도 그 중 하나였다.

 

 캘거드는 한 사람을 떠 올렸다.

 그리고 곧장 그를 찾아갔다.

 어느 샌가 해가 뉘였뉘였 지고 있었다.

 캘거드의 가슴은 두려움과 공포를 대신해 흥분과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캘거드는 얼마전 새로 사귄 친구가 제타의 오랜 정치가문 중 하나였던 '뉴베른'가의 자제라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캘거드는 어렵지 않게 마라우이에 대한 정보를 캐 낼 수 있었다.

 그가 현재 제타 내 내각 위원장으로 활동중이며 시민의회로부터 두터운 신망을 얻고 있다는 사실,

 반정부 행정으로 내각 내에서도 그를 지지 않는 세려들이 꽤나 많다는 사실,

 그래서 실리즈(내각경호부대)로부터 전담으로 2명의 경호원이 따라 다닌다는 사실까지 말이다.

 캘거드는 결국 실리즈의 벽을 넘어야 비로소 마라우이를 암살 할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그가 한 일에 절반만 왕국에서 생활한다는 사실이었다.

 캘거드는 모든 정보를 취합하고 작전을 구상했다.

 그리고는 다른 그 어떤 생각도 하지 않기로 했다.

 오로지 목표를 제거하는 것에만 몰두하기로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마라우이는 아마도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존경받는 인물인 듯 싶었다.

 그가 왕국으로 떠날 채비를 마치자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배웅하고 그에게 진심어린 안녕을 바랐다.

 

  '칫, 저것도 대부분 가식이겠지. 어차피 죽어 나갈 사람은 전부 죽어나가고 있는 판에, 썩을대로 썩은 이 나라에서 그 누가 존경따위의 대상이 될 수 있단 거냐구.'

 

 캘거드는 순간 몸을 흠칫했다.

 누군가 자신의 존재를 눈치 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이 그런 일은 없었다.

 마라우이와 경호원은 각각 마차와 말에 올라 사람들을 뒤로 하고 왕국으로 출발했다.

 

 마라우이의 저택에서 왕성까지는 사나흘 이상이 걸리는 거리였다.

 캘거드가 아무리 빠른 움직임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며칠을 내내 달릴 수는 없었다.

 캘거드는 마라우이 일행이 '샤이가' 경계를 빠져나가기 전에 일을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그들을 앞지르기 위해 지름길로 달렸다.

 캘거드는 어느새 샤이가의 전경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산자락 꼭대기까지 올라 있었다.

 구불구불 이어진 시골길이 길게 이어진 탓에 큰 어려움 없이 마차를 따라 잡을 수 있었다.

 캘거드는 마차의 위치를 확인하고는 반대 방향으로 내달려 마차 앞을 가로 막을 생각이었다.

 마차와의 간격이 좁혀졌음을 알자 캘거드는 다시한번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제 비로소 어떻게 싸움을 벌일지에 대한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싸움에는 이골이 난 그였지만, 상대는 제타 최고의 경호 집단인 실리즈의 요원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요원이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그의 경호를 담당하고 있었다.

 다행이도 캘거드는 정보를 통해 실리즈의 대원들 중에 영웅족은 그 맥이 완전히 끊겼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마라우이를 담당하고 있는 실리즈의 요원들 역시 당연히 일반인 출신일 것이었다.

 제 아무리 특수 훈련을 받았을지라도 뛰어난 반사신경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영웅족을 당해 낼 수는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쇠뇌시키고 있었다.

 그렇지만 달리는 내내 흐르는 땀을 어찌 할 도리는 없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태양은 뜨거웠다.

 일리언 엽합국과의 경계에 자리잡은 샤이가는 제타왕국의 수도 지역에 비해 낮과 밤의 일교차가 비교적 큰 편이었는데, 선선한 가을 날씨에도 대낮의 기온은 굉장히 높은 편에 속했다.

 하지만 지금 전신을 타고 흐르는 땀이 비단 뜨거운 기온 때문에 발생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마차가 온전히 시야에 들어왔다.

 멀리서 마부가 열심히 마차를 몰아 내 달리고 있었다.

 경호원과 마라우이는 모두 마차 안에 탑승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름의 작전을 세운 캘거드는 재빠른 공격을 통해 순식간에 두 경호원을 제압하고 마라우이를 마지막으로 처리하고자 했다.

