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는 말이지만 나는 이 기관차라는 물체를 무척 좋아한다.
과학의 결정체라고 불리 우기도 하는 이것은 특수하게 제련이 된 광석만 밀어 넣으면 계속해서 달리기 때문이다. 이것만 있으면 굳이 귀찮게 발 아프며 걸을 필요도 없고, 말과도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를 낸다.
물론 마법의 정수라고 불리는 워프에 비하면 부족함이 있지만 뛰어난 마법사가 필요한 것과 다르게 기관차는 약간의 훈련만 받으면 누구나 수백 단위의 사람을 옮길 수 있으니까.
어쨌든 기관차는 돈을 내고 타기만하면 원하는 목적지까지 가만히만 있으면 갈 수 있고, 그 사이 안에서 책을 본다거나 창밖을 멍하니 본다는 등의 시간을 보낼 수도 있으며 숙식도 제공을 하니까 완전 최고라고 해야 하나?
뭐, 유일한 흠이 있다면 과학 기술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어디로 가시나요?”
열차를 타기 전 티켓이란 것을 사기 위해 창구에서 줄을 서고 있자 어느새 내 차례가 왔다.
“블랑드 영지로 가려고 하는데요.”
“되게 멀리 가시네요. 블랑드 영지면 2천 글랑이에요.”
블랑드 영지로 간다는 것이 그렇게 놀라운 것인지 눈을 크게 뜨며 말하는 직원에게 대답 대신 조용히 백 글랑짜리 동전 20개를 꺼냈다.
“네 2천 글랑 받았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옆에 놓여있던 종이 중 하나를 꺼내더니 깃털 펜으로 블랑드 영지라고 적더니 옆에 놓인 도장을 들어 가볍게 내리찍는다. 다음 그것을 들어 나에게 건네려던 여인은 무언가 생각이 난 것인지 재빠르게 종이를 당기며 말한다.
“아, 죄송합니다. 옆에 이름을 적어야 해서… 죄송한데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요.”
“레나입니다.”
“혹시 평민이세요?”
“그렇죠, 왜 평민이 기관차를 이용해서 놀라운가요?”
“솔직히 말하면 그렇죠, 가까운 거리면 몰라도 블랑드 영지라는 먼 곳까지 가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요.”
숨김없이 놀람을 표현하는 모습에 나는 짐짓 별 것 아니라는 듯 말한다.
“아쉽게도 이제부터 저는 공인 연금술사 시험 때문에 오지란 오지는 다 가봐야 할 참이거든요.”
“공인 연금술사요? 대단하시네요… 아, 여기, 이걸 가지고 5번으로 가시면 되요.”
내 이름이 적힌 표를 받아들은 다음 고개를 숙이며 작게 인사를 하고는 역을 걷기 시작하였다. 출발 시간은 1시간 뒤로 적혀있으니 느긋하게 가도 괜찮겠지.
곧 있으면 기차를 타고, 블랑드 영지로 출발하게 될 것이다. 길고 긴 시간을 같이 지냈던 고향은 물론 한동안 공인 연금술사 시험 때문에 지냈던 왕도조차 벗어나게 된다. 그럼 아마 한동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녀야 할 테니 이곳으로 돌아올 일은 없겠지.
그 생각만 하면 정말…
“싫다아아.”
어쩌자고 내 팔자가 이렇게 된 것인지 궁금할 지경이다. 차라리 연금술사를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 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이라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공인 연금술사 자격 따위야 때려 치라고 누군가가 소리 지르는 기분이다.
그만큼 공인 연금술사 시험의 마지막은 생각 이상의 것이니까.
“잠깐, 실례 좀 하지.”
“네?”
끝없이 이어지는 갈등 속에서 기관차를 탑승하는 곳으로 가던 도중 들려온 말에 고개를 돌리자 옆에는 한 사내가 가만히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인지 엄청 큰 키에 미남인 것 같긴 하지만 왠지 약간 화난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모습에 반사적으로 걸음을 멈추며 답하였다.
“잠깐 실례한다고 했다만.”
무, 뭐지. 신종 협박인가? 아니면 납치? 이런 기관차 정착소 한 가운데에서?!
“저, 저기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전 그냥 지나가는 사람일 뿐…”
“5번 승차장으로 가고 싶다만?”
“그런 건 저는 전혀 몰라요…! 네?”
“5번 승차장 말하는 거다.”
음성의 높낮이가 느껴지지 않는 덤덤한 말에 횡설수설하며 말하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자 가만히 나를 바라보며 ‘5번 승차장’이라고 다시금 그는 말한다.
“5, 5번 승차장 말인가요?”
“그렇다만? 혹시 어디로 가야하는 것인지 모르는 건가.”
가만히 나를 내려다보던 그는 슬쩍 몸을 돌리며 ‘실례했군’이라 중얼거리며 걸어가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나는 그가 말한 5번 승차장이 내가 가려는 곳이라는 걸 겨우 생각해내고는 다급하게 말하였다.
“잠깐.”
“응?”
“저, 저기 저도 5번 출구로 가야 하는데…”
“그런데?”
“같이 가실래요?”
내 물음에 그는 또 다시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바라보더니 잠시 시간을 두고는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두 번 말하지만 왠지 무언가에 화가 난 것 같다.
…
갑자기 만난 사내와 5번 승차장으로 오는 동안 특별한 일은 없었다. 당연한 것이지만 5번 승차장까지의 거리라고 해봤자 20분도 채 되지 않은데다가 나는 물론 그라고 딱히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연히 침묵 속에서 어색하게 걸을 수밖에 없었고, 그 분위기로 승차장에 도착하게 되었다.
“여기인 것 같네요.”
한쪽에 놓여있는 5번이라는 팻말을 힐끔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말하자 사내는 나를 보며 슬쩍 고개를 숙인다.
“고맙네, 기관차를 타는 경험은 거의 없어서 하마타면 제 시간 안에 오지 못했을 수도 있었는데 덕분에 무사히 도착하게 된 것 같군.”
“아니에요, 어차피 저도 가는 방향이었을 뿐인데요 뭐.”
막 들어오기 시작하는 기관차를 보며 말하는 그를 나도 모르게 조심스럽게 훔쳐본다. 뭐랄까, 설명하기 어려운데 입고 있는 옷이나 그런 게 일반 사람 같아보이지는 않다.
“그… 이번에 들어오는 기관차를 타려는 건가요?”
“아아, 리만 영지로 가는 길이다만.”
“리만 영지요?”
“처음 가는 곳이지만 할 일이 있으니까.”
“할 일이라니, 무슨 일인데요?”
나도 모르게 한 물음에 순간 가만히 앞을 바라보던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노려본다. 아니 다행히 노려보는 건 아닌 것 같다.
“궁금한 것이 많나보군.”
“네? 뭐, 이것도 인연이라고 해야 하나? 같은 기관차를 타는 사이니까요. 이른바 의미 없는 잡담이라는 거죠.”
흘러내리는 가방 끈을 다시 어깨에 걸치며 말하자 잠시 내 가방을 바라보던 그는 잠시 고민하는 척 하더니 내 가방을 가리키며 말한다.
“잡담이라면 내 이야기가 아니라도 상관없지 않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는 건가?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어서 아무것도 알 수 없어 잠시 그를 바라보던 나는 이내 들으라는 듯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 좋아요. 저야 별 이야기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저한테 궁금한 것이라도 있나요?”
“음, 우선 어디까지 가는 지?”
“전 블랑드 영지로 가요.”
“블랑드면 꽤나 먼 곳 아닌가? 고향이라도 가나?”
“아뇨, 생전 처음 가는 곳인데요, 일이 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가는 거죠.”
연금술을 하는데 필요한 희귀재료를 찾으러 갈 것만 생각하면 또 다시 머리가 지끈거린다. 이런 내 모습을 본 사내는 마치 충고하듯 말한다.
“블랑드 영지 뒤쪽에 있는 오지에는 들어가지 않는 걸 추천하지, 위험하니까.”