 몇 번이고 마인트 콘트롤을 한 뒤 마차와의 거리를 속으로 계산했다.

 이윽고 마차가 캘거드가 숨어 있던 수풀 앞을 지나쳤다.

 캘거드는 온 힘을 다해 마차를 향해 뛰어 올랐다.

 캘거드의 신체는 물리역학을 거슬러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속도로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마차를 향해 돌진했다.

 캘거드는 일반인의 눈으로는 파악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뛰어 들며 주머니에서 작고 날카로운 송곳같은 물체를 하나 빼내 마부에게 날렸다.

 그와 동시에 등 뒤에 메고 있던 갈고리 두 개를 마차의 문을 향해 날려보냈다.

 이제 싸움은 끝이 났다고 생각했다.

 마부는 그자리에서 즉사한듯이 고꾸라진채 미동도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등 뒤에서 날려보낸 갈고리는 문짝을 찢어 냄과 동시에 마차의 상부 전체를 날려 버렸다.

 순간 캘거드는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당황하며 몸을 틀어 마차의 뒤쪽에 메달렸다.

 마차 안에는 사람 대신 전쟁용으로 만들어진 도력 장치가 붙어 있었는데 마석 조각을 섞어 만든 탄환이 발사되는 살상 무기였다. 영웅족은 마석이 몸에 닿으면 신체 활동에 크게 제약을 받게 되 사실상 임무는 실패라고 봐야 했다.

 빠르게 몸을 비튼 탓에 도력장치에서 발사 된 마석 탄환을 피할 수 있었다.

 캘거드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아무래도 너무 쉽게 그 자를 믿었던 것이라고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었다.

 마차에서 내려 잠시 숨을 고르며 끓어 오르는 분노를 달래던 순간, 목 뒤로부터 엄청난 살기를 느끼고는 고개를 틀었다.

 날카롭고 뽀족한 검이 캘거드의 목선을 미세하게 스치며 혈흔을 만들었다.

 그러나 혈흔 자국은 수 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캘거드는 큰 고통을 느끼지는 않았다.

 캘거드는 빠르게 회복되며 큰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신체 탓에 어린시절 도적단 생활에도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주변 동료 들은 그를 불사신이라 불렀지만, 사실상 불사신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잘려지거나 큰 상처는 재생 또는 회복 시간이 더뎌 쉽게 염증이 생기거나 심하면 썩는 등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캘거드는 항상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누구냐? 내 뒤를 밟았군, 비겁한 녀석들"

 

 캘거드는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작전이 노출 된 것은 아쉬웠지만, 녀석들이 매복해 준 것은 그야말로 천운이었다.

 녀석들을 죽지 않을 만큼만 만들어 놓고 마라우이의 행방을 물으면 될 것이었다.

 캘거드의 얼굴에 사알짝 미소가 드리워졌다.

 

 "제발로 죽으러 왔군, 그러나 죽이지는 않겠다. 찾는 사람이 있어서 말이야."

 

 캘거드는 빠르게 몸을 돌려 순간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영웅족이군, 모조리 처리 했다고 들었는데, 그것도 아니었나 보군. 실력이 꽤나 있는 놈인 거 같으니 방심하지 마라."

 

 칼을 찔러 온 사내가 옆의 동료로 보이는 자에게 눈 짓을 하고는 캘거드를 향해 내 달렸다.

 캘거드는 숨이 턱 밑까지 차 올랐지만 다시 한번 혼신의 힘을 다해 빛의 속도로 자신에게 달려드는 상대의 전신으로 되려 뛰어 들었다.

 

 갈고리를 등 뒤로 회수하고 이번에는 짧게 잡아 쥐었다.

 제 아무리 훈련 받은 특수 요원이라고 해도 일반인은 그저 일반인일 뿐이었다.

 도력장치 없이는 결코 자신을 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한 확신이 캘거드를 더욱 공격적으로 만들었다.

 

 캘거드는 순간적으로 옆에 서 있는 사내의 움직임까지 파악하고는 짧게 말아 쥔 갈고리를 휘둘렀다.

 왼손의 갈고리는 달려 든 사내의 상채로 오른손의 갈고리는 다리쪽을 향했다.