그 위험하다는 영지에 가는 게 목표라서 무리.
장난스럽게 웃으며 대답하려는 순간 들려오는 굉음에 놀라 고개를 돌리자, 그러자 저 끝에서 거대한 기관차 하나가 천천히 이쪽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왔군.”
“아직 출발까지 시간이 꽤나 남았는데 말이죠.”
힐끔 목에 걸어 옷 안쪽에 밀어 넣어두었던 시계를 꺼내 시간을 보며 중얼거린 내가 다시 사내를 바라보자 그는 처음으로 놀란 표정을 짓는다. 대체 왜 그러는 것인지 알 수 없어 가만히 바라보자 그는 그제야 헛기침을 하며 말을 잇는다.
“시계라니, 꽤나 비싼 물건을 가지고 있군.”
“네? 아아, 시계가 필요한 일을 하고 있어서요. 그보다 그쪽도 가지고 있잖아요?”
“그쪽?”
순간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날카로워진다. 어떤 마음인지는 모르겠지만 날카로운 시선과 동시에 묘하게 느껴지는 압박감에 나는 슬쩍 인상을 찡그리며 재빨리 말을 이었다.
“이름을 모르니 어쩔 수 없잖아요.”
“…실례했군. 나는 아스루텐이다. 다들 스텐이라고 부르니 그렇게 불러도 좋다.”
“그럼… 어쨌든 스텐씨도 시계를 가지고 있잖아요?”
언 듯 보면 알기 힘들지만 그의 오른쪽 허리춤에 떡하니 걸려있는 시계를 보며 묻자 그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허리춤을 만지작거리며 답하였다.
“이거 말인가? 뭐, 원래 시계가 필요한 일을 했어서… 지금은 아니지만”
“그럼 지금은 뭐 하는데요?”
“모험가라고 할 수 있겠군. 중요하게 구하는 것이 있어서 말이지.”
구하는 것이라… 연금술사의 직업 특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관심이 가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애써 그 부분까지 묻지는 않는다. 어차피 여태까지의 대화를 통해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쓸모없는 이야기와 생각을 하는 도중에도 기관차는 점점 더 역 안으로 들어왔고, 서서히 멈추기 시작하였다. 동시에 한 쪽 구석에 서 있던 깔끔한 제복을 입고 있던 사내가 기관차의 입구에 선다.
“아, 저쪽으로 가죠.”
나와 그가 같이 기관차에 탑승하기 위해 입구로 다가간다. 그러자 우리 두 사람 말고도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탑승 구역으로 다가갔는데 순간 이런 사람들을 본 제복을 입은 사내가 손을 들어 올리며 말한다.
“잠시 기다려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쪽 분들 잠시 옆으로 비켜 주시겠습니까.”
“네, 넷”
제복을 입은 사내의 말에 몰려오던 사람들이 멈추더니 길을 연다.
“대체 뭐지? 어딘가 귀족님이라도 탑승하려는 걸까?”
“이 정도의 분위기라면 꽤나 고위 귀족인 것 같네요.”
“그렇겠지.”
내 말에 그는 말과 다르게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만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정확히는 표정 변화가 전혀 없어 보인다는 것이 맞는 말이겠지만. 어쨌든 반응이 없는 스텐씨 대신에 비켜선 사람이 있는 쪽을 바라보자 이내 그 틈 사이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오기 시작한다.
“저 사람들은…?”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한 두 명이 아니라 거의 열 명이 넘는 인원이 몰려왔는데 공통점이 있다면 다들 같은 겉옷을 입고 있다는 점과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옷의 등이나 팔 가슴 부분 등에 같은 문양을 새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기관차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티켓을 내지도 않는 것을 보니 단순한 탑승객은 아닌 것 같다.
“기사들이군. 게다가 숫자가 꽤 많고 장비를 갖추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은데…”
“그래요?”
“잠깐 실례하지.”
가만히 대화를 하던 도중 순간 스텐씨가 슬쩍 앞으로 나선다. 그러더니 기관차 앞의 사내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왜 이렇게 많은 기사들이 기관차에 타는 것인지 알 수 있을까? 손님으로 타는 것 같지는 않다만.”
“그… 소문을 들었는지 몰라도 최근 기관차 길에 나타나는 괴물들이 많아서 말이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멀리 가는 길에는 기사들이 같이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괜찮은 건가? 괴물을 잡지도 않고 기관차를 운행해도?”
“일단 나타난 괴물들의 대부분은 모두 잡았다고 합니다. 기사님들이 대동하는 것도 혹시나 하는 차원에서 그런 것뿐이니 위에서는 괜찮다고 내려왔습니다.”
“그렇다면 별 걱정은 없겠군.”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한 그는 마치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더니 무언가를 꺼낸다. 그것이 무엇인가 봤더니 그건 바로 기관차의 표였다.
“아, 여기 표를 확인해드리겠습니다.”
잠시 그의 표를 확인한 사내는 이내 슬쩍 비켜서며 말한다.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고맙군.”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기관차를 타기 위해 다가오는 사람들을 보고는 놀라며 재빨리 스텐씨를 따라 붙었다.
“아, 여기 저도요.”
“네, 알겠습니다.”
몰려드는 사람들 속에서 방금 나와 스텐씨가 같이 있던 것을 봐서인지 길을 내어주는 배려 덕분에 다행히 먼저 표를 확인받은 뒤 안으로 잽싸게 들어갔다. 그러자 방금까지 같이 들어갔던 스텐씨는 저 멀리를 걸어가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며 뒤따라 붙었다.
“너무 혼자 가는 것 아닌가요?”
내 물음에 그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살짝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벌써 온 건가?”
“그보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던 사이인데 너무 한 것 아니에요?”
“그건 미안하군, 다만 먼저 짐을 내려놓고 다시 돌아가서 기다리려고 했던 것 뿐이다만…”
그리 말을 하는 스텐씨의 얼굴에는 딱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은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그 전에 굳이 이런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고 말이다.
“뭐… 그보다 자리가 어디에요?” 주섬주섬 방금 전 집어넣었던 티켓을 꺼내며 묻자 그 역시 자연스럽게 품에서 티켓을 꺼내며 답한다.
“B칸 45번 좌석이군.”
“아, 정말요? 그럼 저희 가까운 자리네요.”
들고 있던 티켓에 적힌 좌석으로 돌려 그에게 보이며 말한다. 이런 내 티켓의 한쪽에는 B-44라고 적혀 있었다. 앞자리인지 옆자리인지 아니면 건너편인지는 몰라도 꽤 가까운 자리인 것인 분명해 보인다.
“리만 영지까지 심심하지는 않겠네요.”
블랑드 영지는 리만에 비하면 한참 뒤이기 때문에 그 이후부터는 혼자이지만 적어도 그 순간까지는 퍽 외롭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눈앞의 남자는 과묵하고 인상이 사납긴 하지만 이야기하기 싫은 상대는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군, 도착했나?”
열차의 뒷문을 지나 다음 칸으로 가는 문을 슬쩍 여는 그를 바라보다 문을 바라보자 커다랗게 B칸이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먼저 들어가도록.”
“고마워요.”
먼저 쏙 들어가 버리는 것 대신문을 몸 안쪽까지 끌어당기며 내가 지나갈 자리를 확보해주는 모습에 작게 눈웃음치며 먼저 안으로 들어섰다.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니까.
내가 들어간 이후에야 들어와 문을 닫는 그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자연스럽게 주변을 탐색하듯 훑어본다. 탑승자를 배려한 것인지 각 자리에는 눈에 들어올 만한 크기로 번호가 쓰여 있어서 이내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아, 저쪽이에요.”
동시에 빠른 걸음으로 자리로 다가간 뒤 한쪽에 가방을 내려놓고 그 옆자리에 앉았다.
“바로 앞자리인가?”
“그러네요. 곧 기관차가 출발한다니까 빨리 앉으세요.”
“실례하지”
나와 마찬가지로 들고 있던 가방을 한쪽에 내려놓더니 그 옆자리에 앉는다.