 순식간에 몸을 절단시켜 버릴 요량이었다.

 그러나 캘거드의 갈고리는 허공을 갈랐다.

 믿기 힘든 순간이었다.

 쾌속의 속도로 혼신의 힘을 다해 뛰어 올라 빠르게 갈고리를 베어 갔지만 아무것도 벨 수 없었다.

 찰나의 순간 허무함을 핑계로 방심한 그 순간 뽀족한 무언가가 허리를 찔러 왔다. 고통은 크지 않았지만 기분 나쁜 촉감이었다.

 캘거드는 그대로 몸을 돌려 관통 당하는 것을 피해냈다.

 

 공격을 적중시켰지만 사내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지금까지 실리즈의 연계 공격을 피해 낸 녀석은 네 녀석이 처음이다. 믿기지 않는군. 분명히 3성이라고 들었는데 말야. 뭔가 착오가 있었던 건가?"

 

 캘거들에게 돌진하며 시선을 분산시켰던 사내는 함께 작전을 펼쳐 캘거드의 허리를 찔러 들어간 동료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빠르기가 남다르군, 내 동체 시력으론 벅찰 정도다. 솔직히 놀라워. 그렇다고는 해도 결과는 바뀌지 않겠지."

 

 두 사내는 눈빛을 교환했다.

 캘거드는 순간적으로 기분이 나빴지만, 지금은 그런 기분을 느낄 여유 조차 없었다.

 

 캘거드의 시선에서 왼쪽에 서 있는 사내는 마른 체구에 키가 크고 날렵한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왼손에 단봉 같은 작은 봉을 하나 들고 있었는데 어떤 형태로 사용되는 무기인지는 파악되지 않았다.

 표정에 변화가 없었으며 침착해 보였다.

 강인해 보였고 어두웠으며 캘거드 자신에 빗대어도 모자람이 없을 만큼 슬픈 눈빛을 하고 있었다.

 

 반면에 오른쪽에 서 있는 사내는 비교적 통통한 체형에 키가 작고 둔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찌르기 공격에도 방심했던 것이다.

 오른손에 뽀족한 지팡이 같은 것을 들고 있었고 그것이 단봉의 형태에서 펼쳐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둥글한 몸매와는 달리 인상은 날카로웠고 어둡지는 않았지만 가벼워 보이지는 않았다.

 

 두 사내 중 먼저 움직인 쪽은 마른 체구의 사내였다.

 그는 순시간에 내 달려 캘거드의 어깨를 단봉으로 내리찍었다.

 캘거드는 빠른 속도로 사내의 뒤를 잡아 갈고리로 목을 휘감았다.

 순간 통통한 체형의 사내가 방해를 해왔는데, 뽀족한 지팡이 같은 무기를 접어 짧은 단봉처럼 만들고는 갈고리 안으로 밀어 넣어 쳐 낸 것이다.

 셋은 서로 퉁겨져 나가 약간의 거리를 벌리게 되었다.

 

 갈고리를 회수한 캘거드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곧바로 두 사내에게 지그재그로 뛰어 들었다.

 두 사내는 순간 놀랐지만 이내 침착하게 캘거드의 움직임을 파악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누구에게로 공격해 오는 것인지 판단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것이 실수였다.

 확신은 방심을 낳고 방심은 치명타로 이어지는 법이다.

 캘거드는 그런 심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세상은 넓고 강한 자는 넘쳐났다.

 캘거드가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지금껏 생존해 왔었던 것은 쉽게 방심하지 않고 함부로 확신하지 않는 그 만의 전투 노하우 때문이었다.

 캘거드는 단순히 빠르게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다.

 움직임의 끝에 잔상, 그러니까 환영 같은 것을 남길 수 있었다.

 그것은 그가 물리력 저항과 맞물린 빠른 회복 능력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로 빠른 이동 속도에 연계되어 갖고 있는 스킬 능력이었다.

 

 마른체구의 사내는 캘거드의 마지막 움직임을 완벽하게 포착했다. 아니 완벽하게 포착했다고 생각했다.

 오랜 기간 특수한 훈련을 통해 동체 시력의 수준은 이미 일반인의 수십 배에 달한 실리즈의 요원들이었다.

 사내는 단봉을 말아쥐고 아래에서 위로 걷어 올렸다. 튀어 오르는 동작을 의식한 고난도의 전투 기술이었다.