어느새 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도 하나 둘씩 칸 안으로 들어섰는데 꽤 많은 사람들이 밖에 있던 것과 다르게 의외로 안쪽에 들어오는 사람의 수는 적었다. 뭐랄까 기관차 전체의 절반 정도 밖에 사람이 차지 않은 느낌?
“뭔가 생각보다 사람이 적네요.”
“그런가?”
“물론 지역을 이동하는 게 쉬운 게 아니니까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좀 심하지 않나 싶다. 분명 내가 이 도시로 올 때만해도 이것의 배는 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절반정도 밖에 없으니 말이다.
“아마 조금 전 기사들이 말한 일 때문일 것이겠지. 모험가나 아님 급한 일이 있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상인 같은 사람이나 혹은 단순히 여행 같은 것을 가는 사람들이라면 다른 날로 바꿀 테니까.”
그리 말하며 그는 힐끔 끝 부분을 바라보았는데 양쪽 끝에 있는 자리에는 아까 보았던 기사들이 한 명씩 서 있었다.
“조금 불안한데 별 일 없겠죠?”
“걱정되나?”
“그렇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죠.”
“큰일은 없겠지. 일이 일어난다 해도 기사들 선에서 정리될 거다.”
정말 걱정하지 않는 것인지 단호하게 말을 한 그는 느긋하게 의자에 기대는데 그 모습을 보니 나조차 안심이 되어 그와 마찬가지로 의자에 기대었다.
그리고 마치 이 순간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가만히 멈춰있던 기관차가 느릿하게 그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 출발한다.”
조금씩 가속하기 시작하며 동시에 차량 맨 앞에서 굉음이 들려온다. 소리와는 다르게 느릿한 속도, 하지만 이내 이 속도가 가속하여 말이나 마차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를 낼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며 기대에 찬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며 슬쩍 창문을 연다. 그러자 창 밖 앞쪽에서 희미하게 하늘색의 연기가 퍼져 나오기 시작한다. 이윽고 다시 한 번 굉음이 들리며 조금씩 나오던 하늘색의 연기가 대량으로 뿜어져 나오더니 느릿하던 기관차가 순식간에 사람이 달리는 속도는커녕 말이 달리는 속도조차 추월해버린다.
동시에 하늘색의 연기가 기차의 창문을 빠르게 지나친다. 코끝을 스치는 마력의 냄새에 기분이 순간 좋아진다.
“좋아하나보군, 하늘색 연기를.”
“뭐 검은색 연기에 비하면 훨씬 좋잖아요? 보기에도 그렇고, 냄새도 그렇고.”
“석탄을 말하는 거군. 확실히 그렇지, 무엇보다 여러 말썽을 일으킨 문제가 있는 물건이니까.”
“솔직히 석탄 때문에 왕궁에 거대한 드래곤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무슨 농담인가 했을 정도라니까요.”
“그 덕분에 연금술의 입지가 다시 올라갔지.”
십여 년 전 일인데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기관차가 만들어진 뒤 석탄이란 광물을 이용해서 이걸 운용하던 도중 어느 날 기관차를 처음 만든 에단 왕국의 왕성 하늘에 거대한 드래곤이 나타난 적이 있었다. 거의 수백 년 만에 등장한 그 존재에 왕국은 어쩔 줄 몰라 했는데 그 드래곤은 이상 현상을 이유로 석탄의 사용을 금지하였다.
뿐만 아니라 여러 과학의 핵심 기술의 사용을 금지했는데 그 덕분에 과학 신봉자들 사이에서 큰 불만이 나왔던 것 같다. 반대로 마법사나 요정들은 좋아했지만. 이후 석탄을 대체할만한 것을 찾기 위해 여러 일이 일어났지만 별로 중요하지는 않으니까…
“어쨌든 그런 이유로 검은색보다는 하늘색이 낫다는 말씀.”
“이상한 결론이지만 뭐 상관없나.”
황당하다는 듯 말하는 스텐씨를 바라보며 갑자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살짝 키득인다. 이제야 겨우 내 마지막 시험이 시작이 된 기분이다.