 한적한 시골 길 바닥에 흙먼지가 세차게 일었다.

 이번에는 실리즈 요원의 단봉이 허공을 갈랐다.

 아차 싶은 순간이었다.

 옆쪽으로 비켜 서 있던 통통한 체격의 사내는 얼굴을 찌뿌렸다.

 동료가 당할 것을 알았지만 캘거드의 갈고리 하나가 교모하게 자신에게 뿌려지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다른 수를 쓸 수는 없었다.

 마른체구의 사내는 자신의 머리에 무언가 깊숙하게 꽂혀 들어 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아주 짧은 순간이어서 고통 같은 것을 느낄 수 조차 없었다.

 실리즈의 특급 요원 하나가 절명한 순간이었다.

 캘거드는 환영을 남기며 단봉을 피하고 옆에서 정면으로 퉁기며 갈고리를 양 방향으로 뿌려냈던 것이다.

 두 명 모두에게 착시를 주었고 완벽하게 한 명을 제압했다.

 다만 두 명중 하나를 처치했다는 안도에 반대 방향으로 날려버린 갈고리의 회수가 늦어지고 말았다.

 남은 한 사내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일순 단봉을 길게 늘여뜨려 뽀족하게 만들면서 갈고리의 쇠줄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느 그것을 그대로 당겨 캘거드를 자신이 몸쪽으로 끌어 들인 것이다.

 캘거드는 갈고리를 놓칠 수 없어 완력에 끌려가다 몸을 위로 퉁겼다.

 혹시 모를 암습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면서도 주머니에서 침 하나를 꺼내 날리는 것을 잊지는 않았다.

 

 "약삭빠른 녀석"

 

 사내는 발을 내 지르려다 암기를 확인하고는 얼른 발을 거두어 들였다.

 침이 간신히 사내의 발 옆을 스쳤다.

 순간 캘거드는 마른 사내의 머리에 꽂혀 있는 갈고리를 어느샌가 뽑아 내 아래의 사내쪽으로 휘둘러 내렸다.

 사내는 쇠사슬에 꼽아 둔 단봉을 빼내지 않고 그대로 밀어 올렸다.

 캘거드의 갈고리가 사내의 등에 정확히 꽂혀 들었다.

 그러나 사내의 길고 뽀족한 단봉이 이번에는 캘거드의 심장 부근에 정확히 꽂혀 버렸다.

 승부가 결정 난 듯 보였다.

 캘거드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땅 바닥에 고꾸라져 미동도 하지 않았다.

 실리즈의 남은 요원 또한 등에 박힌 갈고리때문에 고통스러워 하고 있었다.

 

 "이정도론 죽지않아."

 

 그렇게 주절거리며 등에 박힌 갈고리를 힘으로 뽑아 내었다.

 

 "크 크윽"

 

 고통에 겨워 내 뿜어진 신음소리 치고는 짧고 간결했다.

 

 사내는 바닥에 뒹굴어진 캘거드에게로 다가갔다.

 이미 숨이 멎은 듯 엎어진 캘거드를 발로 걷어 내 뒤집었다.

 캘거드의 왼 가슴에 깊고 정확하게 단봉이 꼽혀 있었다.

 

 그리고는 허리를 숙여 단봉을 잡고 캘거드의 뒷 목을 확인했다.

 

 "칫, 3성 짜리 영웅족에게 실리즈의 요원 하나가 당하다니, 반성할 일이야."

 

 사내는 그렇게 말하고는 잡고 있던 단봉을 세차게 뽑아 냈다.

 캘거드의 가슴에서 피가 솟구쳐 나왔다.

 

 "끝난거 같군"

 

 사내는 그렇게 말하고 뒤를 돌았다.

 

 "뭐라고 보고를 해야하지, 겨우 3성위의 이름도 모르는 도적단 놈에게 네퓨가 쓰러졌다? 칫 또 한소리 듣겠군."

 

 사내는 몸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며 멋적은 표정으로 하늘을 한차례 올려보았다.

 그리고는 쳐 든 고개를 그대로 들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방금까지 쓰러져 뒹굴고 있던 녀석이 머리위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사내는 본능적으로 수비자세를 취했지만 캘거드의 갈고리가 이미 사내의 오른다리와 왼팔을 정확하게 가르며 지나갔다.

 공중으로 선회하던 갈고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내의 머리까지 정확하게 가르고 지나갔다.

 그제서야 갈고리는 비로소 캘거드의 양손으로 되돌아 갔다.

 캘거드는 어느새 사내의 앞에 서 있었다.

 

 "이게 무슨?"

 

 사내의 표정은 의문으로 가득했다.

 

 캘거드는 죽어가는 사내에게 마지막 선물 처럼 한 마디를 남겼다.

 

 "난, 불사신이야."

 

 사내는 이제야 알겠다는 듯이 어처구니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머리는 몸에서 분리되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캘거드는 그제야 참았던 숨을 몰아쉬며 헉헉 거렸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큰 고통을 느껴본적은 없었다.

 아무래도 심장을 찔렸기 때문일것이라고 캘거드는 생각했다.

 캘거드는 갑자기 미친 듯이 웃었다.

 

 심장을 찔리고도 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불사신이라는 말이 허세가 아닐지도 모른다.

 캘거드는 벌써 다 아물어 버린 가슴을 쓰다듬으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어딘가에 숨어 있을 마라우이를 찾아야 했다.

 그것은 어쩌면 실리즈의 두 요원을 처리하는 것보다 어려울지도 몰랐다.

 

  '짝, 짝, 짝'

 

 어디선가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익숙한 얼굴의 사내가 뒤쪽에 서 있었다.

 캘거드는 고개를 돌려 사내를 확인하고는 양손에 쥐고 있던 갈고리를 있는 힘껏 날려보냈다.

 

 그러나 캘거드의 갈고리는 이내 힘없이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어찌된 영문인지 몰랐지만 캘거드는 그대로 갈고리를 회수하고 몸을 날렸다.

 사내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미동조차 없이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그저 온화한 미소를 지은 채 그대로 나무처럼 우뚝 솟아 있었다.

 캘거드는 사내의 앞에 내려 앉아 분노 가득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이오?"

 

 캘거드는 조용히 그리고 무겁게 말을 건넸다. 그의 음성에 분노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사내는 그런 그의 이야기에는 관심도 없는 듯 캘거드의 갈고리를 들어올렸다.

 캘거드는 땅위에 널부러져있던 갈고리가 스스로 하늘위로 오르자 놀라 뒤로 몇 걸음을 물러섰다.

 

 "좋은 무기구나. 적어도 시골 삼류 대장장이가 만든 무기같지는 않군. 날이 무뎌있지만 이것은 마모된 것이 아니라 일부러 그렇게 세공을 한 것이야. 재질도 꽤나 훌륭해. 알만에서는 구하기 힘든 금속을 사용 한 탓에 한번에 알아보지 못했어."

 

 캘거드는 또 다시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싸워서 이길 자신은 없었지만 이대로 있다가는 열불이 나서 죽을 것 같았다.

 

 "젠장할 도데체 어디까지가 거짓이냐고? 왜 날 속인거냔 말이닷!"

 

 캘거드는 울부짖듯이 외쳤다.

 

 "거짓은 하나도 없어. 그저 널 시험해 본 것 뿐이야. 오늘부터 너는 제타의 특무대원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네가 이 팀을 이끌게 될거야. 그리고 견뎌 낼 수 있다면 6성위까지 진화하게 될 것이다."

 

 캘거드는 온 몸에 벌레가 기어가는 듯 큰 소름을 느꼈다.

 진화라는 유혹에 선뜻 일에 휘말리긴 했지만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알 수 없는 미래가 펼쳐지려하고 있었다.

 

 "싫으냐?"

 

 사내의 물음에 캘거드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가자! 실리즈와의 일은 잊어라. 너는 그저 아무말 없이 나를 따라 행동하기만 하면 된다."

 

 캘거드는 이번에도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샤이가의 시골길 널부러진 두 구의 시체위로 세찬 회오리 바람이 일었다.

 소문은 삽시간에 왕성 전체로 퍼졌지만 범인을 밝혀 낼 수는 없었다.

 며칠 뒤 캘거드는 특별 채용 시스템을 통해 특무대의 정식 일원으로 발령받았다.

 실리즈의 수석 교관으로 있던 부토만이 그를 의심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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